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다 멘토솔루션 진로 가이드북 2
박인연 지음 / 이답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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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서평] 「공부는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다」 인생의 원동력을 만들어줘라



 

공부는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다 - 
박인연 지음/이답


 서울대학교에 장학금 씩이나 받고 들어간 먼 친척 누나가 있었다. 우리집이 서울대 근처였기 때문에 통학을 위해 약 2년정도 우리집에 머물며 같이 살았다. 누나의 생활 패턴을 보면 항상 공부, 밥, 공부, 외출, 공부, 공부, 공부…. 이런식이었다. 하루종일 질리지도 않고 잘도 한다, 라고 생각에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합니까? 라고 물어보니 공부는 평생 해야 되는 거라는 소름 끼치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한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공부라는 게 그저 '입시'만을 위한 수학 공식, 영어 단어인줄만 알았다. 사실 내가 좋아하고, 원해서 익히고 배운 모든 게 공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좋아하는 영화 배우의 이름을 외우거나 감동적인 노래의 가사를 외우거나 하는 일 모두가 공부다. '익히고 배울 때'의 느낌은 뇌가 마치 알찬 운동을 하고 난 것처럼 팽팽해지고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모든 세포가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다. 이래서 공자님은 그런 말을 했을까. 학이시습지, 불역열호(한자생략...)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라는 뜻이다. 나는 어쩌면 운이 좋았다. 하고 싶은 공부를 일찍부터 접할 수 있었다.

 

 나는 입시라는 경쟁에서 일찌감치 낙마하고 맞벌이로 바빴던 부모님의 관심에서 벗어나 요즘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덜했다. 심하게 시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독서율이 바닥을 기는 이유가 뭔지 아는가? 어렸을 때 억지로 책 앞에 붙들고 있어서다. 지금부터 공부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하기 싫어지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가 "공부 언제 할래?" 라는 점만 보더라도 '자율'과 '타의'의 간극은 무척 넓다. 공부는 우리 앞에 주어진 어려운 과제가 아니라 길고 긴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야 한다. 「공부는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다」는 평생 해야 하는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가르쳐 주고 있다.



 목표설정과 시간관리부터 패턴학습의 이해와 활용까지 5가지 공부 전략을 통한 맞춤 가이드는 같은 공부라 하더라도 어떤 전략을 쓰느냐에 따라 성적과 동기가 무척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지 이 전략이 오로지 '입시'에만 맞춰져 있어 '평생 공부'라는 틀에는 약간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어쨌든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키운다는 점에선 굉장히 긍정적이다. 아무리 좋은 선생과 환경이 있더라도 공부는 결국 '독학'으로 귀결된다. 반드시 혼자 풀어야 할 문제가 있고 혼자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리 아이에게 공부를 하라고 다그치기만 할 게 아니라 혼자 공부 할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해 주는 게 어떨까? 아이가 죽도록 싫어 하는 공부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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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도 괜찮아 - 진흙탕을 놀이터로 만드는 박혜란의 특급 결혼이야기
박혜란 지음, 윤정주 그림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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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서평] 「결혼해도 괜찮아」 행복은 결혼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결혼해도 괜찮아 - 
박혜란 지음, 윤정주 그림/나무를심는사람들

 

 중학교 때 반 친구들은 내 꿈을 가지고 나를 놀렸다.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싶다는 조금 여성스러운 꿈을 말한 게 다른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었나보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큰 야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인지 내 꿈은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또 마치 이루기 쉬운 꿈인 것처럼 평범해보였다. 어렸을 때는 무슨 허세였는지 평범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고 어떻게든 튀어보거나 특별하고 싶었다. 평범한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현대인들은 그들이 만든 평범을 이루기 위해 걸음마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경주마가 되어 인생 전반을 치열하게 내달린다.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는 평범한 결혼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커플들은 아우성을 치고 있는가. 나에게 평범한 결혼과 평범한 가정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에 도달하는 첫 번째 과제임이 분명했고 확실한 목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지금처럼 부정적인 결혼관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결혼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노년의 결혼 생활은 갈수록 시큰둥하다. 그래서 난 남들도 으레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아직도 자기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가슴이 울렁인다는 청천벽력 같은 고백을 하는 게 아닌가.

