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우정으로 1 스토리콜렉터 10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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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로 유명한 타우누스 시리즈의 신작이다. 이번으로 10번째인 타우누스 시리즈는 2권이 완결로, 역시 만만치 않은 사건들이 벌어진다. 이번 권은 '영원한 우정으로'라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랜 친구들 사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죽은 사람은 출판계와 관련이 있으며 잦은 문제를 일으키는 등 인성이 좋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이름은 하이케로, 그녀는 직장에서 해고당한 뒤 죽었다. 그런데 하이케의 친구이자 용의자였던 한 명이 목숨을 잃으며 용의자가 확 증가하며 타우누스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피아는 또 진실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벌써 10권의 시리즈를 냈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 번에 몰아보지 않고 나올 때마다 챙겨봐서인지 그리 길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하나하나 꼽아보니 많기도 하다. 어쨌든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어서, 또 마을에선 어떤 기묘한 일이 벌어지게 될까 기대하며 읽게 된다. 이번 시리즈 역시 사건의 진상은 모두 2권에서 밝혀질 모양이다. 천천히 해결하는 듯하면서도 꼬여가는 사건이 앞선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작가가 깔아놓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 못한 진실이 나오는 식이라고 해야할까.


아마 시리즈를 다 챙겨본 사람이라면 이번 권에서 뜻밖의 사실을 접하게 될 수도 있다. 바로 피아의 전남편 헤닝이 소설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밖에 피아 경위와 좋은 직장 파트너인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 반장의 이야기도 등장하며 반가움을 더한다. 프롤로그는 누군지 모를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정체를 찾는 재미도 있었다. 타우누스 시리즈를 보면서는 한번도 범인을 맞춘적이 없어서 정신없이 읽기 바빴던 게 더 크지만 빨리 '영원한 우정으로'라는 제목의 뜻을 밝혀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만약 타우누스 시리즈를 처음 본다면 독일 작가라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생소한 편일 것이다. 계속 읽다보면 대충 감이 잡히긴 하는데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하다. 나는 앞선 권들을 읽으며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앞에 등장인물들이 정리되어 있는 걸 보고 굉장히 반가웠다. 역시나 이번 권을 읽으면서 앞에 인물 정리를 해둔 부분을 보고 페이지를 왔다갔다 했다. 1권에선 아직 사건이 밝혀질 기미가 없고, 용의자가 수두룩 등장하는 바람에 2권도 이어서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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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죽어야 사는 헌터 1
네이다 지음, Bill.K 그림, 신노아 원작 / 판시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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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웹툰이다. 원작은 현대판타지 소설로 주인공인 ‘김공자’’가 F급 헌터에서 점점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SSS급 죽어야 사는 헌터'의 세계관에선 다양한 스킬을 가진 헌터들이 있고, 그 헌터들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탑을 오른다. 다양한 스테이지로 구성된 탑을 오르는 헌터들에게 랭킹이 매겨지는 세계, 그 곳에서 김공자는 스킬 하나 없는 말단 F급 헌터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랭킹이 높은 헌터들에게 열광하며 많은 관심을 가진다. 


