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 모임에서 20년도 더 지난 추억의 졸업식이 도마에 올랐다. 분명 같은 날인데 각자의 기억이 모두 다르다. 누구의 꽃돌이는 누구였다는 둥 정작 본인은.. 고뤠? 기억이 안나네. 졸업기념선물로 남자동기들이 우리(여자동기)들에게 18k 목걸이펜던트를 줬다는데 우리 중 아무도 기억을 못한다. 그 펜던트의 모양을 침 튀겨가며 설명하는 단 한명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 펜던트를 본 적도 받은 적도 없다고 하니, 기억하는 유일한 한 명은 미치고 팔딱 뛰며 자기가 얼마나 고심해서 고른건데 아무도 기억을 못하냐며 분개했다고 한다. 받은 기억이 없는 여자 동기들은 의기소침 어리둥절하다가 아뉘! 우리 모두 기억이 없는데 도대체 그 펜던트는 20년 전에 어따 갖다 팔아 치운거냐고 이실직고하라며 유별나게 총기밝은 척하는 그 친구를 구박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여자 동기 한 명이 응? 글고보니 나 그때 펜던트 말고 팔찌 받은 것 같은뎅? 이라는 말로 결국 동기모임은 사분오열되었다. 20여년 전 펜던트의 행방은 기억 저 편 미지의 세계로..
p.168 『안녕 주정뱅이』 中 「역광」
“이를테면 과거라는 건 말입니다.”
마침내 경련이 잦아들자 그가 말했다.
“무서운 타자이고 이방인입니다. 과거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도 수정이 안되는 끔찍한 오탈자, 씻을 수 없는 얼룩,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거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이물질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기억이 그렇게 엄청난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진화했는지 모릅니다. 부동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유동적이게 만들 수 있도록, 육중한 과거를 흔들바위처럼 이리저리 기우뚱기우뚱 흔들 수 있도록, 이것과 저것을 뒤섞거나 숨기거나 심지어 무화시킬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의 기억은 정확성과는 어긋난 방향으로, 그렇다고 완전한 부정확성은 아닌 방향으로 기괴하게 진화해온 것일 수 있어요.
p.359 『멀고도 가까운』
가끔 멋진 일이 생기고 난 직후에 삶을 되돌아보면, 인생에서 운이 좋았던 일들이 산맥으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끔찍한 일이 생긴 후에 되돌아보면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현재가 과거를 재배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