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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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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류의 역사가 어디서부터 시작돼서 여기까지 왔을까? 어릴 때부터 궁금했지만 알아보자니 너무도 먼 시기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바람에, 또 천성이 어려운 용어가 나오면 지레 겁먹고 밀어내는 바람에 요 근래까지  궁금증을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제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사람이 쓴 <총,균,쇠>가 등장했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나도 접해보게 되었다.  잘 쓰여 있기는 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동어반복으로 지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좋은 내용이기는 했지만 원체 광범위한 분야로 인류의 역사를 다룬 탓에 아쉬움이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또 등장한 것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는 책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도 이 책에 대해 극찬을 했고 사피엔스의 저자 역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 탓일까- 이 책도 <총,균,쇠>와 전체적인 느낌이 비슷하다. <총,균,쇠>가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인류의 역사를 들어 각 문명의 발달의 차이가 문명들이 존재하는 위치의 지리적ㆍ문화적 특성이라고 말하고 있다면, 이 책은 <사피엔스>라는 제목답게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류의 '종'이 어떻게 지구라는 공간을 지배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

 

 사실 책의 도입부부터 이 책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는데, 여태까지 당연히 일률적으로 인류가 진화해왔을 것이라고-즉,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부터 오늘날 현 인류라고 알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까지 포켓몬 진화하듯이 단계별로 진화해왔다고  알고 있던 무지함 덕분이다. 실은 여러 종(種)이 공존하던 시대에서 살아남은 종이 호모 사피엔스였다니. 여러모로 충격과 공포였다.


 책은 총 4부-각각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로 나뉘어 사피엔스라는 종이 어떻게 살아남았고 진화해왔는지를 그리고 있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아침을 먹기도 전에 불가능한 일을 여섯 가지나 믿어버릴 수 있다는 데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것이다. 

-본문 48~49p.



 1부인 '인지혁명'이란 지금으로부터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등장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을 말한다. 이 혁명을 거치면서 사피엔스는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고 사회적으로 밀집될 수 있었으며 가시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정보들을 전달하는 능력을 갖췄고 그에 따라 더욱 효율적인 생존-사냥이나 채집-이 가능해졌으며 더 큰 규모로 밀집될 수 있었으며 낯선 사람들과의 협력이 가능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사피엔스의 폭력성이 다른 종들의 멸종을 야기했으며 이를 기후 탓으로 돌리기에는 인간의 죄가 너무도 크다고 하는데, 인간의 시선이 아닌 동물의 시선에서 바라본 것, 결국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 면이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또한 곰곰이 생각을 해봤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인류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항상 전쟁이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국 똑같은 인류였을 텐데 과연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협력으로만 진화와 발전이 이루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 범인은 한 줌의 시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본문 124p


 2부인 '농업혁명'은 지금으로부터 1만 2천 년 전 발생한 것으로 이전의 수렵채집에서 곡류의 재배와 가축들의 사육으로 옮겨온 새로운 생활 방식이다. 농업과 목축업의 발달은 수렵 및 채집의 한계가 있으면 이사를 가야만 했던 인류들을 정착에 이르게 만들었고, 정착 생활은 생활의 안정감과 잉여 자원을 산출했으며 인간의 경우 '미래'라는 개념을 생각게 하면서 사회 질서, 종교나 문자 등 문화 발전의 원천이 되었다. 또한  인간이 아닌 가축 등 다른 종들에게도 생존과 진화를 보장하게 되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파멸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사피엔스가 자연과의 긴밀한 공생을 내던지고 탐욕과 소외를 향해 달려간 일대 전환점이었다는 것이다. -본문 148p


 그러나, 농업 혁명을 획기적인 발전이 아닌 파멸과 소외로 보는 시선도 있는데, 이는 '잉여'라는 개념이 인지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본성인 탐욕을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이 당시 인간의 상상으로 발생한 위계질서가 인종 차별이나 편견과 같은 모습으로 모양을 바꾸면서 오늘날까지도 인류의 인지 체계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존재하는 것을 보면 매우 공감이 갔다. 또한 농업 혁명을 거치며 인간 사회가 부계사회가 된 것에 대해서 남성의 완력과 공격성의 결과,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생존 전략 등 여러 가설들이 있지만, 이 모든 가설들은 명확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농업 혁명 이후로 부계사회가 이어져왔고 수 천년이 지난 지난 세기부터에서야 비로소 젠더의 격차에 반하는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방인이나 이웃집 사람을 신뢰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닌 주화를 신뢰할 뿐이다. -본문 268p


