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4
최인석 외 지음, 원종찬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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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라일락 피면'을 읽고 쉽게 리뷰를 올리지 못했다. 무언지 모를 부담감에 편안하지 않았다. 내 인생의 나이테가 10대라면 희망에 부풀어 어떤 선택이든 할 것 같지만, 이제는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두고 유혹을 느낄 나이도 지난 듯하다. 그래도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질문이 그들 인생의 첫번째 선택이 아니었을까? ^^ 어른들은 재미로 묻지만, 어린 그네들은 엄마 아빠 눈치봐서 답해야 되고, 그 답에 따라 희비쌍곡선을 지켜봐야 했던 경험으로,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어렴풋이 감지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치기어린 질문에 대한 답변부터, 무얼 먹을까 무얼 입을까를 선택하고, 자기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학교와 진로를 선택함에는 오히려 부모가 더 많이 개입하는 아니러니를 경험하게 된다. 부모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끝없는 대리만족의 폐해를 자녀는 선택의 여지없이 당하기도 한다. 몇 살이면 내 인생의 행로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질까? 물론 개인의 삶에 개입하는 시대적 상황까지도 감당해야 할 인생이라면 누구든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표제작이며 첫번째 수록된 공선옥의 '라일락 피면'은, 5.18  한 복판의 광주에서 고등학생 석진의 시대적 선택을 보여준다. 피가 뜨거운 나이에 라일락 향기같던 아랫방 누나 윤희의 죽음에 감전되듯 5.18에 동참한 석진은 죽음으로 청춘을 마감한다. 부채처럼 짊어지고 사는 '산자들의 죄의식'을 알기에, 라일락 향기 진동하는 봄밤 석진의 기일에 쏟아내는 어머니의 통곡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80년 광주를 겪은 세대가 어떤 선택을 했든 함께 지고 가는 시대의 아픔이다.

방미진의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여고생들의 교실에서 벌어지는 형액형 논쟁을 맛깔스럽게 그려내 아주 유쾌하고 상큼하게 읽힌다. 혈액형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아는 그녀들의 풋풋한 수다가, 마치 영희가 대단한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양 몰아가며 O형을 선택하게 되는 풍경이 발랄하게 펼쳐진다.

성석제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은 가장 소설다운 작품으로 읽혔다. 자신이 그림에 소질이나 특기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가지 않은 길이었던 화가가 되어야 했던 나 - 백선규와, 글짓기에 소질이 없었던 부잣집 딸이 사생대회에 나가 비슷한 위치에서 그려낸 히말라야시다 그림의 비밀이 잘 짜여진 구조로 담담하게 그려진다. 복선과 반전이 잘 그려진 수작이다.

오수연의 '너와 함께'는 자기 내면과의 대화로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다. 오진원의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는 성적 소수자의 특별한 가정에 입양된 소녀 보린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엄마이면서 아빠인 두 남자의 인생을 새롭게 이해하는 이야기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덜어내고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려나?

조은이의 '헤바 HEBA'는 청춘의 여신인 헤바라고 자칭하며 사는 이종누나 윤이를 바라보는 성호의 좌충우돌 사춘기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사춘기의 성적호기심과 동경이 윤이누나를 통해 해소되고 이해되는 과정을 솔직하게 그려낸다. 남들은 바람둥이 팜므 파탈이라고 치부할지라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소신껏 당당하게 사는 윤이가 살짝 부러웠다.^^

최인석의 '쉰아홉 개의 이빨'은 재혼가정에서 새아버지 장목사의 폭력을 견뎌야 하는 순근의 자기찾기다. 장목사의 아들 우석과 딸 우연과의 정신적 연대감에 가슴이 짠했다. 어머니 혹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녀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여지없이 몰아부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친아버지는 쉰아홉개의 이빨을 갖고 있었으니 자신도 예순개로 늘어나기를 기다리며 견디는 순근이, 가정이나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그들은 어떤 어떤 부모를 원할까?

표명희의 '널 위해 준비했어'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아들을 세상으로 이끄는 어머니의 배려가 눈물겹게 읽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6학년 때 서둘러 어른이 되어야 했던 소년은 정신적 성장이 신체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 듯, 세상이 두려워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같은 아픔을 겪는 친구들과 인터넷으로 소통할 뿐이다. 한때 단절의 세계에 빠졌던 어머니가 그런 아들을 지켜보는 마음은 어떨까? 그 아들을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준비한 어머니의 선물, 오랫동안 먼지를 뒤집어 쓰고 기다려온 오토바이 할리를 타고 나서며 비로소 깨닫는 어머니의 사랑에 찡한다.

자의든 타의든 끊임없이 선택의 길목에 들어 선 10대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책임을 지고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두지 않을 인생이면 좋겠다. 이제 중3 되는 아들녀석도 자신의 인생을 펼쳐가는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아름다운 청춘들과 부모가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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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학으로 만나는 5.18
    from 파피루스 2008-05-19 04:48 
    다른 지역보단 5.18을 가까이 느끼며 자랐을 광주의 초등학생들은 5.18을 얼마나, 혹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해마다 5.18기념일이면 학교에서 교육하지만 아이들이 체감하는 5.18의 실체가 궁금해서 정의를 내려보게 했다. 아이들에게 5.18의 실체와 정신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어른들의 몫이라 생각해, 나역시 작은 역할이라도 담당하려고 5월 이야기 한 꼭지라도 들려주고 풀어내는 커리큘럼을 짠다. 작년에는 3학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