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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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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1903년에 태어나서, 1950년에 죽었다. 1903년에서부터 1950년은 전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유럽에 있어서는 격동의 시대였고, 구체제가 몰락하는 시기였으며, 일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기였다. 책 뒤의 조지 오웰의 연보를 살펴보면, 그가 이러한 격동의 시대에서 얼마나 다이내믹한 삶을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명문 이튼 스쿨을 졸업했지만,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 버마에서 경찰 생활을 하였고, 유럽의 밑바닥 생활을 스스로 자원하여 체험하였으며,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였다가 적과 내통하는 자로 몰리기도 하였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국 BBC에서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의 다양한 경험들은, 그가 집필한 수많은 에세이에 여실히 녹아들어가 있다. 그 일부인 29편의 에세이를 묶은 것이 바로 이 책 <나는 왜 쓰는가>인데, 이 에세이집은 그간 <동물농장>과 <1984>의 작가로만 널리 알려졌던 조지 오웰의 여러 다른 면모를 잘 드러내 준다.

먼저 드러나는 것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및 '정치와 영어', '작가와 리바이어던' 등에서 보이는 엄정한 작가로서의 면모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작가의 글을 쓰는 동기를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의 4가지로 나누어 말하면서, 본인이 지난 10년을 통틀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중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은 '정치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부분이다. 물론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비추어 보듯, 그가 정치적 사유와 그에 따른 태도를 글쓰기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놓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글들이 어떤 정치적 팜플렛이 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리고 정치적인 글들이 정치적인 팜플렛의 지위를 벗어나는 순간은 그것이 하나의 예술이 될 때이다. 그의 그런 태도는 짧은 에세이 '작가와 리바이어던'에서 적확히 드러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정치와 영어'를 보면, 그의 작가로서의 언어를 다루는 태도, 그리고 동시에 그가 하나의 예술가인 작가로서, 좋은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 얼마나 부단히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화가가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한 번의 붓터치에도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단 한마디의 글에도 가장 최적의 표현을 찾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것은, 그가 생각하기에 작가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또다른 면모는 그의 정치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가로서의 면모이다. 그의 정치적인 에세이들을 읽어보면, 사실 그의 정치적인 소견이 상당히 이질적인 것들이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자신이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그는 생애 내내 전체주의에 맞서는 것을 일종의 사명으로 생각했다. 또한 식민지 시대 버마에서 경찰 생활을 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르지만,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가졌으며, '간디에 대한 소견'에서 밝히는 것처럼. 맹목적 평화주의에도 그것의 비현실성을 들어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또한 러시아의 숙청 등을 예로 들며, 공산주의에도 내내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애국주의에 찬성하였으며, 본인 스스로 2차 세계대전 중 국가에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사실 그가 말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것도, 이에 비추어 보면 조금은 모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가진 정치적 견해의 의미보다도, 이러한 견해들의 원천이 된 그의 경험이다. 즉 그의 이러한 일견 복잡해 보이는 정치적인 스탠스는 그의 철저한 경험의 산물이다. 이 말은 역으로 그가 그저 앉아서 사색과 글쓰기에 몰두하는 그런 류의 인간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소위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형이었고, 그가 쓰는 거의 모든 글들은 그가 휘두르는 일종의 무기였다. 그는 그가 가진 거의 유일한 무기가 글쓰기임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이 꽤나 강력한 무기임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스페인 내전에 달려가 직접 총을 들고 전장으로 나서기도 하였고, 전쟁 기간 중 국가의 선전물로 이용되는 BBC에 기꺼이 군에 복무하는 심정으로 일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전생애에 걸쳐 글과 그의 온몸으로 일종의 정치적인 투쟁을 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즉 그럴싸한 철학 이론을 내뱉다가, 스위치 하나를 바꿔다는 것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태연하게 그와 가장 극에 있던 이론을 내뱉는 '앉아서 말만 하는 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이었다.  

동시에 이 에세이집의 많은 글들에서 그의 통찰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그것은 어떤 정치적인 통찰에서부터 미래 세계의 세상에 대한 통찰, 우리 일상 생활에 대한 통찰에까지 미쳐있다. '당신과 원자탄' 같은 글에서는 어떤 정치적인 통찰이 소름을 돋게 하며, 일부의 글들은 지금 시대에도 어떤 미래 리포트의 일부로 가져다 놓아도 손색이 없다. '코끼리를 쏘다', '행락지'와 같은 글들은 우리 미래의 생활에 대한 일종의 예언으로서, 더 나아가 인간의 삶에 대한 깊숙한 통찰로서 놀라운 식견을 보여주며, '"물속의 달"'을 통해 일종의 자기반영적 예언이 된다. 

