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이다 1 - 빨간 수염 사나이 하멜 일공일삼 85
김남중 지음, 강전희 그림 / 비룡소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년 전, 김남중 작가강연에서 하멜의 탈출 경로를 따라 여행하고 온 사진을 보고 구상중인 작품 얘기를 들었다. 10여년 전엔 강진 병영에서 하멜기념탑을 보았고, 어쩌면 하멜이 걸었을지도 모를 마을 돌담길을 걸어보았다. <하멜표류기>를 읽고 작품을 구상했다는 작가의 상상이 궁금해서 하멜 이야기를 담은 그의 작품을 기다렸다.

 

흔히 '바다'는 호연지기를 기르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말하는데, 촌에서 자란 나는 호연지기의 바다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어쩌다 배를 타고 섬으로 여행하면 거칠것 없는 바다와 뼛속까지 스미는 바닷바람이 무조건 좋았다. 빌딩숲에 갇혀 사는 도시인에게 망망한 바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무작정 떠나도록 유혹하는 여행의 아이콘이다. 하멜과 함께라면 타이타닉호 같은 호화여객선이 아니어도 기꺼이 모험에 동참할 수 있겠다.^^

 

'나는 바람이다'로 시작된 소설은 하멜일행의 조선탈출 항해의 모험과 일본살이의 어려움에 더하여 '기리시딴'이 등장한다. 스페인어 '크리스땅'의 일본식 발음인 '기리시딴'은 '죽여도 좋은 자'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카톨릭을 등에 업은 스페인과 포루투칼 상선들이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하고, 기리시딴을 처형하며 기독교 전파를 막은 일본 기독교 박해 역사를 엮어나간 작가의 솜씨가 돋보인다.


태어난 곳에서 백리 밖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조선 중기.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동인도회사 스페르베르 호가 제주 해안에 좌초하고, 하멜을 비롯한 일행은 한양으로 압송되었다가 일부는 전라좌수영에서 살게 됐다. 빨간수염, 빨간 털쟁이로 불리던 그들은 해풍이 가족과 얽히게 되고, 열세 살 해풍이는 스물 다섯이 된 작은대수 데니스 호버첸과 친해진다.

 

빚을 내어 배를 지어 바다에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해풍이 가족은, 김씨의 빚독촉에 누나 해순이가 그의 후처로 가거나 해풍이가 머슴으로 팔려가야 할 위기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다. 해풍이는 솜장사를 떠난다는 하멜일행에 끼워달라 사정하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해풍이는 아버지가 살아 있으면 만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무조건 하멜의 배에 숨어들었다. 솜장사로 위장했지만 조선을 탈출하여 일본 나가사키로 가려던 하멜일행에 몰래 숨어든 것은 해풍에게는 목숨을 내놓는 모험이었다. 하멜일행은 해풍이를 받아들였지만 바다는 호락호락 해풍과 일행을 받아주지 않았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바다는 하멜일행에게도 버거운 상대였다.

 

'바람이 불었다. 고양이 숨결처럼 간지러운 바람이었다. 새벽까지 미쳐 날뛰던 폭풍은 아침이 되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낮게 밀려온 파도는 지난밤 미안했다는 듯 바닷가를 향해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11쪽)

 

'배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암초였다. 높은 파도는 넘어설 수도 있지만 낮게 숨어 있는 암초는 피할 수가 없었다.'(115쪽)

 

'해풍이는 어릴 적 남의 집 송아지 등에 몰래 올라탔던 기억을 떠올렸다. 얌전히 있던 송아지가 약이 오르면 앞달 뒷발을 들고 몸부림을 쳐 댔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이 자기도 모르게 공중에 붕 떴다가 덜퍼덕 땅에 떨어지곤 했다. 지금은 배가 거대한 송아지 등에 올라탄 것 같았다. 문득 공중에 떴다가 철썩 바다 위로 떨어지곤 했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또 다른 파도가 배를 쑤욱 위로 밀어 올렸다.' (127쪽)

'높은 파도일수록 배의 정면으로 맞아야 했다. 피하려고 허둥대다가 옆이나 뒤에서 파도를 맞으면 배는 힘없이 뒤집어진다.'(128쪽)

 

미지의 대상이기만 한 바다와 파도의 디테일한 묘사는 작가의 경험세계가 녹아든 듯 실감나게 다가왔다. 거대한 파도와 싸우고 소금만 넣고 뭉친 주먹밥을 먹으며 견딘 항해, 일본 나가사키에 닿았지만 하멜일행과 떨어지게 된 해풍, 낯선 땅에서 귀에 착 감겨온 조선 말을 쓰는 사람들. 해풍이를 떼어낸 하멜일행은 나가사키에서 일본관리의 조사를 받고 데지마에서 지내며 홀란드로 돌아가기를 희망하지만 돌아가지 못한다.

 

1592년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 때 포로로 잡혀 온 도공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마을을 이루고 산다. 조선말을 하고 조선 음식을 먹으며 조선 옷까지 입을 수 있는 특별 자치구역이며 일본인과 격리된 마을이다. 해풍이는 히라도의 도예촌에서 비밀스런 존재로 살게 된다. 도예촌 연수의 고백으로 기리시딴의 비밀을 알게 된 해풍이는 관리자인 기무라에게 발각된 숨막히는 상황으로 1권이 끝났다.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를 그려낸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 떠오르며 작가의 종교관도 가늠해본다. 기무라에게 발각된 해풍이의 운명은 어찌될지 걱정과 근심으로 2권을 펼치게 만드는 작가의 노련한 솜씨!!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13-10-2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와 소설을 잘 버무린 작품 같아요. 보관함으로 일단 직행합니다.^^

순오기 2013-10-22 01:43   좋아요 0 | URL
아직 2편을 못 읽었지만... 꽤 흥미로운 작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