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보고 싶거든 - 간절히 기다리는 이에게만 들리는 대답
줄리 폴리아노 글, 에린 E. 스테드 그림, 김경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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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서평] 「고래가 보고 싶거든」 나도 모르는 사이 다가올 그리움





 

고래가 보고 싶거든 - 
줄리 폴리아노 글, 에린 E. 스테드 그림, 김경연 옮김/문학동네어린이



 주인을 잃고 길에서 정처 없이 헤매고 있는 강아지를 볼 때면 꼭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다고 말한 선배가 있다. 그 후로 나에게 무언가 기다림이란 '길 잃은 강아지'와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었는데, 세월이 조금 흐르고 보니 사람도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무언가를 그리워 하며 산다. 집을 혼자 보고 있던 아이는 굴 따러 간 엄마를 그리워 하기도 하고, 굴 따러 간 엄마는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가에 잠든 아이를 그리워 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그리움을 가지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고래가 보고 싶거든」​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고, 기다림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그림은 꼭 잔잔한 바다처럼 평화롭고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진다. 소년은 그곳에서 고래를 기다리고 있다. 고래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이후로 인류에게 이룰 수 없이 거대한 꿈 같은 존재였다. 소년이 고래를 그리워 하는 뚜렷한 이유가 나오지 않아도 우리는 어쩐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세상 모든 게 헤어진 연인과 겹쳐 보이는 것처럼 소년은 모든 그림이 고래로 보인다. 등대가 놓인 고래 모양의 방파제. 하얀 고래를 꼭 닮은 구름. 심지어 펠리컨의 입 모양 마저도 고래로 보인다. 매 장면 시원하고 간결한 색감의 그림에는 아름다운 시처럼 기다림과 그리움이 흐른다. 

 

 바다 근처에 살아본 적도 없고, 고래는 더더욱 본 적도 없어 고래가 보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고래를 기다리는 소년의 모습을 보면 꼭 지나온 삶과 앞으로 있을 삶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그렇게 간절히 그리고 그리다 보면 소년은 고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고래는 가까이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 포기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한눈 팔지 않고 있다 보면 숙명처럼 기다려 온 그리움의 끝이 보일 수도 있다. 만약 앞으로 고래가 보고 싶어진다면 이 책을 다시 한번 꺼내어 볼 참이다. 많은 그림책을 봐왔지만 이토록 마음을 꽉 채워주는 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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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초 사고
아카바 유지 지음, 이영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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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서평] 「0초 사고」  저질 글쓰기 근육을 위한 해답

 


 

0초 사고 - 
아카바 유지 지음, 이영미 옮김/열린책들


 김훈 작가가 대표작 「칼의 노래」를 쓰면서 첫 문장을 '버려진 섬마다 꽃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 피었다' 중 어느 것으로 할 지 며칠 고민했다는 일화는 무척 유명하다. 그만큼 글에 있어서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음절 하나까지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경을 써야 한다. 나는 대학에서 소설 창작이나 시 창작으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고심 끝에 나온 글에 익숙하다. 그 상황을 정확히 묘사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기 위해 계란을 품고 있듯이 마음 속에 의문을 품고 있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부화하듯 해답을 찾아내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주제의 책 「생각의 씨앗을 심다」에 관심이 가기도 했고, 글쓰기를 다룬 책 중 가장 인상 깊게 본 「대통령의 글쓰기」에서도 '절실해야 좋은 글이 써진다' 라는 비슷한 내용을 보며 공감했다. 

 「0초 사고」​에서 말하는 즉각적인 해답과 직관력을 키우는 것으로 과연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문학적인 글쓰기와 일상 생활에서 쓰는 실용적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무척 다르지만 결국 사고에 의해 옮겨지는 글은 언어 감각이 지배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했다. 