 3부인 '인류의 통합'에서는 농업 혁명 이래로 더욱 비대해지고 복잡해진 인간 사회에 대해 말한다. 1부에서 말했던 서로 알지 못하는 인간들과의 협력을 더 완강하게 만들기 위해 인공적 본능, 즉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 문화의 발달은 넓디넓은 지구를 더욱 가까이 만들게 했다. 보통 문화의 발달이라고 함은 마치 낭만적이고 우아한 프랑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이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파리의 오래된 지하철 냄새처럼 마냥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이 문화라는 것에는 상업의 발달도 포함이 되는데, 상업의 발달은 자연스레 화폐경제의 등장을 알린다. '돈'이 가진 보편적 특성에 의해 많은 사람들은 무역과 상업이라는 특성에서 협력을 이룰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비인간적인 시스템의 발전을 일으켰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즈음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정주행'을 하고 있는데, 각 사회들에서 나타나는 인류의 모습이 변해갔기 때문이다. 물론 인류의 본성이 어디 가겠냐마는, 2부의 농업 혁명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만인의 풍요가 어쩌면 인류를 파멸의 길로 이끌지 않았나 싶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그것은 불가항력적인 진화의 흐름이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또 결국 한낱 한 명의 인류로서 진화와 인류의 흐름에 몸을 담아야 하는 스스로가 보잘 것 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이 사회는 아름다운 사회일까. 당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은 없었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기에 바빴던 수렵채집 사회에서 돈을 위해 인간성을 버리기 시작한 '풍요'의사회와 비교해보자면 어떤 것이 더 '나은' 사회일까? 한 번쯤은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하지만 역사에 정의란 없다.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 대부분은 늦든 이르든 어떤 무자비한 제국의 군대에 희생되었고, 제국은 이들 문화를 망각 속에 밀어 넣었다. 제국도 마침내 무너지지만, 대체로 풍성하고 지속적인 유산을 남긴다. 21세기를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은 어디가 되었든 제국의 후예다. -본문 272p


 그리고 지구를 한 데 묶고 더 강력하고 종속적인 사회 질서를 위해 제국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제국이라는 단어는 웅장하고 찬란해 보이지만 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학살과 억압이 있어야만 했다. 제국이라는 이름하에 넓은 공간과 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다. 또한 이때 인류를 하나로 묶기 위해 보편적인 종교들이 만들어졌다. 종교는 각 종교마다 유신론/무신론,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등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결국은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의 체계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인류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하자 강력했던 '로마'라는 제국은 이미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암묵적이고 은밀하게 다수의 이익에 의해 형성되고 있는 지구제국으로 우리는 서서히 빠져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한다. 그 대신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의제에 영향을 미치고 과학의 발견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본문 389p


 4부인 '과학 혁명'은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파트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와 오늘날까지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살펴보고 고찰했다면 여기서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바라보고 있다. 인류는 인지혁명 이래로부터 항상 자연세계를 이해하고 지배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는 무지를 인정함에서 시작된다. 무지의 인정은 많은 과학적 발견의 시발점이 되었다. 인류는 경험적으로 반복되고 증명된 사실에 기반을 둬 과학 연구에 많은 재화들을 투자했는데, 과학의 발달이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해관계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사람들이 과학에 투자하는 원초적인 목적이기도 했다. 자본주의와 정치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고 과학기술과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흐름에 맞물려 과학기술에 뒤처진 집단은 피지배층이 되었으며 그렇게 식민지 같은 제국주의가 번성했다.  


우리는 집단 전체보다 개인의 고통에 더욱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본문 518p


주된 질문은 삶들이 스스로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고대의 수렵채집인이나 중세의 농부보다 이런 진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을까? -본문 560p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여태까지 가족과 공동체에서 수행했던 전통적인 기능들이 국가와 시장으로 넘어갔다. 오늘날 변화의 속도는 너무나 빠르고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현대사회를 규정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제국은 강력해졌지만 전쟁의 대가가 커졌지만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감소했으며 전쟁에 대한 지도자층들의 시선이 긍정에서 부정으로 바뀜에 따라 제국은 해체되었고 세계는 평화로워졌다. 물질적 풍요와 함께 타인에 의한 고통이 적은 평화로운 세상은 만인에게 행복을 가져왔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의 주관적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우리는 더 많이 집착하게 되고, 괴로움도 더욱 심해진다 -본문 559p


 행복이란 가치는 너무도 주관적이기에 쉽게 정의할 수 없다. 객관적으로 주어진 재화의 가치-물리적 쾌락-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주관적 안녕-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데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그들 스스로와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인데, 이는 사람과 사람의 감정이 다르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말이다. 허나 나는 이 부분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자는 앞서 불교 교리를 예로 들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해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순간의 감정에 쉽게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의미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 일희일비가 사람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희일비에서 쉽게 즐거워하고 쉽게 고통스러워하는 감정 기복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 슬픔마저도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희들이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좋지만 이 '일비'들을 어떻게 승화시키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어떤 것을 추구하고 걸어가며 성장하느냐가 갈린다고 본다. 


