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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다른 배경을 가진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서로 다른 부모님에게 태어나,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다. 다른 부모,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는 말은 모두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비슷한 사고를 한다. 그 단적인 예가 ‘성공’에 대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해 일명 sky라는 대학교를 나와서 의사, 판사, 변호사 등의 전문 직업이나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누구나 이런 삶을 성공적인 삶이라고 규정하고 선망한다. 도대체 우리는 왜 다른 사고를 가지고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음에도 비슷한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비슷한 성공을 꿈꾸는가? 같은 한국 땅에서 같은 문화권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면 도대체 그 문화는 누가 만든 것인가?
‘생각의 좌표’라는 책은 이런 질문에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을 포함해 학교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서 특정 정보를 올바른 정보로 인식시키고 다수를 이루지 못한 소수의 지식은 틀리고 도덕적이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더 큰 문제는 누구도 거기에 의문을 제시하지 않으며, 자각하지도 못한 채 각자가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자발적 복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배세력에 의해 주입되고 세뇌된 의식을 벗고 발가벗은 존재가 되자는 것이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벗어내고 존재가 원하는 대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출발하자는 것이다. p 72-73”
누구나 우울한 현실에 변화의 씨앗을 심고 싶어한다. 수직 상승하는 전세값과 집값, 쉴 새 없이 오르는 물가. 미동도 없는 월급. 3포세대를 넘어 5포세대로 향해가는 비참한 사회. 하루에도 수십 번 벗어나고 싶으며 바꾸고 싶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는 제자리 걸음이다. 아니 조금씩 후퇴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다수에 들기 위해 어릴 때부터 피똥 싸게 노력하고 ‘나’는 언제나 그 다수에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소수는 ‘나’의 의식 언저리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무능력자, 또는 위험인물로 입력되어있다. 다수를 이루고 있는 조중동은 대표적인 언론기관인 반면 소수인 한겨레는 구독해 본적도 없지만 언제나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신문이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겨레를 읽지 않고도 한겨레가 어떤 신문인지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 한겨레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가까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것으로다.... 이미 부정적으로 의식화 되어 있다. 진보정당은 어떤가?.... 물론 대부분은 알고 있다고 믿고 있다...... ’접근해선 안되거나 접근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p.91”
이 책은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고... 당연히 내 생각은 헤게모니 승리자들의 것이다. 학생 때는‘인 서울’하기 위해 눈물 나게 단어외우고 수학 문제 풀며 역사 연대를 외우고, 사회에서는 다수에 편입되기 위해 토익학원가고 치열한 취업경쟁에 뛰어들며,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폼 나는 폰을 구입하려고 한다. 그것이 나의 자발적인 생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데에 추호의 의심조차 없다. 그래서 지은이는 ‘탈의식’하자고 주장한다. “사람에게는 이기적 선택을 하도록 하는 동물적 본능이 있다. 존재 또는 처치가 의식을 규정하는 일차적 이유다. 그러나 지배세력은 제도교육과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사회구성원들에게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을 갖도록 꾀한다. 그래야 원활한 지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사회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을 위한 의식이라고 굳게 믿게 만든다. 이러한 의식들은 ‘나’라는 이기적이고 개별적인 여과망을 통과해서 저장된다. 그러나 여과망이 있다고 해서 철저히 개인적 특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여과망 자체가 국가나 사회의 의도에 따라 조작되거나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만큼 교육이나 사회적 통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p.20”
인문학 즉, 사람에 대한 공부,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를 공부하는 인문사회학이 중요한 이유이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자발적 복종’의 상태에서 벗어나 내 생각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