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지금 아빠가 했던 것처럼 그렇게 정중한 말투로 나를 대하는 어른을 본 적이 없었어. 되게 기분이 좋았어."


나는 근본적으로 아이가 얼마나 보수적일 수 있는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자식이 생기면 부모는 훨씬 더 명확하고 확신에 차서 행동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지도자가 되지는 않지만 엄마나 아빠가 되면 모두 자동으로 작은 무리를 이끌고 책임을 떠맡고 자신의 운명뿐 아니라 가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런 일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우리 아이들은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우리 어른에게 요구할 용기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자기 효능감이란 스스로 무언가를 계획해서 그 일을 해내고, 자신의 작업이 세상을 조금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스스로 정말 착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주부라는 직업이 나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언제나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자유로웠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아무도 기한을 정해주거나 명령을 하지 않았고, 내가 할 일은 매우 다양했으며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제법 긴 시간이라 여겼지만 딱 6주까지였다. 그다음에는 매일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빨래, 설거지, 기저귀 갈기, 우유 먹이기, 청소하기 등의 일이 어느 정도 빛을 잃기 시작했다. 12주가 지나자 마치 누군가 내 머리를 쪼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겨워 죽을 것 같았다.


2010년 초에 주간지 <슈피겔>은 '사춘기'를 주제로 특별호를 발행했다. 거기에 계속 등장하는 요구가 하나 있었는데, 대략 '큰 아이에게는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하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 전부다'라는 말이었다.


전지전능 환상은 컴퓨터 게임을 통해 키워진다. 아이는 자신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가상현실 속으로 도피한다. 무기력감, 종속감, 그저 그런 인간이라는 일상의 느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많은 남자 아이가 그래서 계속 더욱 외로워진다고 베크르만은 말한다. 


"어떤 아이가 무언가를 공부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원인은 그 아이가 아니라 어른에게 있어요.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탓이지요."


"우리 내적인 면에 관해서 이야기해요. 라라는 배우는 데 비형식적인 환경이 필요에요. 이것은 라라에게 아주 중요해요. ... 라라에게는 늘 같은 장소에서 공부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러니까 언제나 책상에서 하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옮겨가며 하는 게 좋아요. 때로는 침대에서 하는 것도 좋고요. 그게 더 도움이 될 거에요. 라라는 자신이 하고 싶으면 음식을 먹거나 마시면서 공부해도 좋아요. 그건 문제될 게 없어요."


"..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자리가 잡혔어. 삶이란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자동으로 굴러가잖아."


우리가 무언가를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지는 그것을 얻기 위해 극복할 수 있는 장애의 크기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미국 코넬 대학 심리학과 데이비드 더닝 교수.. 그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더닝-크루거 효과' ... 초보자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태생적으로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 가진 것의 150퍼센트를 주는 사람, 세심하게 훈련된 관대한 태도로 보수와 인정을 포기하는 사람, 이들은 한없이 주고 또 주면서 내심으로는 고작해야 남이 고맙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린다. ... 그들은 코앞에 탈진 위기가 닥쳤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을 때가 많다. 몸이 아파지고, 결국 충족되지 못한 자신의 삶을 쓰라린 마음으로 뒤돌아보게 된다. 행복하려면 사람은 조금은 이기주의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성공한 삶을 살 수 없는 것 같다. 참 슬픈 생각이다.


덴마크 출신의 가족 치료사인 예스퍼 율... 그는 청소년 사춘기와 두세 살 아이에게 나타나는 유아반항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예스퍼는 '반항기'라는 말이 잘못된 개념이라고 했다. 예스퍼는 "아이가 어느 정도 독립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그 시기는 독립기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사춘기에는 아이가 부모에게 벗어나기 위해 저항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말이나 행동을 어른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저항한다.


누군가 위로가 필요할 때는 그저 입을 닫고 옆에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위로라는 사실을 언젠가 배웠다. 그래서 조니를 품에 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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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사이의 가르침이란 실은 삶을 공유하는 것이다. 


누구를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가장 많이 배우게 되어 있다.


뭔가를 해내야 하는 숙제를 앞에 두었을 때는 이를 정말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물리적, 감정적 골칫거리들도 더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결과가 비록 좋지 않아도 후회 없는 노력을 했다면 내 자신은 물론 남 앞에도 당당히 설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해마다 '구름투어'를 다닌다. 시간과 목적지 없이 한국의 국도를 운전하며 길이 부를 대로 간다. 서고 싶으면 서고,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나는 영감을 얻기 위해서 다른 무언가를 일부러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게 있다. 단순노동을 할 때 머리에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긴다. 집 안 청소, 정원 가꾸기, 운동, 산책, 뭐 이런 단순노동. 내게는 특히 설거지할 때 상상력이 분출되어 이 세상 저 세상을 넘나든다.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나 역시 이렇게 큰 창작은 처음이었기에 그게 뭐든 간에 무조건 자기 손으로 모두 다 해내야 했다. 방법을 몰라도 스스로 알아내서 해야 했고, 작품을 위해서라면 대선배와도 욕먹을 각오 하고 싸워야 했다. 


