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많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온라인 서점을 자주 이용하게 된 이후부터는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잘 사지 않게 되었다. 가끔 서점에 가서 여러 신간들을 돌아보고는 하는데, 사고 싶은 책이 있어도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그냥 세세하게 보기만 하고는 그 목록만 휴대폰에 적어둔다. 그리고는 얼른 집에 돌아와 온라인 서점 보관함에 그 책들을 던져 넣는다. 책 값을 줄여보려는 얄팍한 시도이지만,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대부분 그런 책들은 그 이후에도 잘 사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글쎄. 나중에 온라인 서점에서 사려고 하면 왠지 그 책을 오프라인에서 보았을 때의 가벼운 흥분이 되살아나지 않는다. 뭔가 의무감에서 사게 된다는 것 같달까. 책이건 뭐건 간에 일단 지름신이 왔을 때 질러야 하는 걸까.
알라딘 8기 신간평가단이 되었다.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신간을 써먹어 볼 때다. 여기에 신간을 몇 개 적어두면 운 좋게 그 책 중 하나를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을지도.
종교학 세계명저 30선 / 시마조노 스스무
이렇게 30선이니, 100선이니 하는 책들은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일단 이런 기회가 아니면, 내가 절대 시도해보지 않을 책들을 간접적으로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예전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그 중 몇 권의 책들은 실제로 다음의 독서로 이어지기도 한다. 종교학에 대해 여러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책으로 가벼운 워밍업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종교라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지 않으면 세상의 많은 것들을 그대로 놓쳐 버리고 만다. 우리 사회에서는 종교가 약간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조금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아마도 한국의 일부 개신교의 행태가 그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금도 종교라는 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기도 하고, 살아나기도 한다. 부정을 하건 긍정을 하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종교는 큰 부분이다. 그것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의 문학적 에세이 혹은 정치적 칼럼들. 무엇보다도 제목이 매력적이다. 오래 전부터 왜 나는 뭔가를 쓰려고 노력하는가-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데,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모두가 뭔가를 쓰려고 하는 시대, 이런 시대에서 이 질문은 나뿐만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도 궁금한 부분일 것 같다. 이 대작가는 과연 무엇을 위해서 쓰고 있는가. 궁금해진다.
20세기 문화 지형도 / 코디 최
조금은 기대반, 우려반 되는 책이다. 이 책 한 권으로 20세기 문화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고, 너무 서양의 문화흐름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예를 들어 그런 우려는 이런 것이다. 왜 독립영화관은 썰렁한데, '프랑스 영화 특별전'에는 사람이 넘쳐나는 것일까.) 지은이의 약력으로 볼 때에, 설익은 상태에서 있어 보이는 이론들만 줄줄이 꿰어 놓은 책이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되지만, 전체적인 목차 구성은 상당히 흥미가 간다.
민주주의는 거리에 있다 / 제임스 밀러
유럽의 신좌파에 대해서는 몇 가지 책을 읽어 보았는데, 미국의 신좌파에 대해서는 별다른 저작을 읽어 본 기억이 없다. 그들의 활동상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기대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일부 사람들에게는 민주주의는 거리에 나와서는 안되는 것이다. 국회의사당에 갇혀 있거나, 혹은 일부 사람들의 책상 위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하기는 아침 저녁으로 G20 홍보 방송을 지하철 역에서 세뇌되도록 들어야 하는 이 사회에서 뭔가를 기대하기란 여전히 요원한 일이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 / 박노자
주간 <한겨레 21>에 연재되는 박노자 선생의 이 칼럼을 잡지를 살때마다 종종 보곤 했었는데, 책으로 묶어져 나왔다. 띄엄띄엄 불규칙하게 보지 않고 한꺼번에 읽을 좋은 기회다. 외국인이자(물론 귀화는 했지만), 자칭 무정부주의자인 저자가 우리 고대사를 보는 시선은 기존의 학계와 다르게 독특한 측면이 있다. 이런 표현이 적당할런지 모르겠지만 아스트랄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른 시각을 얻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박노자 선생의 글은 재미있다. 그 시선의 독특함을 넘어서 그 재미 때문에라도 읽어볼만 하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도 이렇게 재밌게 써보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