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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 책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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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억의 신뢰도는 0일까 ∞일까. 논픽션에서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미덕이지만, 픽션에서는 재현은커녕 얼마나 잘 재구성하는지가 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인간은 애초에 불완전하기에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차라리 객관적인 기억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렇게 '새롭게 조명'을 잘하는, 너무도 잘해서 매년 작품을 쏟아내는 작가가 있으니 그게 아멜리 노통브다. 이번 신혼여행에서 '신간' 띠지가 붙은 [L'Impossible retour]를 발견하고는 '아 이게 올해 작품인가?'해서 샀건만 알고 보니 24년 작품이었고, 그 후로 두 편이나 더 내놨다. 이렇게 매년 새로운 픽션을 써내려가는 능력이야말로 소설가의 미덕일 테다.


무튼 이번에 읽은 [자매의 책]은 22년 작품으로, 가족들을 이야기하는 최근 작품 성향을 생각하면 아주 자연스러운 책이라 하겠다. 21년 작인 [첫 번째 피]가 아버지를 기렸다면 이번에는 언니다. (25년 작인 [tant mieux]에서는 어머니를 다룬단다.) 어떻게 언니를 다뤘나 하니, 노통브가 쓴 글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순박하고 청순하다. 기껏해야 몇 번의 자살과 아동학대뿐이라니, 이거 완전 청소년물이 아닌가.

[첫번째 피]에서 외교관이었던 아버지의 생애를 추억하며 그 그림자를 쫓았다면, 이번에는 부모의 방임이라는 결핍 속에서 자매가 서로를 어떻게 기억하고 구원하는지에 집중한다. 여기서 자매는 타인이 아닌 '나의 확장'이다. 결핍의 기억은 자매 모두에게 선명히 각인되었으니, 두 사람이 하나의 삶을 살아갔다고 해도 무방하다. 언니의(혹은 언니를 위한) 책(livre de sœur)이 아닌, 자매의 책(livre des sœurs)인 이유가 있다.


그정도로 두 자매의 애틋함이 절절하게 묘사되는데, 노통브 특유의 '시니컬하게 자전적 요소 툭 끼워넣기'가 계속 빛을 발한다. 사실 이전 작들을 모두 챙겨본 독자라면, 일본을 비롯한 외국 생활에 익숙한 '나'가 벨기에에만 머무는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 어린 아이의 눈에는 일본에서든 벨기에에서든 프랑스에서든 어떠한 모습이든 방임의 기억으로 남았으리라. 사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디에도 쉽게 정착하지 못한 어린 노통브의 삶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보편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소설가 노통브가 풀어내는 자기 이야기에는 부모가 있는/있었던 사람이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마성의 매력이 있다. 아버지와 언니를 기억하는 방식은 묘한 온도 차이가 있는데, 어머니를 기억하는 방식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여담이지만 노통브가 초기작들처럼 여전히 파괴적이고 냉소적이기만 할 거라 짐작했는데, 최근의 행보는 전혀 그러지 않다.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첫번째 피]부터 어쩐지 낯선 모습이다. 날카로운 메스를 들고 가족의 심장을 해부하는 듯하면서도 결국 그 안에서 온기를 찾아내려는 시도들은 계속 응원해주고 싶다. 이 소설이 다루는 주제도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가족 안의 이방인' 같은 감각이기에 독서모임을 하기에도 좋은 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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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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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불문학에서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작가가 생겼다. 흠잡을 곳 없는 탄탄한 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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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모노 에디션, 알라딘 특별판) 열린책들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
알베르 카뮈 지음, 김예령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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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학이 내 길이라고 착각하던 학부생 때 <<이방인>>을 인생소설로 꼽았고 카뮈 편집자로 있던 적도 있지만, <<이방인>>을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첫 문장이야 워낙 유명하다지만 서사가 거친 데다가 주인공이자 카뮈의 목소리를 투영한 뫼르소라는 인물에 이입하기가 어렵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첫 문장 원툴'이란 생각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이방인>>을 소설이 아닌 철학 이야기récit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물론 분류는 엄연히 소설roman이지만). 여전히 투박하고 이야기에는 구멍이 있지만, 뫼르소를 '엄마가 죽어도 무덤덤한 싸이코패스'가 아니라 '심성이 비틀어지지 않았지만 약간은 서툰 평범한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장례식 때 눈물 하나 흘리지 않는 아들이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빈 자리를 느낀다는 설명을 (거듭) 덧붙이는 걸 보면 말이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들의 죽음, 마리의 청혼과 뫼르소의 사형, 자연인 뫼르소와 사형수 뫼르소, 무의미한 변론과 유의미한 판결. 서로 충돌하는 시작과 끝 두 세계의 메타포가 노골적이리만큼 끊임없이 펼쳐진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항상 황금기를 누렸던 유럽이 20세기에 겪은 비극을 차치하더라도, <<이방인>>에서 반복하는 '왜?'는 지금도 유효하다. (카뮈와 같은 시간을 살았던 시몬 베유의 말을 빌리자면) "실제의 악은 우울하고 단조롭지만 실제의 선은 새롭고 매혹적"인데, 우울하고 단조로울 새도 없이 새롭고 우울한 실제의 악이 숨 쉴 때마다 터져나오니 말이다. <<이방인>>은 끊임없이 튀어 나오는, 영원히 멸망시킬 수 없는 악과 대면할 것을 권한다. 이런 상황에서 카뮈의 반항론이 계속 생명력을 갖는 건 당연한/당연해야 할 일이다. 작품 후반부 뫼르소가 자유간접화법으로 울분을 토하는 장면은 실제의 악과 마주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반항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뫼르소의 캐릭터는 시지프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안과 겉>>에서 카뮈는 "삶에 대한 절망 없이 삶에 대한 사랑도 없"으며, "앞으로 나아간 줄 알았는데 사실 뒤로 물러설 때가 있"단다. 노벨문학상도 타고 프랑스의 셀럽으로 즐겁게 살다 간 양반도 절망 속에 살며 뒤로 물러설 때가 있는데, 우리라고 어쩔 도리가 있겠나? 계속 절망하고 물러서면서 악과 대면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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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김다연 외 지음 / 편않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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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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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돈의 지도책 - 세계 경제를 읽는 데이터 지리학
다리우시 보이치크 지음, 제임스 체셔.올리버 우버티 그림, 윤종은 옮김 / 윌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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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금융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기 쉽게 설명한 책이네요. 교재로도 괜찬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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