 '진짜, 정말, 레알?' 묻고 또 물어도 답은 예스.

 다른 친구에게 이 말을 전했더니 첫마디가 '거짓말!'

 또 다른 친구도 역시 '뻥이야!'

 또또 다른 친구는 '미쳤나 봐! 변태 아냐?'

P. 57 

 

 대학교 때 한 학년 높은 선배와 정말 치열하게 연애했다. 내 감정이든 그 선배의 감정이든 감당하기 힘든 연애였다. 그토록 뜨거운 감정을 가졌음에도 어떻게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선배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는 모습을 보고 선배의 나에 대한 마음을 확인했다.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는 상처도 받지 않는다. 내가 선배에게 상처받으며 내 감정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했다. 하루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과 생각이 소용돌이 치는 와중에 지금까지 결혼관을 강하게 지배하는 하나의 생각은, 왜 사랑해서 안달이 났던 사람끼리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못해 안달해야 하는가이다. 결정적으로 결혼에 대한 의문을 던진 소설이 있다. <중국식 이혼>이다. 이 소설 역시 내가 느꼈던 생각과 같이 주인공들은 치열하게 사랑하고 증오한다. 에프라임 키스혼의 패러디 작품 「그것은 종달새였다」에서는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서술한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베로나의 허름한 방 한 칸에서 살았을 것이다. 살림은 형편 없고 로미오의 배는 튀어나왔을 것이며 줄리엣은 그의 모습에 신물이 났고 그래서 둘은 늘 싸운다. 다시 한번 묻는다. 결혼해도 괜찮을까? 

 인간은 어차피 외로운 존재다. 연인이 그 외로움을 달래 주는 데 특효약인 걸 사실이지만 약효는 늘 시한부일 뿐이다. 특별히 소통이 잘 되는 남편이라면 의로움 퇴치에 큰 힘이 되겠지만 그 역시 외로움을 완치시킬 명의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그도 결국은 나처럼 외로운 존재이니까.
P. 87 



 다시 환상 가득 행복 가득한 결혼을 꿈 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결혼해도 괜찮아>를 펼쳤다. 분명 결혼하라고 만든 제목 같은데 왜 내용은 제목과 다르게 결혼을 할 게 못된다는 주장을 일삼는지. 결혼만 하면 이성은 서로의 사랑이 식어가는 걸까? 사랑에 대한 설렘을 무척 훌륭하게 표현한 명작 <비포 선라이즈>를 보면 남자 주인공은 만약 지금 나를 놓치면 나중에 결혼하고 권태기가 왔을 때 그 남자를 만나봤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라는 협박어린 작업 맨트로 여자 주인공을 꼬신다. 그 맨트 속에는 '결혼 하면 너의 남편은 매력이 떨어질 거야' 라는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상하게 결혼만 하고 나면 들끓던 사랑이 식어가는 이유는 너무 가깝기 때문 아닐까? 사람은 너무 가까이에 오래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 특히 군대에서 그런 경우가 많다. 여태껏 문제 없이 사회 생활을 잘 하던 사람도 군대에 들어와 24시간 내내 사람과 부대끼다 보면 문제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이란 하나의 세상과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이 합쳐 지는 것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만큼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세상이다. 나와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이라는 작은 우주 두 개가 만나는 빅뱅이니 어찌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사람은 누구든지 서로 다르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은 절대 안돼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인간 관계는 서로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이해 하는 과정이고 결혼은 인간 관계의 정점이 아닐까. 결국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다. 일평생 혼자라는 외로움을 감당하다가 결혼을 통해 지금까지 비어있던 것만 같은 '반쪽'을 채우려 하지만 그건 전부 결혼이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배우자는 나를 하나로 완벽학 만들어주는 합체의 대상이 아닌 불안정한 나를 받쳐주는 동반자와 같다. 이게 바로 결혼해도 괜찮은 이유 아닐까? 

