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김탁환 지음 / 동방미디어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책들이 넘쳐나고 감당 안 되는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다. 뭘 손에 쥐고 읽어야 될지, 내가 어떤 정보를 찾아 봐야 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제목만 보고 손이 가는 책이 있다. 그 책의 작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응축된 책의 사전 정보도 본 적도 없이 제목에 끌려 사는 책이 있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이라는 책이 그것이다. 서정적이면서도 그리움을 불러오는 제목이다. 뿐만 아니라 산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제목이다. 만나고 이야기하는 중에 상대방에게 나를 기억시킴으로서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알리기 위해 몸부림치고 그 와중에 좌절하고 나의 존재를 다시 인정받기 위해 일어난다. 권력, 명예, 부 등은 개인적인 욕망이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나를 기억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힘을 휘둘러 나의 강인함을 기억시키며,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나에 대한 존경심을 기억시키고, 올바르거나 부정적으로 돈을 사용해서 나의 금전적인 우수함을 기억시킨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동은 상대방의 기억에 나를 각인시키는 작업이다. 그러니, 당연히 잊혀지는 것은 서러울 수밖에 없다. 잊혀진다는 것은 그의 기억에서 나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며, 그의 공간에서 나의 공간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며, 그의 존재에서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잊혀진다는 것은 슬프다. 그래도 오늘도 나는 존재하기 위해 기억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꿈 속에서 즐겁게 술을 마시던 자가 아침이 되면 불행한 현실에 슬피 울고 꿈 속에서 울던 자가 아침이 되면 즐겁게 사냥을 떠나오.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인 줄을 모르고 꿈속에서 또한 그 꿈을 점치기도 하다가 깨어나서야 꿈이었음을 아오. 참된 깨어남이 있고 나서라야 이 인생이 커다란 한 바탕의 꿈일 줄을 아는 거요.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깨어 있다고 자만하여 아는 체를 하며 군주라고 우러러 받들고 소치는 목도이라고 천대하는 따위 차별을 하오. 옹졸한 짓이오. 공자도 당신도 모두 꿈을 꾸고 있소.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또한 꿈이오. p.203 (장자-제물론)”
인생은 꿈과 같다.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꿈처럼 기억된 것은 잊혀진다. 이왕에 잊혀지고 사라질 꿈과 같은 기억이라면 아이처럼 순수하고 밝게, 남녀 간의 사랑처럼 뜨겁고 격려하게, 흐르는 강처럼 차분하고 잔잔하게 기억되자. 꿈이 사라지듯 기억도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