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애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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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을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로 인해 '박열'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미실>의 김별아 작가의 소설로 드디어 그와 만났다.

 

 


김별아 작가가 주목한 인물은 이번에도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었다. 1926년 봄, 도쿄 대심원 대법정을 흔들었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삶은 그 자체가 '인간증명'이었으며 용맹스러웠다. 죽음이 뻔히 보이는 길을 걸어가면서 한치의 두려움도 없었던 것일까. 어린 나이의 그들은 열정적이었고 독했다. 그들의 인생에 있어 가장 강렬했던 순간을 담아낸 작가의 문체는 생각보다 쉽고 간결했다. 술술 읽히는 페이지 사이로 분노보다는 존경을, 상처보다는 다짐을 담게 만드는 일 역시 작가의 필력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 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오늘을 가열차게' 살아낸 것일까. 우리는. 과연.

 

 



책을 읽으면서 박열과 가네코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너무 느슨하게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얼마전 읽었던 발레리나 강수진의 책 속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한 걸음만 걸어도 나인줄 알게 하라." 이 말에 어울리는 삶을 살다간 사람인데, 역사를 배우면서 그들의 이름을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미안하게도 그랬다.

 

 

 

1923년 9월 도쿄를 중심으로 무려 진도 7에 해당하는 큰 지진이 발생했다. 아비규환 같은 상황 속에서 누가 만들어냈는지 악랄한 괴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는데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푼다더라'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물에 독을 푼 사람은 없었고 이로인해 사람이 죽는 일도 없었다. 누구의 입에서 제일 먼저 튀어나온 말인지 간에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이로 인해 조선인은 억울하게 6천여명이나 학살 당했다. 사과를 하고 범인들을 단죄해도 모자랄 판에 일본은 이를 덮기 위해 조선인 한 명을 지목했고 그의 이름이 바로 '박열'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왔지만 여전히 굶주린 삶을 이어나가야했던 남루한 옷차림의 청년 박열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소설 속 박열은 의젓하고 당당한 사내로 그려지고 있지만 조선을 짓밟은 일본땅에서 그는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을까. 가네코 역시 태어나는 순간부터 외면 당했던 여자였다. 누군가의 호적에도 오르지 못한 채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며 자식에 대한 의무를 저 버린 어머니와 여러 여자를 거느리다가 결국 이모와 도망가버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가네코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났다. 성폭행을 당했고 진심을 외면당한 채 잠자리 상대로 만난 남자 몇몇과도 이별하고 학업과 알바를 이어나가던 중 박열의 시를 읽고 그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남루한 차림 속에서도 감추어지지 않는 당당함에 반해 그의 연인이 되기를 자처했고 가장 든든한 동지로 그의 인생에 걸어들어갔다. 요즘 같은 세상도 아니고 1920년 대, 그것도 일본인 여성이 조선인 남자를 선택한다는 건 보통의 용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더 놀라운 건 박열과 함께 감옥에 갇히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일본측의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녀는 감옥 안에서 자살했다. 박열처럼 버텼다면 함께 출소해서 인생을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박열은 이후 재혼 했지만 가네코는 박열의 고향인 경북 문경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태어나서부터 줄곳 외롭고 쓸쓸했던 그녀에게 사랑하는 이의 고향땅은 따뜻한 위로가 되었을까. 영화 제목은 <박열> 이었지만 김별아 작가의 소설 제목은 <열애>다. 박열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진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열과 가네코. 조선인과 일본인, 남자와 여자. 이 모든 이야기와 더불어 서로의 외로움과 생각까지 끌어안았던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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