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는 질색하며 안하던 내가 페이스북을 왜 하게 됐을까.
그 시작을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 내 페북 친구는 천명을 훨씬 넘는다.
그렇다고 내가 페북을 열심히 하는 건 아니다.
소그룹에서 글을 쓰던 때가 잠깐 있었지만,
내가 페북에서 하는 일은 그저 친구신청에 응답을 하는 게 고작이다.
요즘 내게 오는 이메일의 절반 이상이 '친구요청을 보냈습니다'인데,
언제부터인가 기계적으로 요청수락만 하고 만다.
친구신청을 보냈던 이들은 아마도 활동이 거의 없는 내 사이트를 보고 실망할 테지만,
어쩔 수 없다.
그분들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여건이 안되는데 어쩌겠는가?
내게 트위터를 하라고 강권했던 동료선생은 그 용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내가 TV에 나온다. 좀 봐라" "내가 책을 썼다. 좀 사라." 이런 말을 할 수 있잖아?
그 말을 듣고 트위터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
내가 끔찍이 싫어하는 게 다른 사람을 그런 식으로 귀찮게 하는 건데
내가 왜 그짓을 해?
물론 내 책을 사주고 내 방송을 봐주는 이가 많으면 좋지만,
도움이라는 건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에게 주는 거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히 잘 먹고 잘 사는 내가 타인을 그런 식으로 착취하는 게 전혀 내키지 않았다.
그러니, 트위터랑 별반 차이가 없는 페북을 내가 할 이유가 없다.
어떤 분이 만든 동영상을 보면 페북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잘 나와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spDPHmXadTQ
이 영상의 주제는 페북 유저들의 현란한 포장술이 주 타겟이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사람들의 의미없는 '좋아요'였다.
직장에서 잘리고 나서 '직장 때려치웠다'고 글을 쓰니까 좋아요가 수십개...
바람피우는 아내를 보고 충격을 받아 가출을 한 뒤 '나는 오늘부터 돌싱이다'라고 했더니 좋아요가 수백개.
결정적으로 그 아내가, 새 남친이라면서 사진을 올렸더니 좋아요가 수천개.
잘 알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사람 수천명이 날리는 좋아요는
늘 곁에 있어주는 아내가 해주는 팥빙수 한그릇의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
직장을 그만두는 것에 열광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철저히 타인이기 때문이지,
정작 자기 지인이 그런다고 할 때는 다른 반응을 보이리라.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 사건이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처럼
SNS에 순기능이 있다는 것은 십분 인정하지만,
SNS의 거의 대부분은 자신의 소소한 일상사를 노출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고,
SNS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은 정말 많은 시간투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난 SNS보다는 사람들이 책을 읽는 게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보다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순간, 읽을만한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