   
  (전략) 그리고 그렇게 되면 지고의 행복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포커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한꺼번에 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울러 삶이 점점 더 기계화되는 현실에서 민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가, 옛것을 선호하는 감상적 취향에 불과한 게 아니라 십분 정당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행락지' 中, p. 247-248.
 
   

 

한편으로, 그는 현실을 꿰뚫어보는 사람들이 늘 그러하듯, 냉소적이었다. 그의 어떤 냉소들은 그가 쓴 글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미래 사회의 끝을 어느 정도는 예견하고 있었고, 동시에 현 시대의 세상이 어떠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굴러가는지 막연하게나마 깨닫고 있었다. 그의 그런 깨달음은 분명히 막연한 것이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막연한 깨달음이나마 갖추고 있지 못하기에 그것은 분명히 가치 있는 것이었고, 동시에 그를 괴롭히는 것이기도 하였다. 어쩌면 그가 이튼 졸업생으로서 유일하게 식민지 경찰 생활을 택하고, 그 이후에 빈민의 삶에 스스로 뛰어든 것은 천재적인 통찰가들이 흔히 보여주는 일종의 '부조리함에 스스로 처하기' 혹은 '운명에 맞서기'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많은 글들은 그가 밝힌대로, 전체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이지만, 동시에 어떤 불안한 예감 같은 것들이 드러나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냉소로 나타나기도 하고, 우려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가 <1984>와 같은 소설을 구상한 것도 아마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어쩌면 그는 우리의 세계가 이대로 진행된다면, 분명히 1984년에는 그와 같은 전체주의의 세계가 거대한 권력을 이루리라고 믿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그의 글로서, 그리고 온 몸으로서 끊임없는 투쟁은 나에게는 어떤 두 가지의 심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 하나는 일종의 연민이다. 이미 끝을 아는 사람들, 혹은 전체적인 면모를 아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일종의 패배주의가 깃든 자기방어. 그리고 현실주의자들이 가지게 되는 냉소들과 그것이 자아내는 일종의 자기 혐오들이 일으키는 연민 말이다(물론 이것은 조지 오웰에 대한 연민만은 아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고귀함이다. 패배가 주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개의치 않고, 자신의 병약한 몸의 뼛가루를 재료 삼아 글을 쓰며, 계속 맞설 것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는 고귀함 외에 다른 무엇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는 현실의 통찰을 통해 인간이 결코 선한 동기로만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 선함을 믿으려고 애썼다.

오웰의 예상과는 달리 1984년에 우리는 조금은 다른 세계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조금은 다른 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1984년도 세계의 상당수는 전체주의의 세계였으며, 전체주의의 세계는 아직도 여기저기 곳곳에 그 기운이 남아있다. 그리고 내가 오웰만큼의 통찰력은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적어도 거의 확실해보이는 것은 이 전체주의의 기운은 영원히 어딘가에는 남아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지나간 역사를 바꾸려 들 것이고, 단어의 의미를 바꾸고자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아직도 수많은 오웰들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의 수많은 오웰들에게 깊은 연민을. 그리고 고귀함을.   

   
 

스코티 말고는 모두가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압수당해 혼자만 담배 없이 있는 그를 보기가 너무 딱해서 나는 담배 말아 피울 재료를 그에게 좀 주었다. 우리는 부랑자 감독의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린 학생들처럼 숨겨가며 담배를 피웠다. 담배는 묵인해주되 공식적으론 금지였던 것이다. (중략)
그 때 뒤에서 서둘러 다가오는 발소리가 나더니 누가 내 팔을 두드렸다. 키 작은 스코티였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우릴 쫓아온 것이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녹슨 깡통 갑 하나를 꺼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신세 진 걸 갚으려는 사람의 표정 같았다.
"자 이거, 친구." 그가 다정하게 말했다. "자네한테 담배를 좀 빚졌잖아. 어제 나한테 선심을 썼지. 아침에 나올 때 부랑자 감독이 내 담배꽁초 갑을 돌려주더라구. 친절은 베풀면 돌아온다니까. 자 여깄네."
그러면서 그는 내 손에 눅눅하고, 다 썩어빠지고, 구질구질한 담배꽁초 4개를 쥐여주는 것이었다.

                                                                               '스파이크' 中, p. 1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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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0-11-13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허..다 쓰고 나니 조지 오웰이 가장 쓰지 말라는 식의 글이 되어 버렸음..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