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손아람이라는 젊은 작가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어보았단다. 디 마이너스. D –. 예전에 대학교 때 D – 라는 성적이 보이면 아주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예 펑크 F를 주지, D – 라니어차피 재수강해야 하는데 한동안 학점 평점에서 빼고 계산하게 F를 주지, D – 라니…. 그런데 이 소설에서 D – 는 중요한 역할을 하더구나. 정학을 받냐 안받냐의 기로그런데 그 학생이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사람이라면 더욱 절박하겠지참 재미있는 설정이었어.

교수는 수업에 한번도 참석을 하지 못한 해당 학생에게 F를 주었어. 당연한 것이겠지. 그리고 그 교수는 오랫동안 지켜온 자신만의 룰이 있으니까 말이야. 당사자와 친구들이 교수님한테 우르르 몰려가 D-를 달라고 요구했어. 물론 사정을 이야기했지. 이미 선거에서도 압도적으로 총학생회장에 당선이 되었고, 학생회 활동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출석을 못했다고그러니 D-라도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정년을 앞둔 교수님은 교수 생활 내내 지켜온 자신의 원칙을 어길 수 없다면서 그 학생에게 F를 주었고, 총학생회장 자격이 박탈되었단다. 그래서 선거에서 2등을 했던 주인공의 친구가 총학생회장에 당선이 되는 에피소드가 있었어. 소설의 제목을 이야기하다 보니 소설 속의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하게 되었구나.

손아람이라는 작가는 아빠가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정말 글을 재미있고 잘 쓰는 것 같더구나. 정말 반했어.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을 마구 해주고 싶더구나. 그리고 지은이가 쓴 다른 소설들도 검색해 보게 되었어. 영화로 만들어진 <소수의견>이라는 소설도 있는데, 이 소설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1.

이 소설의 주인공 박태의는 1990년대 후반에 대학교에 입학해서 2000년대 초반에 졸업을 하는 그런 세대란다. 이미 민주 정부로 정권교체가 된 시절, 칠팔십년대 활발했던 학생운동은 거의 흔적만 남아 있던 시절, 그는 그런 학생운동 동아리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에피소드 식으로 엮은 것이 바로 이 소설 <디 마이너스>란다. 154개의 에피소드로 구분되어 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는 대학생활이라는 하나의 줄기를 이루고 있었어.

.

서울대 미학과를 입학한 주인공 박태의. 지은이도 서울대 미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아빠는 그 자신을 모델로 삼았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작가의 말에서 모든 것이 자신의 경험담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단다. 그와 함께한 이들의 회고록이 아닐까 싶구나. 대학에서 만나는 많은 군상들의 사람들. 그 안에서는 짝사랑 하는 여인도 있고, 짝사랑 하는 여인의 남자친구도 있고, 괴짜 친구들도 있고, 무엇인가 가르쳐 들려고만 하는 선배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 귀염둥이 후배들도 들어오고, 함께 시위도 하고, 함께 농활도 떠나고그렇게 대학 생활을 함께 하다 보면 숨겨두었던 비밀들도 알게 되고그러면서 더욱 깊은 관계가 되어가고

언제까지나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어느날 문득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이 길에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 끝까지 이 길을 지키고 있고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곳에는 참 다양한 일들이 늘 우리를 젊음에 두고 있었단다.

이 소설은 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소재로 다루고 있어서 당시의 일들을 떠오르게도 했단다. 마치 드라마응답하라 ~” 시리즈처럼 말이야. 만약응답하라 2000”이라는 드라마를 만든다면 시나리오 작가는 이 소설을 참고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어.. 아빠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들의 대학 생활이 아빠의 대학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 그렇다 보니 소설을 읽는 내내 아빠의 대학 시절도 떠올랐단다.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 그들과 함께 했던 공간들이 떠오르더구나.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고, 그들과 함께 했던 공간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니면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손만 뻗으면 다시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시절.. 이젠 다신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울컥해지는구나.

후회한들 무엇하련만, 그 시절을 이렇게 떠올리는 시기가 올 줄 알았다면 더 신나게 더 마음껏 즐기고 더 많이 도전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PS:

책의 첫 문장 : 여자들은 운다. 남자들은 웃는다.

책의 끝 문장 : 12 19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


(10~11)

“세상은 말로 배울 수는 없어.”