 이 전까지는 여러 학문에서 축적된 지식들의 나열들로 정보 전달의 텍스트들이었다면 현재를 고찰이고 미래를 바라보는 4부에서는 저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기 마련인데 이는 가치관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작가의 말마따나 행복의 역사에 대해 의문을 가진 것조차 최근의 일이기도 하니 서로 다른 접근법을 많이 알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선택의 법칙을 깨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지적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 -본문 561p


 마지막으로 저자는 수많은 혁명들을 통해 지식이 축적된 사피엔스들이 이제는 생명공학의 관점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할 것이라 본다. 즉,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기존의 생각에서 벗어나 불멸을 꿈꾼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감히 신의 위치에 서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는 이 생명-유전공학적 연구의 결실이 크지는 않지만 하루가 바쁘게 발전하고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지는 오늘날이라면 멀지 않은 미래에 어떤 세상이 눈앞에서 보일지는 미지수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본문 586p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원체 방대하다 보니 책의 요약 위주에 내 생각을 중간중간 삽입하는 식으로 서평을 썼는데 인류의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분량이 장난 없다. 중간중간 섞여있는 나의 감상을 책의 내용과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피엔스>가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사안들은 무겁게 다가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유쾌하게 읽혔다. 다만 아쉬운 점은 중후반으로 치닫을수록, 그러니까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오늘날에 가까워 올수록 무겁고 어렵게 읽힌 경향이 없잖아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 오늘날에 대한 평가는 아마도 다음 내지는 다다음 세대에 이르러야 완성이 될 것이도 하고 미래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오로지 막바지에 약간 언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 책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대답에 충실했다고 느껴졌다. 이에 대한 부분은 곧 출간될 예정인 저자의 후속작인 <호모 데우스>에서 더욱 심층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되는 바다.


 내가 어제는 어땠으며 오늘은 어떻고 내일은 어떨 것인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교훈을 얻고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우리는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으며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미래에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지는 온전히 과거를 돌아본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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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 독도와 외규장각 의궤를 지켜낸 법학자의 삶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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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하다보면 정크푸드처럼 읽고 금방 잊어버리는 책이 있는가하면 인상이 깊게 남는 책들도 있다. 인상이 깊게 남는 책은 다시 책내용이 인상적이었던 책과 책제목이 기억에 남는 책들로 나뉜다. 나에게 있어 후자 중에 하나가 <세상은 그를 잊으라 했다>라는 책이었다. 잊혀지지말아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들이 많다. 


 나는 항상 그 점이 아쉬웠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니체의 말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잊고싶은 것을 잊어버리는 선택적 망각에 가깝다. 사실 타인의 삶을 기억하는 것은 각자의 삶에 있어서 0순위는 아니지 않은가? 나 또한 내 인생 하나 간수하기 버거운 터라 이해는 하지만 못내 아쉽기는 했다. 그리고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이라는 책은 이 아쉬움을 더욱 증폭시켰는데, 이 책에서는 잊혀지기도 전에 기억도 되지 못한 사람의 삶을 말하고 있었기 떄문이다.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은 책제목 그대로 국제법무학자였던 故 백충현 씨를 다루고 있는 전기다. 인물의 탄생이 아닌 인물의 사후 있었던 훈장 추서식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인물의 시시콜콜한 어린 시절보다는 그의 본격적인 행적만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1957년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한 백충현 교수는 '국제법'을 공부하기 시작 한다. 그 당시 '설법'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변호사나 판검사와 같은, 한국 내 권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방향을 택할 법도 했지만 그는 그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오늘날 국제정세가 하나의 국가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당장의 앞날보다는 더 멀리 보셨던 것이 아닐까?


 그가 생애동안 했던 여러 일 중  독도 영유권 분쟁이나 프랑스 외규장각 문건 반환건은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언론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귀에 익숙하면서도 그 이상 알고 있거나 알고 싶어하진 않는다. 타인들이 굳이 걸으려하지 않는 길을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닌 大를 위해 걸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애잔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의 외길인생은 차치하고, '전세계적으로 국제법이 잘 작용하고 있는가?'를 쉽게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당장 UN의 영향력이라든지 미국과도 같은 강대국의 이라크 침공들을 생각해보면 이상적인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법적이론이 뒷받침 될 때 정당한 외교가 행사된다고는 하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무수히 많은 부조리로 가득차있지 않은가? 


