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기 문학 B조 마지막 도서 <사랑, 마음을 내려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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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마음을 내려놓다
설미현(미스트랄) 지음 / 베가북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우선, 제목이 어려웠다. 사랑한다는 것이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라는 것인지, 사랑의 마음을 그만 접고 내려놓았다는 뜻인지, 사랑하는 무엇이 마음을 내려놓게 하였다는 뜻인지 지금 사랑하지만 잠시 그러한 마음을 쉬어가도록 내려놓았다는 뜻인지...사랑과 내려놓음 사이 마음이 걸려있는 것은 처음부터 무척이나 내 마음에 걸린 그림이었다. 약간의 모호성을 띠고 있는 제목과 '가슴에 숲을 품은 자유로운 영혼의 에세이'라는 메인 카피 간의 연계성을 선뜻 떠올리기 어려웠던 작품이 어엿하게 자리잡은 가을앞에 당돌하게 도착했음이다.
가을엔 하늘이 파랗다. 가을에 하늘이 유난히 파란 건 하늘을 자주 보기 때문이 아닐까. 가을의 빛은 어느 때보다 잔상효과를 지속적으로 머무르게 한다는 과학적 연구결과라도 찾아 보고 싶을 정도로 오늘은 하늘이 새파랗다. 그런데 인간은 그 새파람에서 눈물이 시리도록 아픈 자신의 우울을 체감해 버리는 이중성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또 인간은 치사한 존재들이므로 너무 파란 것은 덜 파란 것만 못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작품에서 구름 한점 없는 어떤 완벽한 가을하늘을 떠올렸다. 그것은 가을로서 완벽했고 하늘로서 파란했다. 그런데 가을이, 하늘이 쓸쓸한 것은 아닌데 왜 나는 쓸쓸해지는 것일까. 이 쓸쓸함은 그러니까, 낙엽이 굴러감을 느끼는 감성이 아닌 온도계 눈금이 내려가는 것을 확인하는 이성에 가깝다. 흡사 공부 잘하는 학생의 잘 요약된 노트를 본 느낌...글씨체와 줄 간격, 정리된 내용과 중요 포인트까지 완벽한 모범생의 국어나 사회노트는 이러할 것이다. 나는 그 완벽을 추구하는 수필가의 성향이 아무쪼록 쓸쓸했다.
책을 내려놓고 이 작품은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엇갈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고민스럽게 호감을 택하겠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같은 여성으로서, 블로그를 다년간 운영했던 사람으로서, 공부를 했던 사람으로서, 그밖에 결혼생활 및 육아와 학문, 취업의 병행에서 오는 현실 대 자아성취간의 틈 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피곤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처지로서 무엇보다 우선적 공감에 끄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경험으로 인한 절대적 공감은 애석하게도 비경험자로 부터의 절대적 반감에 접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 그것은 지금까지의 저자의 특수한 장점이자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을지.
나는, 우선 이 작품에 대한 사전적 정보가 전무했기에 먼저 접한 사람들을 훑어 보던 차 우연찮게 작품에 대한 냉혹한 비판의 글을 발견했었다. 평소 책을 읽고 한 줄이라도 자신의 평을 써왔던 사람치고 무조건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간혹 작품성이 턱없이 떨어진다거나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다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자신에게 득이 되는, 공감가는 부분을 찾아 느낀대로 서술하고 싶어지는 게 기본적인 자세이자 심리일 것이다. 그런데, 그 느낌이라는 것이 참 솔직하다고 느꼈기에 나는 그것도 일말 부럽고 존경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솔직한 느낌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나 할까...
