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치 크라우더는 전 세계의 디아스포라 한인 커뮤니티와 접촉해 교포 자녀들이 쓰지 않고 방치해둔 ㄱ을 취합했다. 돈으로 풀리지 않는 협상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했다. 영주권이라든가, 취업 알선, 영구 귀국에 따른 병역문제 등을 깔끔하게 처리해줬다. 그때부터 배치 크라우더는 한낱 장사치가 아니게 됐다. 전 국민이 백 년 동안 쓰기에 넉넉한 ㄱ이 확보된 이후 열린 기념식에서 그는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 P21

"오늘 받은 주문이 어떻게 되나, 천구? 한번 읊어보라고."
"신라면 다섯 박스랑 복수요."
"정확해. 내가 기억하는 것과 틀림없이 일치하는구먼."
"복수 쪽은 아무래도 사장님이 처리하셔야 할 것 같네요.
저는 신라면 담당할게요."
"무슨 소린가 천구. 사장이라면 마땅히 복잡하고 고된 일을 도맡아야지. 라면은 내가 처리하겠네."
"네?" - P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거 아십니까? 홍학은 동성애가 굉장히 많이 발견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수컷과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다른 수컷이 암컷을 밀어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수컷과 수컷 사이에서 큰 새끼는 더욱 강하게 크기 때문에 생존의 문제와도 직결되죠." - P325

"가능합니다. 남학생이니까요." - P3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인생에 이혼은 없어요."
"난 당신의 완벽한 인생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냐."
"난 당신 사랑해요."
"나도 사랑했어." - P265

준후는 영주를 똑바로 응시했다. 상처를 주고 싶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영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울려는 거다.
준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것에 흔들릴 일은 없지만 우는여자를 보는 건 귀찮다고 생각했다.
"다현이가 아니었어도 이혼할 거였어."
"난 당신을 잘 알아요."
영주가 준후를 따라 벌떡 일어섰다. 준후는 말끄러미 그녀를 보았다. 다현도 그랬다. 선생님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안다고 말했다. 왜 ‘안다는 것‘에 그렇게들 집착하는 걸까. 자신을 가장 잘 안다던 다현은 알까? 다현의 죽음에 자신이 그렇게 슬프지 않다는 것을. - P266

차라리 다현을 죽인 것이 영주였다면 좋았을 것을.
다현이 죽지 않았다면, 하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준후는 조금 놀랐다. - P2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건 낙하 혈흔이에요."
강치수와 박인재가 그를 쳐다보았다. 조사관이 설명했다. 낙하 혈흔은 가만히 있는 물체에서 수직으로 피가 떨어졌을 때 생긴 흔적을 말한다. 수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혈흔이 정원형을 띠고 피가 튀는 돌기가 일정하게 퍼져 있다. 그는 낙하 혈흔임을 증명하는 다른 혈흔도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동반 방울이라고했다. 동반 방울은 큰 혈액 방울이 바닥에 부딪치면서 생기는 작은 혈액 방울을 말한다. 현장에서 여러 개 검출된 동반 방울은 혈액이 상당한 높이에서 떨어진 것을 증명한다고 덧붙였다. - P106

다현은 늘 무덤덤 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친구가 없어도, 대화할 사람이 없어도 아무 상관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다현을 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무도 다현에게 말을 걸지 않고 걱정해주지 않고 버려두는 것이리라.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자신은 알고 있다. 다현은 처절하게 외로운 아이였다. 부서질 듯 약한 아이였다. 작은 상처를 받는 것도 두려워 거짓 외피를 서툴게 두른 것뿐이었다. 그런 다현이 죽을 때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지를 생각하면몸이 조여온다.
자신이 의심을 피할 수만 있다면, 다현과 자신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활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다현에게는 미안하지만 범인이 잡히지 않아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알고 싶었다. 다현은 어떻게 죽었는가.
차라리 즉사했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 P117

정은성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귀가 시간을 확인하려면 CCTV 확인은 당연하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CCTV라고 정확히 짚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까지는 아니지만 보편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알리바이를 대기 위해 과한 정보를 쏟아낸다는 것은 범죄심리학의 기초다. 흔들리는 표정 기저에 숨어 있는 뜻을 읽어내려 강치수는 한동안 정은성을 응시했다. - P1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