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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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면 모두 19살이 될 수 있지만,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19살이 있다. 고3. 

대한민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고3, 그중에서도 만화로 대학을 가기 위해 미대입시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 만화의 주인공이다.  

주인공 찌질한 루저 원빈, 제 실력으로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등록금 낼 돈이 없어 재수를 하고 있는 은수, 고3시절을 같이 보내며 은수와 미묘한 감정을 키웠던 미진, 만화애니반의 분위기를 시끌시끌하게 유지해주는 여고생 3인방, 부자집 딸 지현, 분명 무언가 생각을 품고 있지만 자기도 별 힘이 없어 고개숙일 수밖에 없는 태섭쌤.. 그리고 

학생들 앞에선 위해주는 척 했지만 결국 돈때문에 모두의 희망을 꺾어버린 김종화, 자본주의에 휩쓸리지 않는 의식있는 어른인 척 했지만 사실은 서점 이사를 위해 원빈을 이용하려했던 서점주인... 

모두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만날법한 인물상들이다.  

그런데 나는 위에 적은 주요인물들보다도 겨우 세 쪽 하고 한 컷에만 나오는 은수의 동생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집안이 넉넉치 못하기에 알바를 하고, 또 지방 출신이라 자취까지 하는 은수의 재수생활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먼저 대학생이 된 미진이 여름방학에 미술학원 아르바이트강사로 오게 되면서 재수생활에 희망 하나가 더해진다. 그런데 바로 그날, 동생이 자취방에 찾아온다. 집에서 일어난 사정을 말해주고 자기는 바로 취업을 하려한다는 동생의 말. 그리고 다음 한 마디가 내 마음을 울렸다. 

"나한테 꿈이 없는 게 참 다행스럽달까……."  

얼마 전 읽은 김예슬 선언에서도 인상깊은 구절이 꿈에 대한 말이었는데, 이번에도 꿈에 관한 말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는 대학생과, 바로 취직하려는데 꿈이 없어서 마음에 고민이 없는게 다행이라는 고등학생…

만화책 하나 읽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 우리 대다수의 모습이기에 참 가슴이 답답하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은 흔히 생각하는 그냥 만화책은 아니니까.. 

최규석 작가에게 점점 더 호감이 생긴다. 100℃를 얼마전에 구입했는데, 전에 읽을때도 그랬고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그리고 미래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우리 사회가 어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읽은 기간 : 2010년 11월 8일 

정리 날짜 : 2010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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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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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기가 경험한 일, 감정을 '보여준다'. 

'보여주기'라는 점에서 보면 이 만화책은 시적이다.  

설명하지 않는다. 보여준다.   

 

글쓴이, 만화에 등장하는 '나'는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동시에 이스라엘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나름의 균형감각(꽤나 성공적인)을 유지하며 끝까지 팔레스타인 혹은 이스라엘을 '보여준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몇몇 장면이 있다. 

 

100쪽에서 110쪽에 걸쳐서 만날 수 있는 안사르III 감옥에서의 생활 증언. 비참한 생활과 그 안에서 자발적으로 질서를 수립한 아랍인들의 정신력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120쪽에서 131쪽에 걸쳐 보여지는 '적당한 압력'의 사례. 지면에서 만화로 만나야 제대로 느낄 수 있겠지만, 글로 옮겨보겠다.

가산은 여느때처럼 가족들과 잠들었다. 집 문이 거칠게 열렸다. 눈을 떠보니 12~15명 정도의 군인, 경찰, 보안요원들이 가산을 둘러싸고 있었다. 가산에게는 눈가리개와 수갑이 채워졌고, 불법 조직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10분 가량 차를 타고 경찰서에 도착. 형식적인 조사와 의사면담. 자루에 머리가 다 뒤덮힌 가산은 작은 의자에 앉혀진 채로 손은 뒤쪽으로 단단히 묶였다. 일곱 시간 후 경찰과의 면담. 자백 거부. 다시 머리에 씌여진 자루. 한 시간 후 식사가 나온다. 식당은 감방의 화장실. 다시 자루. 24시간 내내 똑같은 노래 세 곡이 반복적으로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다음날 법정에 선다. 검사와 변호사의 '간단한' 논박 후 판사는 지금까지의 48시간 구금 외에 추가 8일을 선고한다. 변호사에게 자신이 겪은 부당대우를 설명한다. 그전보다 더 세게 묶인다. 얼굴은 자루에 뒤덮히고, 손목은 파이프에 묶인 채 네 시간씩 서있어야 한다. 네 시간이 지나면 자세를 바꿔준다. 한 잠도 못잔 채 4일이 지나니 환각이 보이기 시작한다. 딸이 죽었다. 형이 옆에 앉아있다. 형이 죽는다. 아버지가 죽는다. 삼촌도 죽는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셨다. 어머니가 체포당하셨다. 4일째 되던 날 5시간의 수면이 허락된다. 의사면담. 저혈압이니 끈을 느슨하게 묶어야 한다는 의사 의견에 따라 가산은 전에 없이 더 꽁꽁 묶인다. 두 번째 재판. 결과는 7일 더. 바닥에 오줌이 흥건한 가로세로 1~2미터의 정사각형 공간에 감금. 세 번째 재판. 4일 더. 아무런 이유와 증거 없이 가산은 19일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고문 없이' 보냈다. 애시당초 없던 증거 덕분에 가산은 겨우 석방되었다.

 

 185쪽. '내'가 보여준 팔레스타인 여행 가이드북을 보고는 분개한다.   

"어떻게 그들은 우리를 이따위로 생각하죠? 아직도 나귀나 타고 다니는 사람들? 여기서 본 대로 그들에게 말해주세요! 우리 가족, 내 친척들 중에는 대학생, 교수, 컴퓨터 교사도 있단 말입니다! 아랍인도 현대 문명을 알아요!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도 교육을 좋아한다고요!" 

평소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이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설 읽으면서 감정이 격해진 적은 없는데, 만화를 보다가 이렇게 된 게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최규석의 100도씨.  

  

223쪽. 한 소년은 이스라엘군에게 저항하다가 부상을 당해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는 장애인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친구들이 그를 존경하기 때문에. 

224쪽. 그러나 그 소년은 곧 알게될 것이다. 가자 지구에서 특수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은 다섯 명 뿐이며, 아무도 전문 과정을 밟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당연히 받아야 할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 

 

260쪽. 짧지만 가슴을 울리는 한 마디........ 

"우리도 사람이야, 안 그런가?"

 

그동안 일본에서 수입된 만화책들을 싫어했었고, 그때문인지 만화라는 매체 자체에 그리 호의적인 생각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점점 그 생각이 무너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최규석을 만났고, 정송희를 만났고, 이번 주 조 사코를 만났다. 르포만화책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야겠다. 

마지막으로 도움이 될 만한 외부 링크. 

르포만화의 세계 김낙호(만화연구가)  

독설닷컴 고재열 기자님의 르포르타주 만화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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