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결혼을 했으며 조울증을 앓았던 시인 존 베리먼은 '나의 시가 이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의 시는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시가 필요하다. 복잡한 삶에서 벗어나 나무들, 별들, 모든 것을 악기로 바꾸는 바람, 그리고 세상의 광대함과 만나기 위해.


루미의 시는 단순하고 깊다. 시련이 찾아왔을 때 그의 시는 위안을 준다. 누구나 슬픔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간다. 그 슬픔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 성장의 비탈일지도 모른다. 루미는 쓴다. 


슬퍼하지 말라.

네가 잃은 것은 어떤 것이든

다른 형태로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는 썼다.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사랑하기.

자신의 삶이 그것들에 의지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들의 가슴 깊이 끌어안기.

그리고 놓아줄 때가 되면 놓아주기.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지 못하는 것보다 본래의 나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치명적이다. 나에게 필요한 일은 꽃봉오리에게 하듯이 "너는 사랑스러워!"하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일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봉오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자신에 대한 축복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다.


갑작스러운 마비에서 회복된 것이 기적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활동이 기적이 되었다. 


"이 세상의 문제는 머리 좋은 사람들의 의심 때문."이라는 부코스키의 말대로 우리는 너무 영리하기 때문에 '원하는 일을 하면 안 되는 이유, 할 수 없는 이유'를 계속 찾아내는지도 모른다. ... 자신이 원하는 일을 '왜 할 수 없는지' 이유를 찾는 사람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는 사람이 있다. 거기서 인생이 나뉜다.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불행과 원하는 것을 하는 행복의 차이가. 


고통과 슬픔은 혼자 지고 가야 한다. 타인의 위로가 힘을 줄 순 있어도 대신 지고 갈 수는 없다. 


(앨리스 워커는) 또 다른 시에서 이렇게 썼다.


당신이 나를 홀로 서게 만들고

혼자서도 걸을 수 있게 만들고

혼자서도 살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성서의 잠언에도 '사람은 사람에게 부딪쳐야 다듬어진다.'라고 적혀 있다.


인간은 소유하고 경험하고 연결되기 위해 태어나지만 생을 마치는 날까지 하나씩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 삶의 역설이다. 잃어버린 것에 아파하되 그 상실을 껴안는 것을 에머슨은 '아름다운 필연'이라 불렀다. 상실은 가장 큰 인생 수업이다.


사랑의 행위를 통해 우리가 도달하려고 하는 것은 '같은 내면'이다. '같은 내면'의 발견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확인이다. 따라서 '같은 내면'에 이르지 못하면 그 사랑의 행위는 무의미하다. "섹스가 부족해 죽는 사람은 없다. 단지 사랑이 부족해 죽을 뿐이다."라고 어느 작가는 썼다.


시인 존 애쉬베리는 어려서 화가가 되기를 꿈꾸었기 때문에 회와의 영향을 받아 '캔버스에 언어로 그린 그림'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추상적이고 난해한 시들을 많이 썼다. "나의 시는 앞뒤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 않겠다'는 결코 부정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것만큼 자신에게 신념을 주는 긍정적인 선택도 없다. 많은 이들이 원하는 곳에 이르기 위해 먼저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함으로써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삶은 내가 선택한 것들뿐 아니라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들'로도 이루어진다.


우리는 평범한 것들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지지해 주는 것들과. 


누군가가 모든 해답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면 그를 따르지 말 일이다. 그 해답은 당신의 목적지가 아니라 그의 목적지로 데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들어올 수 없는 옹색한 원을 가진 이가 있는가 하면, 세상에 대한 무한한 수용으로 신까지도 그 원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시인은 자신이 말하고 싶어 하는 두세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긴 시를 쓰는 경우가 있다. 아마릴리스가 오랜 시간 노력한 끝에 마침내 줄기 끝에서 한 송이 선홍색 꽃을 피우듯이,


영국 시인 프란시스 톰슨은 '별을 흔들지 않고는 꽃을 꺾을 수 없다'라고 썼다. 꽃 한 송이를 꺾을 때마다 파장이 전해져 어느 별에선가 혼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식하지 못한 채 나의 행동이 다른 생명체를 죽이거나 상처 입힐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배려는 그것까지 헤아리는 것이다.


어떤 것을 알려면 - 존 모피트


어떤 것을 볼 때 

정말로 그것을 알고자 한다면

오랫동안 바라봐야 한다.

...


유명한 설교사가 어느 영적 스승과 함께 지낸 후, 스승의 투박한 말에 비해 자신의 설교가 초라한 이유를 알았다. 자신의 설교는 시끄러운 주장이었지만, 스승의 말은 침묵을 담고 있었다. 단순하게 감탄하며 사는 대신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둘러싸여 있다. ... 너무 많은 것들 속에 너무 결핍된 인생.