 결혼이 맘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쉽게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왜 결혼했는가 후회하지 마십시오. 배우자와 스스로를 탓하지도 마십시오. 결혼이 두 분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두 분이 행복한 결혼을 만들어 가십시오.
P.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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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 - 그림 속으로 들어간 마술사들
오은영 지음 / 북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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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서평]「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인생의 프레스티지




 고등학생 때 여자친구와 함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프레스티지>를 봤다. 연애 초기 단계였던 그때는 영화의 내용이야 무엇이든 상관없으리 그저 같이 있기만 하면 좋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나니 그 마술같은 세계에 흠뻑 빠져 여자친구에게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물론 보고 나서야 이런 좋은 영화를 정신적으로 공유 했다는 사실에 즐거웠다. 프레스티지라는 단어는 영화 첫 장면에서 설명이 나오는데, 마술의 3단계 중 조우, 대전환에 이은 마지막 단계 대단원을 뜻한다. 프레스티지에서 중요 마술로 등장하는 '순간이동' 마술로 예를 들자면 사라졌던 마술사가 순식간에 다른 장소로 짠! 하고 나타나는 그 순간이 바로 프레스티지다. 서로의 마술 비법을 캐내기 위한 휴 잭맨과 크리스천 베일의 갈등이 무척 흥미진진하고 배우들의 역량 또한 매우 뛰어나다. 두 주인공이 마술과 인생의 '프레스티지'를 완성하려는 치열한 경쟁은 정말 볼만하며 관객들을 위해 마련된 반전의 '프레스티지' 역시 굉장한 즐거움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가진 힘을 느낌과 동시 알게 모르게 한낱 유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마술이, 인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양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에 정치적인 힘을 발휘했던 주술부터 20세기 대중오락으로 진화한 마술쇼까지 마술은 정치, 사상, 학문, 예술, 상업, 오락, 일상생활, 개인의 내면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의 삶에 관여해 왔다. 마술의 이러한 모습은 인간사의 모순적인 모습들과도 닮아있어 자연과 초자연, 정치와 종교, 이성과 비이성을 넘나드는 모호한 사회적, 철학적 경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P. 9 

 

 「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는 여태껏 마술과 미술의 콜라주로 만들어진 인문학 도서가 없었기 때문에 마치 세상에서 단 한 명의 마술사만이 할 수 있는 마술처럼 유니크한 책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마술이라는 행위를, 내가 영화 <프레스티지>를 보기 전에 생각한 것과 같이 그저 구경거리라고만 생각하며 '인문학'이라는 양식의 옷을 입은 걸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자. 아마 20~30대 남자의 경우 과거에 한 번씩은 마술을 배우려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은결이라는 인물이 유명세를 타며 마술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마술이 가지는 감정의 놀라움으로 이성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남학생들이 무척 많았다. 나 역시 좋아하던 선배에게 마술을 선보이며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했지만 그 선배의 전 남자친구가 직업 마술인이라는 사실을 듣고 다시는 마술에 손을 대지 않았다. 어쨌든 마술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이 공포이든 신기함이든 분명 그것에는 즐거움이 담겨 있다. 사람의 감정을 겨냥하고 움직이려는 시도는 우리가 좋아하는 예술 장르와 닮았다. 미술과 마술은 철자 외에도 닮은 점이 있는 것이다. 특시 제7의 예술이라고 불리우는 영화의 모태가 마술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인공 빛을 오목렌즈에 투과시켜 그림이 그려진 작은 유리 슬라이드에 쏘아 스크린에 투사하는 매직 랜턴을 통해 공포스럽고 으스스한 마술쇼를 선보였고 이를 판타스마고리아라고 이름 붙였다. 후대의 연구자들은 19세기말에 등장한 영화의 기술적, 내용적 기원으로 판타스마고리아를 지목한다. 현대에 가장 대중적인 예술로 각광받고 있는 영화와 모태가 마술이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마술과 미술이 나란히 선다 해도 큰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마술이 창녀와 같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공연이라는 점부터 시작해서 아주오래전부터 인류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판타스마고리아는 낯선 언어가 되었지만 놀이공워원의 유령의 집에도, 대형스크린에 비치는 영화에도 판타스마고리아 쇼의 흔적은 여전히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존재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믿게 되는오싹오싹하면서도 환상적인 세계, 그것이 바로 판타스마고리아의 유산이다.

P. 70 



 「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이 끝날 때 쯤 나오는 마술의 3원칙을 살펴보자.


 하워드 서스톤의 3원칙

 1. 마술을 연기하기 전에 현상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2. 같은 마술을 2번 반복해 보여서는 안 된다.

