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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소이 이야기
송미경 지음 / 읻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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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아름다운 환상극과 딸기맛 웨하스 과자 집

─송미경의 『메리 소이 이야기』를 읽고

누군가 내게 '첫 소설'에 대한 기억을 물어본다면 나는 고민하지 않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뽑을 것이다. 어릴 적, 처음 그 책을 읽으며 작고 소중한 삶의 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름다운 이야기의 힘을 절실히도 깨닫게 해준 『어린 왕자』에게 나는 마음의 큰 빚을 지고 있다.

송미경의 『메리 소이 이야기』를 읽고 난 뒤에 뜬금없이 『어린 왕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두 작품이 내게는 비슷한 결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해가 지기 전, 파스텔톤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는 일처럼 은은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나는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명백히 웃을 만한 이야기인데도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그런 일들이 있다. 슬픔을 봉인한 채로 우스꽝스러워진 이야기들.

송미경, 『메리 소이 이야기』 中

『메리 소이 이야기』는 이전까지 동화와 청소년 소설, 그리고 그림책과 만화책을 주로 다뤄왔던 송미경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는 어느 날 문득 사라진 엄마의 동생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나(은수)'의 목소리를 빌려 자전적인 내러티브를 고백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며, 무엇보다 기다림의 미학적인 요소를 십분 활용하여 '슬프고 아름다운 환상극'을 완성해낸다. 메리 소이를 잃어비린 유원지에서, 미미제과(엄마의 사연을 마케팅해 최고 매출을 올린 그 회사)가 제공한 '딸기맛 웨하스 과자 집'에서, 자신을 메리 소이라고 주장하는 숱한 사람들 틈에서 '나(은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림, 기다림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오로지 내일을 기다리는 일인 것처럼.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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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들 환상하는 여자들 2
브랜다 로사노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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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마법, 그리고 창조의 언어

─브렌다 로사노의 『마녀들』을 읽고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곧 자기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다. 나는 언어에 대한 글을 볼 때마다 비트겐슈타인의 이 명제를 떠올리곤 하는데, 여전히 언어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나로서는 대단히 곤욕스러운 문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브렌다 로사노'라면 말이 다르다. 그의 소설 『마녀들』에는 언어의 힘을 통해 사람들에게 치유와 마법, 그리고 창조의 환희를 선사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언어로 자기 세계의 질서를 부여하고 현실과 현재, 사물과 사람의 간격을 적절하게 유지하며 온전한 자기 자리를 찾아내려 애쓰는 인물 '펠리시아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의식을 집전하면서 나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고통스러워했지요.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요. 사랑 앞에 우리는 모두가 똑같다는 사실을, 밤에 우리는 모두가 똑같다는 사실을 언어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미사를 드릴 때도 그렇게들 말하잖아요. 태양 아래 우리는 똑같다고요. 마찬가지로 언어 아래 우리는 똑같습니다. 언어가 우리를 평등한 존재로 만듭니다.

브렌다 로사노, 『마녀들』 中

그러나 브렌다 로사노의 『마녀들』에는 언어의 치유자 펠리시아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살해당한 팔로마를 매개로 펠리시아나와 연결된 젊은 기자 '조에'의 활약 또한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소설은 두 사람의 목소리로 전개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책 띠지에도 나와 있듯이) "두 여성과 두 세계의 만남을 통해 그려낸 폭력, 치유, 연대, 사랑의 독창적인 이야기"인 셈인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핵심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가 바로 '언어'라는 것이다.

절박하게 출구가 필요할 때, 그게 무엇이든 어떤 문이 필요할 때는 그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평화를 가져다준다. 깜빡깜빡 점멸하면서 탈출구가 있다고 알려주는 표지랄까. 언제라도 단번에 멈출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평온해진다. 적막감을 마주할 때 끝의 가능성은 힘이 된다.

브렌다 로사노, 『마녀들』 中

그럼 다시,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로 돌아와보자. 언어의 한계는 곧 나의 한계, 자기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이 말은 적어도 『마녀들』 앞에서만큼은 무력하다. 주인공 펠리시아나의 말처럼 "언어는 죽은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동안 언어의 한계로 인해 가능성의 제한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분명한 건 언어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 언어가 지니고 있는 치유와 마법, 그리고 창조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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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뱁, 잉글리시, 트랩 네오픽션 ON시리즈 25
김준녕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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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잉글리시 타운'에서

─김준녕의 『붐뱁, 잉글리시, 트랩』을 읽고

"영어. 모든 게 다 영어 때문이었다."

김준녕의 소설 『붐뱁, 잉글리시, 트랩』에서 그려지는 모든 이야기는 '영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다. 수년째 영어 공부에 매진하지만 실력은 제자리걸음인 주인공 '라이언'은 엄마에게 억지로 이끌려 '영어마을'로 향한다. "오직 영어로", 그것도 "완벽한 문장"으로만 말해야 하는 그곳에서 '라이언'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인물들과 평소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일들에 휩싸인다. 그러니까 그게 다 영어 때문이었다.






김준녕의 『붐뱁, 잉글리시, 트랩』은 거침없는 전개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똘똘 뭉친 소설이다. 인물들은 미친 듯이 움직이고 사건은 가감 없이 펼쳐진다. 간혹 개연성의 문제가 보이기도 하고 아무런 설명 없이 인과를 뛰어넘는 괴이한 장면들도 있지만, '영어마을'이라는 특정한 공간-배경을 통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영어'가 지니는 그릇된 의식체계를 바로잡는다.

공통의 언어는 우리를 평등한 존재로 만들지만, '공통'이라는 범주 안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소외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공허하다. '영어마을'에서 볼 수 있는 '라이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절실히도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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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새소설 15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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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우리

─김이설의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를 읽고

얼마 전, 애인과 강릉에 다녀왔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 이 책을 읽었다. 우연한 기회였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다르다. 강릉에 다녀오자마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연, 혹은 필연이다.

김이설의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는 마은 아홉 살 동갑내기 친구인 난주, 정은, 미경의 '강릉 여행기'이다.

강릉에는 세 사람의 시절과 기억이 곳곳에 묻어있다. 과거에도 세 사람이 함께 강릉에 다녀왔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젊을 때의 일이다. 이제는 오십을 목전에 둔, "한참 늙느라 바쁜 나이"의 세 사람은 강릉에서 또 다른 시절을 쌓아 올린다.

그때의, 그리고 지금의, 웃기고 슬픈, 애틋하면서도 잔망스러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보며 나는 '우리'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저 너와 나의 합이라고, 무수한 나가 무수한 너 중에서도 오직 너를 만나 우리가 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따지면 우리 또한 무수한 하나의 집합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되므로 더 이상 '우리'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것은

'우리'라고 부르는 너와 내가 한 시절을 함께했기 때문에.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일상에 서린 과거의 기억들이 자꾸만 우리라고 부를만한 것들을 불러오기 때문에.

그래서,

미경의 강릉과 정은의 강릉, 난주의 강릉은 결국 '우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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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즘 - 섹시, 맵시, 페티시 속에 담긴 인류의 뒷이야기
헤더 라드케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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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인류의 엉덩이를 조준하는 날카로운 질문들˝이 한데 모여있는 헤더 라드케의 『엉덩이즘』은 엉덩이가 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말을 다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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