하나같이 줄담배를 피우던 대학 선배들은 종종 역설의 정수와 같은 설교를 늘어놓곤 했다. 세상을 말로 배울 수 없다는 말. 그것은 말로 배운 말이었다. 말을 부정하는 말이었다. 그들에게 배운 말로 나도 후배를 타일렀던 적이 있다. 그런데 세상을 말로 배울 수 없다는 건 사실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어쩌면 아닐 것이다. 경험보다 말을 많이 가진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끝없는 말들. 세상보다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이야기. 아마도 세상은 언어가 소멸하는 날에 종말을 맞을 모양이다. 이제 선배들도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말과 함께 나이 들었고 나이와 함께 거짓말의 비중을 늘려왔지만 다 지나간 일을 굳이 거짓으로 덮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자, 묻습니다. 혹시 끊을 날이 올 걸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까?

(111)

“봐, 진보적 자녀는 어떤 경우에나 나타날 수 있지만 보수적 자녀는 보수적 부모에게서만 나올 수 있어. 이 비대칭이 인류의 역사가 야금야금 진보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원리일 거야.”

(227)

사실 나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였다. 인간은 불행이 따르면 믿을 수 없어 하지만, 불행이 닥치지 않는다고 의아함을 느끼지는 않는 법이다. 그리고 불행은 인간이 완전히 방심했을 때, 즉 몸과 마음의 긴장을 홀가분하게 내려놓았을 때, 무장강도처럼 불쑥 찾아와 최악의 피해를 남긴다. 그래서 그것이 불행이라고 불린다.

(254)

마음속에서만 꾹 담아둔 말. 그런 말은 검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입으로 하기 어려운 말이고, 그것만이 유일하게 입으로 할 가치가 있는 말이라고 느꼈다. 마음속에서만 담아두면 검증할 방법이 없어서였다.

(380)

이름이 없어서 세상을 정처 없이 표류한 사람. 세상은 이름들이 만물을 남김없이 지배하는 곳이다. 부를 수 없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 사물과 같다. 이름 없는 존재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을 뿐. 그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가슴 언저리가 아려오는 슬픔을 느낀다.

(500)

아름다움이 너무나도 드물기에 우리는 그것을 좇는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대번에 홀린다. 세상에 거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우주를 부유하는 작은 원소들처럼 그저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갈 뿐이다. 플라톤에 한 표를 던진다. 지상에 완전한 아름다움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다 배운 게 아닌가? 부질없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뒷북소녀 2018-11-20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나온 것 같던데, 저는 <소수의견> 그 책 괜찮더라구요.
 












 


 

(50)

안기영은 작곡가였지만 동시에 미성의 테너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똑 같은 물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는 말처럼 이 사람도 분명 처음에는 서양음악에 꽂혀 유학을 갔을 텐데도 홍난파와 매우 다른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홍난파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하고 완전히 반해서 우리 걸 다 부정하고는 저 음악의 세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홍난파는 서구도 아닌 일본에 가서 베토벤과 슈베르트와 모차르트를 보고 기꺼이 그 문화의 포로가 되었는데, 이에 비해 안기영은 , 보니까 좋긴 하네. 그래도 역시 우린 우리 걸 해야 해하는 생각을 다지며 자신만의 음악철학을 정립하게 된다. 이 미세한 차이가 홍난파와 안기영이라는, 똑같은 서양음악 유학파의 운명을 가르게 된다.

 

(78)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음악가동맹은 음악에서 기교나 기술보다는 민중과 함께하는 호흡을 중시했다. 그래서 치열한 역사를 쓰는 데 필요한 혁명가도 다수 작곡했지만 아름다운 우리말로 쓰인 시로 노래나 가곡도 많이 만들었다. 조선음악가동맹이 특히 사랑한 시인은 김소월이었다. 소월의 시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의 울림을 안고 있다고 판단했고 최상의 음악적 언어로 표현해낼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민족음악일 것이라 생각했다. 김순남이 쓴 걸작 가곡 가운데 김소월의 시에 붙인 <산유화>가 있다. 다행히도 이 곡은 조수미가 부른 노래로 녹음이 되어 떳떳이 들을 수 있다.

 

(142)

나는 <빗 잇>의 맨 마지막 절 가사가 섬뜩하다. 이 노래가 나온 때는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2004)의 시대였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를 도탄으로 몰아넣게 되는 신자유주의의 악령이 슬슬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기 시작하던 때다. 그런데 <빗 잇>은 맨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외친다.

