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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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 _ 애나 번스
Milkman _ Anna Burns

최근 두 명의 여성 연예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 모두 악성 댓글과 부당한 사생활 침해, 근거 없는 소문에 시달렸다. 그것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단연 언론이다. 두 사람의 죽음에 분명 책임이 있는 언론은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펜을 들지 않는다. 물론 악성 댓글러들 역시 어떠한 죄의식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8년 맨부커상 50주년 수상작인 <밀크맨>은 부당한 소문과 싸우는 열여덟 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의 배경은 1970년대 정치적으로 혼란한 북아일랜드의 어느 마을이다.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통제된 사회로 사소한 말 한마디와 행동에도 정치적 테러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우리에겐 1970년대 막걸리 보안법으로 시민을 통제했던 유신 시대를 상기시킨다.

책 읽기와 런닝을 좋아하는 주인공 ‘나’에게 ‘밀크맨’이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접근하면서 평범한 일상은 엉망이 된다. 밀크맨은 이 지역의 국가 반대자(IRA, 아일랜드공화국군)의 리더급에 해당하는 인물로 마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물과 주인공이 불륜관계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마을 전체에 퍼져 나간다(소문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주인공의 형부, 이놈이 제일 쓰레기다). 주인공은 이러한 상황을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소문은 커져만 간다.

소문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이 소설이다. 소문은 사실 따위는 하나도 관심이 없다. 소문은 선정성과 파급력만을 필요로 한다. 이 마을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주인공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듣고 싶은 대답만을 주인공에게 강요할 뿐이다. 길을 걸으며 책을 읽는 원래부터 좀 이상한 아이라는 낙인을 찍고서 말이다.

1970년이라는 시대적 한계를 분명히 인지하고 책을 읽었는데도 젠더 문제에 관해서는 지금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런 착각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속에 답답함으로 남아 책을 읽는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다. 북아일랜드의 비정상적인 정치 상황이 그곳에 속한 사람들의 사고마저도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버린 거 같다.

길을 걸어가며 책을 읽으면 이상한 여자로 낙인찍히던 1970년의 북아일랜드와 속옷 상의를 입지 않은 것이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실리는 2019년의 대한민국. 둘 다 정상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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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 - 평화라는 이름의 폭력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평화교실 8
이찬수 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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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가 시리아 북부에 주둔한 미군의 철수를 단행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터키는 곧바로 시리아 북부에 있는 쿠르드족을 침공했다. 언론은 미국이 ISIS를 상대로 함께 싸워준 쿠르드족을 배신했다고 보도했다. 미군의 철수가 동맹인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의 기습공격으로 이어질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트럼프는 터키에 "나쁜 생각"이라는 한마디의 언급 외에는 특별한 제재를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쿠르드족은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세계의 분쟁>은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주최한 ‘평화아카데미’의 강의문을 단행본으로 발행한 책으로 평화 담론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기획된 ‘평화교실’이라는 시리즈물의 8번째 책이다. 평화라는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7권의 책이 이미 출간되어 있으니 평화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이 책 <세계의 분쟁_평화라는 이름의 폭력들>은 제목 그대로 세계 여러 곳에서 평화라는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는 분쟁의 원인과 실상을 대표적인 다섯 곳의 분쟁지역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본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분쟁지역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시리아전쟁, 우크라이나 사태, 보스니아 내전, 아일랜드섬이다.

각 지역은 정치, 종교, 민족 등 다양하고 복잡한 사안이 얽힌 대표적인 분쟁지역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1장 분쟁의 심층’에서 이러한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정체성 갈등으로 진단한다.자기중심주의에 기초한 정체성의 대립과 갈등은 기존의 사회적 균형관계를 깨뜨리고 동요와 혼란의 상황을 만든다. 이러한 대립과 혼란이 극에 달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면 그것이 바로 전쟁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에 자신의 입장만을 투영해 ‘성전’ 또는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선동한다.

결국, 자기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강조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에게는 도전이나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 책에서 사례로 든 다섯 곳의 분쟁지역이 모두 정치, 민족, 종교 등의 정체성을 자기 집단에 유리하게 이용하고, 이런 정체성의 충돌이 어떤 식으로 분쟁으로 전개되어 나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언제든지 무력충돌을 동반한 분쟁의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남북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일간 또는 한중간의 분쟁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정치분쟁이든 영토분쟁이든 어떤 형태의 분쟁 발생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국제적인 힘의 역학관계도 매우 복잡한 곳이다.

