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도차제광론 2 나란다불교학술원총서 2
쫑카파 대사 지음, 박은정 옮김 / 나란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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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2016년 11월, 사단법인의 허가를 얻게 되면서 ‘나란다불교학술원‘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첫 역경사업은 나란다의 교학과 수행 법통이 온전히 담겨있는 논서를 번역하는 것이었다.
학술원의 지도위원으로 모신 대풍 로쎌링 사원 출신의 게쎼 툽텐소남 스님께『보리도차제광론』을 번역하자고 제안했을 때, 스님은 인도에서 가져온 짐가방에서 광론의 해설서로알려진 사가합주 두 권을 꺼내들며 활짝 웃어 보이셨다. 그리고 ‘이 책을 왜 가져오게 되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다‘고 하셨다. 두껍고 무거워 평소에 가지고 다니지 않는 책인데도 한국행이 결정되었을 때 스님의 머리 속에 홀연히 사가합주가 떠올랐고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짐 가방에 넣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스님은 정말 무거운 것을 싫어하신다.
여하튼 스님은 그 일로 우리가 광론을 번역하게 된 것을 마치 운명처럼 느끼셨다.
물론 보리도차제론이 티벳 불교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가치는 티벳불교에 관심을 가지고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법문에서 늘 회자되고 법문 주제로 자주 채택되는 것이라서 존자님의 법문을 접한 대부분의사람들은 그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역작이고티벳 수행자들에게 사랑받는 필독서라 하더라도 우리 한국 불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 인간의 사고는 시대적 산물이므로 대사의 저술 역시 시대적 고민의 결과로 볼 수 있을것이다. 그것이 깨달음의 길이라는 보리도의 과정을 해설하는 저술이라고 해도 그 시대를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쓰여질 수밖에 없다. 대사의 해법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시대상과 문제를 읽으면 그 속에서 지금 우리에게 이 저작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저술은 당시 티벳 불교사회가 안고 있던 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까지 티벳 불교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왔다. 스승의 부재, 교리적 오해, 맹목적인 믿 - P13

음, 가치관의 혼란 등 대사의 시대가 그랬듯이 이 시대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그와 같은문제와 당면 과제를 풀어갈 해법을 제시해 줄 것이라 확신한다.

취지와 목적의식이 명확해야 겨우 움직이는 게으른 필자는 「보리도차제광론』, 그것도 9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작업을 선택하는 데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만 했다. 깊은 숙고끝에 2016년 12월 25일, 티벳력으로 10월 25일 쫑카파 대사의 열반일에『보리도차제광론』의 번역을 처음 시작하였다. 그러나 번역은 예상했던 것보다 몇 곱절 더 어렵고 고된 작업이었다.
불교원전을 번역하는 모든 번역자가 가지는 어려움은 아마 비슷할 것이다. 원문을 훼손하는 불경不敬을 저지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번역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직역譯이라는 방식을 선택하게 한다. 그랬다가 이내 문법과 통사구조, 그리고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상이성이 발생하면 ‘과연 읽는 사람이 직역한 이 의미를 이해할까?‘ 하는 회의감에 빠진다. 의미가 통하지 않는 직역은 번역 본래의 목적과 취지가 상실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가도 ‘독자의 이해에 주안점을 두어 매끄럽고 유려한 의역을 선택한다면 원문이 주는깊이와 미묘함을 놓치고 의미를 한정 지우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슬며시 다시직역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그러다가 ‘직역이란 틀에 갇혀 의미전달에 걸림돌이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하고 고민의 원점으로 회귀하고 만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지극히 당연한 답일지 모르겠으나 역자의 입장을 버리고 온전히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번역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권의 번역은 의역에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고 가능한 한 직역을 고수하였다. 그 대신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풍부한해설을 달자고 생각했다. 그것은 번역 과정에서 ‘얼마큼, 어떻게 균형 잡힌 설명을 달 것인가‘라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생경한 용어를 일일이 다 설명하자니 백과사 - P14

