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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질, 세상을 벼리다 -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이 바라본 세상 이야기
은종복 지음 / 이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고3 수험생시절 문과생이었던 나는 사회탐구 과목으로 윤리, 사회문화, 세계사, 한국지리를 공부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단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들이기에 선택했고, 나와 잘 맞는 내용이기에 1년간 열심히 공부했었다. 특히 윤리와 사상을 공부하며 철학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사회문화를 공부하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었다.  

수능 후 대학교를 알아보고 원서를 내는 기간동안, 대학에 가면 복수전공으로라도 꼭 사회학을 공부하고, 운동에도 참여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다짐으로만 끝나버렸다. 3월의 캠퍼스는 그 자체로 싱그러웠으며 항상 즐거운 얘기를 같이 할 수 있는 동기들이 있었다. 동기들 뿐이겠는가, 돈이 부족할 때면 약간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밥도 얻어먹고 술도 얻어마실 수 있었던 선배들까지 있었다. 우리 사회를 탐구하며,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행동을 하겠다는 다짐은 3월의 막바지 추위가 물러가며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네 학기를 다녔다.  

휴학을 하고 공익근무요원이 되면서, 우리동네 도서관과 근무지 도서실에서 책을 빌리거나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주문해 독서생활을 시작했다. 2년여 간의 근무기간이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한동안 책이 손에 안잡히던 슬럼프를 극복하고 다시 책을 잡기 시작한 게 지난 달인데, 도서관에서 바로 이 책을 발견했다.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

학교를 다니면서, 항상 그 앞을 지나쳤지만 전공서적을 싸게 살 수 있을까해서 들어가봤던 딱 한 번을 빼고는 풀무질에 들어가본 적이 없다. 서울에, 아니 전국적으로도 몇 남지 않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인데 너무 무심했던 내 모습이 후회스럽다. 책을 읽다보니, 다행히 내 기억속에도 지금 자리로 옮기기 전의 풀무질이 남아있었다. 아마 지금은 카페가 있는 자리인걸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지 않아서 안타깝다. 그저 '여기 있던 서점이 저기로 이사갔네?' 정도의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2007년 6월 풀무질은 지금의 자리로 이사했는데, 그당시 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풀무질이라는 공간을 통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론 은종복님의 이야기가 가장 많다.(나는 형님이라고 부를 친분이 없기에 아직은 은종복님이라고 쓰는게 편하다.)  

돈에 눈먼 사람들이,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삶을 파괴하는 모습에 슬퍼하며, 파리나 모기처럼 하찮아보일지라도 생명을 존중하며,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라 믿는 풀무질의 일꾼이 말해주는 이야기다. 5부로 나뉘어진 은종복님의 이야기 사이사이에는 풀무질과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이지만, 부록이 아니라 공동저작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다른 이야기들과 잘 어울리는 이야기들이다.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여는 글에서 직접 말하신 부분이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서 글을 쓰신다. 항상 언어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환영할만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 삶의 스승, 이용석」에 나온 '하나님'이라는 표현이다. 얼마 전에 읽은 고종석님의 『국어의 풍경들』에 따르면, '하나님'과 '하느님'중 올바른 표현은 '하느님'이라고 한다. '아래 아'가 소실되는 과정에서 잘못 옮겨진 표현이 '하나님'이라고 하니 개정판에선 고쳐지길 바란다.(개신교도들이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쉬운 부분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말하고 싶다. 가끔은 너무 순진하고 선하기만 한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워지는 말들이 있다. 은종복님의 마음은 잘 전달되지만, 213쪽의 도둑과 칼 비유나 313쪽의 '한민족은 가진 것 없이 오로지 착한 마음 하나로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내용은 선뜻 고개를 끄덕거리기 힘들게 하는 말들이다.  

쓰다보니 아쉬운 부분에 대한 말이 길어졌다. 싫어서 하는 비판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널리 읽히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니 혹시 서운해하실 분들은 이해해주길 바란다.  

끝까지 읽고 나니, 우리 동네에 있는 작은 서점에 찾아가고 싶어진다. 잠시 후 저녁에 고등학교 1학년때 같은반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조금 여유를 내서 그 서점에 들렀다 가야겠다. 인터넷 서점으로 사고 싶었던 책들 중 한 권을 사야지. 그리고 조만간 명륜동을 간다면 꼭 풀무질에도 들러야겠다.

읽은 기간 : 2010 12 29 ~ 2010 12 30 

정리 날짜 : 2010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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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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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자꾸 유시민과 관련된 리뷰만 써서 민망하다. 사실 추석 연휴동안 탁석산 선생님의 한국의 정체성, 주체성 두 권도 읽었고 요즘 독서모임에서 일리아스도 읽고 있는데........ ㅜㅜ 

알라딘 이 분야 최고의 책 저자와의 만남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다음주 월요일 유시민을 만나게 되어 어제 밤~오늘 낮까지 빠르게 다시 한 번 읽어봤다. 

작년 11월 거의 출간되자마자 사서 읽어보고, 격하게 반올림하자면 1년 정도만에 다시 읽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 읽었던 경험과 비교해서 크게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은 없었다.  

