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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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쓸신잡2를 보며 왜 김영하와 정재승을 뺐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들을 어느 누가 대체할 수 있다고. 물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접해보는 것도 좋지만 기대가 크지 않았다. 그러다 유현준이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의 공간구조를 비교하고 설명하는 부분을 보고서 생각은 곧 바뀌었다. 그리고 구입한 그의 책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우리는 방이나 집, 그리고 거리나 다양한 건물 같은 많은 공간을 접하고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그 공간에 대한 이렇다할 생각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저 좀 보기 좋으면 이쁘다. 덥다, 춥다. 답답하다. 아름답다 정도의 표현밖에 못하는 소위 공간문맹론자나 마찬가지인데 이 책은 그런 공간들을 읽고 해석하는 눈을 어느정도 갖게 해준다.


1. 유현준이 말하는 공간

 사람은 자연상태에서는 공간을 지각하기 쉽지 않은데, 그저 뻗어가는 하늘이요, 밤이되면 그마저도 암흑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지하기 어려운 공간에 건축이 등장하여 벽과 기둥을 높고 지붕을 얹으면 공간을 비로소 분명히 인지된다. 

 저자인 유현준은 공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공간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로 사람마다 같은 공간을 다르게 받아들이는걸 들수 있는데 영어정보가 잘 인지되지 않아 한국인에게는 멋지게만 보이는 라스베가스의 무수한 네온사인들이 정보를 인지할수 있는 현지인들에게는 어지러운 과다 정보로 인해 볼품없어 보이는 공간으로 인지되는게 그 예다. 

 따라서 건축공간은 정보의 해석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 인식의 산물이며 공간을 구성하는 정보들은 3가지다. 첫째는 보이드로 물리적인 양이자 실제적인 공간의 볼륨이다. 둘째는 심벌로 글자그대로 간판이나 조각, 그림 같은 상징정보다. 셋째는 액티버티로 공간에서의 사람들의 활동이다. 

 이런 특징을 갖는 건축공간이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 역시 3가지로 제시하는데 첫번째는 실제적 관계로 그 공간을 볼 수 도 있고, 실제로 가볼수도 있는 경우다. 둘째는 시각적 관계로 볼수는 있지만 그곳에 갈수는 없는 경우다. 마지막은 심리적 관계로 볼수도 없고 갈수도 없지만 머릿속으로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은 인식할 수 있는 관계다. 


2. 걷고 싶은 거리의 특징

성공적인 거리와 걷고 싶은 거리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유명하고 비싼거리지만 그닥 걷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강남대로나 광화문 광장이 대표적이다. 이유는 스케일때문인데 걷고 싶은 거리들이 대개 휴먼스케일로 사람이 체험할 만한 아기자기한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 반면 큰 스케일의 거리에서는 그런 것이 좀처럼 없다. 

 유럽의 경우 걷고 싶은 거리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유럽은 미국에 비해 역사가 길어 도시의 거리들이 사람과 마차의 속도에 맞춰 발달해왔다. 때문에 거리마다 결절점이 많고 교차로와 코너가 존재하여 걷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경험과 선택을 제공한다. 반면 미국은 자동차와 함께 거리가 형성되어 블록이 크고 교차로가 적다. 

 우리나라로 대입하면 강북의 거리와 강남의 거리가 그러한데 자연발생적인 강북의 거리가 좁고 구불구불 하며 민간자본으로 개발되어 필지가 작은 편이다. 반면 대규모 기업자본으로 개발되고 자동차 중심의 강남의 거리는 필지가 크며 블록규모가 크다. 때문에 강북의 거리가 휴먼스케일이자 사람중심적인 거리라 할수 있다. 

 정리하면 사람이 걷고 싶은 거리는 다음의 특징이 있다. 우선 이벤트의 밀도가 높아야 한다. 이벤트의 밀도가 높다는 것은 거리에 점포의 출입구가 많아 선택의 개수가 많다는 것이다. 이 같은 높은 이벤트는 보행자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변화의 체험을 제공하며, 매번 같은 거리를 가도 새로운 체험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다음은 속도인데 거리를 지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도 안되며 너무 느려도 안된다는 것이다. 


3. 공간에 대한 점유, 개방과 폐쇄

펜트하우스는 가장 비싼데 그 이유는 자신은 남을 볼수 있으면서 남은 자신을 볼수 없는 위치에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비슷한 위치의 옥탑방은 가장 저렴한데 옥탑방은 위에만 있을뿐 사방이 트인 개방적 공간으로 쉽게 관찰되며 보안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비싼 공간은 이렇게 다른 공간과 자신을구분을 짓는데 과거에는 공간에 대한 구분으로 수공간을 썼다. 성당입구에 놓인 성수와 궁궐이나 절에 들어갈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물길과 다리가 그것들이다. 