전이 될 것 같아 독자의 수준과 어떤 기준에 맞추어 해설을 달 것인지를 정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고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보리도차제광론』 1권을 번역하면서 가졌던 이 악몽 같은 고민이 하근기와 중근기 편의 번역에서도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 2019년 나란다불교학술원에서 개최한 대승전법륜대회로 한국을 방문하신 삼동린포체께 이러한 고민을 토로하였다. 티벳어는물론이고 산스크리트어, 힌디어, 영어에 능통하시고 인도의 철인들이 존경해마지 않는대석학이신 린포체의 대답은 명료했다. ‘직역은 불가능하다‘였다.
그로써 직역에 대한 나의 고민을 최종적으로, 아니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직역의 집착을 완벽히 떨쳐내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의역으로 원문이 훼손될지 모른다는우려도 우려거니와 의역이라는 것은 번역자가 이해하여 옮긴 것이므로 번역자의 주관적 생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던 것 같다. 역자의 주관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해이함을 버리고 그것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역자가 가져야 할 태도라는 생각 때문에 학술원 지도위원인 게쎼 툽텐소남 스님을 괴롭히고, 많은 티벳의 강백 스님과 여러 어른 스님들을 몹시 번거롭게 해 드렸다.

『보리도차제광론』의 번역은 직역과 의역에 대한 선택뿐만 아니라 원전의 내용에서부터 문맥, 전체의 맥락, 전거典據로 제시된 인용문과 본문과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것까지 녹록치않은 작업이었다. 원문을 직역해 보면 비문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원문 자체가 비문인 경우도 많았지만 한국어와 티벳어의 통사구조나 어법 차이에서 오는 문제도 적지 않았다. 이 부분은 특히 직역이라는 틀에 갇히면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막상우리말로 번역해 놓고 보니 한국어의 표현상 불필요한 조사나 보조사, 지시대명사들도 골치였다. 원전에 인용되어 있는 인도의 경론은 지시대명사의 대향연이다. ‘저‘, ‘그‘, ‘이‘, ‘무 - P15

‘엇‘ 등등 도대체 무엇을 지시하는지 거의 암호를 해독하는 수준이다. 원문의 의미를 놓치지않기 위해, 보조사나 지시어 등이 원문에서 어떤 의미와 뉘앙스를 가지는지 그야말로 글자하나하나를 다 뜯어 해체하는 작업을 하였다. 번역작업을 함께 한 게쎼 툽텐소남 스님은 보조사 하나도 그냥 넘기는 법 없이 까탈스럽게 따지는 필자 때문에 심히 괴로운 시간을 보내셨다. 스님께 심심한 위로와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인도에 머문 13년 동안 겔룩파의 전통 학제에서 경론과 티벳어를 공부한 것이 번역하는 데큰 밑거름이 되었지만 심심찮게 등장하는 티벳의 옛 스승들의 지방 사투리나 고서는 그러한 지식도 속수무책이었다. 방언과 고어를 시작으로 수많은 난제들을 풀어가는과정은 그야말로 지난한 인욕의 길이었다.
원문의 기본적인 내용은 네 분 대가의 해설을 집대성한 『사가합주』를 근거로 번역하였다.
네 대가들의 해설은 저마다의 특징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잠양 셰빠의 해설이었다. 특히 맥락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마다 잠양 셰빠의 해설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거기에는 어김없이 소제목과 해설이 달려 있었다. 나의 의문을 마치 예상하기라도 한 듯한그의 해설을 볼 때마다 대가의 예지력에 탄복하였다. 사실 사가합주』는 보리도차제광론의 가장 유명한 대표적 해설서이지만 대중적으로 읽히는 책은 아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조차 『사가합주』를 보면 되레 더 헷갈린다고 토로하실 정도로 네 분의 설명이 서로 뒤엉켜있다. 그 속에 얽혀 있던 실타래를 풀어 우리가 원하는 주옥같은 해설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사가합주』 이외에도 광론의 고어를 해설한 람림다띌(lam rim brdabkrol), 불교용어를 전문적이고 현대적으로 해설한 곰데칙죄(sgom sde tsig mzod)」, 불교사와 인물사전인 『둥깔칙죄(dung dkr tsigmzod)」등이 없었다면 이 책의 번역은 요원한 일이었을것이다. 이 모두가 티벳의 걸출한 역경사와 논사들의 해설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 P16

