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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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과 관련된 비리라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읽어보니 소설의 내용은 내 예상과 달랐다.
물론 병원이 주 무대이긴 하지만,
소설에서 말하는 건 참된 윤리란 무엇인가, 였다.
비리가 저질러지는 구조가 있고, 사람들은 거기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누군가 여기에 반기를 들면, 예컨대 비리의 핵심을 고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 사회 대부분의 내부고발자가 그렇듯
이 소설의 주인공도 동료를 팔아먹은 놈이 돼서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 과정이 워낙 참담해 읽는 동안 마음이 아파왔다.
한번 내부고발 비슷한 걸 해본 내 경험이 투사돼서 더 마음이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에서 야간 경비원이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해준다.
음독자살을 기도한 남성이 병원에 실려왔다.
수혈을 해야 하는지라 병원에선 남자의 부모를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부모는 없었다.
경비원: 부모한테 전화해서 어디냐고 물었더니 버스 타고 병원에 가는 중이라고 하더래요. 20분 정도 더 걸린다고요.
주인공: 버스를 탔다고요?
경비원: 제가 아는 가장 검소한 부모예요. (111쪽)

이와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아내 쪽 친척 중에 내 또래 남성분이 계신데,
그분이 심장 문제로 갑자기 쓰러졌다.
급히 강남에 있는 병원에 갔고, 거기서도 한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난 당산동에 살고 있었는데, 그쪽에서 연락을 받고 잽싸게 병원으로 갔다.
내가 도착한 시각은 밤 9시 반 경, 하지만 정작 오셔야 할 그분의 어머니가 안보이는 거다.
내 아내: 어머니 어디 계세요?
남성분 아내: 연락은 진작 드렸는데 아직 도착 안하셨어요.
나, 그리고 내 아내: 네? 아직도요? 우린 20분밖에 안걸렸는데!
우린 어머니가 오시다가 놀라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내가 도착하고 30분도 더 지났을 무렵, 그 어머니가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나타나셨다.
왜 늦으셨냐는 우리 질문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하철 타고 왔거든.”


아내와 난, 당연히 충격을 받았다.
아들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데 어떻게 대중교통을 타고 온 어머니의 선택은 내겐 이해 안되는 일이었다.
마음이 심난한 와중에 홍대역까지 걸어가서 2분마다 30초씩 쉬는 지하철에 올라타고,
을지로 3가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또 xxxxx역에 내려서 병원까지 10분도 넘는 길을 걷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게다가 그분은 은행에 예금된 돈이 많기로 소문난 분이라, 택시비 1-2만원이 부담될 리는 없었다.
아무리 평소 돈을 안 쓰시는 걸로 유명하다 해도,
아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대중교통을 타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
다행히 그 아들은 의식을 회복했고, 지금 잘 살고 있지만,
나 같으면 그때 일이 좀 서운할 것 같다.
응급상황에선 택시 좀 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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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8-05-19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갖고 있었는데 마태우스님 덕분에 보관함에 넣습니다^^ 그나저나 그 와중에 지하철@_@; 친척분 어머니 굉장한 분이시네요@_@;;;;;

2018-05-20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8-05-20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시부모님도 택시 거의 안타세요.
충분한 연금 타시는데...
답답하죠.
그나저나 마태우스님 반가워요^^

마태우스 2018-05-26 10:17   좋아요 1 | URL
글게 말입니다 세실님 그간 안녕하셨사와요. 저희 엄니도 택시 절대 안타시는데, 언젠가 겨울에 지하철역 가다가 넘어져 손목이 부러지신 적이 있어요. 택시비 아끼려다 치료비랑 몸고생...속상하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