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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 평전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병익.권영빈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거의 10년쯤 전, 열린책들에서 완역본으로 출간된 도스또예프스끼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이것은 정말 최고라고 열광했던 적이 있다. 그 뒤로 그의 다른 작품들 역시 하나둘씩 찾아 읽게 되었다.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 것이 위에 언급한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고 <죄와 벌>이다. 그 둘은 거의 도스또예프스끼의, 그리고 러시아 문학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작품들을 쓴 도스또예프스끼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완역본을 출간했던 열린책들에서 이번에는 E.H.카의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원제 Dostoevsky 1821-1881)>을 개정 출간했다. E.H.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원제 What Is History)>를 쓴 영향력 있는 역사학자로, 그는 소련사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였다.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은 카의 첫 번째 저서로,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한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그의 문학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의 역사, 사조, 그리고 종교, 심리 등의 측면에서 매우 치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대부분의 문필가들의 삶은 평탄하지 못하다. 도스또예프스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 거의 학대에 가까운 엄격함 밑에서 성장했고, 지병인 간질 발작은 그를 평생 동안 괴롭혔으며, 정치적인 이유로 황제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고 마지막 순간에 감형되어 시베리아의 유형지에서 10년을 보낸다. 처형장에서 눈이 가려진 채 공포가 극도에 달한 순간, 니꼴라이 1세의 칙사가 말을 타고 와서 감형 명령을 전했던 일화는 꽤 유명하다. 이는 일종의 영혼을 흔드는 듯한 체험으로,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또한 비참했던 시베리아 유형 생활은 그의 작품 <죽음의 집의 기록>에 큰 영향을 준다. 시베리아 유형에서 돌아온 후에도 그의 삶은 그다지 평화롭지 못했다. 첫 번째 부인 마리아 드미뜨리예브나가 병으로 죽은 후 그녀의 아들인 빠벨은 방탕한 생활로 도스또예프스끼를 평생 괴롭혔다. 그 뒤로 만나게 된 연인 수슬로바와의 관계는 일종의 애증으로 이어진, 어찌 보면 참 잔혹한 관계였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삶을 피폐하게 했던 것은 도박이었다. 원고료로 돈을 받는다 해도 도박 등의 방탕한 생활로 인하여 전부 날려버리는 일이 잦았고, 두 번째로 맞은 부인 안나와 어린 자녀들, 죽은 형의 부인과 자녀들, 그리고 의붓아들 빠벨 등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많았기 때문에 삶은 항상 궁핍했다. 그의 도박벽은 꽤 심각해서, 크게 돈을 잃고 나서는 도박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도 돈이 조금만 생기면 또 도박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이러한 도박에 대한 이야기는 일종의 자전적 소설인 <노름꾼>에 나타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경제적인 궁핍에 시달렸고, 여러 출판사들로부터 원고를 집필하는 조건으로 선금을 받고 지인들에게 빚을 져서 근근히 삶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도스또예프스끼의 방탕한 생활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도, 의외였다거나 그의 이미지가 손상되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른 문필가들의 수많은 예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거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 문학사에 길이 남을 <죄와 벌>, <백치>, <악령>,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을 집필한다. 초반과 달리 이제는 그가 문학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에 판매 부수도 많았고 그의 명성은 점점 높아졌다. 오래 전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알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 평전을 읽으면서 명료하고 확실해지는 느낌이다. 또한 각 작품들이 그의 문학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 책은 명확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가 죽기 직전까지 집필했던, 40만 단어에 달하는 작품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일종의 예언자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라던지, 주인공들을 통해 표현되는 일종의 마조히즘에의 뚜렷한 경향을 알 수 있다거나 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지병으로 인해 죽기 3일 전까지도 집필을 하고 원고를 인쇄소에 보냈다. 그의 죽음 역시, 지극히 작가다웠던 것이다. 러시아 문학의 큰 별이 진 후, 그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문인들과 군중들이 참석했다.  

이 평전을 읽으며, 문필가의 숙명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극심한 괴로움과 우울증, 그리고 결코 행복하지 못한 삶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공통점이다. 그들은 범인(凡人)의 예상을 뛰어넘는 업적을 남기지만, 그것은 너무 큰 대가를 동반한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삶에서, 나는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역시 천재적인 작가로써 기억되고 있지만, 그의 삶 역시 다섯 번의 동반자살 시도와 약물중독, 방탕한 생활 등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항상 경제적인 궁핍에 시달려서 지인들이나 출판사에 애원하는 편지를 보내는 일의 연속이었다. 결국 마지막 동반자살에서 그는 성공하여, 짧은 생을 마감한다. 많은 부분에서 도스또예프스끼와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기파괴적 경향은 어쩌면 작가와 예술가의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평전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천재들은 결코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지극히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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