이 작품의 저자는 여성임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글에서 단순히 저자의 성별을 감지하는 확인 차원이 아닌 글에 다분히 여성성(여성의 감수성)이 묻어나고, 내용 역시 여성적 경험과 그로인한 고민이 상당하다는 것, 즉 이 작품은 무언가 동세대의 여성을 위한 글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시절 상사로부터 그 어떤 글도 여성이 글을 썼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최대한 글을 읽는 사람이 이 글을 쓴 사람의 성별을 감지 할 수 없도록(만약 감지해야한다면 여성만은 아니 되도록)지독스럽게 훈련받았다. 타고난 여성인 나에게 보나마나 그러한 과정은 대단히 굴욕적이었음이다. 이러한 나만의 쓸쓸한 배경은 시, 소설, 수필을 막론하고 여성작가들의 글에서 여성적인 취향의 단어 선택이나 분위기등을 감지할 때 여지없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게 했다. 그리고 그러한 특성이 작품 전체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시사점이 되곤 할 때 나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 작가를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이 문학적 자아에 대한 성차별은 작가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며 편향적인 독서를 이끈 일등공신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수히 지적받았던 사항들을 발견할 때 동병상련된 심정으로 공감하기 보다는 시어머니 된 심정으로 더 지독히 굴게 되는 것이다. 이런 건...남자나 여자나 별로 안 좋아하지 않나...거참...너무 여성편향적인 게 자랑인가...작가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 보다는 중립적인게 더 멋지지 않나...뭐 이런...이기적인 생각을 하곤 한다.
이것은 작품자체의 정체성에 관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결혼과 출산, 취업과 학업 모두를 떠 안을 수 있는 한국의 삼십대 중반의 고학력 여성을 직접적인 타겟으로 지속적인 자아실현이나 치열하게 지나온 청춘과 그 추억속에서 앞날을 다지는 류의 에세이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솔직한 표방을 마켓팅 플랜으로 내세웠다면 비교적 자신들이 유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삼십대 고학력 여성들은 이 책을 건너뛰고 차라리 매대 앞줄에 늘어선 칙릿소설을 택했을지 모른다. 만약 네이버 블로거 출신으로서 아마추어 글쟁이부터 시작한 그녀의 일기와도 같은 다년간의 글들을 같은 블로거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소구할 수는 없었을까. 이 책의 가장 큰 실패는 거기 있었다. 우리 같은데 우리 같지 않은 척 한 것...그리고...그래서 우리 같은 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들쳐보니 전혀 같지 않았다는 것, 이 배신감을 블로거들은 작품에 대한 혹평이나 작가에 대한 수준을 지목하며 잔인하게도 총구를 겨냥한 것이리라.
적어도 제목만은 사랑, 마음을 내려놓다...라는 철학적 보편성에 호소하지 말았어야 했다. 뒤편에 실린 베가카드와 함께 일말의 치유를 기대했던 독자들의 수준을 조금은 하향평준화 했다는 것이 출판기획의 실패라 감히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저자는 큰 잘못이 없다고 느껴진다. 저자는 겸손을 다해 유명인이 아닌 인디작가로서 자신의 글을 출판해준 관계자에게 상당한 감사를 전한다고 에필로그에 명시한 바 있다. 그러므로 마켓팅에서 소구한 대상과 그 포인트가 너무 광범위했다는 결론을 따르고 싶어진다. 저자는 시종일관 무거웠지만 글의 분류로 본다면 가벼운 측에 속해야 했다는 것이 그 시기를 지나온 여성독자로서, 서평을 써온 독자로서 머리숙여 전해드리고 싶다. 참고로, 혹평의 주인공은 남성이었다.
저자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공부를 잘했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에 (결과적으로)자신은 공부를 잘했다고 하지만 나는 보통사람이라 말하는 류의 에세이가 별로 달갑지 않은 이유는 세상엔 공부를 못했던 보통의 독자가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공부를 잘하기 위한 목적선에 놓인 사람들이나 공부이야기에 어떠한 우월감도 느끼지 않는 독자들을 제외하면 박사학위를 따기 위한 그대와의 여정과도 다름없는 에세이가 그다지 기분 좋을 독자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점이 읽는 내내 염려스러웠다. 물론, 저자가 그 힘든 공부과정을 지나오면서 일상에서 다짐하던 많은 오늘의 이야기가 진정성을 지향하고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는 다방면에 재능도 많을 뿐더러 상당히 매사에 열심인 한국여성으로서 부단한 자기 절제와 합리적인 사고에 따른 실천이 몸에 벤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니 독자로선 이 점이 너무 교과서 같은 것이다. 큰 실수와 시련 없이 (그저 일개 독자인 내가 보기엔) 현재 삼십대 중반의 박사학위를 코 앞에 둔 수필가로서 그녀는 너무 정확하고 올바르게 보였다는 것...슈퍼스타 K 심사위원 엄정화가 그랬던가. 슬프고 힘든 일이 많다는 건 발라드를 노래해야 하는 가수로선 아주 좋은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뭐 그렇다고 저자의 상처를 부러 바라는 건 아니지만 '작가'의 고통과 상처는 글을 전달하는 교통수단의 빠르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내게 그녀는 너무 평탄했다. 아직까지는...
