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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모노 에디션, 알라딘 특별판)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
알베르 카뮈 지음, 김예령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평점 :

프랑스 문학이 내 길이라고 착각하던 학부생 때 <<이방인>>을 인생소설로 꼽았고 카뮈 편집자로 있던 적도 있지만, <<이방인>>을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첫 문장이야 워낙 유명하다지만 서사가 거친 데다가 주인공이자 카뮈의 목소리를 투영한 뫼르소라는 인물에 이입하기가 어렵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첫 문장 원툴'이란 생각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이방인>>을 소설이 아닌 철학 이야기récit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물론 분류는 엄연히 소설roman이지만). 여전히 투박하고 이야기에는 구멍이 있지만, 뫼르소를 '엄마가 죽어도 무덤덤한 싸이코패스'가 아니라 '심성이 비틀어지지 않았지만 약간은 서툰 평범한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장례식 때 눈물 하나 흘리지 않는 아들이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빈 자리를 느낀다는 설명을 (거듭) 덧붙이는 걸 보면 말이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들의 죽음, 마리의 청혼과 뫼르소의 사형, 자연인 뫼르소와 사형수 뫼르소, 무의미한 변론과 유의미한 판결. 서로 충돌하는 시작과 끝 두 세계의 메타포가 노골적이리만큼 끊임없이 펼쳐진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항상 황금기를 누렸던 유럽이 20세기에 겪은 비극을 차치하더라도, <<이방인>>에서 반복하는 '왜?'는 지금도 유효하다. (카뮈와 같은 시간을 살았던 시몬 베유의 말을 빌리자면) "실제의 악은 우울하고 단조롭지만 실제의 선은 새롭고 매혹적"인데, 우울하고 단조로울 새도 없이 새롭고 우울한 실제의 악이 숨 쉴 때마다 터져나오니 말이다. <<이방인>>은 끊임없이 튀어 나오는, 영원히 멸망시킬 수 없는 악과 대면할 것을 권한다. 이런 상황에서 카뮈의 반항론이 계속 생명력을 갖는 건 당연한/당연해야 할 일이다. 작품 후반부 뫼르소가 자유간접화법으로 울분을 토하는 장면은 실제의 악과 마주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반항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뫼르소의 캐릭터는 시지프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안과 겉>>에서 카뮈는 "삶에 대한 절망 없이 삶에 대한 사랑도 없"으며, "앞으로 나아간 줄 알았는데 사실 뒤로 물러설 때가 있"단다. 노벨문학상도 타고 프랑스의 셀럽으로 즐겁게 살다 간 양반도 절망 속에 살며 뒤로 물러설 때가 있는데, 우리라고 어쩔 도리가 있겠나? 계속 절망하고 물러서면서 악과 대면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