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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찾은 할아버지
한태희 글.그림 / 한림출판사 / 201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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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가득 홍매화가 활짝피었습니다. 활짝 꽃이 핀 매화나무 아래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할아버지와 코를 들이밀고 매화꽃 은은한 향기를 음미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옵니다. 봄이 빨리 올 수 있도록 찾아오는 방법이 있다면, 나도 그 재주를 전수받고 싶은 심정으로 그림책을 펼쳤습니다.  

깊은 산 속 외딴 집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춥고 긴 겨울을 보내자니 지루하기만 합니다. 그림에서는 백자 화병에 매화가지를 꽂고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아 아마도 할머니가 무척 꽃을 좋아하는 분이고, 그래서 더 봄을 기다리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방문 오른쪽에 걸려 있는 꽃과 나비가 그려진 그림 한 점에서도 봄을 기다리는 두 분의 마음이 느껴지고요.   

'빨리 봄이 와서 환하게 핀 꽃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할머니가 무심코 던진 얘기에 할아버지가 결심을 하고 봄을 찾아오겠다며 길을 나섭니다.  우리 옛그림 중에는 봄을 찾아 나서는 선비를 그린 탐매도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신잠, 김명국의 그림이 대표적이지요. 옛그림 탐매도 속에서 봄을 찾아 길을 떠나는 사람은 주로 선비들인데 나귀를 타거나 하인을 데리고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길을 나서는 모습이 그려 있습니다. 혹은 봉오리 맺힌 매화가지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도 있지요. 그림책 속 할아버지야 선비나 양반의 풍채는 아니지만 꽤 정겹고 다정해서 보는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또 하나의 탐매도라 해도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야기 속 할아버지 입장에서 본다면 본격적인 고생길로 접어든 셈입니다. 할아버지는 개구리와 뱀이 겨울잠을 자고 있는 개울로, 뒷산 언덕을 지나 산봉우리로, 겨울잠을 자고 있는 곰에게로, 갈대밭 사이 꿩에게로, 꽁꽁 얼어붙은 강 밑에 사는 이무기에게로 차디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봄을 찾아다니다가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쓰러진 할아버지 위로 눈꽃이 떨어져 내립니다. 할아버지의 눈은 점점 감겨지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가운데 달콤한 꽃향기가 할아버지를 깨웁니다.  

그렇게 붉은 매화를 머리에 두른 귀여운 아이를 만나게 되지요. 물론 꽃향기는 아이에게서 풍겨나오는 것이었고요. 아이는 할아버지의 손을 끌며 앞서 나아갑니다. 아이를 따라간 그 곳에 홍매화가 바위에 붙은 따개비들 마냥 잔설이 남은 나뭇가지를 덮고 한가득 피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곳은 바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깊은 산속 외딴 집 마당이었죠.  

그림책의 처음은 추운 겨울이지만 마지막 장은 화사한 봄입니다. 책 앞쪽 속표지와 뒷쪽 속표지를 보면 겨울과 봄 풍경이 대비를 이룹니다. 저도 겨울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편이라 봄을 찾는 이 그림책이 공연히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공연히 앞뒤를 번갈아 펼쳐보며 '역시 봄이 더 좋아'하고 이 봄을 더욱 만족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의 열그루 매화길에도 홍매화는 아니지만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매화가 피었더랬습니다. 겨울눈이 쌀알만큼 커졌을 때부터 두근거리며 꽃봉오리가 터지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매화가 피고 나면 바람아 불지마라, 비야 살살 내려라 하며 꽃이 후두둑 떨어질까 전전긍긍하기도 합니다. 매화는 벚꽃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도도한 품위가 느껴집니다. 물론 향기도 아주 일품이지요.  우리 옛선비들이 매화를 가까이 한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림책 앞부분에 할머니가 백자화병에 꽂은 매화가지에서도 매화가 꽃핀 걸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점입니다. 제 욕심이겠지만 꽃이 피고 봄볕이 들어 환해진 할머니 할아버지의 방안도 구경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 그림책이 '설중매 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라는데, 그렇다면 설중매 설화에 대한 소개가 간략하게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지역의 어떤 각편이나 이본을 바탕으로 했는지, 그 출처를 밝혀준다면 더욱 좋겠지요.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의 저자 김환희 씨는 "구전설화, 무속신화, 고전소설에는 수없이 많은 각편과 이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작가들이 자신이 참조한 자료와 출처를 밝히지 않는 이상 다시쓰기나 고쳐쓰기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제 짐작으로는 이 책이 '설중매 설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것이 아닐까 싶지만 아무 설명이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만약 제 짐작이 맞다면 자칫 이 책의 내용이 '설중매 설화'로 오해될 소지가 있는 것입니다.

한지에 먹으로 그린 듯한 그림도 참 정감있습니다. 어찌보면 이억배 선생님의 화풍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네 집 안팎의 아기자기한 물건들도, 겨울잠을 자고 있는 동물들과 꿩의 모습들도 정겹기만 합니다.

매화는 짧게 피고 나풀거리며 지고 말았는데 그림책 속 홍매화를 보며 벌써부터 내년 봄에 필 매화를 기다리고 있는 성급한 저를 깨닫고 웃었습니다.  매해 겨울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마다 이 그림책을 찾아 꺼내보게 될 것만 같습니다.  재촉한다고 봄이 빨리 오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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