... 모두 그리 되려고 그랬던 것 같다. 세상에 ... 운명에게 그냥이란 없다. 곧 죽는다 하여도 그냥으로는 살지 말지어다.


어딘가에 가서 뭔가를 하나 더 배우고 돌아온다는 것 (그게 무엇이든), 뭔가를 하나 더 알게 된다는 것은 아주 고급스러운 행복이다.


무대에서는 자기가 맡은 게 무엇이든 간에 무조건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게 또 하나의 큰 원칙이다. 그 역할을 잘하고 못하고는 그다음 문제이다. '무조건' 그 자리에, 그 시간에 있어야 한다. 쉽게 생각하면 사실 누구나 무슨 일을 하려면 그 자리에 있는 게 마땅하니 이 원칙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내가 본 승우는 이렇게 멀리서 그냥 망원경으로 그가 자신의 멋진 삶을 꾸려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뭔가를 필요로 할 때 그때만 잠시 가까이 가는 게 그에게 도움이 되는 거다. 나는 이렇게 내가 너무 탐내는 한 배우이자 친구를 멀리서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스스로 선택해서 온 직장이니 똑바로 해내라. 아님 빨리 없어져 달라."


어린 딸 셋이 일어나야 될 시간이면 엄마는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침대로 조용조용히 다가왔다. 출근할 복장을 하고 있어도 일단 옆에 누워 우리를 꼭 껴안았다. 그러곤 볼에다가 여러 번 부드러운 키스를 퍼부은 다음 딸들의 딸들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엄마 특유의 소프라노 목소리로 마치 새가 노래 부르듯이 "안녕, 일어날 시간이야"라고 들릴 듯 말 듯 속삭이셨다. 그다음 아직 잠이 채 깨지 않은 딸들의 이마에다 아침 이슬같이 반짝이는 키스를 해주었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 달콤한 키스의 세례와 굿모닝의 속삭임. 몇 분이 지나면 딸 셋은 스르르 미소를 띠며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아침을 맞이했다. 이렇게 아침마다 딸 셋을 한 명 한 명씩 공들여 깨웠다.


행복지수란 거대한 일에서 확 높아지는 게 아니다. 작고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은 커지고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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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결혼해서 살아 보면, 내 기대가 무너지듯이 상대의 기대도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이때 내 기대가 무너진 것만 문제 삼지 말고 상대도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상대가 실망할 만하다고 인정하면서 받아주면 관계가 좋아집니다. 


'전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생에서 내가 받는 것을 보라. 내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생에서 내가 짓는 것을 보라' - <인과경>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깊은 산속에 혼자 살아도 외롭지가 않습니다. 풀벌레도 친구가 되고, 새도 친구가 되고, 다람쥐도 친구가 되고, 밤하늘의 별도 친구가 됩니다. 눈을 뜨고 있으면 밤에도 무언가 보입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있으면 대낮에도 아무것도 안 보여요. 외롭다는 것은 지금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대낮에도 어둡다고 고함치는 사람과 같아요. 즉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겁니다. 그걸 알아차려서 스스로 외로움에서 벗어나 버리면 외로움 때문에 사람을 찾지는 않게 됩니다.


자기의 삶을 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늘 놀이로 생각하세요. 이게 가능할 때 인생도 행복해집니다.


부부가 살면서 죽을 때까지 말 못 하는 게 있습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말 못 하는 게 있어요. ... 그렇게 한 10년, 15년 살다가 상대가 그걸 알게 되면 어때요? 난리가 나지요. ...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상대가 그걸 숨겨 줬기 때문에 15년이나 살 수 있었던 거예요. ... 그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그렇잖아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상대에게 무조건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거나 사랑을 요구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이기심을 갖고 있듯이 상대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되면 상대에게 무리하게 요구하면서 그 뜻을 따라 주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지는 않게 돼요. 


우리는 상대에 대해 자기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고,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상대의 모습을 내 마음대로 그려 놓고, 왜 그림과 다르냐고 상대를 비난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마음의 착각이 나 자신과 상대, 모두를 힘들게 합니다.


여러분이 이럴까 저럴까 망설인다면, 어떤 쪽으로 결론을 내든 어차피 반반인 거예요. 여러분이 밤잠을 안 자고 결론을 내리려고 해도 결론이 안 나는 것은 고민할 가치가 없는 거예요. ... 이때는 아무 쪽으로나 결론을 내려도 됩니다. 


