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내가 지켜 줄게 웅진 모두의 그림책 20
고정순 지음 / 웅진주니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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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었던 책들을 떠올려보면, 갈색으로 여러 질 구성된 전래동화 전집이 생각난다. 그 그림책들이 낡고 헤질 때까지 읽었는데 그 중에서 <인어공주>를 가장 좋아했다.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기고 물거품이 되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을 좋아해서 늘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책장에 전집을 숫자 순서대로 꽂아놓으면 인어공주만 낡아 눈에 띄었다.

내가 처음 샀던 책은 <선생님 미워, 진짜진짜 미워> 였다. 당시 '진짜진짜 미워' 시리즈가 꽤 유행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 5학년 쯤, 동네 서점에 가서 3시간은 족히 고르고 골라서 집어왔던 책이었다. 선생님이 딱히 미워서(?) 공감하는 마음에 골랐던 건 아닌데 그 후로도 심심하면 꺼내 읽는 책이었고, 성인이 될 때까지 가끔 꺼내 읽어보기도 했다. (이 시리즈 아는 분 없나요?!☺️)

어른이 되어서 다른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어렸을 때 좋아했던 책에 대한 감정이나 처음 책을 고를 때 느꼈던 고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소중한 기억.

이수지 작가의 <아빠, 나한테 물어봐>라는 작품도 좋아하는데 이번에 친구가 보내준 <아빠는 내가 지켜줄게> 를 보니 그 책이 떠오르기도 했다. 내가 어릴 때, 그림책 속 아빠의 모습은 듬직한 가장의 모습 정도로 고정되어 있었는데 요즘 책 속 아빠의 모습은 꽤 다양해진 것 같다.

 

- 아빠, 지켜주는 게 뭐야?

- 지켜 준다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이 힘들지 않게 도와주는 거야. 우산 같은거야.

재미있는 것은 아이가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이다.

아빠를 힘들지 않게 도와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 쉬는 날마다 아빠 늦잠 잘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

- 아빠 양말 뒤집어 주는 로봇도 만들어 줄게!

- 아빠가 좋아하는 휴대폰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도 키울거야.

사람마다 지닌 표현력과 말주변은 다르지만, 내가 어릴 때 읽던 책들에 비하면 분명 감정 표현이 훨씬 자유롭고 솔직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을 읽고, 보고, 표현하며 자란 아이는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랄까. 마음이 반짝거리는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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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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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을 무렵에는 온 동네가 회색으로 칙칙하게 보였고, 그 동네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온 나는 어디를 가든 엄마의 흔적을 찾고는,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흘렸다. 최근에야 겨우 세계에 아름다운 색이 돌아왔다.


어느 겨울 아침, 어머? 동백꽃 색이 이렇게 진하고 예뻤구나, 이파리도 진한 초록색이네, 하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다. 동백꽃이라는 조그만 창문을 시작으로, 세계는 점차 색을 되찾아갔다. 매일 똑같이 걷고,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도, 보이는 세계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그 색채감을 눈이 알아보게 되었다. _p.22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통제하느라 바빴다. 내 안에서 시간이 멋대로 오락가락해서, 숨이 막혀 왔다. 하지만, 엄마가 같이 와 줬다는 걸 떠올리자, 눈물이 똑 떨어지면서 무언가가 녹았다. 엄마는 내게 아이가 생긴 것도, 유산한 것도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병원에 같이 와 주었고, 신이치와 함께 데릴러 와 주기도 했다. 힘겨워하는 너 자신을 외면하면 안 돼, 하고 엄마는 말했다. _p.102



아직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나도 이제는 없어진 가족…… 신이치와 만들려 했던 가족과, 엄마가 없는 지금의 우리 집과…… 더 멀게는 신이치가 철저하게 실망해서 멀어진 신이치의 가족까지 포함해서, 마음속에 애매모호한 것과 뒤죽박죽인 것을 모두 껴안은 채로 천천히 자기 가족을 만들어 가자고 생각했다.


흐름이 나아가는 속도를, 아무리 세상의 속도가 빨라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눈앞의 매일에 차분하게 참가해서, 조금씩, 그래, 그가 말한대로, 달팽이처럼. _p.150





“어떻게든 되지 않는 일들뿐. 그런 것이 인생.”