 「0초 사고」​에서 문제에 직면하자마자 답을 낼 수 있는 그 초고속 사고의 핵심은 바로 '메모하기'다. 번뜩이는 순간 반사적으로 그에 가장 적합한 단어와 문장을 토해내기 위한 연습으로 메모를 강력 추천한다. 확실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메모하는 습관은 대학에서도 교수님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작가의 조건으로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글쓰기'에 있어서 '메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알고 있다. 소설의 소재가 떠올랐을 때,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바로 메모할 수 있는 수첩을 들고 다닐 때부터 작가의 시작이라는 말씀까지 하셨을정도다. A4용지 1장 쓰는 데 1분. 그렇게 하루에 10분 10페이지를 쓰며 사고의 훈련과 언어 감각을 키우는 방법은 흡사 예전에 글쓰기 근육이라는 표현을 썼던 '글쓰기 고수'가 연상됐다. 글쓰기는 마치 우리의 육체처럼 하루하루 꾸준히 단련해주지 않으면 어느덧 감각이 둔해지고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게 된다. 「0초 사고」​에서 가이드한 대로 메모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확실히 글에 대한 부담도 덜고 과거에 한창 유행했던 브레인 스토밍처럼 진귀한 아이디어가 쏟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유가 뭘까. 평소에 다양한 생각을 한다고 믿지만 그것은 분명 다람쥐 쳇바퀴나 반복, 망설임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1건 1페이지로 써나가면, 그 건에 관해서는 일단 결말이 나기 때문에 고민해야 할 것, 생각해야 할 과제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매일같이 많은 생각을 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확연히 다르다. 매일매일 새로운 10가지 고민이나 과제를 떠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반대로 말해 보자. 메모를 안 쓰면 매일 똑같은 생각만 계속 되풀이하는 셈이고 고민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은 곧 머리를 쓸데없이 사용하고 있고, 시간을 매우 낭비하고 있다는 증거다.

P. 121 


 글쓰기에는 실로 신비한 힘이 있는데, 「0초 사고」​의 작가는 경험을 했는지 글의 힘을 알고 있다. 글을 쓰다 보면 신기할 정도로 생각이 정리되고 품고 있었던 아픔이 조금은 치유된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적극 권장하고 있다. 글은 쓰다보면 솔직한 내면의 얘기가 나온다. 내 안에 샘물처럼 고여 있던 '말'이 출발선이 풀릴 것처럼 달려 나와 종이에 보기 좋게 글이라는 형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머릿속에 동네 축구처럼 무분별하게 흩어져 있던 생각이 현대 축구의 치밀한 포메이션처럼 완벽하게 자리를 잡는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글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보통 인간관계에 있어서 대화의 방법으로 상대방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는데,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내 안에는 아픔을 보살펴줄 위안도 들어 있고, 지금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해답도 들어있다. 메모하기의 연습이 '글'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일의 해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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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여행 - 내가 꿈꾸는 강인함
정여울 글.사진, 이승원 사진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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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서평] 「그림자 여행」 그녀의 그림자가 빛나는 순간


 



 언제 정여울 작가의 글을 읽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 책장에는 그녀의 책이 하나 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분명 문체가 조금 무겁고 겉멋이 약간 든 게 아닌가, 하고 느꼈지만 이제는 그 스타일에 중독 되었는지 그녀가 내는 책이라면 장르 불문하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작가가 됐다. '나는 묘사밖에 할 줄 모르는 작가' 라고 생각하며 글을 쓰라고 하셨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작가다. 곳곳에서 멋진 표현과 감성이 탄산처럼 튀어오른다. 「그림자 여행」​은 정여울 작가를 지탱하고 있는 그림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컨대 나는 모든 존재가 드리우는 그림자에 매혹된다. 늦은 오후 총총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신ㅂ의 면사포처럼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장아장 걸아가는 아기의 뒷모습에 어리는 포동포동한 그림자도, 다정한 노부부가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갈 때 석양에 비친 아련한 그림자도 눈부시다. 햇빛에 비친 그림자뿐만 아니라 살아온 발자취가 아름다운 사람들은 더욱 아름다운 삶의 그림자를 남긴다. (…) 나도 그렇게 그림자조차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는다.

P. 6 


 이전에 큰 인기를 끌었던 책, 대한항공과 함께한 정여울 작가의 여행 에세이「내가 사랑한 유럽TOP10」과 「나만 알고 싶은 유럽TOP10」이 조금 상업적인 냄새가 났고 타인의 의지가 개입됐다면 이번 「그림자 여행」​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작가의 의지 하나로 태어난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이나 즐겼던 여행, 접했던 예술이관통한 본인의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림자라는 소재와 내가 꿈꾸는 강인함이라는 부제목은 특히 매력적이다. 언젠가부터 내 삶의 목표가 된 '강인함'이 삶의 표면을 떠받치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와 글의 소재로써 마주하고 있으니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그림자에 담긴 강인함을 배우고 싶었다. 