특히 랭킹 1위 헌터 '염제'에 관한 소식은 TV나 신문을 뒤덮다시피 했고, 김공자도 그 모습을 일상처럼 보며 지낸다. 인성이 개차반이지만 랭킹 1위라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염제. 세 평짜리 단칸방에서 사는 김공자가 염제인 유수하를 부러워하는 건 당연했다. 김공자는 염제의 재능을 부러워하며 그가 가진 스킬이 자신의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 김공자의 앞에 스킬카드가 생성된다. '당신의 추한 질투심에 탑이 경악하여 스킬을 던져줍니다'라는 알림창과 함께 나타난 카드는 적의 스킬 중 한 개를 복사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S+급의 스킬이었다. 하지만 그 카드에는 심상치 않은 발동조건이 있었으니, 바로 스킬이 주인이 죽어야만 발동된다는 것이다. 운빨 똥망이라며 절망하던 김공자. 그러던 차에 김공자가 유수하의 손에 목숨을 잃고 24시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귀 스킬을 복사하게 되며 상황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웹툰 단행본 1권은 1~10화의 연재분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로 치면 극 초반부이며, 아직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웹툰의 내용은 빼곡하다 느낄 정도로 알찼다. 주인공인 김공자가 어떻게 해서 각성하게 되었으며, 유수하의 손에 죽은 뒤 죽은 시간으로부터 24시간 전으로 돌아온 것, 염제의 민낯을 확인한 공자가 염제를 죽이겠단 일념으로 4090번 자살해 시간을 되돌린 것, 마침내 염제를 죽인 후 검성에게 살해당하며 검의 성좌라는 A+ 스킬을 복사하고 '검제'라는 배후령을 얻으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까지. 사건들이 쉴새없이 터지고 이어져서 빠른 호흡으로 볼 수 있었다. 일러스트도 굉장히 잘 뽑힌 편이라 아직 등장하지 않은 인물들도 기대중이다.


처음 원작 소설을 봤을 때는 뭐 이런 미친 놈+찌질한 놈이 다 있나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근성만은 최고였다. 상상했던 장면을 웹툰으로 보는 즐거움도 한 몫했지만 일러스트로 내용을 잘 살려서인지 더 몰입해 볼 수 있기도 했다. 이정도 호흡이라면 웹툰 단행본이 20권은 너끈하게 넘을 것 같은데, 탑의 마지막까지 멋진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투씬도 좋았고 공자 캐릭터의 매력도 잘 살리고 있어서 웹툰으로 보는 재미가 더해졌다. 뒷내용이 진행될 수록 사건의 스케일도 커지고 매력적인 인물들도 등장한다는 걸 알아서인지 연재될 날이 기다려진다. 말단 헌터에서 확고한 랭킹 1위가 될 공자의 여정 또한 기다려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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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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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세를 줬다는 책 소개를 봤을 땐 그냥 판타지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배경은 평범한 현대다. 현대의 낡은 단독주택에 악마가 세입자로 들어온 것이다. 사람 이름이 악마인 게 아니라 정말 악마다. 그러니까 단독주택의 문 안쪽은 사후에 갈 수 있는 지옥으로 통한다는 말이다. 한쪽이 지옥이 된 후 집 안의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지옥에선 죄값을 치루며 고통받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리고, 문을 통해 종종 죄인들이 탈출하기도 하며, 이승에서 남겼던 음식을 모아 쓰레기통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이 주방에 등장하기도 하고, 지옥의 열기를 버티지 못해서 저절로 열리는 문짝을 통해 온갖 종류의 지옥을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럼 도대체 왜 인간 세입자도 도망칠 낡고 불편한 단독주택에 지옥이 생겼는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순하다. 집주인인 할머니가 지옥의 리모델링으로 죄인을 둘 곳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고 빈 방과 남는 공간을 빌려주겠다 악마와 부동산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했기 때문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서주'는 악마에게 방을 임대해 준 할머니와 사는 동거인이다. 남들은 모두 손녀로 알고있지만 사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이며, 입은 걸고 행동은 험하나 정이많은 할머니에게 주워져 손녀노릇을 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던 어느날 세입자가 하나 둘 나가고 빈 방이 많았던 할머니의 집에 새로운 세입자인 악마가 들어왔다. 이후 이상한 일을 하나씩 목격하면서도 서주는 할머니 대신 하는 주택의 청소와 관리를 멈추지 않는다. 이런 부분을 본 첫 소감은 와 담력 끝내준다였다. 나같으면 1분 1초도 그런 곳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옥에서도 빛은 있는지 세입자인 악마가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처음 시작은 미숫가루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서주를 향해 '출근하기 전에 당 채우고 나가기♡'라는 쪽지가 붙어있던 미숫가루. 예쁜 유리잔에 땅콩가루까지 야무지게 넣어 만든 미숫가루를 서주는 먹고나서야 할머니 솜씨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이후 서주는 미숫가루를 만들어준 게 새로운 세입자 악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의외로 상식적인 악마와 친해진다. 뭐라고 불러야하냐는 악마의 말에 '저기요'라고 부르라고 말한 것도 소소한 재미포인트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 의외였지만 소설은 뒤로 갈수록 이게 로맨스였던가?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분명히 미스터리물인줄 알고 시작했는데 뜻밖의 로맨스 분위기라 후에 뒤통수 엔딩인가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이정도면 로맨스 비중이 별로 없어도 잘 읽는 독자로써 로판이라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 읽고보니 제목도 로판이 생각나게 한다.


