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1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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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주변에 잘 정돈된 공원들이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주변에 산이 많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배낭에 물통을 가득 넣어서 심부름으로 약수물을 뜨러 산에 올라가곤 했다. 태어나서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는 '인왕산'이 곁에 있는 홍제동에서 살았는데 할머니와 함께 약수터에 자주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그 산길이 무척 높고 가파르다고 생각했는데, 크고나서 생각해보니 아마 야트막한 동산 높이에 약수터가 있었던 것 같다. 추석이면 약수터를 지나 인왕산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 솔잎을 따오기도 했다. 내가 딴 솔잎이 가득붙은 송편을 가족과 나누어 먹으며, 기특해하는 어른들의 칭찬 한 마디에 내 마음만큼은 풍성한 한가위를 보냈다.

 

어릴 적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에 우리 식구까지 대가족이 함께 살다가 2학년 때 분가하여 개봉동으로 이사를 했다. 개봉동에는 '매봉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약수터가는 길에 있는 미나리밭에서 친구들과 올챙이를 잡으며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을이면 가족과 함께 산에 올라가 밤과 도토리를 줍기도 했고, 겨울에는 물이 흐르는 개천을 따라 얼어붙은 길에서 포대자루를 썰매삼아 하루종일 놀곤했다. 아빠가 밤나무를 마구 흔들어 떨어트린 밤송이를 발로 밟아서 알맹이만 주워모아 삶아 먹었던 따뜻한 밤이 아직도 생각난다.

 

이 작품이 만화뿐 아니라 영화로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은 것은 아마도 잊고 살았던 어릴 적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 아닐까? 이 만화에는 모르는 일본 요리들이 많았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정서는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다. 단단한 토마토를 설탕에 절여 먹었던 간식, 엄마가 추운 겨울에 밥통에 찹쌀을 넣고 오랜 시간 정성들여 만든 후 밖에 놓아둔, 살얼음이 동동 떠있던 식혜. 이번 설에 시장에서 오랜만에 식혜를 사먹으면서 '우리 집도 식혜 안만들어 먹은지 오래되었네'하고 이야기했던 게 생각난다. 이제는 예전처럼 명절마다 왁자지껄 모여드는 가족들도 없고, 편리한 것이 최고로 여겨지지만 지금껏 나의 뼈대를 세우고 나의 살을 찌워 지금까지 자라게 한 것들은 아마도 할머니가 빚어주신 만두,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냉면, 세상에서 요리를 가장 잘하는 줄 알았던 엄마의 요리들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할아버지 등을 꼭 붙잡고 타던 자전거에서 맞은 바람, 열심히 물을 주며 옥상에서 키웠던 상추와 고추가 상에 오를 때의 뿌듯함, 봄이면 꼭 심었던 봉숭아꽃을 빻아 손톱 위에 올려놓고 잤던 밤이 '나'라는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낸 모든 시간들일 것이다. 어쨋든 나는 토마토처럼 때론 연약하지만 단단하게 잘 자랐다.

 

<리틀 포레스트>가 그런 소중한 순간들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사랑한 것이 아닐까. 내가 으레 당연하게 먹고 자란 그 음식들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는지를 알게 되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깨닫게 된다. 아마 이 작품의 이치코도 코모리에서의 생활이 그런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나저나 나는 엄마의 레시피를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떡하지..

 

바쁘게 산다고 또 잊어버리고,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다고 느껴지는 어떤 날 꺼내보면 좋을 것 같아서 눈에 잘 보이는 책장에 꽂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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