 아무리 두려울지라도, 자기 내면의 그림자를 똑똑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강인한 사람이다. 아무리 외로울지라도, 자신의 그림자와 홀로 씨름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 그가 바로 강인한 사람이다. 내가 꿈꾸는 강인함은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는 빛나는 지성과 타인의 그림자를 보듬어주는 따스한 감성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다.

P. 8 


 글을 단순히 기록이나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지만, 글은 스스로를 단련 시키는 수행 도구이기도 하다.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내가 삶의 고비마다 글을 통해 힘겨움을 감당하려고 했던 것처럼 그녀도 글쓰기를 하며 그림자를 단련하고 강인함을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누구 앞에서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그림자이지만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라면 많은 사람 앞에 이렇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아픔은 준비가 됐을 때 끄집어 낸다면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 치유되는 효과를 가진다고 한다. 글로 쓴 아픔은 객관적이고 차가운 시선으로 아픔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글은 곧 준비와 같다. 우울한 색을 지녔던 그림자를 글을 통해 바라보는 순간 그녀의 그림자는, 또는 나의 그림자는 찬란히 빛나게 된다. 


 당신 안에 꿈틀거리는 가장 깊고 은밀한 외침을, 당신 안에 깃든 가장 눈부신 희열과 분노와 열정의 시간을 글쓰기라는 모닥불의 장작으로 완전히 연소시킬 때, 글쓰기는 더 이상 노동이 아닌 '삶을 바꾸는 예술'로 승화될 것이다.

P.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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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테스트 - 스탠퍼드대학교 인생변화 프로젝트
월터 미셸 지음, 안진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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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서평] 「마시멜로 테스트」 운명은 별에 새겨지는가, DNA에 새겨지는가?



 

 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때쯤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운명은 별에 새겨지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만약 그것이 유전자에 새겨진다면?". 운명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으로 이미 정해져 있어 바꿀 수 없는 일을 의미한다. 「마시멜로 테스트」가 궁금해 했던 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제력이 과연 운명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과연 자제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인가, 만약 그렇다면 내 유전자는 자제력을 가질 수 없는 유전자인 것인가? 우리는 삶의 곳곳에서 자제력을 발휘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매우 큰 각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자제력을 키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무척 중요하다. 운명과 관련된 영화 중에 어렸을 때 봤던 <기사 윌리엄>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영화의 내용이나 배우는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딱 하나 기억에 남는 주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미천한 신분으로 기사의 자리까지 오르며 보여 준 '운명이란 바꿀 수 있다' 라는 주제였다.

 


 마시멜로 테스트에서 더 오래 기다린 유아원생들이 약 12년 후 청소년이 되어서는 좌절 상황에서 더 많은 자제력을 발휘하고 유혹에 덜 굴복하며 더 강한 집중력을 보여준다. 또한 지능이 더 높고 더 자립적이며 자신감과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도 더 강하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짧게 기다렸던 아이들만큼 몸과 마음이 허물어지지 않으며, 당황하거나 흐트러지거나 미성숙한 행동방식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적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미리 생각하고 더 많이 계획하며, 동기를 부여받으면 목표를 더 잘 추구한다. 그뿐 아니라 집중력도 상대적으로 높고 논리에 대한 대응과 이용 능력이 더 우수하며, 차질이 생겨도 곁길로 샐 가능성이 적다.

