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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의 경제학
가가와 도요히코 지음, 홍순명 옮김 / 그물코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우애의 경제학 #가가와도요히코
이 책의 저자는 “철저한 복음주의자로서 기도의 사람이었고, 일본 근대 사회운동의 씨앗을 뿌린 기독교 사회주의자이며 목사”였던 ‘가가와 도요히코’다. 5년에 걸친 빈민가 생활을 한 저자는 미국에서 유학 후, 일본으로 돌아와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했고, 농민 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경제구조의 변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빈민가를 변화시키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만 명이 넘는 시위를 일으켜 보기도 하고, 그로 인하여 감옥에도 수차례 다녀왔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던 이유는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사회 구원을 이루는 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이들이 저자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기독교의 진정한 실천은 경제생활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종교개혁자들은 개인의 믿음의 영역에 대해서 많이 강조했는데, 저자는 바로 이점의 지나친 강조 때문에 경제적인 공동체성을 크게 잃어버린 역사가 있다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신교회들의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오며 더욱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많은 기독교 운동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그러한 모습이지만, 그 영향력은 신자 한 사람의 개인적인 영역이나 개 교회에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종교 밖의 사람들이 자본주의와 종교적 신념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교회 안에서 조차 이것이 마치 건널 수 없는 강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너무나 큰 오류라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 한다. 이어서 말하기를 심지어 교회 조직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부당 이득 사회의 특권 계급에 의존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음을 말한다. 저자는 이렇게 기독교가 사회-경제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 교회들이 자본주의 구조에 기대어 있는 모습에 대해서 크게 안타까워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러한 일들에 관심이 없고 행동하지 않는 이들의 신앙은 미신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기 까지 한다.
교회들이 이러한 모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을 이 사회 가운데 이루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저자는 바로 인간 의식의 변혁에서 답을 찾는다. 신앙을 개인의 영역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의 미신을 변혁하여 신앙이란 개인을 넘어 이웃과 함께 누리는 것임을 깨닫게 하고 실천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과 실천을 점점 사회화 할 때 기독교적인 경제혁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개인의식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형재애’, ‘우애’다. 교회의 역사 가운데, 심지어 교회의 암흑기라 불리는 중세 시대에도 멈추지 않고 존재했던 형재애를 바탕으로 한 운동들이 있어왔다. 안타깝게도 개신교 역사 이후 자유가 강조되면서 형제애가 점점 약해졌는데, 이러한 상황 중에 유럽과 일본에서 일어난 협동조합 운동은 개인의 자유와 형재애가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시너지를 일으키며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저자가 반복해서 이 책에서 언급하는 협동조합은 로치데일 생협 운동과 독일의 프리드리히 폰 라이파이젠운동이다. 물론 이러한 협동조합 운동들과 이후에 나타난 현대의 협동조합에도 특정 지역이나 사람들의 복지만 강조하는 폐단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저자는 사회 전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개인의 의식각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협동조합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이것을 기반으로 한 사회, 국가, 이를 바탕으로 한 세계 평화까지 자신의 논의를 밀고 나간다는 점이다. 협동조합들이 연맹을 맺고, 이들에게서 대표를 뽑아 의회를 조직하고, 이들만의 대표는 이들만의 이익을 반영하기 십상이므로 이들 외에서 대표를 뽑아 사회 의회를 따로 조직하고, 이 두 가지 의회에서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국가들이 세계에 확산되면 평화도 함께 확산 될 것이라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저자가 이렇게 각 나라들이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사회를 조직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빈곤으로 몰아가는 것은 다름 아닌 경제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먹거리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인구과잉 때문에 위협받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탐욕이다. 저자는 이 탐욕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속죄뿐이고, 이렇게 치유 된 사람들이 힘을 모아 형재애에 바탕을 둔 새로운 경제를 만들기 위해 힘을 써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사회 안에서 고립된 교회. 아니 고립을 자처한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고민한다. 기존의 교회의 틀은 이제 더 이상 순기능을 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존의 교회들이 이러한 평가를 받는 큰 이유가 신앙을 개인의 영역으로 국한 시키며 사회 안에 작은 자들, 즉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주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책은 80여 년 전의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를, 그것도 아주 러프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은 꾀나 지겨울 수도 있을 것 같다.(솔직히 나도 좀 그랬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는 교회의 모습, 즉 신앙을 개인의 영역에만 축소시켜 사회에 대하여 무관심한 모습은 내가 속한 지금의 한국의 많은 교회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이러한 점만으로도 읽는 내내 마음에 지적당하는 것 같은 불편함도 있었지만,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도 같은 것을 발견한 희열? 같은 감정도 있었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이 책에 대한 논평이 너무나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협동조합이 대안인가? 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우애의 정신에 기초한 연대와 협력의 사회가 도래하지 않는다면 대다수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이 자본주의 사회가 타인의 눈물과 고통 위에 일부의 풍요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의 현실이 극복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자유롭고 해방된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