꽃이 피면 꽃을 보고, 꽃이 지면 그만인 것처럼 무심히 볼 수 있는 게 수행입니다. ... 같이 살 거면 상대를 그냥 날씨나 꽃처럼 생각하세요. ... 다만 내가 맞추면 돼요. 꽃 피면 꽃구경 가고, 추우면 옷 하나 더 입고 가고, 더우면 옷 하나 벗고 가고, 비 오면 우산 쓰고 간다고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안개 속에 있으면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녀가 대단한 문제 때문에 헤어지는 것 같지만, 안개비 속에 한참 있으면 옷이 젖듯이 아주 작은 사건들이 모여 결국 헤어지게 만듭니다. ...별것 아니고 사소한 일들이라, 말하고 행동한 사람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오래 쌓이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 풀기 힘들어집니다.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마라.' 부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고통을 주는 제1의 화살을 맞은 뒤, 스스로 그 고통을 되새김질해서 제2, 제3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쏘지 말라는 거예요. 


용서해 준다는 생각마저도 완전하지가 않아요. 놔 버려야 합니다. 완전히 딱 놔 버려야 해요. 남편의 지난 잘못을 약점으로 쥐고 있으면 약점을 이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항상 저항이 따라요.


이미 떠나버린 남자를 미워하면서 사는 것은 아직도 내 인생의 주인이 그 사람인 거예요. 참회함으로써 내 인생에서 그를 지워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기로 정한 시간이 됐을 때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라고만 하고 정작 일어나지 않으면서 "일어나고는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 끊임없이 방법을 찾는 것은 번뇌입니다. 그냥 하는 거예요. 수행도 이처럼 해야 합니다. 너무 심각하게 하지 말고, 가볍게 해야 해요. 


순간적으로 슬프지만 슬픔에 빠지지 않고, 실패하면 그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는 거예요. 상황과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삶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타다가 넘어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지금 자전거 타기를 배워 가는 중이라는 겁니다. 성공으로 가는 중이라는 말이에요.


스님의 법문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도 문 밖을 나서면 실행하기가 어렵지요? 마음과 달리 과거의 습관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경계에 딱 부딪히면 무의식적으로 그냥 원래대로 돌아가 버립니다. ... 그래서 불교에서는 '찰나에 깨어 있어라', '순간순간 깨어 있어라'고 합니다. 매순간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무의식대로 행동하는 거예요.


실패한다는 것은 시도를 했다는 얘기예요. ... 안 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남편(아내)이 뭐라고 할 때 "그러게, 나도 좀 문제네요" 하고 넘어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변명을 하려고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변명하면서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되는 거예요. 가볍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별것 아닌데 말이에요. 이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가 못나 보이거나 나빠지는 것도 아니에요. 단지 그때 일어나는 한 생각일 뿐이에요. 오히려 그냥 가볍게 내려놓지 못해서 싸움을 만들고, 내내 이 문제를 들고 다니기 때문에 괴로움이 사라지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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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권을 읽고 고작 스무 권을 쓴 셈인데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습니다. 많이 읽고,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책을 써냅니다. ... 질에 있어서도 대체로 읽은 것보다 못한 것을 써서 세상에 남깁니다. 


<왜 고전을 읽는가>의 서두에서 칼비노는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 "고전이란,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 더욱 독창적이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 창의적인 것들을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다."


어떤 이들은 고전이 진부할 것이라 지레짐작합니다. ...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살아남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후대로 전승되었을 겁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은커녕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요.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과의 투쟁일 겁니다. 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냐. 나는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을 읽는 데 귀중한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 인생은 짧으니까."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 숲>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신 무서운 사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간을 감염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며, 이성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연애 역시 책으로 배웠습니다. 그것도 주로 소설책이었지요. 그러니 연애는 늘 삐걱거렸습니다. 소설 속 연애의 문제는 말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환상에 빠져 현실을 잘못 보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일까요? 인간이 그것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현실에 너무 집착해 자기 내면의 정신적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문제는 아닐까요?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은 것은 고유한 헤맴, 유일 무이한 감정적 경험입니다. ...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 하나의 얇은 세계가 우리 내면에 겹쳐집니다. ...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개개인마다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소설은 두번째 삶입니다. 프랑스 시인 제라드 드 네르발이 말한 꿈처럼, 소설도 우리네 삶의 다채로움과 복잡함을 보여주고, 우리가 아는 것 같은 사람, 얼굴, 물건 들로 가득차 있으니까요. 마치 꿈에서 그러하듯이, 우리는 때로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접한 것들의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우리가 어디 있는지도 잊고, 우리가 보고 있는 상상의 사건이나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소설에서 보고 희열을 느꼈던 허구 세계가 현실 세계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느낍니다.' - 오르한 파묵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 - 밀란 쿤데라