P. 32 


 모든 해답은 1960년대 스탠퍼드대학교 부설 빙 유아원에서 진행된 '마시멜로 테스트'에서 시작됐다. 마시멜로 테스트는 선택이라는 딜레마를 주고 반응을 관찰하는 아주 간단한 실험이다. 예를 들어 즉시 누릴 수 있는 한 가지 보상(한 개의 마시멜로)과 15분 정도 먹지 않고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더 큰 보상(두 개의 마시멜로) 사이에서 선택을 하도록 하도록 말이다. 이 테스트를 기본으로 다양한 변화를 주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실험은 뜨거운 충동 시스템과 차가운 억제 시스템의 모습을 보여준다. 간단히 설명하면, 눈 앞에 보이는 유혹을 현재의 초점에 맞춰 쫀득쫀득하고 달콤한 맛을 음미하는 등의 생각으로 뜨겁게 받아 들이면 그 유혹은 거절하기가 힘들고, 미래의 초점에 맞춰 눈 앞에서 치워버린다든가 다른 재밌는 생각을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차갑게 받아 들이면 그 유혹을 거절하기가 쉽다는 결과다. 또한 충동을 억제하는 힘은 노력과 연습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내용도 빠지지 않는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제력을 발휘하기 위한 핵심 전략을 '지금'을 차갑게 하고 '나중'을 뜨겁게 하는 것이다. 눈앞의 유혹을 시간 · 공간상으로 멀리 밀어버리고 멀리 있는 결과를 마음속 가까이 가지고 오면 된다.

P. 301 


 책을 통해 자제력은 별이나 DNA에 새겨진 게 아니라 노력을 통해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인간의 힘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까? 사실 우리나라 사람은 자제에 관해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하는 사람이다. 수십 년을 참아가며 공부를 하고 그렇게 또 수십 년을 참아가며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 지금의 행복을 유보한다고 해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일에는 충동 억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어떤 남자가 의사에게 찾아가 이유를 알 수 없이 몸이 아픈 것에 대해 물어본다. 오래 살고 싶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의사는 술을 하는지, 담배를 피우는지, 여자 친구는 있는지, 취미는 있는지, 삶은 즐거운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한다. 남자가 전부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하자 의사는 왜 오래 살려고 하는지 되물으며 이야기는 끝났다.

 과식이나 담배, 음주와 같이 명백하게 비참한 결과가 예정되어 있는 충동이라면 참아야 하는 게 당연하겠지 그 외의 충동은 우리가 억제 했을 때 받을 보상이 보장되어 있는가에 대해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나의 자제력이 별이나 DNA에 새겨진 게 아니라 나의 노력에 새겨져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인간 본성의 핵심은 가변적인가 아니면 불변적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사다. 어떤 이들은 자제력과 의지력, 지능 등의 특지을 타고난 불변의 특성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교육적 개입으로 EF와 자제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실험적 증거를 접하면, 장기적 차이를 낼 가능성이 별로 없는 단기적 영향으로 해석한다. 타고난 자질이므로 바꿀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반면 어떤 이들은 같은 연구 결과를, 우리가 변화에 열려 있고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DNA 제비뽑기가 아니라 스스로 공들여 만들어나갈 수 있는 무엇이라고 믿는 것이다.

P.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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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을 끊는 식사법 - 3개월 만에 17kg 뺀 의사의 체험
니시와키 슌지 지음, 박유미 옮김 / 솔트앤씨드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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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서평] 「당을 끊는 식사법」 밥이 건강에 안 좋다고요?



  

당을 끊는 식사법 - 
니시와키 슌지 지음, 박유미 옮김/솔트앤씨드


 건강에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충격인 내용이 많다. 이 책은 제목부터 충격적이다. 「당을 끊는 식사법」​. 표지에는 절반을 잘라 낸 밥공기가 그려져 있다. 수천 년 동안 주식으로 삼았던 밥을 끊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바로 어제 「물로 10년 더 건강하게 사는 법」의 서평을 쓰면서 얘기한 것 같지만, 건강을 생각할 때 가장 우선으로 해야 될 건 운동보다 식사법이다. 운동은 '한다', '하지 않는다'의 선택지라도 있지만 물을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것에는 선택지가 없다. 모든 사람이 먹거나 마셔야만 살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이미 2,500년 전에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 라며 음식의 중요성을 이야기 했다. 의학 드라마 등을 통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접해본 적이 있다면 그가 의학 분야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지 대강 짐작할 수 있는데, 그런 위인조차 약보다는 음식을 우선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특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병원을 자주 찾고 또 오래 입원한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 식습관이 무너지고 불균형한 생활이 몸을 망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가 얼마나 '약'에 의존하는지도 알 수 있다. 이제 약보다는 매일 먹는 음식에 관심을 기울여야 되지 않을까? 


