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야곱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
캐서린 패터슨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1981년 뉴베리상을 받은 작품이라는데 이제 나왔다는 게 안타까웠고, 한편으론 이제라도 책이 나와서 고마웠다.^^ 열네살 미국소녀의 성장소설에 열광하는 이유는 누구나 흔히 경험했을 소재를 잔잔하게 풀어간 솜씨에 있을 것이다. 성장기에 형제 자매간 라이벌 의식이나 비교당하는 부당함에 피해의식을 가졌다면 누구나 공감할 소재를 밀도 있게 펼쳐낸다. 성서 '에서와 야곱'의 관계를 쌍둥이 언니 '사라 루이스'와 동생 '캐롤라인'으로 설정해, 신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에서의 관점에서 '사라 루이스'가 화자로 등장한다. 사라 루이스가 느끼는 소외감과 마음의 상처에 감정이입이 된 독자는, 세심한 심리묘사와 상황전개에 마치 루이스가 된 것처럼 집중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이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거나 기독교적인 요소에 거부감을 가질 것은 없다. 종교적인 부담감 없이 사라 루이스의 감정에 발맞추어 동행하면 된다.

체서피크만의 라스섬에 사는 브래드쇼 부부는 아들을 원했지만 쌍둥이 자매를 낳았고, 건강하게 태어난 언니보다 위태롭게 태어난 동생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하지만 늘 부모의 사랑과 애정 표현에 목마른 사라 루이스의 열네 살 갈증을 채워줄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직 튼튼한 몸과 착한 마음을 가진 루이스는 스스로 알아서 가정을 위해 헌신한다. 학교 생활보다 즐겁고 신나는 게잡이에 열정을 바쳤고, 부모는 호들갑스럽게 표현하진 않지만 늘 고마워한다는 걸 알고 있다. 덕분에 동생은 재능을 살려 성악을 레슨을 받는다. 루이스는 당연하다는 듯 인정하지만,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는 캐롤라인을 끝없이 미워한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도 않으며 자기 마음으로만 자꾸자꾸 미움을 키워간다. 이런 상황을 독자들은 자연스레 공감힌다. 딱히 캐롤라인이 미운 짓은 하지 않아도 뛰어난 자가 갖는 은근한 교만이 있지만, 지혜롭고 재치있는 처신으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

사라 루이스의 마음에서만 들끓는 감정의 응어리들이 못내 안타깝지만 착한 아이 마법에 걸린 듯, 루이스는 당차게 항변하거나 거부하지도 않고 상황에 순응해간다. 이런 게 조금은 답답하고 딱하기도 하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항상 단짝이었던 콜과 게잡이를 하며 나눈 대화는 유머 수준이 달라 통하지 않는 상황이 우습고도 안타깝다. 그런 티격태격 상황엔 초반에 재미있게 펼쳐지다가, 폭풍이 두려워 돛대를 베어버리고 떠났던 선장 할아버지의 귀환으로 루이스와 콜은 상황이 역전된다. 초반에 콜이 이해하지 못하던 고급의 조크는 콜 수준에 딱 맞는 할아버지의 유머로 루이스만 찬밥이 된다. 이런 사소한 일들을 참 맛깔나게 풀어가는 작가의 역량이 놀랍다. 루이스 엄마 아빠와 괴팍스런 할머니조차 개성이 강한 빛나는 조연이 되어  책의 재미를 더해 준다.

섬에 교사로 왔다가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성실한 아버지에게 필이 꽂혀 불편하고 가난한 섬 생활에 만족하는 엄마의 삶을 루이스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선장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비로소 자신의 삶에 눈뜨게 된다. 늘 하느님의 선택받지 못한 피해자라는 생각에만 빠져있던 루이스에게 번쩍, 번개가 치듯 할아버지의 말씀은 인생 좌표를 바로 보게 했다.
"네 동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어.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었던 거야. 사라 루이스, 아무도 네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 기회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네 스스로가 만드는 거야. 얘야, 하지만 먼저 네가 원하는 것이 뭔지를 알아야 한단다."

엄마는 섬을 택했지만 루이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말리지 않으며, 캐롤라인 보다 더 보고 싶을 거라는 말에 비로소 캐롤라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기 삶을 살게 된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갈증났던 루이스에게 엄마의 한 마디는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약이었다. 루이스가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면 좀 더 빨리 행복을 가질 수 있었는데...

섬에서 나와 공부한 루이스는 간호사가 되어 자신이 원하던 산골로 간다. 그곳에서 굴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아빠의 미소를 가진 남자, 요제프에게 필이 꽂혀 세 아이를 두고 상처한 그와 가정을 이룬다. 결혼 후 아들을 낳고 이웃의 쌍둥이 출산을 돕던 루이스는 생명이 위태로운 둘째를 살리기 위해 몰입했고, 잊고 있었던 첫째가 바구니에 잠들어 있는 걸 깨닫고
"그 아기를 안아 주세요. 할 수 있는 한 오래 안아 주세요. 아니면 아기 엄마가 안아 주게 하세요."
라는 말로 나의 눈시울을 적셨다. 루이스는 자기 출생과 똑같은 아기에게 연민을 느끼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기를 소망했으리라.  

이 책은 열네 살 사라 루이스가 상처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마무리로 잔잔한 감동과 참다운 성장을 완성한다. 부모의 무심한 태도에 내 아이가 상처받거나 아파하지 않는지 살펴봐야 하리라.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일어날 수 있도록 불끈 힘을 주는 엄마가 돼야지 또 한번 다짐하는 독서였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ookJourney 2008-08-2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엄마가 되어야 할텐데, 제 스스로 점점 잔소리 대마왕이 되어가는 것 같아 자꾸자꾸 반성하게 됩니다. --;
이 책은 찜해두었다가 읽어보아야겠어요.

순오기 2008-08-29 00:18   좋아요 0 | URL
잔소리 대마왕~ 엄마들의 특권이자 월권이자 자기반성의 근간이죠.ㅎㅎㅎ
결국은 본인들 의지에 달린 것 같아요~ 애들이 머리 커지면서 억지로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요.ㅜㅜ

반달 2008-11-2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순오기님, 잘 지내시지요? 오랜만에 들러 좋은 정보 얻어갑니다. 어느새 한해의 끝자락입니다. 날씨가 추어지니 마음만 급해지네요. 올 한해 만난 사람 중 가장 가까이서 동침(?)한 순오기님을 어찌 잊을지..ㅋㅋㅋ 요즘 엔화 환율이 엄청나더군요. 요즘 같아서는 문학기행 못갔을 거예요. 좋은 인연 이렇게나마 이어갑니다. 건강 챙기시고 멋지게 사세요. 파이팅!!

순오기 2008-11-29 02:37   좋아요 0 | URL
어머 반달님, 반가워요~~~ 그것도 사흘밤이나 동침한 사이니 보통 인연이 아니지요.ㅋㅋㅋ 조만간 겨울방학에 서울가면 연락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