지고 싶은 자는 아무도 없어. 난 당신이 화려하고 강력한 투쟁력을, 싸움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옳고 그른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 그냥 꺼져. 그냥 꺼지라고.”

 

(254)

다만 중요한 사실은 서양음악사가 바로 쇤베르크에 이르러, 카라얀이 마지막으로 완전히 말아먹기 전에, 이미 90년 전에 사실상 내면적 종말을 고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게 하나 있다. 쇤베르크와 그 지지자들이 몸부림치면서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것, 그 점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술사가 수많은 사례를 통해 동시대에는 공감되거나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이 수백 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어느새 너무나 당연하게 열광과 환호를 받게 되었음을 알고 있다. 비밥도 그랬다. 비밥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왜 좋냐고 물으면 그냥 좋던데요.” 한다. 그 좋은 비밥 음악, 이유 없이 그냥 좋은 비밥 음악 중에 너무나 많은 곡이 놀랍게도 쇤베르크의 무조성주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344~345)

하지만 가장 늦게 등장했음에도 뮤지컬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 장르 혹은 상품이 되었으며 이 생명력은 앞으로도 굉장히 오래 이어질 것 같다. 그렇게 예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록 출발은 늦었으나 그 앞의 수많은 인류 예술사의 최선의 성과를 포섭하고 축적해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이야말로 어쩌면 인류 예술사에 나타난 가장 순조로운 반전의 명예혁명 같은 것이 아닐까? 뮤지컬은 오페라를 학살하는 대신 조용히 유폐시켰고 오페라가 누려왔던 모든 것을 새 시대에 걸맞게 자신의 영역에 구축한 장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 읽더라도 집에 책 쌓아놓아야 하는 이유 | 다음 뉴스
https://news.v.daum.net/v/20181117155602602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unsun09 2018-11-17 2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기사 읽으셨군요~~ 근데 350권이 적정하다니 어찌 맥이 탁 빠지더군요.
어떡해야 줄일 수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bookholic 2018-11-18 16:59   좋아요 1 | URL
3500권이나 35000권의 오타라고 생각하는 걸로 하시죠..^^ 남은 일요일 즐거운 시간되세요~~

북프리쿠키 2018-11-17 2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지성에도 작용하는가봅니다ㅎㅎ

bookholic 2018-11-18 17:00   좋아요 1 | URL
ㅎㅎ 그렇게 되는 것인가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즐책 즐독하려고요... 즐거운 일요일 저녁 되세요.^^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명남 엮고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많은 애서가들의 반응이 뜨거웠단다. 드디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책이 출간되었다고 말이야. 그리고 김명남이 번역을 했다면서 기대된다는 반응들이었어. 하나 둘 읽은 이들이 올린 평점들은 별 다섯 개가 기본이었어. 아빠는 처음 보는 작가인데 꽤 유명한 작가인가보다 했어. 그래서 검색해봤더니 우리나라에서는 이번이 두 번째 출간된 책인 것 같았어. 첫 번째 출간된 책도 제법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고 말이야. 그런데도 많은 애서가들의 사랑을 받다니, 꽤 유명한 사람이고 그의 책 또한 꽤 재미있을 것이란 생각을 가졌어.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단다.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더구나. 미국 사람인데 1962년에 태어나서 2008 46세 젊은 나이에 죽었다고 하는구나. 이십 대부터 우울증을 앓아와서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치료를 많이 받고, 치료에 효과가 없어서인지 술, 마약 등에도 빠지고 나중에는 항우울제 부작용으로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힘든 삶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글 쓰는 일은 계속했다고 해. 죽기 직전까지 소설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내놓은 책들은 미국에서 문제작으로 거론되며 많은 이슈를 받았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작가이고, 그의 소설들은 가볍게 읽기는 쉽지 않은 책들이라고 하는구나. 이 책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은 <이것은 물이다>가 전부인데, 이것도 소설은 아니고 캐니언 대학 졸업 축사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라고 하는구나. 이번에 출간된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은, 그의 여러 산문집들 중에서 옮긴이 김명남님이 골라 엮어서 묶은 책이란다. 그의 유명한 산문들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되지만, 사실 아빠는 이런 편집은 별로야. 번역본의 경우 원래 지은이가 출간한 그대로를 번역 출간해야 한다고 생각해. 누군가에 의해서 골라서 새로 엮은 스타일은 별로 안 좋아한단다.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지 않은 작품들 중에는 아빠가 좋아할 수도 있는 작품들이 있을 수 있잖아. 그냥 시간이 좀 들어도, 사람들이 좀 적게 찾더라도 원전 그대로 번역해서 출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1.