'소설의 주인공인 사내를 이해하는 길은 오로지 그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방법밖에 없다. ...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 평론가 신형철, <롤리타> 평론 중


'작가는 자기가 쓴 책에 묻힌다'는 말의 의미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곳도 바로 도서관 일 겁니다. 움베르코 에코와 대담을 하던 장클로드 카리에르가 "나는 책이 많이 있는 어떤 방으로 가서 그중 한 권도 손을 대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답니다. 그러면 무어라고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받게 돼요. 그것은 어떤 강한 흥미라고도 할 수 있고, 어떤 안도감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라고 말할 때, 책을 사랑하는 우리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단박에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이 우주라는 말은 곱씹을수록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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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로 학군후보생을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 "지금가지 해온 게 아깝지도 않냐?" 그때 제가 동기들에게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아니,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아까워.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 앞으로 뭐가 될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런 삶은 아닐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작가는 실패 전문가다. 소설이라는 게 원래 실패에 대한 것이다. ...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은 가르쳐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 때로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나치의 수용소와 소련의 그 악명 높은 수용소 군도에 대한 연구에서 보면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이들은 낙관주의자나 비관주의자가 아니라 비관적 현실주의자라고 합니다. ... 비관적 현실주의는 인상을 쓰고 침울하게 살아가자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관적 현실주의에는 개인주의가 필수적입니다. 집단은 어딘가로 쏠리게 마련입니다. ... 비관적 현실주의를 견지하려면 남과 다르게 사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국에 우울증 환자가 왜 이리 많은가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지만 '긍정적 사고'와 '낙관적 태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모두가 긍정적으로 활발하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거기서 자신만 뒤처진 것으로 보일 때, 우리는 급격하게 우울해집니다.


감성 근육이 없는 사람은 먼가를 느끼기 피곤해합니다. ... 오감을 이용해 글을 쓰면 글 자체가 좋아집니다. ... 오감을 동원하면 그것은 마치 놀라운 가상현실처럼 우리에게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그런 글쓰기가 습관이 되면 일상생활에서도 더 민감하게 오감을 동원하게 됩니다. 감각과 기억, 표현은 이렇게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감성 근육을 키우는 것입니다. 육체의 근육이 발달한 사람은 같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기초대사량이 높아 살이 잘 찌지 않는다고 하지요. 감성 근육이 발달한 사람 역시 더 많은 것을 느끼면서도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 자기 느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기울이고 영혼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게 더 중요한 거예요.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쓰는데요. 이렇게 써나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변화가 생기고 이게 축적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숨겨진 트라우마나 어두운 감정은, 숨어 있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한 글자 한 글자 언어화하는 동안 우리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그것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좀더 강해지고 마음속의 어둠과 그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힘을 잃습니다. ...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폭력에 맞설 내적인 힘을 기르게 되고 자신의 내면도 직시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거짓말, 그것 역시 예술의 시작입니다. 아이는 그 순간 스토리텔링을 시작한 것입니다.


'일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하면 피곤해지는 게 그 증거다' - 미셸 투르니에


예술가는 '될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이유'가 아니라 '돼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로 예술가가 되는 것입니다. ...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드는 것은 '작가가 될 수 없는 백 가지 이유'가 아니라 '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이유'인 것 같아요.


1990년, 현대무용의 전설적 거장 마사 그레이엄이 휠체어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입국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기자가 "무용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한국의 무용학도들에게 한말씀해주십시오"라고 묻자, 마사 그레이엄이 딱 잘라 이렇게 말하더군요. "Just do it."


최고의 소설이란... 남에게 요약하거나 발췌하여 전달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런 소설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를 낳지 않겠다. 그러면 내 삶이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그냥 살아지는 것, 나로서 끝나는 것이라 생각해요. ... 세계는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이죠.


저는 사람들이 첫사랑의 시기와 인물을 특정할 수 있다는 것에 늘 놀랍니다. 그걸 어떻게 알지요? ...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여성들이 그전에도, 또 그전에도 있었던 것만 같고, 심지어는 초등학교 때의 짝꿍까지로 거슬러올라가기도 하는데, 그게 딱히 '사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책은 일종의 정신적 애인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를 먼저 의식하면서 쓰는 글은 문제가 있는 거죠. 자기 안의 진짜 충동에서 발원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기준에 맞춰 쓴 거니까요.


날카로운 질문 없이는 절대로 좋은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2010년 여름 나를 찾아와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있던 생각을 밖으로 끌어내준 TEDxSeoul 자원봉사자들이 없었다면 그 생각은 어디론가 흩어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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