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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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이 책을 읽고도, 우리 엄마의 삶이 보여서 눈물 겨워 리뷰를 쓸 수 없었다. 어제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여전히 눈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시어머님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는 잃어버리지 않아서 다행이고 살아계셔서 고맙다고 위로받았다. 

2008년 11월 초판 이후 벌써 50만부를 찍은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의 희생으로 가정이 유지되고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잊고 살았던 자식들을 깨우치는 책이다.  엄마의 기쁨이고 자랑이었던 이 땅의 자식들에게, 잊고 살았던 엄마의 존재를 일깨우고 사랑을 회복시켜 주는 바이블로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로 시작하는 소설은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고, ’너’로 지칭하는 화자의 진술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소설 속의 ’너’가 바로 ’내’가 되기 때문이다. 작가 신경숙은 자신의 분신인 글쓰는 큰딸을  ’너’라고 지칭하여 작가와 독자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도 내 이야기 같은 동일시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너무나 눈물겨운 우리 엄마 얘기는 최대한 자제하고 줄거리 중심의 리뷰를 쓴다.

이 책은 ’엄마의 존재와 부재’를 이야기 한다. 엄마가 존재할 때는 무심히 잊고 살았던 가족들이, 엄마의 부재로 인하여 그 존재를 깨닫는 참회록이다. 사람은 미련해서 무언가 갖고 있을 땐 그 소중한 가치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존재가 ’엄마’일 땐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체를 통해 세상에 온 자식은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를, 커가면서 서서히 멀리하다가 급기야는 잊고 사는 지경에 이른다. 내가 필요할 때만 엄마를 떠올리는 아주 이기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살면서 힘들거나 외롭고 지칠 때 ’엄마가 옆에 있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을 안 한 자식들이 얼마나 될까?

엄마를 잃고 나서야 하나씩 떠오르는 엄마와의 추억, 내 삶에 엄마가 얼마나 깊이 자리했는지 깨달으며 엄마에게 소홀했음을 참회하는 고백서로 읽힌다. 엄마가 무언가 물어 볼 때 얼마나 친절하게 답했는지, 엄마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였는지...  엄마에게도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위로받고 쉼을 얻을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형철아, 엄마가 미안하다!" 세상에 태어나 뭐든지 처음 하게 해 준 큰아들 형철. 큰아들만 끓여주려고 숨겨두었던 라면 항아리를 닦으며 철철 눈물 흘리던 엄마. 첩을 데려온 아버지가 대문으로 들어올 때 샛문으로 집을 나갔던 엄마, 큰 아들이 그 여자가 싸주는 도시락을 먹지 않는다는 걸 알고 찾아와 매질하던 엄마. 네가 밥을 먹어야 내가 덜 슬프다던 엄마. 내 아들이 있는데 내가 왜 집에서 나왔나? 깨닫고 돌아와 첩을 몰아냈던 엄마. 내 새끼들 입에 먹을게 들어가는 게 제일 행복했던 엄마.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검사가 되겠다는 아들의 꿈이 곧 엄마의 꿈이었지만, 동생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 꿈을 포기한 아들에게 죄인이었던 엄마. 나도 이런 마음인 엄마를 보고 살았다. 형철이처럼 일등하고 시험만 보면 척척 붙었던 우리 오빠가 뒤늦게 공부마칠 때까지 항상 죄인이었던 우리 엄마. 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돈을 벌어야 했던 큰언니에게 지금도 미안해 하는 엄마.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지만, 객지에 있던 언니 오빠에게 편지 보낼 땐 내게 불러주었던 엄마. 돈이 되는 일이라면 잠을 못자도 부지런하고 지혜로왔던 책 속의 엄마가 바로 내 엄마였음을 나는 안다.

