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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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작가의 장편소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를 읽었다. 주인공 ‘선우혁’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어머니는 눈물을 보인다. 소중한 아들이 고등학교에 가는 것이 기특해서가 아니다. 혁의 형 ‘선우진’이 13년 전 같은 학교에 같은 교복을 입고 입학했단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전작 《페인트》처럼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도 메타버스가 화제지만 아직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오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작품에서는 학교가 끝나면 너도, 나도 ‘난’이라는 메타버스에 들어간다. 혁 역시 진이 예전에 만들어 놓았던 가상의 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형의 친구로 보이는 존재 ‘곰솔’을 만난다.


마음이 아려오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오래전에 떠난 형의 흔적을 쫓는 동생도, 자식을 잃은 아픔과 남은 자식을 돌봐야 하는 부모님도, 단짝을 떠나보낸 친구도 모두 다 안타까웠다. 한 사람의 사진과 영상 등 다양한 자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상으로 만든 존재는 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할 법한 말을 실제로 하고 목소리도 똑같다면 어떨까. 이 소설을 읽으며 그리운 사람의 기억을 온전하게 보관하는 디지털 세상이 대단하다고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결국 이 작품은 전하지 못한 말을 끝내 전해주는 이야기였다. 어떠한 이유로 할 말을 삼킨 채 후회로 묻어놓은 일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무거운 돌이 되어 가슴이 짓눌리던 이들을 가볍게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이 참 고맙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계기로 시큼한 귤이 조금 더 좋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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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킷 -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 텍스트T 7
김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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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직접 심사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비스킷‘,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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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킷 -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 텍스트T 7
김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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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향형 인간이라 그런지 튀고 싶지 않다. 당장 내일 성당에서 급하게 반주를 하게 됐는데 몇백 명의 사람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할 생각을 하니 속이 안 좋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나에게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은 모순적인 마음도 있다.


김선미 작가의 청소년소설 《비스킷》의 주인공 ‘성제’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존재감이 흐려지는 사람들을 비스킷이라 부른다. 3단계까지 있는 비스킷은 단계가 높아질수록 존재감이 옅어지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존재감’을 소재로 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특히나 학창시절에 투명인간 취급이라도 당하면 얼마나 커다란 지옥이 펼쳐질까. 성제는 존재감이 더 옅어지기 전에 이들을 구하려고 노력한다. 소외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건네는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단 한 사람이라도 힘을 주는 존재가 있으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성제가 대견스러웠다.


후반부 아동 학대를 둘러싼 이야기는 현실에 있을 법해서 더욱 소름이 끼쳤다. 한편 이 소설에서 큰 도움이 된 이모가 인권 센터에서 일한다는 점에서 마냥 고운 시선을 보낼 수 없었다. 최근 뜨거운 감자인 교사의 잇따른 사망 사건에서 이들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직접 심사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소설이다. 판타지처럼 아예 비현실적인 소설도 아니고 완전하게 현실적인 소설도 아닌 이 작품이 판타지 문학상 청소년 부분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확실히 제성이를 비롯해 소설에 나오는 청소년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위화감이 없어서 좋았다.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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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하루 클래식 365 - 음악이 있는 아침
조희창 지음 / 미디어샘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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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올해 민음사의 일력을 구매하여 쓰고 있는데 매일 좋은 문장을 만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친구들에게는 생일 책이라는 것을 사주기도 했다. 생일이 같은 작가의 책을 사주는 것이다. 그래서 조희창의 하루 클래식 365를 고르게 되었다. 작가는 음악평론가라고 한다.

 

놀랍게도 모든 날짜에 관한 곡이 들어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QR코드로 직접 음악을 들어볼 수도 있다. 365일 동안 그날 벌어진 음악적 사건을 알 수 있는 책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받자마자 내 생일인 127일부터 확인했다. 에두아르 랄로의 출세작 <스페인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페이지였다. 밑에 작게 나와 있는 127일의 사건을 보는데 글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생일인 것이 아닌가! 나와 모차르트의 생일이 똑같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생일이 같다고 딱히 뭐가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사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자주 듣거나 피아노로 치지는 않았는데 괜히 더 흥미가 높아졌다.

 

책을 읽으면서 친구들의 생일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알려주기도 했다. 313일에는 가곡의 장인 휴고 불프가 태어난 날이었다. 119일은 20세기 최고의 멜로디라고 불리는 <아랑훼즈 협주곡>을 들을 수 있었다.

 

매일 오늘은 어떤 음악적 사건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그날의 음악을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책장에 책이 너무 많이 쌓여서 버리고 또 버리고 있다. 먼지만 쌓이고 두 번 읽을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책을 계속 골랐다. 그런데 이 책은 두 번이 아니라 수십 번 읽을 것 같다. 오래도록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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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슈의 발소리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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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라키의 머리를 읽은 지 석 달 만에 사와무라 이치의 신작 젠슈의 발소리를 읽었다. 둘 다 같은 작가의 호러 소설이고 단편집이라는 점에서 너무 빨리 만난 이 작품이 식상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소설을 읽으며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느꼈다.

 

젠슈의 발소리는 작가의 전작보다 훨씬 호러가 강화된 작품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강력한 공포가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첫 번째 이야기 [거울]부터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데, 결혼식에 간 한 인물이 겪는 끔찍한 이야기다.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는 가운데 서술되는 이미지가 저절로 상상될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결말까지 완벽한 이야기였다.

 

두 번째 이야기 [우리 마을의 레이코 씨]는 괴담에 관한 이야기다. 초등학생 때 빨간 마스크 괴담을 엄청 무서워했다. 그러다 엄마가 자신이 어렸을 때도 유행했다고 말을 하자 무서움이 조금 줄어들었던 기억이 있다. 레이코 씨 괴담은 빨간 마스크보다 더 충격적인 괴담이었는데 이야기의 전개까지 경악스러웠다.

 

다음 이야기 [요괴는 요괴를 낳는다] 역시 정말 재미있었다. 단편집은 모두 다 재미있기가 쉽지 않은데 이 작품이 정말 드문 경우인 것 같다. 30년 만에 실종된 남편의 쌍둥이 형이 나타나는 이야기인데 요괴보다도 아내가 겪는 일이 더 끔찍한 작품이었다. 역시 진짜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와무라 이치를 처음 만난 보기왕이 온다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를 만나러 대전역으로 가는 KTX를 타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까먹을 정도로 소설에 몰입했었다. 그 후로도 많은 훌륭한 작품을 낸 작가가 참 대단한 것 같다. 이른 시일 내에 다음 작품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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