미쓰코는 태어나서부터 '주주'라는 레스토랑를 운영하는 부모님을 도우며 자라 레스토랑을 자신의 가족이자 한 몸처럼 여기며 자랐다.  어릴 적부터 마당의 별채에서 지내며 함께 살아온 먼 사촌 신이치는 주주에서 고기를 구우며 가게를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게 미쓰코와 신이치는 훗날 자연스레 결혼해서 함께 가게를 물려받아 평생을 함께할 거라 여겼다. 그러나 열일곱 살 무렵, 아이를 유산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관계가 깨져 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훌쩍 지나 신이치는 결혼 후 가게를 물려받기 위해 돌아왔고, 얼마 전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와 신이치 셋이 레스토랑을 꾸려 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가게에 찾아와 김이 오르는 철판의 함바그를 보며 울을음 터뜨리는 남자, 그는 매주 수요일 '주주'에서 저녁을 먹던 서점 마야사키의 아들로 얼마 전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 미쓰코는 왠지 통곡하며 들썩이는 그의 둥그런 등에 책임을 느꼈고, '앞으로 이 사람과 함께 하게 될 거'라고 직감한다.



색채가 사라지는 순간, 맛있는 음식은 위로가 되는 법


세상의 색채를 잃어버린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사실 그 때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다, 어느 순간 마주친 '하늘이 저렇게 파랬던가', '벌써 꽃이 피는 계절이었던가'하며 색채감이 돌아오는 순간에서야 깨닫게 된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게 인생'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미쓰코와 신이치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유산한 경험이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신이치에게는 어린시절 버린 후 찾지 않다가 가끔씩 찾아와 얼굴을 비추는 부모의 모습이, 미쓰코에게는 많은 것이 닮고 싶었던 엄마의 죽음이, 결혼 후 먼 곳에 살다 부모님이 죽고 서점을 물려받기 위해 돌아온  마야사키 또한 색채를 잃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주주'에서 맛있게 함바그를 먹으며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담담한 힘이 채워진다. 


안녕, 나의 청춘. 그 가운데, 좀 슬펐던 부분이여.


색채가 사라진 흑백의 시기에 우리는 무엇으로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요시모토 바나나는 '주주'를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맛있는 음식, 그 순간에는 미쳐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추억, 그리고 반복적인 일상이 주는 단단한 힘이라고 말한다.


미쓰코는 어릴 적 유산으로 찾았던 산부인과에 신이치의 부인인 유코와 함께 찾게 된다. 그리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당시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차오른다. 하지만 잊고 싶어 외면했던 그 기억 속에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가 같이 와 줬다는 걸 떠올리자, 눈물이 똑 떨어지면서 무언가가 녹았다. '힘겨워하는 너 자신을 외면하면 안 돼, 하고 엄마는 말했다.' (p.102) 힘들었던 순간 함께했던 엄마와의 추억들이 마쓰코에게는 새로운 힘이 된다. 어쩌면 유산의 아픔으로 인해 다시는 '가족'을 만들지 않을거라며 도망치게 되는 아픔이 아니라, 그럼에도 모든 것을 껴안고 나아가며 새로운 가족을 기대하게하는 희망으로 바뀌게 된다.


아직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신이치와 만들려 했던 가족과, 엄마가 없는 지금의 우리 집, 더 멀게는 신이치가 철저하게 실망해서 멀어진 신이치의 가족까지 포함해서, 마음속에 애매모호한 것과 뒤죽박죽인 것을 모두 껴안은 채로 천천히 자기 가족을 만들어 가자고 생각했다. (p.150)



반복적인 일상이 주는 단단한 힘


내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일상의 힘'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일을 겪게 되면 스스로 반복했던 일상을 멈추고 도망치고 싶어한다. 하지만 마음은 혼란스러울지라도 단단하게 몸이 기억하고 있는 반복적인 일상이 힘도 존재한다. 매일 '주주'에 나와 가게를 쓸고 닦고, 손님을 받으며 세심하게 손님들의 마음을 살피는 것, 꼼꼼하게 가게를 정리하고 저녁에는 산책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남겨둔 만화책을 보며 추억에 잠기는 것. 특별할 것 없지만 몸이 기억하는 반복적인 일상이 있기에 마쓰코는 무너지지 않고 견디며 마음을 추스른다.