남북은 동일한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정치적 정체성은 상이하다. 다른 분쟁지역의 사례처럼 자기 집단의 정체성 강조는 다른 집단에 위협이 되고 이것이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 어떤 해법이 있을지 이 책에서 다소나마 힌트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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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 지구를 살리는 어느 가족 이야기
그레타 툰베리 외 지음, 고영아 옮김 / 책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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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지구를 살리는 어느 가족 이야기, Scener ur Hjartat) _ 그레타 툰베리, 스반테 툰베리, 베아테 에른만, 말레나 에른만

얼마 전에 열린 유엔총회에서 한 여성이 단연 언론의 중심에 섰다. 그녀는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뉴욕에 온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다. 유엔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서 한 그녀의 연설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것과 더불어 한 장의 사진이 매우 화제가 되었는데, 그레타 툰베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인성에 딱 맞는 수준의 치졸한 트위터로 그레타를 조롱했고, 그레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에 응수했다.

그레타의 가족이 공동으로 집필한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은 그레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그레타 툰베리가 평범한 아이에서 금요일마다 등교를 거부하고 기후 변화에 대한 1인 시위를 하는 환경운동가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엄마인 말레나 에른만의 목소리로 담고 있다. 그리고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진 스웨덴에서 장애를 가진 두 딸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좌절을 극복해야 하는 과정인지 책에 잘 나와 있다.

소위 지구온난화로 많이 알고 있는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의 위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앞에 당면한 시급한 과제임을 그레타 가족은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정책결정자들은 그들의 목소리보다는 자국의 이익과 경제 논리가 더 우선인 듯하다. 파리기후협정에서 채택한 2도씨의 목표는 공허한 소리로 들리고, 지금의 추세라면 그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5% 이하라고 한다.

결국 기후 변화의 위기를 막는 방법은 국가 간의 협정이나 정책을 통한 규제보다 각 개인의 인식 전환이 먼저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보다 다소 불편한 삶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불편을 감수할 자신이 있다면 그 힘을 모아 정책결정자들을 여론으로 압박할 수 있다. 정책결정자의 최대 관심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낭만적인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현실 민주주의에서 행동하지 않는 정책결정자를 움직이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들이 많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에 대한 의견도 다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환경운동가의 주장이 다소 과장되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정책결정자들의 위기의식이 너무 안이할 수도 있다.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은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사실에 관해 이야기한 책은 아니다. 우리에게 기후변화에 대한 관점의 전환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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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쟁 - 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
임지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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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의 불법성은 한일간의 역사 인식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인정되면 식민지 시기에 벌어진 강제동원 및 일본군 위안부, 식민지 수탈 등에 대한 사죄와 배상 청구의 정당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 해석의 문제가 사법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면 증거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홀로코스트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관련 기록이 있느냐” 또는 “사실관계가 의심할만한 구석이 없이 명백한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이런 경우 기록이  아닌 생존자의 기억(증언)은 명백한 증거로 인정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은 히틀러의 명령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홀로코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증언 가운데 세세한 부분의 오류를 지적하며 증언의 신뢰도를 깍아 내린다. 이러한 내용을 잘 표현한 영화가 바로 레이첼 와이즈의  “나는 부정한다(Denial)”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주장 역시 같다. 일본군이 개입되어 강제로 동원했다면 일본군의 명령서가 존재할 텐데 이런 명령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그래서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개입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위안부’ 생존자들의 기억과 증언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임지현의 ‘기억 전쟁’은 이러한 과거 역사에 대한 기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생존자의 기억보다 문서의 기록이 우선시되는 실증의 문제에서 시작해서, 역사의 가해자가 역사의 피해자로 둔갑하게 만드는 기억 그리고 누가 더 큰 희생자인지를 경쟁하는 상황까지 복잡한 기억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기억전쟁’은 독일 나치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에 대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억을 통해 반인륜적 비극의 기억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왜곡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고 정의하는데 가해자였던 오스트리아는 자신을 나치의 첫 번째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유대인 학살에 동조했던 폴란드는 나치와 스탈린주의에 의한 자국민의 희생을 더 강조하며 자신을 피해자로 위치시킨다.  