"너는 딸이니께 많이 배워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장독 항아리 뚜껑을 던져 깨뜨리면서 스트레스를 풀만큼 성깔있는 엄마였지만, 글을 모른다는 게 자존심 상해 학교를 보내주지 않은 부모가 원망스러웠던 엄마. 중학교를 보내달라고 애원하던 시동생 균을 학교에 보내지 못한 죄인이었고, 농약을 먹고 죽은 균의 살인누명까지 써야 했던 엄마. 내가 글을 알았다면 이렇게 살았을까? 생각하면서 딸은 많이 배워야 엄마한곤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공부시킨 엄마. 그 딸이 쓴 책을 읽고 싶어서 복지사에게 읽어달라면서도 내 딸이 쓴 책이라고 자랑하지 못했던 엄마. 엄마도 하고 싶은 게 많았고 누리고 싶은 삶이 있었다는 걸,  엄마의 부재로 깨달은 참회는 안타까움을 더한다.

"나보다 먼저 가시오."  6.25때 징집을 피하기 위해 검지를 끊었고, 한데 잠을 자야 했던 당신은 밖으로 떠돌기만 했고,  가장이나 아버지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당신, 한번도 아내에게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 당신, 아내가 아픈 것도 모른 척 늘 먼저 환자였던 당신, 늘 빠른 걸음을 따라 오지 못해 천천히 좀 가시오 사정했던 아내를 모른척했던 당신, 결국은 앞서 걷던 습관 때문에 서울역 지하철에서 아내를 잃어버린 당신, 그렇게 잃고나서야 철철 눈물 흘리며 참회하는 당신을 결코 미워할 수 없어서 제일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보다 3년 먼저 가시오, 아니 억울하면 사흘 먼저 가시오’ 했던 아내의 수의를 보며 통곡하는 당신은, 왜 살아생전에 아내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주지 못했나, 왜 그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을까 땅을 치지만 이미 늦었다.

’곰소의 그 남자’ 없었다면 엄마의 삶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유일하게 위로받은 대목이다. 엄마에게 이런 정인이 있었기에 엄마의 삶이 보상받는 거 같았고 억울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박소녀였던 엄마, 남편의 따뜻한 사랑이나 보살핌을 받지 못했지만 늘 대장부 같았던 엄마도 힘들때마다 찾던 사람이 있었다는 건 정말 뒤통수 칠 일이었지만, 그래서 다행이었다. 남편이 없을때 아이를 낳은 엄마, 사산한 넷째와 자살한 시동생 균의 시신도 묻어 준 그 남자. 죽을만큼 힘들때마다 찾았던 그 남자를 손목 한번 잡게 하지 않았던 엄마. 몰래 곰소로 도망쳤던 그 남자를 기어이 찾아낸 엄마. 엄마가 실종되었다는 걸 알고 찾았으나 치매가 되어 자기 이름이 ’박소녀’라고 말하는 곰소의 그 남자 이은규. 엄마에게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같은 사랑이 존재했다는 것으로 위로받았다.

"어쩌려구! 셋이나 어쩌려구!" 사랑하는 막내딸이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경악하던 엄마. 사랑하는 딸이 양껏 자유로워져 더 많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기 바랐던 엄마. 엄마와 손잡고 대학교를 가 준 딸, 서점이나 백화점에도 데려가 준 딸, "엄마는 밍크코트 입을 자격 있어요."라며 사 준 딸. 항상 기쁨이었고 자랑이었던 딸이 세 아이들에 파묻혀 사는게 안스러웠던 엄마는 피곤에 지친 딸을 무릎에 눕혀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당신의 친정으로 돌아가 엄마의 무릎에 지친 몸을 쉬는 엄마.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살이 패여 뼈가 드러난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고름이 흐르는 발을 감싸는 친정엄마 품에서 안식하는 엄마에게도 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걸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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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4-11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리뷰만 읽어도 다시금 눈물 나요. 시집 가서 애 낳고 살면 더 많이 아프고 더 크게 공감할 책이겠지요. 엄마는,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어찌할까요. 그걸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네요......

순오기 2009-04-12 18:51   좋아요 0 | URL
우리 엄마 얘기하면 눈물나니까 안 쓰고 줄거리만 정리한 리뷰.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