 3. 마술의 비법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

P. 243 


  앗, 이거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우리 인생과 운명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떨까?


인생과 운명의 3원칙

1. 인생을 살기 전에 운명은 설명해주지 않는다

2. 같은 인생을 두 번 살 수 없다.

3. 운명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


 어떤가? 무척 비슷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프레스티지>의 두 주인공처럼 서로 속고 속이며 인생의 '프레스티지'를 완성하려는 결정적 한방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다. 마술은 속이는 과정, 속는 과정이 가장 즐겁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마술에 대해 진실과 거짓을 따지며 하염없이 마술사의 손짓만 바라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마술이 주는 즐거움에 온전히 빠질 수 없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설령 운명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그 과정이 주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게 바로 우리 인생의 '프레스티지'를 완성하는 마술과 같은 트릭 아닐까? 


 마술쇼를 찾는 관객들이 어떤 마술에 즐거워하고 놀라워하며 마술쇼를 통해서 어떤 시간을 추구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마술사 개인의 쇼의 질을 높여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함은 아니다. 그보다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해보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여가를 즐거운 시간으로 꾸며주기 위해 노력하는, 다분히 공동체적인 실천이라고 자부한다.

P.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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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
송명빈 지음 / 베프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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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서평]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 기억의 소멸 의식의 탄생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 - 
송명빈 지음/베프북스
 

 언젠가 미혼모에 관한 다큐를 봤다. 거기서 나오는 미혼모들은 하나같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다. 제대로 된 국가적인 복지 혜택이나 지원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수절 개념을 고수하며 알게 모르게 정조에 대한 교육을 주입하며 미혼모 발생을 차단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와는 반대로 미혼모가 발생한 후의 일은 나몰라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수 하지 않기 위한 교육은 하지만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가 인터넷이란 것을 접할 때는 이 새로운 매체에 대해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장단점을 분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다르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서 글을 읽고 쓰기 전부터 인터넷을 접하고 있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올지 예측조차 하지 못한 채, 글을 올리고 파일을 전송하고 떄로는 철없는 시절의 조절하기 힘든 감정을 영구불멸의 디지털 세상에 각인시키고 있다. 마치 주홍글씨와도 같이 …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다.
P. 17 

 정보화 사회가 급격히 성장하며 과도하고 공개적인 온라인 세상 역시 과거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한때 그룹 2PM에 소속돼 많은 인기를 받고 있던 가수 박재범도 연습생 시절에 온라인에 올린 한국에 대한 비난글이 화제가 되며 결국 소속사를 나오게 됐다. 지금은 대한민국 축구의 기둥으로 성장한 축구 선수 기성용 또한 SNS을 통한 발언이 문제가 되며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서의 실수는 비단 특정 인물에 한정되지 않는다. 익명성과 비대면성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에서 아직 윤리적 의식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을 때 많은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온라인 세상이 나와 연결되어 있는 현실이라는 점을 까마득히 잊고 그저 막연하게 어딘가에 존재하는 다른 세상이라는 착각으로 나 아닌 나의 모습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 기록은 마치 주홍 글씨처럼 온라인이라는 망망대해를 떠돌며 나에게 새겨지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던져 보낸 내 '실수의 유리병'은 다시 회수하지 못하는 것일까? 난 계속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공개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P. 24 

 「잊혀질 권리」는 웹이라는 영구적인 기억력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디지털 세상에 태어난 또 다른 '나'를 소멸시킬 권리와 방법을 주장한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생겨난지 반세기정도가 된 지금에서야 이제 '소멸'이라는 개념을 논하기 시작한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소멸 방법을 전부 나에게 맞춰 행할 수는 없지만, 점차 사람과 사람사이에 퍼져나갈 수 있도록 '잊혀질 권리'에 대한 의식이 생겨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쉽게 지울 수 없고 가볍게 여길 수 없다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누가 봐도 부끄럽지 않을만큼 성숙한 온라인 생활을 한다면 디지털 소멸이라는 개념 역시 더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꼭 나를 기억해줘"라는 영화 속의 슬픈 대사도, "내 제사상은 누가 차려주나"라는 노인네의 낡은 걱정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유명한 격언도, 따지고 보면 잊혀지는 것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죽음보다 더 크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아날로그 시대에는 그랬다. 기억을 위한 수단과 양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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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범인인가 -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배상훈, 범죄사회를 말하다
배상훈 지음 / 앨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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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서평] 「누가 진짜 범인인가」 요괴와 퇴마사