사실 우리의 삶도 돌아보면 똑같은 하루하루의 반복이고 때로는 지루하다고 여기는 그 반복이 우리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다. 매일 먹는 식사에 집중하며 신선한 채소가 주는 신선함을 생각하고, 가끔하는 가족과의 외식을 기대하고, 또 내가 늘 해왔던 일을 오늘도 잘 해냈다는 만족감이 우리를 돌본다.

마음처럼 되는 건 원래 없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늘 반복되는 일상을 딛고 조금 다를 미래를 상상하며 살아가는 것, 이렇게 단순한 것이 우리가 모르는 진짜 '인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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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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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기분이 없는 기분이었다."

 

내 주위에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가진 사람이 많다. 어쩌면 유독 내 세대가 아버지에 대한 아픔이 많은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때문에, 가정에 소홀하고 무책임한 모습때문에, 혹은 감정 표현이 서툴러서 자라는 동안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때문에 미워하기도 한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조금씩은 있는 것 같다.

 

『기분이 없는 기분』의 혜진은 어느 날 경찰서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아버지가 홀로 사망하였고, 사망한지 삼 주정도 지나서야 발견되었다고. 미워하던 아버지의 고독사 소식에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나니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고 만다.

 

혜진이 어릴 적 아버지는 바람이 나서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기도 했고, 어느 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와 엄마가 어렵게 일궈온 재산을 주식으로 몽땅 날려버리기도 했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고 사업을 한다는 핑계로 돈을 요구하고 망하기를 반복하다 끝내 가족의 연을 끊고 지내게 되었다. 절대 이해할 수 없을 아버지에게도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기는 했다.

 

때로는 아버지가 병에 걸려 나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 혹은 또 빚을 지고 찾아와 지금의 가정을 망쳐놓지는 않을까 혜진은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혜진은 쉽게 용서하지도, 미안해하지도, 그리워하지도 못한다.

 

나도 오래 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오히려 애써 더 밝게 지내고, 때론 그런 상황을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도 여전히 어렸던 탓에, 기댈 곳이 필요할 때마다 죽고 사라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쌓여갔던 것 같다. 그게 원망이었을까, 그리움이었을까. 나도 그 감정을 뭐라고 정의내리지 못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내 안에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해결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으니까.

 

"자꾸 화가났다. 화가 너무 많이 났는데,
누구에게 화가났는지 왜 화가 났는지 몰라서
그냥 매일 울었다."

 

대학생 때, 학교가는 버스에서 이유없이 울었던 날들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 때는 내가 그냥 예민한 사람인 줄 알았다. 책을 읽으며 그 때를 떠올려보니 혜진과 같은 감정이었던 것 같다. 말할 수는 없지만 화가 너무 많이 나는데, 정말 미워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때문에. 그렇지만 꽤 오랜시간 미워했고, 그 사실이 서러웠다.

 

여전히 마음을 '잘' 돌보는 방법은 어렵지만, 그냥 잘- 지내고 싶다. 시간이 지나서 어떠한 감정을 느껴야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날이 또 오겠지. 그 때도 잘- 지내보자. (토닥토닥)

 

와, 사는 것도 어려운데 나는 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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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북 - 어머니의 삶을 기록하면 가장 소중한 책이 된다 마더북
엘마 판 플리트 지음, 반비 편집부 엮음 / 반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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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일까?

물론 두둑한 용돈도, 예쁜 카네이션도 좋지만 나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이 어쩌면 가장 좋은 선물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어디에서 태어났어?

어릴 때는 어떤 아이였어?

엄마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어?





어릴 때는 엄마와 교환일기도 쓰고, 이십대까지는 단둘이 여행도 다녔던터라 나는 엄마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학창 시절에 친했던 친구들, 등산을 좋아해서 주말마다 산에 갔던 젊은 시절, 아빠와의 연애 이야기들도 즐겨 들었으니까. 요즘 엄마들은 육아일기를 세심하게 써서 아이가 크면 선물로 준다고 하는데, 나는 이미 늦었으니 엄마의 이야기를 남겨달라고 졸랐다.