이 책에는 총 아홉 개의 길고 짧은 에세이가 나온단다. 그 중에 첫 번째 글이 책의 제목으로 따온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란다.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잡지사로부터 지원을 받고 호화 크루즈를 타고 쓴 기행문이라고 볼 수 있어. , 뭐랄까아주 길게 쓴 크루즈 솔직 후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크루즈의 이름은 네이디어 호였어. 배에 관한 이야기, 배의 직원들에 관한 이야기, 같이 승선한 손님들의 이야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솔직 후기이다 보니, 흠이 있으면 흠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어. 그리고 과도한 친절, 프로페셔날한 미소에 대한 비판도 했어. 그들의 과도한 서비스가 오히려 불편했다고 말이지아무튼 일주일 간의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150페이지가 넘는 기행문을 쏟아낼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그의 필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구나.

이 책에 실린 에세이 중에는 책의 서평들도 실려 있었어. <현대 미국 영어 어법 사전>이라는 사전에 대한 서평도 실렸는데, 영어 어법 사전에 대한 서평이니 한국사람인 아빠가 읽기 얼마나 어려웠겠니이 서평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에 하나가 문법 파괴에 대한 비난이란다. 우리나라에서 문법 파괴에 대해 심심치 않게 문제 삼는 경우가 있어. 말이라는 것이 세대에 따라 변하고 새로운 말이 등장하는 것은 아빠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엄격한 잣대의 문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좀 반댈세.

그리고 조지프 프랭크라는 사람이 쓴 도스토옙스키 전기에 관한 책의 서평도 있었어. 아빠가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읽은 책들로 인해 강한 인상을 받아서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는 작가 쪽으로 생각하고 있단다. 그래서 이 에세이를 좀 관심 있게 봤단다. 아빠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었을 때 책 뒷편에 도스토옙스키의 삶에 대해 간략하게 나온 것을 보고 살인 선고를 받았다가 극적으로 살아났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의 삶에 전반적인 것은 모르고 있었거든. 그래서 이 서평을 읽다 보니, 도스토옙스키의 전기에 대해 읽어보고 싶더구나. 이 책에서 소개된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 전기는 안타깝게도 출간되지 않은 것 같더구나. 다른 전기라도 한번 볼까? 갑자기 무척 궁금해지네. 지은이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쓴 이유는 지은이 또한 도스토엡스키를 무척 뛰어난 작가로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지은이가 생각하는 도스토엡스키 소설의 위대함을 잠시 읽어보렴.

=======================================

(352)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리고 이 점은 틀림없이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어떤 예술은 온갖 장애물을 넘는 추가의 노력을 들이고서라도 감상할 가치가 있으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단연코 그런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도스토옙스키가 서구 고전문학을 압도하는 거물이라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고전과 필수 교과로 추앙됨으로써 오히려 가려지는 사실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도스토옙스키가 위대할뿐더러 재미있는 작가라는 사실이다. 그의 소설에는 거의 늘 좋은 플롯이 있다. 강렬하고 복잡하고 철저하게 극적인 플롯이 있다. 살인과 살인 미수와 경찰과 문제 있는 집안의 반목과 스파이가 나오고, 터프 가이와 아름답고 타락한 여인과 간지러운 사기꾼과 소모성 질환과 뜻밖의 유산과 반드르르한 악당과 흉계와 창녀가 나온다.

=======================================

또 하나의 후기. 어떤 지방의 랍스터 축제 후기. 이번에도 솔직 후기. 랍스터 축제를 다녀오면서 랍스터의 맛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랍스터의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단다. 인간들의 쾌락을 위해서 동물들이 하루에 몇 톤씩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냐우리나라에도 많은 먹거리 축제가 있는데, 랍스터 축제가 주제여서 그런지 대게 축제나 대하 축제가 떠오르긴 하더구나. 그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면 뭐든 하는 것이 뭐 먹거리 축제뿐이겠냐.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예전에는 랍스터가 혐오음식이었다는 사실이야. 오호.. 대박

=======================================

(309)

랍스터는 그 자체로도 먹기 좋다. 적어도 요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1880년대까지만 해도 랍스터는 말 그대로 하층 계급의 음식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만 먹었다. 초기 미국의 감옥 환경이 가혹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식민지는 수감자들에게 랍스터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먹이는 것을 법으로 금했는데, 왜나하면 그것은 꼭 사람에게 쥐를 먹이는 것처럼 잔인하고 지난친 고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랍스터의 비천한 지위는 옛 뉴잉글랜드에 랍스터가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 한 가지 이유였다.