난 당신이 좋아하는 걸, 당신을 웃게 할 수 있는 걸 전부 할 겁니다.

그게 당신을 파멸로 몰아간다 해도. - 119p



소설 속 지옥의 모습은 괴기하고 그로테스크한 면도 있다. 지옥을 묘사하고 있기에 읽으면 한구석이 섬뜩해지기도, 징그럽기도 하다. 분명히 그런데 굉장히 잘 읽히는 편이기도 하다. 위트있는 문장들과 통통튀는 상상력에 더해 서주가 속으로 생각하는 100% 팩트에 기반한 신랄한 말들이 재밌었다. 술술 읽히며 넘어가는 책장을 보니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게 단번에 이해가 될 정도였다. 이 소설에서 큰 사건이 되는 건 할머니와 난봉꾼 아들, 서주와 악마다. 할머니는 친아들이 둘 있었고 하나는 죽은 상태다. 하지만 하나는 살아남아 돈문제로 말썽을 일으키며 집문제로 이미 여러번 다툼이 있었다. 하지만 서주는 할머니의 손녀처럼 늘 할머니를 챙기나 남이었다. 서류상 아무런 관계가 아닌 사람들. 그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주에게 족쇄가 된다. 서주에게 할머니는 하나뿐인 가족임과 동시에 남이라 계속 아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해가며 상처받기도 한다. 이 부분이 바로 소설에서의 적절한 무게감이었고, 때문에 서류상의 관계없이 끝나는 악마와의 결말부도 인상 깊었다.


그 밖에 사려깊은 조연캐릭터들도 좋았고 지옥의 설정도 재밌었다.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만난 언니는 진국이었으며 주인공 서주를 짝사랑했던 연하남은 귀여웠다. 늑골, 폐, 심장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를 한 조각씩 떼어와 필명을 지은 것부터 예사롭지 않은 작가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도 예사롭지 않았다. 어떻게 문 뒤에 지옥을 불러올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덕분에 재밌는 상상력을 마음껏 엿볼 수 있었다. 중간에 나왔던 악마가 일을 하는 모습, 관리하는 곳이 있는 듯했던 내용, 이승에 오게 된 지옥이 어디까지 어떻게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관한 설정 등등 세심한 부분도 눈에 띄어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이 소설의 결말만 보면 2권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꼭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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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우리의 앞머리를
야요이 사요코 지음, 김소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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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소년과 두 사람의 뒤를 좇았던 남자의 이야기 '바람아 우리의 앞머리를'. 제목부터 독특한 소설이라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었다. 그렇게 펼쳐든 소설은 복잡한 가정사와 함께 시작한다. 두 소년 중 하나의 이름은 다치하라 시후미. 시후미는 어머니인 미나코가 변변찮은 남자 아키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다. 사랑에 눈이 멀었던 미나코는 극단원에 난봉꾼이었던 아키라와의 결혼생활을 꿈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좌절되고 부모님의 의사에 따라 재혼하며 시후미를 버린다. 시후미는 미나코의 부모 즉 다치하라 교고의 양자가 되고, 이후 시후미는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며 살아가야 했다. 이런 시후미의 사정을 잘 알고있는 유키는 교고의 아내인 다치하라 다카코의 조카였고, 교고가 공원에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된 사건으로 조사를 부탁받게 된다. 조사를 부탁해온 사람은 다카코로, 그녀는 남편인 교고를 살인한 범인으로 시후미가 수상하다고 말한다.