 

이 책은 읽기에 따라서는 우리에게 다소 불편한 주제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온전한 피해자인가?”라는 민감한 질문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피해자로 정의하면 확고한 도덕적 정당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과도한 도덕적 정당성은 자책의 자리를 점점 좁게 만들고 자신의 도덕적 성찰을 어렵게 만든다고 충고한다. 

 

저자는 식민주의 제노사이드나 홀로코스트에 대해 전후 세대는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억의 책임을 통해 홀로코스트와 일본군 ‘위안부’, 식민주의 제노사이드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국제적 기억 연대가 가능하고 더 나아가 이런 비극의 역사적 반복을 막을 수 있다.

 

‘기억 전쟁’과 더불어 홀로코스트를 다룬 자전적 소설인 ‘운명’도 같이 읽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임레 케르테스가 자신의 강제수용소 경험을 토대로 쓴 ‘운명’은 당시의 홀로코스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헝가리의 반유대주의는 최소한 홀로코스트의 방관자 내지는 소극적(?) 부역자였다. 같이 읽어보는 것도 ‘기억 전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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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
윤명숙 지음, 최정원 옮김 / 이학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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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대학교수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발언이 큰 문제가 되었다. 그의 발언을 여기에 다시금 옮기는 것 자체가 매우 불쾌하기 때문에 언급하지는 않겠다. 반일종족주의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나온 발언이고, 발언 중간에 이의를 제기한 여학생에 대한 적절치 못한 표현(본인은 ‘조사’라고 해명하였다.)은 더 문제가 되었다.

 

2015년 12월에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타결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타결하고 종결하였다. 근데 무엇이 종결되었는가? 임지현 교수의 ‘기억 전쟁’에서 가해자가 행한 잘못에 대해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제  3자(정부)가 그것에 대해 용서를 한다는 것은 위선이라고 얘기한다. 대한민국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대신해 일본의 사과를 수용하고 그들을 용서할 권리를 누가 부여했는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는 신탁에 가까운 권한을 보장받는 것인가?  

 

이런 시점에 한 번쯤 꼭 읽어 보기를 바라는 책이 있다. 윤명숙의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이다. 저자인 윤명숙은 일본 근현대사 및 한일관계사를 연구한 학자이다. 김학순 할머니와의 인터뷰가 계기가 되어 일본군 ‘위안부’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 책은 저자가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9년간 연구한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연구성과를 정리한 것으로 일본에서는 2003년에 출간되었다. 한국에는 2015년에 번역되었는데 최초 출간보다 너무 늦게 번역 출간된 것도 이상하지만, 저자가 한국 유학생인데 다른 사람(최민순)을 통해 번역 출간된 점은 더욱더 의아하다. 

 

저자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한국어판 서문에 짤막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 기술된 일본군 ‘위안부’의 내용이 부분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생각하는 ‘위안부’ 이미지와 괴리되는 부분에 대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인 강제연행에 대한 부분이다. 

 

지금은 식민지 조선의 일본군 ‘위안부’의 징모과정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취업 사기와 인신매매라는 것이 많이 알려졌지만, 2000년만 해도 어린 소녀가 총칼을 앞세운 일본군에 의해 머리채가 잡힌 채 강제로 끌려가는 이미지가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일본군 ‘위안부’의 징모 모습이었다. 이것은 학문적 연구 성과가 대중에게 전달되기 이전에 영화와 드라마, 소설에서의 일본군 ‘위안부’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더 크게 각인된 결과였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일부는 일본군 ‘위안부’ 모집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이야기냐며 분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는 징모 뿐만 아니라 이송, 운영, 관리와 더불어 식민지 조선의 사회 경제적 구조 등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이다. 징모 과정에서 군의 직접적인 개입이나 강제성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일본군 ‘위안부’제도의 불법성과 반인권성, 일본군의 책임 모두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징모과정의 강제성에만 집착하면 할수록, 일본이 만들어 놓은 강제성의 허구라는 프레임에 걸려들게 된다. 일본이 만들어 놓은 조선 식민지의 사회 경제적 구조의 틀 안에서 일본군 ‘위안부’제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을 접할 때마다 많은 분노를 느끼지만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통해 과연 누구에게 더욱 명확하고 정확한 어조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야 할지 알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아마도 윤명숙의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가 많은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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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심 2020-05-25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으로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