=======================================

아빠가 테니스를 보는 것이든, 하는 것이든 좋아하는 편은 아니란다. 하지만 스위스의 천재 테니스 선수 페더러는 알고 있어. 오랫동안 테니스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올 초에는 메이저대회 4강에서 우리나라의 정현 선수와 맞붙기도 한 테니스 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야. 어느덧 그의 나이 삼십 대 후반이지만, 여전히 많은 우승 트로피는 그의 것이란다. 테니스를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 이 책에는 그에 대한 찬사로 도배된 에세이가 한편 실려 있단다. 그러나 그 찬사들은 모두가 인정하는 찬사란다. 그 글을 읽다 보면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도 테니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았어. 마치 테니스 전문 기자나 해설의원이나 할 수 있는 말들을 쏟아내더구나.

아빠가 비록 테니스에는 관심이 없지만, 페더러라는 사람은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이 글이 쏙쏙 눈에 잘 들어오더구나. 그냥 명성만 익히 알던 페더러라는 사람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었어. 운동장뿐만 아니라 운동장 밖에서의 선행도 멋진 선수라는 것을 알았어. 코트의 신사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구나. 지은이가 페더러가 왜 그렇게 뛰어난 선수인지 엄청 길게 적었는데, 일부만 발췌해 보았단다.

=======================================

(384)

페더러의 서브 속도는 세계 정상급이고, 서브의 위치와 다양성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서브를 넣는 움직임은 유연하고 딱히 별난 점은 없는데, (TV로 볼 경우) 특징이라면 공을 때리는 순간 온몸에 뱀장어처럼 스냅이 들어간다는 것 정도다. 페더러는 공을 예상하는 능력과 코트 감각이 비현실적인 수준이고, 발놀림은 이 게임의 역사상 최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어릴 때 축구 신동이었다. 이 모든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중 어떤 말도 이 선수가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을, 그의 시합에 담긴 아름다움과 천재성을 직접 목격한 경험을 제대로 묘사하거나 환기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미학적인 것에는 비딱하게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에둘러 말하는 수밖에 없다. 혹은-아퀴나스가 자신의 형언할 수 없는 주제에 대해 그렇게 했듯이-그것이 무엇이 아닌가를 말함으로써 그것을 정의하는 수밖에 없다.

=======================================

 

 

2.

책을 덮고 제목을 다시 보았어. 분명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다른 작가들과 다른 면이 있는 것은 확실해. 글을 씀에 있어 망설임이 없고, 자유분방을 느낄 수 있으며,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문학적인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다만 아빠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는 것 같구나.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평점 별 다섯 개의 리뷰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평점 별 세 개의 리뷰들에 공감이 가더라구.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이 책은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읽지 않을 책이라고 말이야.


(106)
호화 크루즈 여행에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절망은 내가 무슨 수를 써도 나의 본질적이고 새삼 불쾌한 미국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일부 비롯한다. 그리고 이 절망은 항구에서 절정에 달한다. 난간에 서서 내가 어쩔 수 없이 그 안에 속하는 사람들 무리를 내려다볼 때. 이 위에 있든 저 밑에 있든 나는 미국인 관광객이고, 따라서 그 정체성상 크고, 살찌고, 벌겋고, 시끄럽고, 거칠고, 오만하고, 자기 생각뿐이고, 응석꾸러기이고, 외모에 신경 쓰고, 창피해하고, 절망하고, 탐욕스럽다. 우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솟과 육식동물이다.

(322~323)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이 점부터 인정하고 넘어가자. 동물이 통증을 느낄 줄 아는가. 느낄 줄 안다면 어떤 방식으로 느끼는가, 우리가 그들을 먹기 위해서 그들에게 통증을 가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정당화되다면 어떤 이유로 되는가 하는 질문들은 극도로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들이다. 비교신경해부학은 문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통증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정신적 경험이므로, 우리는 자신 외에 다른 인간이나 다른 동물의 통증을 직접 알아볼 수 없다. 게다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인간도 통증을 경험하고 따라서 그도 통증을 겪지 않으려는 타당한 이해를 갖고 있다고 추론하도록 이끄는 원칙들은 본격적인 철학의-형이상학, 인식론, 가치 이론, 윤리학의-영역이다.

