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이 책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있기까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짧은 자서전이다. 1935년 헝가리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네 살때부터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자신의 모국이 독일과 소련에 의해 차례로 침략을 받게 된다. 독일이 지배할 때는 독일어를 배우고, 소련이 지배할 때는 소련어를 배우며 자란 환경은 그녀의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이후 열아홉 살에 결혼해, 스물한 살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여파를 피해 반체제 운동을 하던 남편과 4개월 된 딸을 데리고 헝가리를 떠나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의 뇌샤텔로 난민이 되어 이주한다. 가족도 없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철저한 외로움 속에서 그녀는 생계를 위해 시계 공장에서 열 시간 넘는 노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유년기부터 청소년기, 그리고 헝가리를 떠나 스위스로 이주하기까지 끊임없이 ‘언어’를 잃고, ‘언어’를 배우는 경험을 한다. 『문맹』에서 그녀는 ‘문맹’을 벗어나고자 어떻게 끈질기게 글을 써왔는지를 보여주며, 적어’이자 새로운 언어인 프랑스어로 희곡과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글을 완성해나간다.
몇 년 전, 스위스를 여행한 적이 있다.
스위스의 동쪽은 독일어를 사용하고, 스위스의 서쪽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데 나는 여행을 하며 모국어가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같은 나라의 사람이지만, 전혀 소통되지 않는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 독립적인 언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스위스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은 113p의 짧은 글이지만, 격동적이었던 그녀의 삶을 통해 작가에게 주어진 비극같은 현실 속에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난민의 언어로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사유에 대한 글이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