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들 환상하는 여자들 2
브랜다 로사노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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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마법, 그리고 창조의 언어

─브렌다 로사노의 『마녀들』을 읽고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곧 자기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다. 나는 언어에 대한 글을 볼 때마다 비트겐슈타인의 이 명제를 떠올리곤 하는데, 여전히 언어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나로서는 대단히 곤욕스러운 문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브렌다 로사노'라면 말이 다르다. 그의 소설 『마녀들』에는 언어의 힘을 통해 사람들에게 치유와 마법, 그리고 창조의 환희를 선사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언어로 자기 세계의 질서를 부여하고 현실과 현재, 사물과 사람의 간격을 적절하게 유지하며 온전한 자기 자리를 찾아내려 애쓰는 인물 '펠리시아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의식을 집전하면서 나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고통스러워했지요.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요. 사랑 앞에 우리는 모두가 똑같다는 사실을, 밤에 우리는 모두가 똑같다는 사실을 언어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미사를 드릴 때도 그렇게들 말하잖아요. 태양 아래 우리는 똑같다고요. 마찬가지로 언어 아래 우리는 똑같습니다. 언어가 우리를 평등한 존재로 만듭니다.

브렌다 로사노, 『마녀들』 中

그러나 브렌다 로사노의 『마녀들』에는 언어의 치유자 펠리시아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살해당한 팔로마를 매개로 펠리시아나와 연결된 젊은 기자 '조에'의 활약 또한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소설은 두 사람의 목소리로 전개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책 띠지에도 나와 있듯이) "두 여성과 두 세계의 만남을 통해 그려낸 폭력, 치유, 연대, 사랑의 독창적인 이야기"인 셈인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핵심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가 바로 '언어'라는 것이다.

절박하게 출구가 필요할 때, 그게 무엇이든 어떤 문이 필요할 때는 그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평화를 가져다준다. 깜빡깜빡 점멸하면서 탈출구가 있다고 알려주는 표지랄까. 언제라도 단번에 멈출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평온해진다. 적막감을 마주할 때 끝의 가능성은 힘이 된다.

브렌다 로사노, 『마녀들』 中

그럼 다시,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로 돌아와보자. 언어의 한계는 곧 나의 한계, 자기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이 말은 적어도 『마녀들』 앞에서만큼은 무력하다. 주인공 펠리시아나의 말처럼 "언어는 죽은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동안 언어의 한계로 인해 가능성의 제한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분명한 건 언어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 언어가 지니고 있는 치유와 마법, 그리고 창조의 힘일 것이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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