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여전히 - 안녕 폼페야!
조수빈 지음, 서세찬 그림 / 하움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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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여러 번의 수술을 거쳐왔던 나지만,아홉 살에 들은 '정형외과 수술'이라는 단어는 이전과 비교도 안 되는 무게로 다가왔다. 한 살에 받았던 백내장 수술과 여섯 살에 받았던 중이염 튜브 삽입술, 이것들은 모두 내가 멋 모를 때 받았던 수술이다. 수술한다고 하여 긴장하거나 걱정하는 것도 없이,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아이였을 때였다. 하지만 아홉 살 정도면 내게 처한 상황이 대충이나마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수 있는 나이가 아닌가. 수술이 어떤 건지 인지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니 난데 없이 불거진 수술이야기에 놀라 얼어붙을 수밖에. (-66-)

내 건강을 염려한 엄마가 극구 반대하고 나섰지만 나와 아빠가 밀어 붙였다. 내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더욱 과감하고 도전적이며, 진보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아빠는 평소에 책도 좋아하고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나 다른 나라 여행기 등의 방송을 즐겨보는 편이다. 그렇기에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조용히 집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곳저곳 다녀보며 가능한 한 세상의 여러가지를 경험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있는 듯하다. (-131-)

안 먹고 살수는 없으니까, 위루관 뚫는 것에 비하면 간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게 백배 천배 나으니까,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내미는 '반찬 간 것' 을 받아먹었다. 말이 반찬이지 거의 죽 수순인 그 액체를, 별 기대 없이 먹었건만, 생각 외로 그 '빈찬 간 것'은 맛있었다. 반찬 특유의 향도 퍼져서 아쉬워하면서도 나름 만족하며 '반찬 간것'을 끼니마다 섭취했다. 엄마 아빠가 먹는 일반식을 보며 "나는 언제 그런 거 먹을수 있어?" 하고 징징대기는 했지만 말이다. (-179-)

호홉기를 떼는 것

그래서 예전처럼 더시 걸어 다닐수 있는 것

학교에 복귀하여 또래 아이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것

그리고 바침내 작가가 되는 것

이 네가지가 현재 나의 꿈이자 소망이다. 한 번도 남들 앞에서 말해 본 적 없는 나 혼자만이 갖고 있는 꿈, 내가 이러한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놓으면,누군가는 웃을지도 모르겠다. (-223-)

웃을 수 없었다. 열일곱 작가, 작가 조수빈은 일일곱 폼페병(Pompe disease) 환아다. 아밀로-1,4-글루코시드가수분해효소결핍증으로 인해, 혼자서 걸을 수 없는 아이, 태어나자마자 또래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아이였다. 폼페병은 근력이 감소하고 근육이 위축되며 호흡 부전과 심근병증이 나타나는 질환으로서, 심근 손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인처럼 생활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희귀한 질병이다. 성장하면서, 근육이 약화되기 때문에, 한 번 다치면 그 즉시 병원에 응급 환자가 될 수 있으며, 2주마다 사설응급차에 의존하여,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아이였다.아홉 살 되던 해, 인생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두려운 수술과 마주하게 된다. '정형외과 수술' 을 해야 했다. 근육이 없어서, 발이 말려 들어가고 밞목이 꺽이기 때문이다. 기관 절개, 케놀라, 카페터, 이러한 의료적인 용어가 이 책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작가 조수빈은 밝고 긍정적인 아이였으며,마치 아프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아이였다, 코와 위를 연결하는 삽관 수술과 위로 흠식이 들어가는 위루관 수술을 했으며, 온몸에 상처가 많은 아이다.살아가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어려움, 그 어려움에 대해서, 감사히 여길 수 있고, 이 책을 읽으면,내가 품고 있는 아픔이나, 감정 소모,갈등, 분노 조차도, 하찮게 여겨질 수 있다. 작가 조수빈이 가지고 있는 버킷리스트 네가지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실로 남아있어서다. 누군가에겐 꿈으로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그 꿈을 이루고 있다. 주어진 삶을 감사하게 여기며, 나에게 채워지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내 삶을 바로 잡을 수 있고,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고, 어떤 일을 할 때,머뭇거리거나, 갈팡질팡하는 일조차도, 감사히 여기게 된다.이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하찮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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