사랑을 하게 되면 평소에 관심 갖지 않던 것들까지 두루 사랑하게 된다. ... 갑자기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것처럼 세상이 새롭게 다가온다. 사랑은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며, 이를 통해 주위 모든 것들의 아름다운 속성까지도 인식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자기중심적이었던 자아를 열어 더 많은 세상과 만난다. 그것이 사랑이 주는 존재의 확장성이다. ... 사랑이 우리에게 일깨워 준 것은 우리가 가진 사랑의 능력이다.


틱낫한은 <살아 있는 붓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에서 말한다. "북쪽으로 가려고 할 때 북극성을 길잡이로 이용할 수 있지만 북극성에 도달하려는 것은 아니다. 북극성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노력은 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 자신의 장소에 도달하는 일이다."


"시는 일종의 '유리병 편지'와 같다. 그 유리병이 언젠가 그 어딘가에, 어쩌면 누군가의 마음의 해안에 가닿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시인이 유리병에 담아 띄우는 편지 말이다."-파울 첼란(독일 시인)


'과일의 맛이 과일 자체에 잇는 것이 아니라 미각과의 만남에 있는 것처럼 시의 의미는 종이에 인쇄된 단어들 속이 아니라 독자와의 교감 속에 있다.'라고 보르헤스가 말했듯이 나는 당신이 더 많은 시를 찾아서 읽고, 세계를 이해하고, 인생의 해변에서 시를 낭송하기 바란다. 어디선가 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않은 유리병 편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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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 올라프 H. 하우게


저기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물론 당신이 하는 말은

옳다. 너무 옳아서

그것을 말하는 것 자체가

소음이다.

언덕 속으로 들어가라.

그곳에 당신의 대장간을 지으라.

그곳에 풀무를 세우고

그곳에서 쇠를 달구고

망치질하며 노래하라.

우리가 그 노래를 들을 것이다.

그 노래를 듣고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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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만 본다. 이렇게 보는 것은 일종의 선택 행위다. 


우리는 흔히 사진을 기계적 기록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한 장의 사진을 볼 때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그 사진이 사진을 찍은 사람의 무한히 많은 시각들 가운데서 특별히 선택된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과거의 미술을 본다. 말하자면 매우 다른 방식으로 본다는 얘기다. 이러한 차이는 원근법을 설명하는 용어 속에 나타나 있다. 유럽 미술 특유의 원근법의 관습은 모든 것이 관찰자의 눈에 집중된 것으로,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확립되었다. ... 원근법은 마치 이상적인 것처럼 시야를 조직했다. 원근법을 사용하는 모든 소묘와 회화는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그가 세상의 유일한 중심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카메라, 특히 영화 카메라는 어디에도 중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카메라의 발명은 사람들의 보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가시적인 것은 이제는 무언가 다른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 점은 즉시 회화에 반영되었다. 


원작의 유일무이한 독자성은 그것이 복제의 원작이라는 사실에 있다. ... 원작의 의미는 그것이 독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유일모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나온다. ... 원작의 가치는 그것의 희소성에 따라 정의된다.


내셔널 갤러리는 다 빈치의 <성 안나와 성모와 아기 예수와 세례 요한>의 소묘 복제본을 다른 소장품의 어떤 그림보다도 많이 판매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 소묘는 학자들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 미국인이 이백오십만 파운드에 그것을 사려고 하자 갑자기 유명해졌다. ... 그 작품이 감동적이로 신비스러워진 것은 시장가격 때문이다.


미술이란 그것이 지닌 유일모이한 변함없는 권위를 통해 다른 형태의 권위를 정당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미술은 불평등을 고상한 것으로 보이게 하고, 위계질서를 짜릿한 긴장감을 주는 것으로 만든다. 소위 국가의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은 현대의 사회 시스템과 그것이 우선적으로 중요시하는 것을 찬양하기 위해서 미술의 권위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 존재의 모든 면과 자기가 하는 모든 행동을 늘 감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남자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이, 그녀 인생의 성공 여부가 걸려 있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 여자가 자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갖는 생각은 이렇게 타인에게 평가받는 자기라는 감정으로 대체된다. 


거울은 무엇보다도 여자가 스스로를 하나의 구경거리로 대하는 데 동의하는 것처럼 만들어 준다. 파리스의 심판은 벌거벗은 여자를 쳐다보는 남자 혹은 남자들의 겉으로 드러난 않는 생각을 보여주는 또 다른 테마다. ... 파리스는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여자에게 사과를 상으로 준다. 그런 식으로 아름다움은 경쟁적인 것이 된다. (오늘날 파리스의 심판은 미인 선발대회가 되었다.)