 하지만 부조리에 굴복하기보다는 반항해야만 한다. 부조리에 맞서 정의와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기본 원리라고 생각한다. 이에 맞서는 사람들과 단체들이 많아지면서 더욱 '정당함'들이 중요해지고 필요하게 되고 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힘의 원리에 굴복했다면 우리가 독도나 외규장각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었을까? 힘의 원리 속에서도 정의와 양심을 지키며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간 백충현, 그 분을 알게 해준 이 책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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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통령들 - 누구나 대통령을 알지만 누구도 대통령을 모른다
강준식 지음 / 김영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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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24일 종편 방송인 JTBC에서 하나의 특보를 냈다. 그 특보의 여파는 대단했다. 드라마보다 더 놀라운 일이 뉴스에서 펼쳐지고 있다니, 그 얼마나 황당한 일들일까? 평소에도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부터 안중에도 없던 사람들까지 주말에는 광화문에 나와 촛불을 들고 모두 이 사건에 귀를 기울였다. 나 또한 있어서는 안될 일들이 눈앞에 펼쳐짐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저번 달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헌재에서 인용판결됨으로써 일련의 사건들이 1차적으로 마무리된 듯하다. 이러한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정치에 관련된 서적들이 많이 나오는 듯하다. <대통령들의 대통령> 역시 그중 하나였다.

나는 평소 문학 위주의 독서 편식을 일삼아 오던 탓에 비문학 서적들, 그러니까 인문까지는 문학과 밀접하니 그러려니 하지만 사회학 내지는 과학 분야의 책들을 보면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럼에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는데, 그중 특히 정치에 관련된 서적은 더욱 그렇다. 정치라는 게 같은 사건을 바라보더라도 정치적 성향이 어떠냐에 따라서 해석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여러모로 아쉬웠다.

<대대>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부터 지금은 전 대통령인 박근혜까지, 각 대통령들의 삶들을 바라보고 공과 과를 뚜렷이 밝히려는 책이다. 대통령마다 약 50p 가량의 페이지를 할애해서 분량에서만큼은 중립적으로 보인 듯했고, 나 역시 한국사에 관심이 없는 편은 아닌지라 이런 정보들을 정리해 주는 책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기에 이런 점들은 괜찮았다.

문제는 분량 면에서는 나름 충실해줬던 중립성이 내용 면에서는 깨져버렸다. 우선 故 장면 전 총리과 같은, 오랜 기간 대통령으로 있지 못했고 그렇기에 공과 과를 따질만한 일이 많지 않았던 대통령들은 그들의 어린 시절이나 성품에 대해 말한 것은 이해를 한다. 하지만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대통령들의 경우에도 일관된 레퍼토리를 가져간 것은 아쉽다. 책의 목표 자체가 대통령들의 인생을 말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인생을 50p에 담으려면 차라리 자서전을 보는 편이 낫다. 서문에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권력이 탄생하는 것부터 서술'한 것이 아니라 '인물의 탄생'부터 서술하곤 했으니- 사실 제일 큰 문제였다고 생각한 건 두 번짼데, 사실만을 나열하고 가치판단은 자제해도 모자를 판에 중간중간 섞여 있는 저자의 경험들은 신뢰성의 문제였다. 객관적으로 묘사해야 하는 서적에서 신뢰성을 잃는다는 것은 꽤나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대통령에 두루두루 쓰인 사주 이야기나, 전두환이나 박정희의 최대 과라고 할 수 있는 독재와 민간인 사살, 예컨대 부마항쟁과 같은 굵직한 이야기들은 아예 달리지도 않거나 경제를 살렸다!라는 공에 가려 오직 한 꼬다 리만을 차지할 뿐이었다. 가치판단이 확실히 안된다 가정해도 사실 정도는 나열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정치적 색채는 차치하고, 서술에 신뢰성이 떨어지다보니 영 술술 읽히질 않았다. 차라리 "Tu fui, ego eris(나는 그대였나니 그대도 내가 되리라.)"라는 야심차게 시작한 서문이 가장 좋았다. 서문에는 적절한 인용과 저자의 야심찬 포부, 흥미로운 서술들이 이어질 것 같아 큰 기대를 했지만 약간은 용두사미가 아니었나 싶다. 갑자기 탄핵이라는 건국 이래 최대의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약간 마감에 쫓긴 탓일까? 싶기도 하고- 각설하고,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공만 있는 대통령도, 과만 있는 대통령은 없다. 책표지서부터 좋은 대통령과 나쁜 대통령을 언급하고 서술을 시작했는데, 그만큼 적절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대통령의 공과 과, 좋고 나쁨을 바라본 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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