그밖의 의문점들은 다른 여러 관련 서적과 해설서를 비교 대조하여 참고하였다. 관련 문헌과 자료 가운데 가장 도움이 컸던 것은 링린포체의 강설집이었다. 그 강설집은 1981년 세라사원에서 3개월간 링린포체께서 광론의 내용을 한 자 한 자 강설하신 법문의 녹취를 활자로 옮겨 놓은, 3천 쪽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이다. 전무후무한 린포체의 강설이 담긴 녹취를 102대 겔룩파 종정을 역임하신 리종린포체께서 사비를 털어 활자로 옮겨 놓으신 것은 뛰어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링린포체의 강설 자료가 없었다면 크고 작은 난제들을 해결하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또 어떤 부분은 처음부터 해설이 아예 없거나 혹은 해설서마다 각기 다르게 해석하고 있어어떤 해석을 채택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지도위원인 게쎼툽텐소남스님을 비롯해 인도, 네팔, 미국, 말레이시아 등 세계 각지에 계시는 여러 게쎼(박사) 스님들과 수차례 문답을 하여 결정하였다. 지금에서야 이야기하지만 때로는 한 줄을가지고 며칠씩 문답하고 논쟁을 해서 겨우 결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도 미제로 남기기도 했다. 그때마다 깊은 실의에 빠졌다가 나오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특히 2019년 가을에 한국을 방문하신 게쎼 예쎼 탑게 스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스님은망명 전 1940년대 티벳 삼대三大 총림에서 경론에 뛰어난 학인으로 가히 천재라는 소리를듣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보리도차체론의 영역본을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말로만 듣던 대강백을 모시고 보리도차제론의 여러 의문점을 직접 여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은 다시없을 희유한 기회였다. 당시 90세가 넘는 노구를 이끌고 한국을 방문하셨던 스님의 정정하신 모습과 법에 대한 열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계기였다.
그 때 한국에 머물던 3일간 스님을 경주 황룡원에 모시고 끝까지 풀지 못했던 의문들을 모두 모아 밀도 있게 질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침 9시부터 질의를 시작하기로 했음에도 스 - P17

님께서는 30분 전에 먼저 나와 계셨으며, 한 타임마다 3시간 내내 이어지는 질문과 응답.
토론에도 지치는 기색이 전혀 없으셨다. 그분의 열정과 법의 담론에 대한 열의는 도저히 따라갈래야 따라갈 수 없는 위대한 대학자의 풍모 그 이상이었다. 그 이후에도 인도와 미국에계시는 동안 긴밀하게 연락하며 의문이 있을 때마다 답을 주시곤 하셨다. 늘 후학들을 독려하시고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며 모든 도움을 주시는 스님의 은혜를 어떻게 다갚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은혜를 입은 스승들이 어디 이뿐이랴. 리종린포체께서는 람림의 역경 불사에 보시금을 보내주신 것부터 링린포체의 강설을 자료로 만들어 주신 덕분에 번역에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삼동린포체께서도 학술원에서 주최한 법문에서 받으신 공양금을 역경불사 기금으로 모두 내어 주셨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길을 밝혀 주는등불이 되어 주셨다.
이 한 권의 책이 번역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사와 선지식, 그리고 스승들을 비롯해 많은이들의 애정과 헌신이 있었는지를 생각할 때마다 깊은 무게감을 느낀다.

끝으로 이 모든 역경 불사가 가능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시는 나란다불교학술원 이사장 동일 스님과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관음사 회주 지현 스님, 이사님들께 감사드린다. 가장 많은 고생을 하신 대풍 로쎌링 게쎼 툽텐소남 스님에게 모든 공을 돌리며, 끝까지 책임을 놓지 않고 귀한 시간을 내어 교정을 봐주신 문정섭 선생님과 공혜조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특히 문정섭 선생님은 남다른 신심으로 책 제작에 큰 후원을 해 주셨고 함께 공부하고 번역하는 과정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아울러 평생 고집스런 딸을 묵묵히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께도 감사드린다.
학술원의 모든 활동을 지지하고 깊은 신심으로 후원해 주시는 모든 회원 분들과 이역서가 - P18

나오기까지 크고 작은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번역으로 불보살과 스승들 그리고 중생들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게 되어 무척기쁘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역경불사로 지은 선업으로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비롯한 나란다 법통의 모든 스승들이이 땅에 오래 머무시어 부처님의 법이 널리 전해지고 계승되기를 발원 회향하며, 이 책을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쫑카파 대사의 가르침이 잘 전해져서 원하는 바를 이루고 진정한 행복을 얻기를 바란다.
불기 2566년 5월
경주에서
박은정 합장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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