케네스 클라크는 자신의 책 <누드>에서 벌거벗은 몸(naked)은 그저 옷을 입고 입지 않은 상태인 반면, 누드(nude)는 예술의 한 형식이라고 주장한다. ... 벌거벗은 몸은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누드는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한 특별한 목적에서 전시되는 것이다. 벌거벗은 몸이 된다는 것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 누드는 절대로 벌거벗은 몸이 될 수 없는 운명이다. 누드는 복장의 한 형식이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은 종종 전시된 작품의 숫자에 압도당해, 그들 중 겨우 몇몇 작품만 주의를 집중해서 볼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한탄스러운 무능함에 놀라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미술사는 유럽의 회화 전통 속에서 탁월한 작품과 평범한 작품을 구분하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천재'라는 개념은 이에 대한 적절한 해답이 될 수 없다. 그 결과 혼란은 미술관의 전시 벽면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무엇인가를 더 사들임으로써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생활이 변하게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또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비록 돈을 써 버려서 전보다 가난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조금 더 사들인 바로 그것들이 다른 면에서 우리를 부유하게 해 줄 것이라고 얘기한다. 광고는 겉보기에 전과 딴판으로 변화된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고, 그러한 변화의 결과로 그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우리를 설득한다. 남을 사로 잡는 매력(glamour)이란 곧 선망의 대상이 되는 데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광고는 바로 이러한 매력을 제조해내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제 광고 자체와 그 광고가 선전하고 있는 것들로 얻을 수 있는 쾌락과 이익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자신감의 고독한 형태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 당신을 부러워하는 자신들과 당신의 경험을 나눠 갖지 않음으로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광고에 미술작품을 '인용'하는 것은 두 가지 목적에서이다. 즉 미술은 풍요의 상징이며 훌륭한 생활의 테두리에 속하는 것이다. 미술은 세상 사람들이 부와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마련한 장식의 일부이다. 그러나 미술작품은 또한 물질적인 관심보다 우월한 문화적인 권위 및 위험의 한 형식을 암시하며, 심지어 지혜의 한 형식까지도 암시한다. 유화는 문화적인 유산에 속한다. 그것은 교양있는 유럽인들이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따라서 광고에 인용된 미술작품은 거의 상반된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얘기할 수 있다. 즉 그것은 물질적인 부와 정신적인 것을 한꺼번에 의미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술작품이 광고에 쓸모있게 인용되는 것이다.) 광고에 인용된 미술작품은 광고가 선전하고 있는 물품을 사는 일이 사치인 동시에 문화적으로도 가치있는 행위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왜 광고는 이렇게 유화의 시각적인 언어에 깊이 의존하게 되었을까. 광고는 소비사회의 문화다. 광고는 이미지를 통해 바로 이 소비사회가 스스로에 대해 갖는 신념을 선전한다. 이 이미지들이 유화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유화란 무엇보다도 사유재산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것은 당신이 소유한 것들이 곧 당신이라는 원리에서 나온 미술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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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수 있으면 많이 감탄해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감탄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많은 분야에서 공통된 말이겠지만, 특히 데생에서는 '꾸준함이 항복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봄이 되면 종달새는 울지 않을 수 없다.


무언가 변화를 주기 위해서라도 여자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사랑하는 여자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다.


네가 화가가 된다면 놀라게 될 일 가운데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물리적인 의미에서 아주 힘든 작업이라는 점이다. 정신적인 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난 육체적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것도 매일같이.


"넌 타락했다"라고 말한다면, 그에게는 더 이상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녀도 나도 불행한 사람이지. 그래서 함께 지내면서 서로 짐을 나누어 지고 있다. 그게 바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주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을 만하게 해주는 힘이 아니겠니.


내가 깊은 좌절을 이겨내고 생기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깊이 생각하고 늘 신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까닭은, 그런 자세가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하고 다양한 행동을 하나의 목표로 모아주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면 태양이 더 환하게 비추고 모든 것이 새로운 매력을 갖고 다가온다. 깊은 사랑에 빠지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난 사랑이 명확한 사고를 막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랑할 때 더 분명하게 생각하고 이전보다 더 활동적이 되거든. 


개는 이곳에 돌아온 걸 후회한다. 그들이 친절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황야를 떠돌 때도 이집에서처럼 외롭지는 않았다. 불쌍한 짐승이 돌아온 것은 생각이 모자란 탓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을 테다. 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게으르게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다.