그나마 유일하게 가깝다고 느낀 건 아무래도 블로그였다. 우연히도 네이버 블로그에 한참 매달리던 나의 그때가 저자가 네이버에 한참 글을 올리던 그때와 일치했다. 다시 확인해보니 익숙한 닉네임이었고 어쩌면 이웃이 될 뻔도 했을지 모르겠다. 그녀가 블로그에 올린 글로 많은 이웃들이 감명을 받았고 실제로 이번 작품 앞머리엔 그녀의 이웃들이 소평을 하는 글도 소개되 있었다. 이러한 그녀의 이력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역시 이 점도, 시작도 끝도 없는 과정만 있는 늘상 현재진행형이기에 과연 '사랑, 마음을 내려놓다'와 부합하는 형식인지는 고려해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무엇을 내려놓으려 했고, 또 내려놓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지나간 사랑을 언급하며 현재 대부분 그들이 친구로 남아있음을 담담하게 고백했다. 그들과의 추억을 현재 남편과도 어울려 이야기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과의 인연을 존중하기는 하나 아쉬워 하지는 않는다는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서로에게 잘되었다는 식의 비교적 쿨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본다면 그녀가 내려놓은 것은 지나간 것에 대한 부질없음 이었을까. 삶에 대한 집착이나 사람에 대한 미련, 안될 줄 알면서, 헤어질 줄 알면서 더 이상 인연을 발전시키지 않으려는 현명한 지혜...혹은 지혜로운 삶에 다다르기 위한 자세를 강조하려 내려놓다라 말하였단 말인가. 마음을 재단한 듯 나는 그 부분이 참 부러웠다. 나는 내가 한때 사랑했던 남자와는 절대로 친구라는 만남으로 인연을 이어나가지는 못할 부류의 사람인지라 어찌보면, '사랑, 마음을 내려놓은 건' 내 쪽에 더 가까운 거라는 주장을 하고싶다...옛사랑은 철저하게 그리움의 방에 가둬두고 마는 내 성향과 많이 틀린 그녀를 이해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내려놓았다라는 말은 관조적이 아니라 대단히 차갑게 들려왔음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내려놓은 이유와 그 결과가 사뭇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음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공부를 포기 하지 않고 과정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들은 공부를 포기한 적 있던 내 입장에선 참으로 대견스러워 보였다. 다만, (전공이라고 하니)숲에 대한 자신의 이성적 사유가 아닌 감성적 표현들을 더 많이 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끈질기게 남는다.
이 작품은 똑똑한 한 여성이 자신이 요구하는 정확한 단어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야기였다. 이런 류의 글은 그녀가 더 유명해지면 굉장한 빛을 발하는 작품이 될 소지가 많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가 더 작가스런 작가가 되길 바란다. 뛰어난 여성적 감수성만큼이나 문학적 감수성을 더 발휘해 주길 바란다. 글을 잘 써서 감동을 주지 못할 바엔 차라리 글을 잘 못 쓸지라도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어주길 바란다. 그것은 현재 완벽한 수필가가 되기 위해 정진하는 한 작가를 향한 내 진정어린 바램이며 혹독하고 치열했던 삼십대를 지내온 같은 여성으로서 열렬한 내 응원이기도 할 것이다. 더불어, 내가 출판했다면 아마도 '사랑, 아직 내려놓지 못한'이라는 제목을 더욱 추천했을 것이라는 외람된 한마디를 끝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내려놓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과정일 뿐이다. 그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