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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중고상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도심 변두리를 지키는 가게 '가사사기 중고상점'은 점장인 가사사기와 부점장인 히구라시, 그리고 상점에 놀러와 상주하다시피 하는 학생 미나미 나미 셋이 지키고 있는 가게였다. 절에 있는 스님에게 번번히 사기를 당해서 거의 쓰레기나 다름없는 물건을 비싼 가격에 매입해오는 히구라시, 어쩐지 태평해보이면서도 머피의 법칙을 입에 달고 다니며 수수께끼 같은 일에 나서서 탐정역을 즐기는 가사사기, 그리고 가사사기가 풀어낸 사건의 진상에 구원받은 나미가 만나게 되는 사건들은 중고물품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냥 중고물품들에 관한 진상을 밝혀내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이제 모든 조각을 맞췄다고 당당히 말하는 가사사기의 추리가 대부분 엉터리라는 게 재밌는 점이었다.
처음엔 계속 중고서점이라고 읽혀서 난감했었다. 하지만 소설 속 가게는 중고서점이 아니라로 이것저것 많은 물건들을 매입하고 적절히 수선해 판매하는 중고상점이다. 낡은 것은 새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혹은 더 오래되어 보이게 만들어 분위기를 더하는 식이다. 이런 수리 기술을 가지고 있는 건 주인공인 히구라시 뿐이라 가게가 잘 유지되는 걸까 싶기도 했었다. 실제로 개업한지도 2년, 적자도 2년째라고 하니 그리 장사는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가사사기 중고서점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계속 적자를 기록하는 와중에도 직원을 닦달하는 모습보단 수상한 사건의 냄새가 나면 추리에 푹 빠져버리는 가사사기, 그런 가사사기를 천재라고 생각하며 동경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나미, 그리고 가사사기의 엉터리 추리를 어떻게든 짜맞춰 가짜 증거물을 만들어 나미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애쓰는 히구라시. 이 세명의 조합이 예상보다 더 재밌었다. 특히 어떤 사건의 진상을 곰곰이 생각해낸 가사사기가 힌트를 달라는 히구라시의 말에 당당하게 키워드를 던져주는 부분도 인상깊었다. 또 무슨 사고를 칠까 조마조마한 히구라시와는 다르게 속편한 가사사기의 모습이 대비가 되어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의 내용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챕터의 순서대로 흘러간다. 도둑에게서 매입하게 된 청동상의 비밀을 푼 봄의 이야기, 중고물품 배달을 간 목공소에서 일어난 신목 훼손 사건의 비밀을 푼 여름의 이야기, 나미와 처음 만나게 된 나미 집에 든 도둑에 관한 비밀을 푼 가을의 이야기, 늘 사기만 당했던 절의 스님을 찾아갔다가 절에 든 도둑에 관한 비밀을 푼 겨울의 이야기 순이었다.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특이한 구성이었다. 각 이야기마다 비밀이 존재하는데 진상은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가사사기가 풀어낸 진상, 그리고 가사사기의 추리가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꾸며둔 뒤에 밝혀지는 진짜 진상. 이런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 때문인지 가사사기의 진상 부분을 보면서 숨겨진 이야기는 뭘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스님에게 사기를 당하며 시작하는 도입부와 나미를 실망시킬 수 없으니 사건은 가사사기의 진상을 따르자라는 결말부의 이야기가 엇비슷해서 재밌기도 했다.
사람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이라서인지 물건들에 사연이 깃들어있는 것도 인상깊었지만 사람사이를 수선해주는 주인공의 솜씨가 일품이었다. 중고상점의 엘리트 사원같았달까. 매 챕터마다 반복되는 나미를 낙담시킬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섬세한 면이 있는 주인공은 가능한 좋은 쪽으로 사람들의 관계를 이어붙인다. 그 과정에서 거짓말이 섞이는데도 그리 나쁜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히구라시의 성격 때문인지도 모른다.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을 보고, 상처받는 사람이 없게 미리 배려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비록 스님에게는 이길 수 없어 계속 이상한 물건을 매입해오긴 하지만 중고상점을 지키는 히구라시가 없다면 다른 두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싶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가사사기가 한 번이라도 사건의 진상을 맞출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잔잔한 분위기의 소설은 잘 읽히는 편이다. 일본 미스터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읽기에도 좋은 책이었다. 가사사기와 히구라시의 추리가 둘 있어서 매 챕터마다 반전을 보는 느낌이기도 해서 기억에 남기도 했다. 가사사기 중고상점은 계속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지만 중고상점에 얽힌 이야기만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계속 남아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천재 가사사기'가 있기에 나미는 괴로운 하루하루를 밝게 살아갈 수 있다.
나미를 낙담시킬 수는 없다.
- 58p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