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자꾸 유시민과 관련된 리뷰만 써서 민망하다. 사실 추석 연휴동안 탁석산 선생님의 한국의 정체성, 주체성 두 권도 읽었고 요즘 독서모임에서 일리아스도 읽고 있는데........ ㅜㅜ 

알라딘 이 분야 최고의 책 저자와의 만남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다음주 월요일 유시민을 만나게 되어 어제 밤~오늘 낮까지 빠르게 다시 한 번 읽어봤다. 

작년 11월 거의 출간되자마자 사서 읽어보고, 격하게 반올림하자면 1년 정도만에 다시 읽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 읽었던 경험과 비교해서 크게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은 없었다.  

그래도 역시 다시 읽는만큼 그땐 보지 못했거나, 기억에서 지워진 부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첫째로, 『사기』부분에서 저자가 한신을 주로 다루었다는 사실은 아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였는지 저자의 이런저런 설명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모양이다. 다행히 이 책을 읽은 후에 서해문집에서 출간한 사기 1권을 읽었고 1권이 다루는 부분이 마침 그 부분이었다. 이번에 읽으면서 유시민이 왜 한신에게 관심을 가질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159쪽) 한신은 거침없는 논리와 교만한 언행으로 여러 차례 한고조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위선을 부리지 않는 직선적 성격 때문에 그런 오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까지 저자는 저런 비난을 받았고, 지금도 여전히 몇몇 사람들에게서는 똑같은 오해를 받고 있다. 나는 몇년 전 유시민이 한창 정치계에서 욕을 먹고 있을때 그가 어떤 언행을 보였는지 기억나는 바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빽바지사건'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였는데, 어떤 초선 국회의원이 국회의사당에 '빽바지'를 입고 나타났고, 그가 바로 유시민이었다. 그 외에는 고등학교 시절 놀고 '나름' 공부하느라 정치에 신경쓴 적이 없다. 지금 와서 옛 자료들을 들춰보면 유시민이 분명 교만한 언행이나 다른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적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변했다. 그가 변했다는 사실은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고, 서영석이 얼마 전에 내놓은 why유시민에서도 자세하게 다루어지는 내용이다. 아무튼 그렇게 욕을 먹었던 유시민이니만큼, 한신에게 각별한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부분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다룬 장이었다. 내용 자체에서 뭔가 느낀바는 아니지만, 전에 읽고 리뷰를 올렸던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다』에서 나왔던 내용과 비슷한 소재를 다룬 부분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다』69쪽) 기업, 언론, 교육, 종교, 금융, 통신, 유통, 법률  같은 영역들은 역민주화 또는 역근대화하면서 점점 더 소수 상류층에게 권력과 재화와 가치가 집중되었습니다. 지나친 과두화라고 할 수 있죠. 사회 주요 부문의 과두화가 진행될수록 정부와 이들의 갈등도 커졌습니다.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과두화의 공존이자 충돌이죠. (....)결국에는 민주정부가 이들 과두세력에게 포위된 섬이 되어버린 거에요. 

(『청춘의 독서』260쪽) 부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그리하여 전반적으로 애국심,덕,지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됤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두 저자의 논점은 약간 다르지만, 결국 전반적인 사회의 민주화 정도와 정부의 민주화 정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1879년 헨리 조지는 부의 분배가 불평등한, 즉 불공정한 사회에서 민주적 정부가 수립된다면 오히려 사회가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박명림은 대한민국이 사회는 역민주화되는 동안 정부만 혼자 민주화되는 바람에 정부 혼자 섬처럼 부유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만일 헨리 조지의 130년 전 진단을 우리 사회에 대입한다면, 지난 10년과 현재 3년차 정부, 그리고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어려운 문제다. 

세 번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서는 또다시 내용과는 크게 관계 없는 부분에서 흥미를 느꼈다. 베블런이 설명한 '야만 문화'의 '약탈적 단계'에서 나타나는 유한계급의 특징들은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일리아스'의 영웅들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았다. 

(227쪽)야만 문화의 약탈적 단계에서 남자들은 사냥과 전쟁을 벌였다. 여기서 획득한 전리품은 뛰어난 힘의 증거로 평가되었다. 이 문화 단계에서 투쟁과 침략은 가치를 공인받은 자기주장의 형식이며 강탈과 강압으로 획득한 유용한 물건과 서비스는 성공적인 침략의 전통적인 증거가 된다. 여자와 노예 등 사람도 다른 동산(動産)과 같이 성공적 약탈의 확실한 증거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반면 강탈이 아닌 방법으로 어떤 유용한 것을 획득하는 것은 훌륭한 신분을 가진 남자에게는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생산적인 일을 한다거나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은 좋지 않다. 

(229쪽)이들 비생산적 상류계급의 직업은 예나 지금이나 주로 정치, 전쟁, 종교의식 그리고 스포츠와 관련되어 있다.   

위의 인용문은 베블런의 저작이 아니라 유시민이 쓴 부분이다. 베블런이나 유시민이나 일리아스라는 작품 자체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인류 사회의 공통적인 특징을 '있는 그대로'서술하다보니 저렇게 글이 나왔을텐데, 그 모습이 일리아스에서 너무나 똑같이 발견되기에 한편으로는 흥미로우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결국 인간이 이룬 사회라는 게 수천 년 동안 크게 발전하지 않은 부분이 있긴 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309쪽에는 인생의 고비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다는 저자의 고백이 나온다. 길게 할 말은 없다. 나는 과연 인생의 고비가 올 때마다 어떤 책을 읽게 될까?  

전체적으로 읽는 데 어려움은 없었고, 많은 부분을 저자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는 약간의 절망감도 들었다. "나는 언제쯤 이 정도 수준의 독서를 할 수 있을까?" 

읽은 기간 2010년 9월 24일 ~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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