처음엔 굉장한 가계도 때문에 이게 뭔가 싶었던 소설이었다. 나는 현실 친족관계가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이렇게 꼬아두면 한 번에 기억하기가 힘들었는데, 그래도 이 소설은 유키가 조사대상을 조금씩 늘려나가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유키는 시후미가 수상하다는 다카코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곧이어 터진 시후미의 생부 아키라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스스로 사망했다고 하자 언뜻 시후미의 얼굴에서 미소가 나타난 것을 보고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다. 누구도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에 독특한 분위기와 성숙미를 가진 시후미. 그런 시후미에게 비밀이 있다는 건 유키가 시후미의 과외를 맡았을 때 우연히 보게 된 노트를 떠올리게 되면서부터였다.


소설 속에는 아픔이 많았다. 남들이 보기엔 번듯한 집안이지만 학대당한 소년 둘에 그냥 학대 그자체를 견뎠던 소녀 하나. 그리고 뻔히 보이는 사실을 모른체했던 어른들까지. 제목을 보고 섣부르게 따뜻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소설의 분위기는 서정적이면서도 차분하다. 극도의 통제 끝에 늘 평온한 표정을 가면처럼 쓰고 있는 시후미가 중심을 잡고 있어서인지 소설의 느낌도 시후미를 따라갔다. 차분하고 정갈하지만 무언가 숨겨진 것 같고 어느 한편으로는 찜찜하기도 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때문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부터는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유키가 찾아낸 진실이 과연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이 전체적으로 그려지는 동안 독자는 유키를 따라 진실을 유추해 볼 시간을 갖는다. 솔직히 숨겨진 비밀이 그리 충격적일 정도는 아니었는데 풀어나가는 솜씨가 좋았다.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으로 시후미의 인간미를 드러내는 점도 마찬가지. 그 밖엔 남들이 모르는 우정을 쌓으며 미래를 계획했던 부분에서 굉장히 신중하게 나오는 성격들에 놀랐었다. 어리다면 어리다고 할 수 있는 중학생이었는데 일찍 성숙해버릴 수 밖에 없었던 두 소년이 안타깝기도 했다. 가벼운 미스터리물이 아닐까하고 시작했던 소설이었으나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소설 내용이 진행되는 내내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것 같아 어쩐지 여름과 잘 어울렸던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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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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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드라마가 있는 건 알았지만 원작이 책이라길래 책부터 보려고 미뤄두었다. 1권만 봐서인지 도대체 왜 소설의 제목이 '파친코'인가는 아직까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2권을 꼭 읽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소설 '파친코' 속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다. 일본은 한창 전쟁중이며 조선은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받고, 수탈이 일상이며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마음을 졸이고 사는 게 일상이다. 그런 시대에 부산의 끄트머리 영도, 그곳에도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한 늙은 어부와 아내는 영도에서 하숙을 치며 아들을 셋 낳았으나 가장 몸이 약한 큰아들 훈이만 살아남았다. 훈이는 윗입술이 세로로 갈라졌고 다리를 저는 장애가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훈이는 근성이 있었고 일을 잘해 가난한 살림에도 아내를 맞을 수 있었다. 아내 양진과 훈이는 여러 아이를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끝에 네번째로 딸아이이자 소설의 주인공인 선자를 낳았다. 그리고 선자가 열세 살이 되던 해 훈이가 결핵으로 죽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영도가 고향인 선자의 출생부터 성장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이야기까지가 1권에 수록되어 있었다. 아마 2권은 아이들이 성장하며 겪는 문제와 선자의 말년까지 그려지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소설은 선자 주변의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죽음을 그린다. 선자가 처음 겪었던 상실은 아버지다. 일제강점기인데 왜 첫번째 상실이 나라이자 조국이 아닌가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의 도입부는 이렇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첫문장부터 우리는 역사의 일부지만 나라와 상관없이 그럼에도 살아가야한다는 의지가 잔뜩 드러나있어서 몹시 강렬한 느낌이었다. 때문에 선자에게 첫번째 상실은 아버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외에 선자는 다른 사람들과 헤어지기도 또 다른 죽음을 경험하기도 한다.