집 앞에 개천이 있었어. 좁은 외나무 다리를 지나야 개천을 건너 집으로 갈수 있는데, 어릴 때 비가 많이 내리던 날 깡총깡총 다리를 건너다 물쌀에 쓸려간 적도 있었어. 커서 학교를 다닐 때도 그 개천을 건너서 다녔고. 엄마는 둘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언니와 동생들 사이에서 가족들을 챙겨온 착한 딸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굳이 어릴 때부터 효녀였다고 강조했다. (두둥!)





한 번도 궁금해한 적 없었던 엄마의 할머니, 할아버지.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만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상상해보면 생애 전쟁을 치뤘으니 그랬을 법하다. 나는 어릴 때 (나의)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서 너무 좋았는데, 특히 어딜가나 할아버지가 자전거 뒷자리에 나를 태워 다녔던 홍제동 골목길과 할아버지의 등허리가 떠올랐다. 깊숙이 넣어둔 앨범을 꺼내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도 들춰보니 내 나이의 엄마는 정말 나랑 똑같이 생겼다?? (당연한 건데 기분이 조금 묘했다)



엄마가 내 나이일 때,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것들을 좋아했는지 이야기하다보니 엄마는 어느새 추억에 잠겨서 '그 시절이 그립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엄마를 아주 많이 닮았다. 외모부터 성격이나 좋아하는 것들까지.

책을 좋아하고 글쓰는 걸 좋아하는 것도 엄마를 닮은 것이고, 때때로 불타는 성격도 뒷모습도 꼭 닮았다. 우리는 서로 엄마의 엄마가 아니던 시절과 내가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사실 서른이 넘어가면서 때로 엄마와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도 있었는데, 어제의 대화는 참 고마웠다. 이야기하는 엄마의 표정이 정말 즐거워보였으니까.




귀찮아서 안한다더니 아침에 눈뜨자마자 못쓴 말이 떠올랐다며 책을 다시 가져갔던 건 반전. 엄마가 써준 말들은 다 내 보물이다. 못다한 말 우리 또 이야기하자. 내가 엄마 안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다 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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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1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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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민 정서는 유럽에만 존재할까? 이러한 정서는 영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처음에 영국인들은 난민과 이민자들을 수용할 경우 일자리에 위협을 받게 될거라는 이유를 들어 난민 수용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극우 정당 세력들은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인종혐오, 이민자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사회에 반이민 정서를 퍼트렸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어 다른 문화권에 대한 반감과 인종비하가 심각한 편이다. 한 사례로 내전을 피해 작년에 무비자로 제주도 입국을 시도해 난민 지위를 신청한 예멘인들에 대한 국내 반응은 반감을 넘어선 공포였다.

우리는 왜 타자를 혐오하는가?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졸데 카림은 『나와 타자들』에서 우리가 왜 '타자를 혐오'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다문화 속에서 우리만이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당연한’ 문화가 사라지고, '정상'이라고 규정했던 남성, 민족, 이성애자 주체가 헤게모니를 잃게 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타자 혐오는 바로 이 ‘작아진 자아’가 취하는 방어 태세인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도 알고 있다. 우리 마음 깊속이 뿌리내린 이민자, 난민 혐오가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지게 되는 반감과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인에게 각인된 '단일 민족'이라는 강력한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라는 말을 좋아하는 한국인들, 그래서 '우리'와 '타자'의 구분할 때 우리에게 '타자'는 한국인을 제외한 모든 민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다양한 문화권의 이민자를 한국인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 또한 마찬가지이며, 사회적으로 꾸준히 논의되고 이해와 합의가 되어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가을』 에서는 단순하게 늙은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문제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로 확대시킨다. 이웃과의 교감이 개인들 각각의 삶에 얼마나 강한 불빛으로 사회를 밝힐 수 있는지, 지금 시대의 우리 모습이 얼마나 비공동체적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팔십이 넘은 이웃 노인 대니얼과 우정을 나누는 엘리자베스에게 엄마는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인데?” 하고 엄마가 묻자 “우리 이웃 사람이니까요.”라고 말한다. 그들이 우정을 나누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 내 이웃들과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난민과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일은 누구에게나 단순한 사건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국경과 국적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회복해야하는 것은 '공동체'이고, '이웃'이다. 왜 우리는 그들과 우정을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그들'과 '우리'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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