 평소에 TV를 잘 보지 않는데 빼놓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과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다. 특히 <그것이 알고싶다>는 혹시나 놓친 '그것'이 있을까 지나간 회차까지 다시 둘러볼 정도로 흔히 말해 광적으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사회적인 문제를 짚어내는 집중력이나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구성 또한 무척 훌륭해 어쩌다 결방이라도 하는 날에는 화장실을 갔다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개운치가 않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강력 범죄를 다룬 사건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사건들은 방영 막바지에 이르면 항상 공권력의 무능력함과 무책임함을 겨냥하며 사회적 문제로 이끌어 나가곤 한다. 그 단 하나의 범죄, 단 한 명의 범인을 잡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적 문제와 모순적인 사회 구조를 해결하지 않는 한 제 2의, 제 3의 피해자는 또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배상훈 님의 「누가 진짜 범인인가」​는 영상에서 글로 바뀐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는 기분이다. 게다가 더욱 전문적이고 더욱 날카롭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 보니, 대학 초년생 시절 꿈꾸었던 사회정의는 범죄자 몇 명을 법의 심판대 위에 세우고 사회에서 격리시킨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짓밟히는 사람은 여전히 짓밟히고 억울한 사람은 억울함을 풀기 어렵다.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탐욕스런 자본가들은 수천억, 수조 단위의 비리를 저지르면서도 이 사회에서 갑 행세를 하고 있다. 인권위원회, 노동청, 경찰서 앞에 가 보라. 억울함을 호소하며 피켓을 들고 시위는 사람들이 줄을 잇지만, 기득권과 연결된 범죄 수사는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묻혀 버리기 일쑤다.

P. 25 


 ​「누가 진짜 범인인가」는 이제는 놀랍지도 않을만큼 익숙해진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사건의 뿌리이자 근원지를 바라보고 있다. 전국민적인 비극에 빠지게 했던 세월호 사건은 물론 가장 최근에 인육의 공포를 다시 되살린 수원 팔달산 토막 살인 사건까지, 지금 우리 곁에 발생하며 우리를 갉아먹고 있는 치명적인 강력 범죄를 다시 돌아 본다. 사이코패스 · 소시오패스 등 우리사회가 길러 낸 괴물들과 그를 쫓는 프로파일러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판타지 소설 「퇴마록」 연상된다.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세상에 원한을 품고 범죄를 저지르는 요괴와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스스로 사람이라는 존재와 멀어지는 퇴마사의 모습. 친딸을 성폭행한 아버지, 연쇄강간범, 재미로 사람을 살해한 살인범, 불을 지르고 사람이 타 죽는 것을 구경한 방화범, 의붓자식을 잔혹하게 학대한 계모 등의 모습을 바라보면 요괴를 연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공적 관계는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공적 관계 즉 '사회'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으며, 인간의 재생산도 가능하지 않다. '사회' 없이 살아도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삶이 바로 소시오패스의 삶이다.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하는…….

P. 94 


 「누가 진짜 범인인가」​에서 언급되는 범죄의 일면을 바라보다 보면 '내가 저렇게 됐을 수도 있다' 라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저런 무서운 범죄에 휘말려 피해자가 되는 생각보다 내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사회라는 악령에 홀려 길을 잘못 들었다면 나도 경악할만함 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더 무서웠다. 과연 내가 그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나는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마음 속의 분노를 달랠 수 있었을까? ​「누가 진짜 범인인가」​에서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 누가 진짜 범인인가에 대해 우리는 어렴풋이 정답을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진짜 범인과 마주할만한 용기가 있을까?「누가 진짜 범인인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 가치가 부숴지지 않도록, 또한 나조차 그에 따라 파괴되지 않도록 범죄라는 사회와 맞서 싸울 용기를 주는 책이다. 


 이 실험은 이전까지 학자들이 집중했던 범죄의 생물학적 요인이나 심리학적 요인 등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은 특정 상황에 놓이면 충실한 역할(행위)자가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특별한 누군가가 '범죄자' 혹은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 다 '범죄자' 혹은 '악인'이 될 수 있다!

P.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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