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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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뫼르소 그는 거짓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건 생각보다 우리 삶에서 자주 하는 일이다. 이는 사회적인 관습에따라 연출되는 일종의 '연극', 사회 생활의 필요에 의하여 하게되는 거짓말을 뜻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럴' 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 사회는 다른 사람들이 YES할 때, NO라고 하지 못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대체로 나의 감정과 위배되어도 그것에 대해 표현하기를 꺼려한다. 물론 이러한 문화적인 이유도 크지만,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는 것보다는 그것을 비난하며 얻는 유희가 더 크기 때문에 그 연극에 모두가 동참한다. 특히 뫼르소의 상황처럼 어떤 특정 상황에서 공통된 감정 표현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그러한 '규정된 감정 표현'에 대해 벗어나는 것을 극히 싫어한다. 그래서 뫼르소가 지금 현재 사회에 살았다 하더라도 그는 '사형'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으니까. 어머니 장례식 다음 날 여자를 만났고, 개그 영화를 보기도 했으니까.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중간고사 전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갑작스러운 일에 평소보다 감정이 더욱 억제되어 있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건네는 위로와 인사들이 나에게는 몹시 불편했는데 장례식을 치르는 기간동안 사실 나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래서 친척 어른들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울지도 않고 독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글쎄, 정말 슬프지 않아서였는지 너무 슬퍼서였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어떤 감정을 표현해야할 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한 감정이 내게는 낯선 것이었고, 그 때의 감정을 떠올려보면 그 기억은 여전히 나를 이방인으로 만든다.

때론 정말 친한 친구의 기쁜 일이 나에게 기쁘지 않았던 적도 있다. 대학 발표를 기다리던 시기에는 함께 공부하고 어울렸던 친구들이 친구이자 경쟁자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각자의 길이 다 다르고, 하고 싶은 것도 다 다르기 때문에 유치했던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때는 나와 성적이 비슷했던 친구가 수시나 좋은 학교에 먼저 합격하고나면 질투가 많이 나거나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우리는 표현하지 않는다. 무엇이 옳고,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사회 통념상 규정된 감정과 조금 다른 감정을 느끼는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순간 우리는 사실 감정적으로 '이방인'이 된다. 그러나 그 이방인이 되는 것이 두려워 감출 뿐이다.

뫼르소는 아랍인을 죽이고 반성하지 않는다. 배심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연기'했다면 뫼르소는 '사형 선고'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러한 반응을 기대하고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뫼르소는 이러한 '연기'를 하는 것을 거부하고 단지 귀찮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피고는 자신인데, 자신은 빼놓고 모두가 동참하고 있는 이 연극 속에서 뫼르소는 삶의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이는 뫼르소는 사회적인 관습에따라 연출되는 일종의 '연극', 사회 생활의 필요에 의하여 하게되는 거짓말을 거부함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평소에 내가 가장 자주하는 말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인데, 이 작품에도 그러한 말이 꽤 자주 등장한다. 내가 그 말을 자주하게 된 까닭은 꽤나 허무하고 자조적인 이유가 있는데, 서른이 넘으면서 내가 가치있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너무나 의미가 없게 느껴졌고, 내가 사소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인생에서 의미있는 것들이 아닐까라는 전복적 사고가 일어 나면서부터이다.

스무살의 나는 목표를 이루는 것, 무언가를 얻는 것, 가지는 것들이 꽤나 중요했고, 삶에 있어 소소한 취미 생활이나 만남들은 그렇게 비중있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목을 메는 것들은 대체로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뫼르소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가 살인범으로 고발되었으면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우리 모두 언젠가는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뫼르소 뿐 아니라 지금껏 살아온 모두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기요틴 앞에 서왔고,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은 모두가 정신적으로는 공허한데, 규칙과 관습에 따라 '도덕적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행하지 않는 모든 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손가락질 하는 것은 '이 시대의 놀이' 같은 것이다. 그러한 놀이가 지금은 없을까? 최근에만 해도 '아이돌 도박녀', '90년대 인기 갑질가수'라는 키워드로 수많은 네티즌들이 배심원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기자에 내뱉는 구형에 공감하며 그들을 누군가를(누구여도 상관없다) 규칙에 따라 피고인석에 앉혔다. 그들이 잘했다 잘하지 못했다를 판단할 자격은 나에게 없다. (뫼르소도 사실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나)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건, 무엇이건간에 우리는 그것을 '유희'로 느낀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사회적인 관습에 따라 연출되는 이 '연극'을 거부한다면 당신도 유죄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나는 다만, 이 책의 주인공이 유희에 참가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미국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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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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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는 크게 세 명의 중심 인물로 흘러간다고 볼 수 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메모를 따라 아버지의 연구를 이어 받은 고가 겐토는 수수께끼같은 아버지의 메세지에 혼란스럽지만, 점점 아버지가 남긴 메모와 연구의 진실에 점점 다가가며 예거의 아들을 포함한 불치병에 걸린 전세계의 10만 명의 어린이를 살릴 수 있는 '기프트'약을 개발한다.