그래도 역시 다시 읽는만큼 그땐 보지 못했거나, 기억에서 지워진 부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첫째로, 『사기』부분에서 저자가 한신을 주로 다루었다는 사실은 아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였는지 저자의 이런저런 설명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모양이다. 다행히 이 책을 읽은 후에 서해문집에서 출간한 사기 1권을 읽었고 1권이 다루는 부분이 마침 그 부분이었다. 이번에 읽으면서 유시민이 왜 한신에게 관심을 가질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159쪽) 한신은 거침없는 논리와 교만한 언행으로 여러 차례 한고조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위선을 부리지 않는 직선적 성격 때문에 그런 오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까지 저자는 저런 비난을 받았고, 지금도 여전히 몇몇 사람들에게서는 똑같은 오해를 받고 있다. 나는 몇년 전 유시민이 한창 정치계에서 욕을 먹고 있을때 그가 어떤 언행을 보였는지 기억나는 바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빽바지사건'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였는데, 어떤 초선 국회의원이 국회의사당에 '빽바지'를 입고 나타났고, 그가 바로 유시민이었다. 그 외에는 고등학교 시절 놀고 '나름' 공부하느라 정치에 신경쓴 적이 없다. 지금 와서 옛 자료들을 들춰보면 유시민이 분명 교만한 언행이나 다른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적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변했다. 그가 변했다는 사실은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고, 서영석이 얼마 전에 내놓은 why유시민에서도 자세하게 다루어지는 내용이다. 아무튼 그렇게 욕을 먹었던 유시민이니만큼, 한신에게 각별한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부분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다룬 장이었다. 내용 자체에서 뭔가 느낀바는 아니지만, 전에 읽고 리뷰를 올렸던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다』에서 나왔던 내용과 비슷한 소재를 다룬 부분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다』69쪽) 기업, 언론, 교육, 종교, 금융, 통신, 유통, 법률  같은 영역들은 역민주화 또는 역근대화하면서 점점 더 소수 상류층에게 권력과 재화와 가치가 집중되었습니다. 지나친 과두화라고 할 수 있죠. 사회 주요 부문의 과두화가 진행될수록 정부와 이들의 갈등도 커졌습니다.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과두화의 공존이자 충돌이죠. (....)결국에는 민주정부가 이들 과두세력에게 포위된 섬이 되어버린 거에요. 

(『청춘의 독서』260쪽) 부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그리하여 전반적으로 애국심,덕,지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됤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두 저자의 논점은 약간 다르지만, 결국 전반적인 사회의 민주화 정도와 정부의 민주화 정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1879년 헨리 조지는 부의 분배가 불평등한, 즉 불공정한 사회에서 민주적 정부가 수립된다면 오히려 사회가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박명림은 대한민국이 사회는 역민주화되는 동안 정부만 혼자 민주화되는 바람에 정부 혼자 섬처럼 부유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만일 헨리 조지의 130년 전 진단을 우리 사회에 대입한다면, 지난 10년과 현재 3년차 정부, 그리고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어려운 문제다. 

세 번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서는 또다시 내용과는 크게 관계 없는 부분에서 흥미를 느꼈다. 베블런이 설명한 '야만 문화'의 '약탈적 단계'에서 나타나는 유한계급의 특징들은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일리아스'의 영웅들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았다. 

(227쪽)야만 문화의 약탈적 단계에서 남자들은 사냥과 전쟁을 벌였다. 여기서 획득한 전리품은 뛰어난 힘의 증거로 평가되었다. 이 문화 단계에서 투쟁과 침략은 가치를 공인받은 자기주장의 형식이며 강탈과 강압으로 획득한 유용한 물건과 서비스는 성공적인 침략의 전통적인 증거가 된다. 여자와 노예 등 사람도 다른 동산(動産)과 같이 성공적 약탈의 확실한 증거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반면 강탈이 아닌 방법으로 어떤 유용한 것을 획득하는 것은 훌륭한 신분을 가진 남자에게는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생산적인 일을 한다거나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은 좋지 않다. 

(229쪽)이들 비생산적 상류계급의 직업은 예나 지금이나 주로 정치, 전쟁, 종교의식 그리고 스포츠와 관련되어 있다.   

위의 인용문은 베블런의 저작이 아니라 유시민이 쓴 부분이다. 베블런이나 유시민이나 일리아스라는 작품 자체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인류 사회의 공통적인 특징을 '있는 그대로'서술하다보니 저렇게 글이 나왔을텐데, 그 모습이 일리아스에서 너무나 똑같이 발견되기에 한편으로는 흥미로우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결국 인간이 이룬 사회라는 게 수천 년 동안 크게 발전하지 않은 부분이 있긴 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309쪽에는 인생의 고비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다는 저자의 고백이 나온다. 길게 할 말은 없다. 나는 과연 인생의 고비가 올 때마다 어떤 책을 읽게 될까?  

전체적으로 읽는 데 어려움은 없었고, 많은 부분을 저자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는 약간의 절망감도 들었다. "나는 언제쯤 이 정도 수준의 독서를 할 수 있을까?" 

읽은 기간 2010년 9월 24일 ~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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