(366)
정보의 억압, 국가의 검열, 특히 그가 소중하게 여기고 글을 쓰고 싶어 했던 자신의 신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경우가 많았던 계몽주의 이후 유럽 사상이 인기를 끄는 현실. 내가 도스토옙스키에게 정말로 놀랍고 감동적이라고 느끼는 점은 그가 천재였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는 용감하기도 했다. 그는 문학적 평판에 대한 걱정을 한시도 놓지 못했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은 굳게 믿되 세상에서는 인기 없는 신념을 세상에 퍼뜨리는 작업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더구나 자신에게 불친절한 문화적 환경을 무시하는 방식이 아니라(요즘은 이런 방식을 “초월한다”거나 “전복한다”고 표현한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면서 그것에 대항하고 그것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해냈다.

(379)
이 윔블던 결승전에는 복수의 내러티브가, 왕 대 제왕 살해의 구도가, 극단적인 인물 대조가 갖춰져 있다. 이것은 남유럽의 열정적인 남성상과 북유럽의 섬세하고 임상적인 예술성의 대결이다. 디오니소스 대 아폴론이다. 식칼 대 메스다. 왼손잡이 대 오른손잡이다. 세계 이인자 대 일인자다. 나달은 현대적인 파워 베이스라인 게임을 최대한 밀어붙인 선수이고… 그 상대는 속도와 발놀림 못지않게 뛰어난 정확도와 다양성으로 이 현대적 게임을 또 다르게 바꿔놓은 인물이지만, 앞의 선수에게만큼은 유난히 맥을 못 추는, 혹은 기가 눌리는 선수다. 영국의 어느 스포츠 기자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면서 기자단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 번이나. “이 시합은 전쟁이 될 거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ya7676 2018-11-15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주는 독서편지~독서가 편지가 된다는걸 첨 알았습니다. 멋지세요.

bookholic 2018-11-16 16:05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40)

자클린느의 정수 너그럽고, 밝고, 재능 있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큰마음 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 저 깊숙한 곳의 어떤 감정들이 용인되지 않음을 어릴 때부터 알았고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미소 띤 얼굴로 감추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해맑은 웃음 뒤에는 사적이고, 역설적인 성격이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그녀조차 꿰뚫어볼 수 없는 불가사의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자클린느 자신을 통해 그리고 그녀의 삶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 사람들의 통찰력과 관찰을 통해 조금씩 베일을 벗었다. 마치 용액 속의 사진처럼 차츰 하나의 모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95-96)

플리스가 <첼로>에서 결국 연주는, 음악이라곤 배운 적도 없지만 아이의 머리맡에서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유모의 노래처럼 비과학적이고 구속이 없는 소리여야 한다고 했다. 첼리스트는 이러한 무위의 환영에 이르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단 하나의 악구에서도 무궁무진한 다양성을 창출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운지, 운궁, 뉘앙스를 생각하고 연습한다. 첼로는 피아노와 기타 많은 악기들과 달리 오른손과 왼손의 기능이 전혀 다르다. 마치 배를 쓰다듬으면서 머리를 문지르되 끊임없이 미묘한 변형이 이뤄지는 것과 비슷하다. 오른손은 소리를 내고, 왼손은 색을 입힌다. “연주를 할 때는 마치 맹인이 손과 손가락 끝으로 사물을 느끼듯이 오른손과 손가락 끝이 음악의 테두디를 훑고 지나간다고 상상하라고 플리스는 말한다. 이와 달리 왼손음악이 지시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온전히 자유로워야 한다. 마치 살랑대는 미풍에도 흔들릴 만큼 기름을 매끈하게 바른, 교회 꼭대기의 바람개비처럼.”