조너선 예거는 군인이었지만 불치병에 걸린 아들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민간 군기업에 근무하며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걸린 피그미족 암살 임무를 수행하러 콩고의 숲으로 잠입하게 된다. 예거를 포함한 네 명의 군인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잠입하는 콩고는 오랜 세월 민족 간의 분쟁과 군벌의 횡포에 시달려 온 국가로, 10여 년에 걸쳐 사망자 수만 400만 명 이상에 달하는 콩고 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참사로 불린다. 이곳을 배경으로 예거 일행의 이야기가 긴박하게 진행되는 한편 르완다 내전, 강대국의 식민 지배, 자원 분쟁, 무장 집단의 횡포 등 아프리카의 비극적인 역사와 참혹한 현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남다른 두뇌를 가진 루벤스는 NSA소속으로 나이젤 피어스의 이메일 정보를 분석하며 진화한 새로운 생명에 대한 정보를 알게되고, 하이즈먼 리포트에서 예견한 진화 생물의 출현을 막기 위해 네메시스 작전(신인류말살계획)을 지휘하게된다. 그 가운데서 번즈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정책과 정권의 실상에 맞서 그들을 구하고자 한다. 루벤스의 행동은 비록 적극적 도움은 아니지만, 현 인류보다 진화한 생명체에 대하여 과학자로서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예거는 암살 임무를 위해 잠입한 콩고에서 '새로운 생명체'를 목격한다. 그리고 그 존재가 현인류에서 진화한 새로운 종임을 알게 되고, 그를 콩고에서 구해 일본으로 데려가는 작전에 참여한다. 세 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기의 모습의 '아키리'는 성인 수준의 지적 능력이 아니라,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차원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제 4차원의 이해,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점, 제 6감의 획득,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 보유, 특히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특질의 소유.’
우리 인류가 진화하면서 기존의 생물을 멸종시켜온 것처럼 진화한 종도 우리 현 인류를 멸종시킬 것인가.

<제노사이드>는 700p에 가까운 방대한 양의 소설이지만, 인류보다 진화한 새로운 생명과 현 인류의 종말, 그리고 진화한 생명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흥미롭게 다룬다. 그리고 지구상 가장 진화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열등하고 잔혹한 존재인지를 보여줌으로서 '인간은 서로 죽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곧 '인간성'에 대한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인간성'에 대한 질문은 내가 최근 책을 읽으면서 꾸준히 고민했던 부분 중 하나였는데,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자신의 이득이나, 위협이 되는 존재에 대해서 죽이기를 망설이지 않는 수많은 인물들의 모습이 정말 '인간의 본성'일까?

세계의 역사를 '전쟁사'로 분류해서 보자면 다카노 가즈아키의 질문처럼 현 인류는 유일하게 '제노사이드'하는 잔혹한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일 뿐, 모든 사람의 생애를 보여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 속 '번즈 대통령'처럼 전쟁을 하더라도 직접 자신이 목도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책감이 적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이어진 비극적인 현실들 앞에서 누군가는 다른 선택을 했을테니까.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나와 관계없는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기도 하고,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생애를 바치기도 하니까. 그 설명할 수 없는 '선함' 또한 인간의 본성 중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제노사이드 작품 속에서처럼 '아키리'를 구한 것은 자신의 아들처럼 '아키리'를 바라보고, 바르게 자라기를 바라는 예거의 마음과 본 적 없는 죽어가는 아이들 10만 여명을 살릴 수 있는 약을 개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가 겐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들을 돕는 루벤스의 '선함'때문이었으니까.