주인공인 선자는 약자다. 가난하면서 나라를 잃었고, 어린 여자아이였다. 때문인지 주위의 인물들은 약자인 선자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 시대 사람같지 않게 몹시 다정한 아버지와 든든한 어머니, 함께 하숙집을 이끌어가는 식모 자매들이 있었던 따뜻한 보금자리는 시간이 갈 수록 가난에 허물어져간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굳세게 살아가는 젊은 과부인 양진은 딸 선자와 하숙집 식구들이 그저 배만 곯지 않기를 바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꼬박꼬박 밀리지 않고 들어오는 하숙비와 채소를 가꿀 텃밭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선자가 어느 유부남의 꼬임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되며 엄청난 변화가 생긴다.


분명히 말해두건데 소설을 보면 화나는 포인트가 상당히 많다. 만약 독자가 여성이라면 더욱 더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아무런 정보 없이 보다가 선자를 임신시킨 놈이 유부남이라는 걸 알았을 때 육성으로 욕이 나올뻔 했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너는 조선의 아내고, 일본인인 아내는 따로 있을거라며 말하는 부분에서는 너무 어이없을 정도로 화가나서 책을 한 번 덮었었다. 그 밖에 조선인이기 때문에 받았던 차별, 조선인이면서 여자이기에 희생당하고 억압당했던 삶,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갈 수 없는 사다리, 부당한 구속 등등 화나는 포인트들이 많아서 대체 그 시절은 어떻게 삶을 살아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독한 삶에서도 한 줄기 빛이 있었다면 선자에게는 그것이 남편인 이삭이었을 것이다. 이삭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해 이제 밑바닥으로 내려갈 일만 남았던 선자를 구원해줌과 동시에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이 되어주었다. 기적같이 나타난 이삭을 따라 선자는 일본 오사카로 향하고 그곳에서 조선인 마을에 가게된다. 조선인 마을은 집 안에서 돼지를 키우고 음습하며 냄새나는 곳이었으나 선자에게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었다. 물론 여기서도 선자의 고난이 끝나지 않는다. 아이를 임신해 온 선자를 반기지않았던 남편의 형 요셉은 경제력은 턱없이 부족하면서 아내의 일자리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고 수틀리면 소리를 치며 기분나쁜 티를 팍팍 내는 남자였다. 같은 부모아래 자란 형제임에도 너무 달랐던 모습이었는데, 결국 선자는 요셉의 아내인 경희와 힘을 합쳐 일을 하고 가정의 어려움을 꿋꿋하게 이겨나간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업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사람들이 살아가지 않는 건 아니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라를 잃어도 사람들은 살아가야하며, 누군가 나라를 팔아먹었다해도 당장 먹고 사는데 문제가 있다면 그런 점은 신경쓸 겨를이 없다. 먹여살릴 아이가 있다면 더더욱. 일본이 조선을 할퀴고 지나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으나 그럼에도 살아갔다. 죽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야했기에 살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가족이 있고, 아이가 있으며, 허울 뿐이라해도 자신이 속한 곳이 있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그저 버텼던 기록인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소설을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암울함만 가득한 소설이지 않나 싶겠지만, 잘 읽혔고 재밌게 볼 수 있는 소설이기도 했다. 당분간 잡곡하나 없는 흰 쌀밥을 보면 어쩐지 선자와 그녀를 떠나보내야했던 엄마 양진이 떠오를 것 같다.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는 애국자들이나 일본 편에 선 재수 없는 조선 놈들이 있는가 하면, 이곳에서나 또 다른 곳에서 그저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수많은 동포가 있었다. 결국 배고픔 앞에 장사 없는 법이었다. - 2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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