(99-100)

자클린느는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에 대해 자주 후회를 하지만, 첼로와 보낸 시간에 대해서는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첼로는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다는 것, 필요할 때마다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첼로는 나의 멋진 비밀이었다. 생명이 없는 대상이었지만 나는 첼로에게 나의 슬픔과 문제들을 모두 다 말하곤 했다. 그것은 내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건 뭐든 다 주었다. 첼로를 연주하는 일이 가장 좋았다. 연주를 할 때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첼로 연주를 통해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알 수는 없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116)

지난 몇 주, 런던의 청중들은 전도가 유망한 다소 어린 솔리스트들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이들 가운데 지난밤 위그모어에서 첼로를 연주한 자클린느 뒤 프레 양은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어린 연주자라고 믿기 어려운 기량을 가졌기에 그녀의 공연 논평을 쓰면서 전도유망을 언급한다는 것이 모욕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123)

퍼시 케이터느는 <데일리 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현재 빛나는 첼리스트이며, 이제 곧 저명한 첼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여겨지는 17세의 자클린느 뒤 프레는 지난 밤 로열 페스트벌 홀에서 엘가의 첼로 협주곡으로 성인데뷔무대를 치렀다. 그녀의 연주는 기교의 자유로운 구사에 나이에 비춰 감탄을 자아낼 만한, 감정의 성숙이 결합된 것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지휘자가 루돌프 슈바르츠와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함께 연주한 동료들이 열렬한 갈채를 보냈다. 홀을 메운 관중들이 진심어린 마음으로 세 번이나 그녀를 무대를 불러냈다. 중후미의 요소들이 있고 분위기와 템포가 자주 바뀌는 엘가의 협주곡은 곡해석이 난해하다. 연한 푸른빛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첼로를 연주하는 하얀 피부의 키가 훌쩍 큰 소녀는 29분 내내 신들린 듯한 모습이었다.

(133-134)

영재 아동을 둔 가족들은 부러움이 아니라 동정을 받을 만한데, 신동의 재능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인 탓이다. 비범한 재능은 가족의 활동과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치며 시간, 에너지, 재력, 감정적 지원이라는 자원을 무리하게 쓰게 만든다. 교육자나 심리학자들은 신동이 한 가족의 평형에 미치는 영향은 정신적 혹은 신체적 장애아만큼이나 크다고 입을 모은다.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은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아이는 자신의 운명을 따를 것이라는 전언을 듣는다.

(155)

그녀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첼로는 도대체 만족이라곤 모르는 가혹한 공사감독이 되어버렸다. 헌신, 직관 그리고 타고난 재능이 그녀를 여기 멀리까지 데려왔고 더 멀리 나가기 위해서는 명료한 선택이, 일상의 삶을 넘어 완벽한 연주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음악적 통찰력을 더욱 날카롭게 하려면 삶의 무게, 경험의 무게가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듯이 앞뒤 보지 않고 오로지 연주만 계속한다면 언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딜레마는 더 깊은 고립감을 안겨주었다. 조운 클루이드가 그녀를 이해해주었지만, 자클린느에게는 자기 세대의 누군가로부터의 지지가 필요했다. 그녀는 조지 데버넘에게 눈을 돌렸고, 그는 흔쾌히 그녀에게 지지를 보냈다.

(183-184)

자클린느는 첼로의 소리를 내장과 가슴에서 올라오는 뭔가 기본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첼로는 어떤 악기보다도 인간의 목소리와 흡사하다. 고음역의 소리는 통렬하고 애처로우며 반대쪽 음역의 끝에서 나는 소리는 심원하다.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중간 음역에서는 좀더 익숙하고 부드러운 바리톤 소리가 난다. 어떤 음역이든 소리, 모양, 나무의 온기 그리고 연주자가 실제로 껴안듯 연주하는 모습은 첼로를 가장 관능적인 악기로 만든다. 동시에 첼로와 활은 나무, , 장선, 금속으로 이루어졌을 뿐이며 여기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몸 전체를 사용해야 한다. 발은 굳건히 땅에 붙여 균형을 유지하고, 무릎으로는 악기를 흔들리지 않게 잡으며, 어깨에서 허리까지의 팔근육은 몇 시간이나 계속되는 활 켜기를 해야 하고, 강철 같은 손가락은 길게 잡아 늘여 두껍고 길며 20파운드가 넘기도 하는 압력이 필요한 줄들을 내리눌러야 한다. 연주회 끝부분에서 지판에 대한 얘기를 하기도 했던 카잘스는 첼리스트에게 요구되는 신체의 이용과 기민함을 나무를 자르면서 동시에 한 꾸러미의 바늘에 실을 꿰는 일에 비교했다.