 프랑스의 미식가였던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은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뜻인데, 적어도 우리 몸은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P. 32 

 

 「당을 끊는 식사법」에서 제안한 당 끊기 식사법은 특히 현대에 무척 필요하다. '밥'을 끊어야 건강해질 수 있다고 했을 때 그럼 그동안 주식으로 밥을 하루에 세 번씩 식사 때마다 먹고도 건강한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라고 되물을 수 있다. 예전에는 상관없었지만 오늘날에서 당을 끊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현대에 들어 놀라울 정도로 개선된 생활의 편리함이다. 예전에는 2~3시간을 걸어 학교에 가는 일이라든지, 우물물을 길어 식사를 준비하는 등의 엄청난 활동량 덕에 몸의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에어컨 같은 냉난방 시설이 없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다. 현대에는 운동 선수와 같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정도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칼로리를 제대로 소모하지 못하고 섭취한 음식의 대부분이 체지방으로 축적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건강을 챙긴다고 생각하며 먹고 있던 균형잡힌 식사가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있었다니! 책에는 이밖에도 콜레스테롤에 대한 오해(이제 치킨 마음껏 먹어도 되겠다!)나 채소 주스, 현미에 대한 위험성 등 정신을 번쩍 뜨이게 할 정도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어제 읽었던 「물로 10년 더 건강하게 사는 법」에서 읽은 '과일에는 수분이 많으니 많이 먹어라' 라는 주장에 「당을 끊는 식사법」에서는 '과일에는 당이 엄청 많으니 먹지마!' 라고 반박하니 무척 곤란했다.


 처음에 '콜레스테롤이 동맥경화의 원인'으로 알려진 계기는 1913년에 러시아의 의학자 니콜라이 아니쉬코프가 발표한 실험 결과가 발단이 되었다. 그 실험이란 '토끼에게 콜레스테롤이 들어 있는 먹이를 주었더니, 대동맥에 콜레스테롤이 침착되어 동맥경화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실험의 문제점은 토끼는 초식동물이라는 점이다. 초식동물은 동물성 지방인 콜레스테롤을 이용하지 못하며, 따라서 소장에서 콜레스테롤을 완전히 흡수한다. 그에 반해 인간을 포함한 육식동물은 콜레스테롤 흡수를 소장에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토끼 실험을 인간에 적용한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P. 117 


 책에는 주식인 밥(당)을 끊는 대신에 주로 육류를 통한 단백질 섭취로 식사를 할 것을 권한다. 고기를 먹으며 다이어트를 하고 건강도 챙길 수 있다니 무척 혁신적인 다이어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먹었던 당을 대체할 수 있는 음식과 간략한 조리법, 식단 등이 친절하게 나와 있어 정말 당을 끊는 식사법을 해볼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이 참 좋다. 잠깐 별개의 이야기로 빠지자면 일본의 책은 이렇게 간결하고 핵심에 빨리 근접해서 읽기 편한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 책에서 많이 보이는 쓸데없는 미사여구와 정보 등을 통해 분량을 늘리는 경향보다 훨씬 좋다. 「베스트셀러 절대로 읽지마라」책을 보면 우리나라 출판계는 성형 중독에 빠져 있다며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만 신경 쓴다는 비판을 읽었는데 일본의 책을 읽으면 확실히 그 점을 느끼게 된다.

 다시 「당을 끊는 식사법」으로 돌아오자. 당을 끊는 식사법은 확실히 설득력도 있고 접근성도 있지만 과연 이렇게까지해서 먹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맛있는 음식 먹기'에 대해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은 있지만 '밥'이나 '과일' 자체가 먹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특히 나는 이유식과 젖을 먹던 때를 빼더라도 약 27년을 '밥을 먹어야 속이 든든하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 오며 하루에 한 끼는 반드시 밥을 먹었는데 하루 아침에 주식을 바꾸라니 받아 들이기 어렵다. 아마 나와 같이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무언가 파격적인 삶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 책에서 언급하는 '당을 끊었을 때 효과를 볼 수 있는 질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면 실생활에 적용은 아무래도 힘들어 보인다. 우리가 평생을 주식으로 바라 본 '밥'에 대한 새로운 의식 그 자체는 참신하고 좋았다. 아마 정신 건강에는 이로웠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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