 펜트하우스는 남들이 볼수 없기에 비싸고, 옥탑방은 볼수 있기에 쌌지만 보이는게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뉴욕 센트럴 파크와 보스턴의 코먼이다. 센트럴 파크는 규모가 상당히 크고 녹지가 많긴 하나 이로 인해 85%의 지대가 사각지대이다. 때문에 낮이 아니면 이용이 불가능한 편이나, 보스턴 코먼은 거의 전역이 주변 건물에서 내려다보여 치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다. 보이는게 보안이란 면에서 오히려 좋은 것인 셈이다.

 공간의 개방과 폐쇄와 관련해서는 호텔과 모텔이 있다. 호텔은 거의 완벽한 개방공간으로 대부분 큰 유리창을 써서 밖에서도 안이 잘 보인다. 이는 호텔에 묶는 사람들이 밖을 내려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자체를 모두 좋아하기 때문으로 즉, 과시를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반면 모텔은 보여지는 것은 원치않는 공간으로 낮이든 밤이든 항상 밤같은 내부 분위기를 연출하여 창이 거의 없다.

 폐쇄공간에는 클럽이나 도박장, 체육관, 공연장, 교회 ,백화점등이 있는데 클럽이나 도박장은 내부가 보여지기를 원치 않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공간들은 바깥과 안을 차단하여 내부의 사람들이 안의 일에만 집중하기를 원하기에 이런 식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는 도시화로 도시의 공간이 매우 비싸지면서 공간을 시간이나 일별로 대여하기도 하는데 주로 연인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모텔이나 카페가 대표적인 예이다. 좀더 여유가 있다면 상대적으로 집보다 공간을 저렴하게 점유하는 방법으로 자동차가 있다.


4. 동과서의 건축차이

 동양은 상대적이고 관계적인 철학을 발전시켜온 반면 서양은 이데아나 기독교의 신 같은 절대적인 가치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추구하는 과정으로 수학을 강조시켜왔다. 이 같은 차이는 건축에도 영향일 미쳐 동양의 건축이 자연과의 관계 및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반면 서양은 자연과 어울리기 보다는 삼각형, 원, 사각형 등의 기하학적 건축이 발달했다. 

 기후도 영향을 미쳤는데 동아시아는 몬순기후로 비가 많이 내리며 계절에 따른 기온 변화가 심하며 이로 인해 땅의 변화가 심하다. 때문에 땅이 물러 땅에 기초를 단단히 하는 방식의 건축보다는 땅에 주춧돌을 놓고 나무로 기둥을 세우는 방식의 건축이 발달했다. 비가 많이 오기에 지붕은 급경사여야 했으며 흙벽이 빗물로 젖어 무너지는걸 방지하기 위해 긴 처마도 필요했다. 벽과 긴처마사이에 툇마루를 놓은 것은 가히 신의 한수라 할만하다. 또한 사각형의 방을 모듈화하여 여러개를 놓는 방식으로 건물의 크기를 키우기 때문에 각 건물은 마당과 쉽게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간의 관계 맺기에 용이한 구조를 갖게 된다. 

반면 서양은 벽 중심의 구조체로 과거 건물들은 창을 가로로 길게 내면 하중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에 세로로 긴창이 많이 발달하였다. 

 이 같은 건축양식의 차이는 대표적 건축물은 절과 교회에서도 나타난다. 서양의 교회는 예배를 통한 집회를 중시하기에 거대한 내부공간이 필요하다. 또한 신의 권위와 현신함을 드러내기 위해 밝은 채광도 중요했는데 그래서 등장한 것이 스테인글라스다. 스테인글라스는 문양으로 알고 있찌만 실은 기술의 부족함이 낳은 것이다. 과거 서양은 투명한 유리를 만들기 위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술이 부족했는데 그러다보니 색을 띤 유리가 많이 만들어졌다. 이를 그대로 그림으로 이용한 것이 스테인 글라스다. 

 반면 동양의 절은 개인별 방문의 형태이므로 거대한 집회공간이 필요치 않다. 거대한 집회가 있는 부처님 오신날이 늦봄으로 기후가 온화해고 햇살도 강하지 않아 경내 마당으로 충분하다. 건물은 큰 것이 필요없어 작은 것이 여러개 있으며 건물 사이사이 공간이 있어 돌아다니면 마치 공원에 간 느낌이 든다. 물론 문화유적으로서의 역사성도 있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종교불문하고 절로 관광을 가는 것이다. 거기에 교회는 건물 구성상 매우 권위적인 느낌이 들어 일반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부분이 있으며 절은 그 반대다.


이외에도 책에는 우리가 왜 한강고수부지를 가기 어려워하는지, 냉장고의 발달이 거리의 발달에 미친 영향,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등 다양한 건축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은 매우 쉽고 재밌있으며 알차다. 추천사 부분을 통섭을 주창한 최재천씨가 하였는데 초기엔 의아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이해가 간다. 유현준씨 자체가 건축에 매우 통섭적 사고 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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