이렇게 긍정적으로 낙관만하기에 현재 지구곳곳에서 제노사이드가 일어나고, 자신의 열등함을 감추기 위해 잔혹함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의 '인간성'이 잔혹하고 무지함 자체라고 인정하며 정의내리지는 말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지난 역사라도'인간성'에서 벗어난 행위들에 대해서 돌이키고 반성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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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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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떠나려 할 때, 그는 다시 나의 얼굴을 마지고 내 눈과 입술을 쓰다듬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라일라야, 너는 아직 어리니까 조금씩 세상을 알아나가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도처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될 테고, 멀리까지 그것들을 찾아 나서게 될 거야.” 마치 그가 내게 축복을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 대한 경의와 사랑으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_ p.147


이 소설은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라는 뜻의 라일라에게 남은 어린 시절의 기억, 그러니까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밝혀주는 유일한 기억은 햇살이 내리 쪼이는 눈부시게 하얀 거리, 그리고 어린 그녀를 잡아 검은 자루 속에 집어넣는 커다란 손 뿐이다.

그녀는 랄라 아스마라는 노파의 집으로 팔려가 그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지만, 그녀에게는 세상 전부인 그 곳에서의 삶도 언제나 그녀의 여린 육체를 탐하는 노파의 아들이 있고 그녀를 학대하는 며느리가 있기에 그리 녹록치 않다. 노파가 죽고 나자 오갈 데 없어진 이곳 저곳을 떠돌며 지내며 삶을 이어 가며, 자기를 찾기 위한 기나긴 항해가 시작된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언젠가는 달아나지 않을 수 없는가?”

그녀는 어디에서도 이방인임을 절감하며 끊임없이 표류한다. 프랑스를 전전하다 미국으로 그곳에서 다시 프랑스로, 그리고 아프리카로, 그녀는 물고기처럼 사람들 속을 누비며 움직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고 자란 그곳에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제까지의 기나긴 표류가 결국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한 오랜 항해였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고난과 역경에 떠돌지만, 자신의 자아와 정체성을 찾기 위해 자신의 본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구조는 꽤 익숙하고 단순하다. 하지만 그 이야기 안에 내포하고 있는 '진짜 삶'에 대한 이야기와 깊이는 다를 수 있다. 라일라의 인생처럼.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김연수 작가가 이 작품에 대해 쓴 리뷰의 한 문장 때문이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다 알아내려고 애쓸 겁니다. 책뿐만 아니에요.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춤도 추고, 외국에도 갈 거예요. 가능한 한 모든 걸 맛볼 겁니다. 이 삶에 눈멀고 귀먹고 입다문 사람이라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신세나 마찬가지죠.

자유로운 물고기라면 자신의 입과 코와 눈과 귀로 자기 앞의 삶을 맛보고 냄새 맡고 보고 들을 거예요.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 순간 성장해요.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죠. 우린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_ 김연수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 자기 삶을 사랑하는 것,
우리는 이 과정 중에 놓여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이런저런 일들로 고민도 많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꽤 의기소침하고 무기력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직업이기도하고,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니 책을 읽는 것만큼은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 속에는 수많은 의문들이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떠한 스스로 극복하기 힘들다고 느끼는 감정이나 내가 지닌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책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없다면 내가 책을 읽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라일라의 삶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 보면 늘 떠돌아다니는 라일라의 고된 삶에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것은 '예술'
이다. 예술이라고 말하면 굉장히 어렵게 들리지만, 라일라는 일상 중에 다양한 예술들을 접하고 그것들을 소중하게 여긴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가수를 매일 찾아가 가게가 닫을 때가지 노래를 듣는 것, 친구에게 철학 책 한 권을 얻어서 토론을 하며 고민해보는 것, 시구를 외워서 서로 한 구절씩 시를 낭송하는 것, 그리고 느끼는 대로 피아노를 쳐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 모두 그녀의 삶에 깃든 예술이다. 그녀는 삶에 고난이 올 때마다 그것들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힘이 이런 예술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라일라 또한 '자신의 삶을 구원한 것은 음악'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의 일상에 예술이 필요하고, 인류에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결국 우리의 삶을 견디게 하는 많은 것 중 하나는 우리가 나누고 있는 문학을 포함한 예술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매일 귀에 꽂고 듣는 노래 가사가, 흥얼거리며 부르는 좋아하는 음악이, 감동적인 책 한 권과, 나의 삶을 보는 것 같은 영화 한 편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을 견디게 하는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나는 크게 위로 받았던 노래 가사가 있었는데, 그것은 BTS의 <Answer : Love Myself>의 가사이다.

시작의 처음부터 끝의 마지막까지 해답은 오직 하나

왜 자꾸만 감추려고만 해 니 가면 속으로
내 실수로 생긴 흉터까지 다 내 별자린데

내 안에는 여전히 서툰 내가 있지만,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

타인을 용서하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특히 '나 자신', 내 실수에 대해서 용납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래서 나도 내 삶의 고비들에서 그 원인이 '나'라고 여겨졌을 때 극복하기 가장 어려웠다. 대중가요지만, 그래도 이 노래가사 한 줄이 나에게 희미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또 새 힘을 내게 하기도 한다.