(238)

자클린느는 말로 표현 못하는 것을 음악을 통해 웅변적으로 전달했다. 그녀와 바렌보임은 브람스의 F장조 소나타와 베토벤의 A장조 소나타를 연주했고 밤이 깊도록 연주를 계속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거나 다른 방으로 건너갔다. 수지 매콰이어는 이렇게 회상한다. “재키는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았고 기운도 별로 없었지만 다니엘은 회복 중이었을 텐데도 기력이 왕성한 것 같았어요물론 재키도 일단 연주를 시작하자, 완전히 몰입했지만요. 다니엘은 스타로서 재키를 동경했어요. 그 둘이 처음으로 함께 하는 연주를 듣는 것은 정말 기억에 남는 일이었지요. 음악을 통한 합일이라고나 할까요. 우리가 틀림없이 식사는 했을 텐데 그런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단지 이 방에서, 나머지 우리들은 다른 걸 다 망각한 채, 연주에 빠진 그 둘을 바라봤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다니엘이 이 방을 나서면서 꼭 다시 그녀를 만날 거라고 한 말이 생각나네요.”

(318)

다발성경화증은 가장 초기 단계엔 진단조차 어려운 악마의 측면이 있다. 증상이 나타났다 돌연 사라지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으며, 잠깐 나타났다가는 어느새 그랬냐는 듯 없어져서 쉽게 잊어버리기도 하며, 혹은 자클린느의 경우처럼 신경쇄약의 징후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가 호주에 있을 때 좀처럼 피로가 사라지지 않고 가끔 오른쪽 눈에 사물이 두 개로 겹쳐 보여서 진찰을 받았을 때 의사는 사춘기 외상장애라고 일축하고, 긴장을 풀 수 있는 취미를 시작해보라고 했다.

(356-357)

다발성경화증은 뇌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신경섬위의 절연체와 척수를 침범하는, 중추신경계에 일어나는 만성적이고 점진적인 질병이다. 손상을 입은 곳은 신경섬유를 감싸는 수초가 두껍고 딱딱한 경화성상처 조각으로 대체되어, 뇌에서 근육과 장기로 전달되는 메시지들을 방해한다.

(386)

그녀에게는 사랑이 부족했지요. 그녀는 마치 스펀지처럼 사랑을 다 빨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받아도 충분하지가 않았지요. 그녀는 클 줄기가 딱 하나뿐인 강인한 식물로 자랐어요. 그런데 그 줄기가 잘려져 나간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줄기가 잘리면 곁가지가 다시 자라기 시작하지요. 재키는 그렇지 않았어요. 마치 큰 줄기에서 줄곧 피가 흐르는 듯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밖으로 나아갈 수 있게 날개를 펴도록 용기를 주려고 애썼어요. 나는 그녀가 삶은 계속된다는 것, 남들에게 줄 게 있다는 생각을 갖길 바랐습니다. – 소니아(물리치료사)

(446)

나는 그 놀라운 양면성을 지켜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아무 걱정 없는 소녀가, 계속해서 울어댈 이유가 있지만 그럼에도 항상 사랑스럽고 따뜻하며 잘 웃어대는 이 소녀가 있습니다. 반면에 우울해하는 모습을 본 건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몇 년간 뿐이었으니까요. 그녀는 말하곤 했지요. ‘왜 내게 이런 병이 생긴 걸까?’ 처음에는 이렇게 대꾸하지요. ‘ 오 세셍에, 너무 두렵지?’ 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됩니다. 아무런 할 말이 없다는 것을요.

(450)

자클린느는 자신이 연주한 슈만의 협주곡 음반을 사랑했다. 어둡고 감상적인 그녀의 해석은 표현할 수 없는 것까지 표현했다. 슈만 협주곡의 연결된 세 악장은 정류해낸 순수의 감정이다. 졸라는 이를 절망의 관능이라 했다. 첫 악장은 갈망으로 채워지고, 두 번째 악장은 부드럽고 시적이다. 마지막을 향해 가면 이행부가 있고 그 뒤 오케스트라와 첼로가 함께, 마치 슈만이 자신의 삶이 저물어가는 걸 지켜보기라도 하듯, 조용히 향수에 젖은 연주를 시작한다. 엔딩은 강력하고, 폭발적인 마지막 작별인사로 우리 모두를 울게 한다. 그리고 우리를 위로한다.

아직도 음악은 흐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