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짜> 문학을 읽었다. 또 앙리 드 레니에의 <행복이란 빈손으로 걷는 어떤 신이다……… 같은, 나의 <영혼과 나의 삶의 설명하기 힘든 부분을 표현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문장이며 시구(詩句)들을 베껴 쓰곤 했다. - P88
그는 더 이상 내게 자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나 역시 더이상 그에게 내 공부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미사에서 복사(服事)를 한 덕분에 조금 알고 있는 라틴어 외의 다른 과목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어머니와는 달리 그것들에 흥미를 느끼는 척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중략) 그리고 내가 결국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아니 어쩌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늘 품고 있었다. - P88
이 무렵, 그는 벌컥 화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증오감에 입가가 뒤틀릴 정도로 심하게 화를 냈다. 나는 어머니와 어떤 공모 의식으로 맺어지고 있었다. 달마다 찾아오는 복통, 골라야 할 브래지어, 화장품 같은 것들을 통해서였다. 그녀는 나를 루앙의 그로 조를로주 거리로 데려가 물건을 사고, 셰 페리에라는 제과점에 들어가 조그만 포크로 케이크를 먹곤 했다. 또 <심심풀이 연애>, <그는 도사야!> 같은 내가 사용하는 말들을 자기도 써보려고 애를 썼다. 우리에겐 그가 필요 없었다. - P91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93
난 런던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아버지는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추상적인 애정으로 환원되었다. - P99
그에겐 아직 가게와 집을 번듯하게 만들기 위한 계획이 몇 가지 있었지만, 새로운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필요한 혁신에 대한 아이디어는 점점 줄어들었다. 단지 저 옷 입은 꼬락서니 좀 봐라고 말하는 듯한 여자 점원의 슥 쳐다보는 시선 때문에 중심가의 새하얀 식료품점들에 질려 버린 고객들로 만족했다. 더 이상 야심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가게가 자신과 함께 사라지게 될, 과거의 잔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 P101
불안해하지도 않았고, 열광하지도 않았다. 스무 살이 넘은 처녀가 아직도 학교 책상에 앉아 있는 상황을, 다시 말해서 내가 그 이상하고도 비현실적인 삶을살고 있는 상황을 아버지는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 P102
아버지는 그에게 자신의 정원이며, 자기 혼자 힘으로 지은 차고등을 보여 주었다.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이 청년이 자신의 가치도 인정해 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선물로 준 것이었다. 그가 청년에게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예의 바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내 부모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자질이었고, 동시에 가장 얻기 힘든 것이기도 했다. 어떤 노동자가 사위 후보로 왔다면 그가 용감한지, 술은 마시지 않는지 따위를 알려고 했겠지만, 내 친구에겐 그러지 않았다. 지식과 예의 바름은 내적인 탁월함, 즉 생득적인 탁월함의 표시라는 깊은 확신이 있었던것이다. 어쩌면 몇 년 전부터 고대해 왔던 무언가가 이루어진 거였는지도, 큰 걱정을 하나 덜게 된 거였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아무나 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울리지 않는 사내와 결혼한 여자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저축한 돈으로 신혼부부를 도울 수 있기를 바랐다. 자신과 사위 사이에놓인 교양과 힘의 간극을 그저 한없는 베풂으로써 보상하고 싶었던 것이다. - P106
아무것도 내비치지 않는 걸 자존심으로 여기는 그였다. 감정 같은 것은 호주머니에 넣고 그 위에 손수건으로 덮어 놓는 거야. - P111
그는 가게를 파는 방안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가게 옆에 붙어 있는 집으로 거처를 옮기리라. 옛날에 가게와 함께 사두었던 것인 듯한 그 집에는 방 두 개와 부엌이 있었고, 포도주 저장 창고도 하나 있었다. 좋은 포도주들과 통조림들은 가져가리라. 신선한 달걀을 얻기 위해 닭을 키우리라. 또 오트사부아에 사는 딸애 부부도 보러 가리라. 또 그는 예순다섯 살이 되면 사회보장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흐뭇해했다. 약국에서 돌아올 때면 테이블에 앉아 행복한 얼굴로 건강 보험 청구용 증지를 하나하나 붙이곤 했다.
그는 삶을 점점 더 사랑하고 있었다. - P112
내가 아버지의 모습을 찾은 것은사람들이 역 대합실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방식, 그들이 역 플랫폼에서 아이들을 부르고, 누군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는 방식 가운데에서였다. 아무데서고 마주칠 수 있는 익명의 존재들은 그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힘이나 굴욕의 징표들을 지니고 있었고, 바로 이들에게서 난 아버지의 조건의 잊어버린 실체를 되찾을 수 있었다. - P113
돌이켜보면 그때 난 아직 모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병세가 그렇게 깊지 않다는 걸 보여 주려고 그렇게 말한 거였지만, 이렇게 어떻게 해서든 세상에 달라붙으려는 노력 자체가 거기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 P121
내가 부유하고도 교양 있는 세계에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내려놓아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작업을, 난 이제 이렇게 끝냈다. - P125
그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곤 했다. 빗속에서도 땡볕 속에서도 저 기슭으로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이었다. - P126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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