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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5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쌍둥이는 너무 어려서 이들이 역사의 심복일 뿐이라는 것을 몰랐다. 계산을 분명히 하고, 역사의 법칙을 깬 사람들에게서 벌금을 걷기 위해 보내진 자들일 뿐이다. 원초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완전히 비인간적인 감정에서 행해진 일일 뿐이었다. 이제 시작 단계인, 아직 인정되지 않은 두려움 ─자연에 대한 문명의 두려움, 여성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 힘없는 자에 대한 힘있는 자의 두려움에서 생겨난 경멸감.
에스타펜과 라헬이 그날 아침에 목격한 것은, 비록 그때는 몰랐지만, 지배권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이 보여주는, 통제된 조건(어쨌든 전쟁도, 집단 학살도 아니었다)에서 진행된 임상 실험이었다. 구조, 질서, 완전한 독점을 추구하는 본성. '신의 의도'로 가장한 채 어린 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인간의 역사였다. _p.422
이 책을 읽으면서 수 년전 방문했던 파키스탄이 많이 생각났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남북한처럼 인도라는 한 나라였다가 대다수를 차지했던 힌두교인들의 이슬람교를 박해하면서 독립 전쟁을 통해 분리된 국가가 파키스탄이다. 그러므로 인도는 힌두교, 파키스탄은 이슬람교라는 종교의 아래있는 종교 국가이다. 이 전에도 크고 작은 내전과 다툼은 끊이지 않았지만 지난 주 26일, 48년만에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쟁이 발발되었다. 여전히 내전과 외전이 끊이지 않고, 관습과 계급을 중심으로 사회가 움직이고 있다.
인도는 1947년 정부 수립 후 헌법에 의하여 '차별'이 금지되었으나 <작은 것들의 신>이 1997년에 쓰여진 이야기(배경은 1969년)라는 점을 생각하면, 여전히 인도사회에서 '카스트'라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폐지할 수 없는 사회적 단위이자 체계로 봐야할 것 같다. 이러한 사회적 제도(계급)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관습이 여전히 그들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도(계급)와 관습이 한 가족의 삶을 어떻게, 얼마나 파괴해가는지를.
이 작품은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바뀐’ 한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이 '단 하루'로 인하여 망가져 버린 가족의 모습을 먼저 보여준 후 그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들려준다. 영국에서 놀러온 외사촌 소피 몰의 익사, 누명으로 인하여 경찰에게 맞아 죽은 불가촉천민 벨루타, 집에서 쫒겨나 홀로 외롭게 죽어간 엄마 암무, 그리고 그 사건 속의 쌍둥이 라헬과 에스타. 이어지는 이별, 죄책감, 침묵. 결국 이 모든 사건이 카스트 제도에 억압받는 불가촉민과 남성중심적 사회에 억눌린 여성의 삶이 만나 관습에 의하여 처참하게 망가져버리는 인간의 삶이자 역사를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세습되어 온 관습에 지배되는 대수의 사람이 아닌, 불가촉천민 벨루타와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친정에 얹혀사는 암무가 계급과 관습에 반하여 서로 사랑에 빠졌는지, 왜 다수와는 다른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오로지 그 상황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선택을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인 파라반들은 가촉민의 집에 발을 들일 수도 그들이 만지는 것에 손을 댈 수 없었으며, 상대에게 오염된 숨결이 가지 않도록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해야만 했다. 가촉민이라 해도 여성은 남성 임금의 절반을 받았고, 상속권이 없기 때문에 있을 권리가 없는 곳에 머무르거나 폭력을 당해도 인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작은 것들의 신'은 무엇일까? 한 사람의 삶과 미래, 사랑과 죽음은 거대한 질서나 통념, 사회적 체면, 관습 같은 '큰 것(거대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과 그 주변 사람들이 행한 '작은 것'(그것이 옳은 것인지 상관없이)에 맞물려 결정된다는 것. 어쩌면 그들의 비극은 계급과 관습이라는 거대한 '큰 것'만이 아니라 베이비 코참마의 거짓 고발, 에스타가 엄마를 지키기 위해 했던 거짓말, 조의 죽음으로 영국에서 놀러 온 외사촌 소피 몰처럼 이들의 주변에서 행해졌던 '작은 것'들이 맞물리면서 이 비극이 필연이 된다.
카스트제도에 의하여 사랑할 사람과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이 규정된다는 것, 공산주의, 종교, 카스트제도, 빈부라는 거창하고 무거운 역사 속에서 당시 일곱 살이었던 라헬과 에스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긴 시간이 지나 자신이 했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꿰어지고 또 살아가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들로 인하여 불가피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커다란 사건과 사랑, 죽음이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했던 그 작은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온거지?
하지만 '작은 것들의 신'은 우리에게 비극만 가져다 주는걸까? 서로에게 '내일'밖에 기약할 수 없지만 사랑한 벨루타와 암무는 작은 것에 집착하며 그 순간들을 소중히했다. 자신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진게 없었고, 미래도 꿈꿀 수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이루는 기억의 조각들(에스타가 아버지에게 돌려보내지며 기차에서 먹었던 도시락 샌드위치의 맛같은)처럼 이토록 작은 것들이 삶을 견디게 한다. 비록 거대한 권력과 힘같은 '큰 것'은 가지지 못했지만,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위무하는 벨루타와 암무의 사랑이 '작은 것들의 신'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나는 파키스탄에서 내가 배우고 겪어온 것들과 전혀 다른 문화들을 보았다. 세습되어 온 종교에 의하여 자신의 삶과 처지가 결정되는 관습, 혼자서는 집밖을 나가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한 여성의 모습, 파키스탄과 인도의 전쟁으로 인한 위험과 이슬람교 내부에서 일어나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내전까지. 책상에 앉아 <작은 것들의 신>을 읽고 있는 나는 사실 상상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을 만큼 '다름'일 것이다. 이 작품의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이 작품을 쓰고 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인도 사회와 도시 빈민, 카슈미르 분쟁, 환경문제 등 여러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은 그 시대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그렇기때문에 아룬다티에게 이 이야기는 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나에게 이 이야기는 지구인이라면 '죽기 전에는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인상적인 작품'이지만, 어떤 누군가는 지금도 이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당신의 삶, 미래, 사랑과 죽음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