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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ㅣ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1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19년 3월
평점 :

반이민 정서는 유럽에만 존재할까? 이러한 정서는 영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처음에 영국인들은 난민과 이민자들을 수용할 경우 일자리에 위협을 받게 될거라는 이유를 들어 난민 수용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극우 정당 세력들은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인종혐오, 이민자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사회에 반이민 정서를 퍼트렸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어 다른 문화권에 대한 반감과 인종비하가 심각한 편이다. 한 사례로 내전을 피해 작년에 무비자로 제주도 입국을 시도해 난민 지위를 신청한 예멘인들에 대한 국내 반응은 반감을 넘어선 공포였다.
우리는 왜 타자를 혐오하는가?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졸데 카림은 『나와 타자들』에서 우리가 왜 '타자를 혐오'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다문화 속에서 우리만이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당연한’ 문화가 사라지고, '정상'이라고 규정했던 남성, 민족, 이성애자 주체가 헤게모니를 잃게 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타자 혐오는 바로 이 ‘작아진 자아’가 취하는 방어 태세인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도 알고 있다. 우리 마음 깊속이 뿌리내린 이민자, 난민 혐오가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지게 되는 반감과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인에게 각인된 '단일 민족'이라는 강력한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라는 말을 좋아하는 한국인들, 그래서 '우리'와 '타자'의 구분할 때 우리에게 '타자'는 한국인을 제외한 모든 민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다양한 문화권의 이민자를 한국인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 또한 마찬가지이며, 사회적으로 꾸준히 논의되고 이해와 합의가 되어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가을』 에서는 단순하게 늙은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문제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로 확대시킨다. 이웃과의 교감이 개인들 각각의 삶에 얼마나 강한 불빛으로 사회를 밝힐 수 있는지, 지금 시대의 우리 모습이 얼마나 비공동체적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팔십이 넘은 이웃 노인 대니얼과 우정을 나누는 엘리자베스에게 엄마는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인데?” 하고 엄마가 묻자 “우리 이웃 사람이니까요.”라고 말한다. 그들이 우정을 나누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 내 이웃들과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난민과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일은 누구에게나 단순한 사건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국경과 국적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회복해야하는 것은 '공동체'이고, '이웃'이다. 왜 우리는 그들과 우정을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그들'과 '우리'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