라일라 또한 주어지는 삶에서 원망하며 머물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매 순간 떠나고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진짜 인생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어떠한 작은 해답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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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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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일, 친구, 약혼자 등등은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그 끔찍한 쪽 색채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빙빙 휘감긴 거미집 같은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거미줄이 많을수록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없고, 잘하면 아래가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생을 끝낼 수도 있다.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가능하면 그 아래 깊이를 모르기를'이라는,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나보다 더 크게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내가 이곳에서 깊이 떨어지지 않기를,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돌아갈 곳이 있는 나, 낙담하고 절망하는 것은 어차피 놀이였다.

이 곳에서 지낸 며칠, 유리잔 속으로 푹 꺼진 것처럼, 슬픈 필터를 통해서만 보았던 풍경은 내 마음에 꼭꼭 새겨져 앞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니시야마만큼 솔직해지기는 아마 어렵겠지만, 그의 인생처럼 있는 그대로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BOOK. 《막다른 골목의 추억》 중


요즘 읽고 있던 책들이 꽤 어두운 이야기여서 그 영향으로 내 마음도 무거워졌는데, 이럴 때는 역시 '요시모토 바나나'지!하며 당연스레 꺼내들었다.

때로는 책이나 주변 사람에 의해 크게 감정이 동요하는 나의 예민함이 싫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런 다양한 색채와 깊이의 감정들을 지니고 있다는 게 참 좋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바로 '내'가 되었을테니까.

불행하다고 느끼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왜 그렇게 되었지?'라며 이유를 찾게 되곤하는데, 또 반대로 상황과 전혀 무관하게 행복 또한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지만 기적은 누구에게나 고루,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 미처 그 사실을 몰랐을 뿐.

그렇게 많은 실수와 기적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
'있는 그대로의 인생'에 조금씩 다가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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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지혜의 시대
김현정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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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즐겨봤던 드라마인 <피노키오>는 기자와 보도의 힘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번에 출간된 도서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에서 김현정 PD는 뉴스의 '팩트'가 모두 '진실'은 아닐 수 있다는 말을 강조했다. 우리가 이해한 '사실'이 정말 '진실'인지, 뉴스의 프레임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을 파악함으로써 '진실'에 다가가 뉴스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도 보이는 '팩트'를 보도했지만, 프레임 바깥의 '진실'을 외면하여 망가져 버린 한 가족이 등장한다. 화재 신고를 받고 구조작업을 위해 건물 안에 들어갔다 인화성 폭발 물질로 9명의 소방관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건물 안을 수색해달라고 했던 작업반장은 잘못을 소방관에게 떠넘겨 '9명의 소방관을 죽게했다'는 전 국민의 질타를 받는다. 사람들은 '의혹'을 '사실'로 받아들였고, 소방관의 가족은 언론의 희생양이 되어 온갖 비난 속에 내몰리게 된다.

거르지 않고 '팩트'를 진실로 받아들인 결과, 한 가족이 이유 없이 비난 속에 처참하게 박살 날 수 있다. 이것이 보도의 힘이고, 뉴스의 힘이다. 최근에도 한 여자 연예인의 폭력 사건을 기사로 다루면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을 쏟아냈고, 그 정보를 소비하는 우리 또한 가십거리로 소비하며 누군가를 비난하기 바빴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뉴스를 소비해왔다.

물론 기자들도 초심을 잃지 않고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해야겠지만, 뉴스를 소비하는 우리도 무엇이 진실인지 균형 있게 정보를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100% 진실일 수 없더라도 최대한 균형 있게 보도하려는 김현정 PD의 태도 때문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청취자들에게 신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종종 라디오나 인터뷰 기사로 접하고 있는 신뢰하는 매체 중 하나이다.

뉴스는 아주 힘이 세다. 그래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마이크를 내밀어 주는 것, 권력에 지지않고 초심 그대로 보도하는 것,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것, 책을 통해 듣게 된 이러한 그녀의 보도방식이 나는 무척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그녀의 말처럼 '좋은 보도는 세상을 바꿀 수 있으니까.'


덧) 개인적인 평가를 하자면, 책에 대한 내용은 아쉬운 점이 너무 많다. 김현정PD의 강연 내용을 적어서 책으로 엮은 것 같은데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라는 거창한 제목에 보도나 뉴스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이나 에피소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에세이 정도의 느낌으로 접근하면 적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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