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남자의 선택. 그 결말을 왠지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읽어야만 했다. 결말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이 따뜻한 이야기가 날씨로 얼어붙은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줄 것이 뻔했으므로. 겉표지에서부터 꼬마 고양이가 '빼꼼'거리면서 독자를 유혹하는 이 책을 나는 감히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머지 않아 죽습니다

 

로 시작하는 이 책은 뇌종양 4기에 접어든 한 우편배달부의 유서처럼 쓰여진 소설이다. 물론 진짜는 아니다. 언젠가 인생이 끝나는 그 날이 빨리 다가와 악마와 마주하게 된 남자. 명작에서의 악마들은 엄청난 부나 젊을을 약속하는 것과 달리  이 소설 속 악마는 약간 치사하게도 하루의 수명을 약속하며 딜을 제시했다. 빅찬스라고 뻥치면서.

 

마치 홈쇼핑에서 매진 임박, 절호의 찬스를 외치는 것과 같이 악마는 세상에서 뭐든 한 가지씩 없앨 때마다 남자의 수명을 하루치 연장해주겠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굉장한 찬스인 것만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을 떠올려보자면. 하지만 홈쇼핑의 달콤함은 그 장점만 생각하게 만들고 그 단점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보기 전에 무이자 버튼을 누르게 만든다는데서 후회를 불러 일으킨다. 악마와의 거래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이 세상을 천지창조한 창세기까지 들먹이며 유래를 거슬러 가 이 계약이 얼마나 남자에게 유리한지 상기시켰지만 결국 그는 108번째 어리석은 바보로 낙찰되었을 뿐이다.

 

p26  세상에서 뭐든 한 가지를 없애면, 생명이 하루 연장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와 떨어져 살면서 남자의 법적 동거인은 사라졌다. 다만 고양이 양배추와 함께 살고 있는데, 이 고양이만이 그가 악마와 거래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이 고양이로 말하자면 동물을 싫어했던 어머니가 어느날 불쌍하다면 줏어왔던 새끼고양이 양상추가 죽고 나서 그 다음으로 입양되어 온 녀석인데, 양상추와 너무 닮아 이름이 양배추가 되어 버렸다.

 

휴대폰을 없애고, 초고과자를 없애고, 영화를 없애는 것과 달리 고양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에서 그는 망설였다. 너무나 많은 추억이 서려있는 반려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고 자신의 하루하루를 함께 메워주는 이 고마운 식구들 세상에서 없애라고 말하고 있다. 악마는. 단 하루의 생명 연장을 위해. 거래란 이런 것이다. 처음에는 유리하게 보이지만 나중에는 결국 손해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것.

 

고양이를 세상에서 없애도 내일을 함께할 고양이는 없다. 남자가 세상에서 사라져도 어차피 고양이와 내일을 함께 할 수 없다. 없애야할까? 고민하던 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결정을 대신한다. 그리고 우편배달부였던 그는 마지막 편지와 고양이 양배추를 아버지에게 배달하기 위해 자전거 폐달을 열심히 밟는다. 내일 그는 사라지고 없을 것이므로.

 

인생은 이런 것이 아닐까. 당장 내일이 사라지게 되더라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것. 이 소설이 내게 말한 바는 바로 그것이였다. 올바른 대답을 낼 줄 아는 당신. 나는 그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 처음 의사로부터 죽음을 언도받았을 때 "죽음'은 그의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악마와의 거래 후 내일 닥쳐온 '죽음'은 그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 죽음은 같은 것이 아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인간에게 살면서 탄생과 죽음만큼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이 것 역시 편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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