그밖에도 많은 걸작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공감하는 삶을 묘사하고 있어서 진실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준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모파상의 <피에르와 장>을 읽는 중인데, 참 아름다운 소설이다. ... 서문에는 "소설가에게는 소설을 통해 자연을 더 아름답고, 더 단순하며, 훨씬 큰 위안을 줄 수 있게 과장하고 창조할 자유가 있다"고 씌여 있다. 그 다음에 "재능은 오랜 인내로 생겨나고, 창의성은 강한 의지와 충실한 관찰을 통한 노력으로 생긴다"라는 플로베르의 말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쓰고 있다.


물감을 사용할 때도 펜과 종이를 대할 때처럼 부담이 없었으면 좋겠다. 색을 망칠까 싶어 두려워하다 보면 꼭 그림을 실패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부자였다면 지금보다 물감을 덜 썼을 것이다.


그림은 나에게 건강을 잃은 앙상한 몸뚱아리만 남겨주었고, 내 머리는 박애주의자로 살아가기 위해 아주 돌아버렸지. 넌 어떠냐. 넌 내 생활을 위해 벌써 15만 프랑가량의 돈을 썼다. 그런데... 우리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너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될 수 있으면 아주 많이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우리가 써버린 돈을 다시 벌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전혀 없다. 그림이 팔리지 않는걸... 그러나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원하는 건 빚을 지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동생아, 너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서 그걸 모두 갚으려면(꼭 갚게 되리라고 믿고 있다) 내 전 생애가 그림 그리는 노력으로 일관되어야 하고, 생의 마지막에는 진정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 언젠가 내 그림이 팔릴 날이 오리라는 건 확신하지만, 그때까지는 너에게 기대서 아무런 수입도 없이 돈을 쓰기만 하겠지.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하면 우울해진다.


형 편지를 보니 건강도 별로 좋지 않는데다 아주 많이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번 기회에 형에게 확실하게 말해 두고 싶은 게 있어. 난 돈 문제와 그림을 파는 문제, 그리고 경제적인 것과 결부된 모든 일을 존재한 적이 없는 일처럼 생각해. 설령 존재한다 해도 질병 같은 거라고 말이야. ... 형은 내게 빚진 돈 얘기를 하면서 내게 갚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내가 형에게 원하는 것은 형이 아무런 근심 없이 지내는 거야.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맞아. 우리 둘 다 가진게 별로 없으니 너무 많은 짐을 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 하지만 그 정도만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을 거야, 아무것도 팔지 않더라도 말이지.


형이 알아야 할 건 어떤 관점에서도 형 자신을 불쌍히 여길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야.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형이 완성한 작품들을 생각해 봐. 그런 그림을 그릴 숨만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고 소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형은 더 이상 뭘 바라는거야? 뭔가 훌륭한 것을 창조하는 것이 형의 강렬한 소망 아니었어? 이미 그런 그림들을 그려낼 수 있었던 형이 도대체 왜 절망하는 거야? ... 우리 희망을 갖기로 해. 형의 불행은 분명 끝날 거야. 


삶은 공정하지 않았다. 지금뿐 아니라 과거에도 나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해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충분히 생각할 수 없었다. 어쩌면 정신병원이나 군대처럼 규칙에 따라야만 하는 곳에서 더 편안할지도 모르지.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빠져 있는 사람이어서, 살아가면서 다른 것을 잘 움켜쥐지 못한다는 말.


전에 말한 대로 우린 아이를 형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라 부를거야. 이 아이 역시 형처럼 강직하고 용감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지.


모네는 형의 그림들이 이번 전시에 참가한 그림들 중 최고라고 했어. 아주 많은 화가들이 내게 형 그림 얘기를 했어. 


내 작업은 정말 잘 진행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꽃이 활짝 핀 나뭇가지를 그리고 있었지. 아마 너도 그 그림을 보면 내가 지금까지 그린 것 중 최고임을 알게 될 게다. 이제껏 그린 것 중에 가장 끈기 있게 작업한 것으로 아주 차분하고 붓짓도 더 안정되게 그렸거든. 하지만 그 다음날 바로 짐승처럼 발작을 일으켰다. 


너무 우울하구나. 부탁인데 오리에 씨에게 더 이상 내 그림에 대한 글을 쓰지 말아달라고 전해다오. 그는 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게다가 난 너무도 깊은 슬픔에 빠져 있어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내 기분을 전환시켜주지만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떠들어대는 걸 듣는 일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저는 계속 고독하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도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보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고흐는 의식을 잃었고, 7월 29일 새벽 1시 30분 동생의 품에 안긴 채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파란 가득한 삶을 마감했다. ... 고흐가 죽은 지 6개월 후인 1891년 1월 25일, 형의 죽음 이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된 테오가 네델란드의 위트레흐트에서 3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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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사람- 휠러 월콕스


삶이 노래처럼 흘러갈 때

즐거워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가치 있는 사람은 모든 일이 잘못 흘러갈 때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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