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일요일의 카페는 가족이었던 셈이다. 아버지에게는 자신이 꼭 필요한 어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의식이 있었다. <저 사람들이 항상 저렇진 않았어>라고 말하지만 그렇다면 왜 이런 꼴이되어 버렸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의 축제와 자유의 장소를 제공한다는 의식 말이다. - P56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왠지 좁은 길을 아슬아슬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천하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 회복과 이런 작업에 수반되는 소외에 대한 고발 사이에 낀 좁은 길 말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들은 우리의 것이었고, 심지어는 우리의 행복이기도 했지만, 또한 우리의 조건을 둘러싼 굴욕적인 장벽들(<우리 집은 그렇게 잘 살지 못해>라는 의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행복인 동시에 소외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렇게 표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모순의 이쪽에 닿았다, 저쪽에 닿았다 하며 흔들흔들 나아가는 느낌이라고 말이다. - P57
한번은 내가 다닌 초등학교 여자 선생님 중 하나가 그 앞을 지나가다가 이건 진짜 노르망디식 전통 가옥이라며, 아주 예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그녀가 단순히 예의상 그렇게 말한 거라고 믿었다. 안뜰의 식수용 펌프나 노르망디식 콜롱바주 같은 우리가 가진 옛날 것들을 보고 경탄하는 사람들의 의도야 뻔했다. 수돗물이 나오는 싱크대나 새하얀 단독 주택 같은, 자기들이 이미 소유한 현대적인 것들을 우리는 못 가지게 하려는 속셈일 터였다.
그는 담벼락과 토지의 소유주가 되기 위해 돈을 빌렸다. 여태까지 그의 가족 중에서 그런 걸 가졌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60
이러한 행복 밑에는, 서둘러 획득한 여유 있는 삶에 수반되는 답답한 긴장이 웅크리고 있었다. 난 팔이 네개가 아니잖아! 도대체가 변소 갈 시간도 없다니까! 몸살도 걸어다니면서 앓아야 할 정도야! 등등. 이런 소리를 입에 달고 다녔다. - P61
그러다 보니 물건들은 어쩔 수 없이 신성시된다. 그리고 모든 말 가운데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들이나 내말들 가운데에서, 선망과 비교를 의심한다. 내가 <어떤 애가 루아르 강변의 고성을 구경 갔대>라고 말할라치면, 그들은 곧바로 화를 내면서 <너도 나중에 얼마든지 거기 갈 수 있어! 네가 가진 것으로 만족할 줄알아야지!>라고 쏘아붙인다. 항상 느껴지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결핍감. - P62
수칙 : 예절 바르게 행동하고, 자기 의견을 내놓지 않고, 지금 상대가 언짢은 기분은 아닌지 세심하게 살핌으로써 상대방이 우리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갖지 않게끔 끊임없이 신경 쓸 것. 아버지는 정원의 채소들조차 삽질 중인 정원 주인이 미소나 툭 던지는 말로 간접적으로 권유하지 않는 한, 쳐다보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오라고 하지 않는 이상 찾아가는 법이 없었다. 상대방이 우리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어떤 호기심이나 선망의 감정이 드러날 수 있는 질문은 일절 하지 않았다. <이거 얼마 주고 사셨어요?>는 금지된 문장이었다.
나는 여기서 자주 <우리>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나 역시 오랫동안 이런 방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걸 언제 멈추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 P65
의사나 높은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대화 중에 <부인께선 건강이 괜찮아요> 대신 <부인께선 방귀를 뿡뿡댈 정도로 근력이 넘쳐요〉 같은 노르망디 코 고장 특유의 표현을 끼워 넣으면, 아버지는흐뭇한 얼굴을 하고는 그 의사가 쓴 표현을 되풀이해 어머니에게 들려주었다. 이렇게 세련되고 우아한 사람들에게도 우리와 공통적인 뭔가가, 즉 약간의 열등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뻤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런 표현들을 내뱉는 거라고 믿었다. 왜냐면 그가 생각하기에,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제대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의사든 사제든, 제대로 말하기 위해선 애를 쓰고 자기 자신이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그러지 않을 경우, 예를 들어 자기 집 같은 곳에서는 말이 제멋대로 풀려 버린다는 것이다. - P67
학교 여선생님이 내 언어를 고쳐 주곤 했으므로, 나 역시 나중에는 아버지를 고쳐 주고 싶은 마음에<나뒹그러지다> 혹은 <15분 남은 11시>라는 표현은 프랑스어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 주었다. 그는 격렬한 분노에 사로잡혔다. 또 한번은 이렇게 말한 적도ㅊ있었다. "엄마, 아빠는 항상 그렇게 엉터리로 얘기하면서, 어떻게 내가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길 바라는 거야!" 나는 흐느꼈다. 아버지는 침울해졌다. 내 추억 속에서, 언어에 관련된 모든 것은 돈 문제보다 훨씬 더 큰 원망과 언쟁의 동기였다. - P69
이들 세부적인 것들의 의미 규명은 이제 내게 하나의 절대명령으로 다가오며, 그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지금껏 그것을 하찮은 것으로 확신하며 억눌러 왔기 때문이다. 모욕당한 기억만이 그것을 간직해 올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욕망에 굴복해 왔던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저아래 세계의 추억을 마치 뭔가 천박한 것인 양 잊게 만들려고 애쓰는 이 세계의 욕망에 말이다. - P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