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연대기
기에르 굴릭센 지음, 정윤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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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작과 끝은 수많은 서사의 주인공이 된다. 여러가지 형태로 시작된 사랑은 또 여러가지 형태로 최후를 맞는다. <결혼의 연대기>는 제목 그대로 한 사랑위에 쌓아올린 가족이라는 실체가 어떻게 산산조각이 나는지에 대한 기록이며 동시에 한 때 치명적이도록 강렬하게 타올랐지만 결국 흔적도 없이 바스라져 버린 쓸쓸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존은 어린 딸의 진료를 보기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20대의 매력적인 의사 키미를 만난다. 존은 유부남이었고 키미는 동거중인 남자친구가 있었다. 첫 눈에 호감을 느꼈고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존에게 언젠가 똑같이 버림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악에 바친 전와이프의 악담에도 가정을 버렸다. 존과 키미는 집과 자동차, 침대 같은그들의 사랑과 결혼을 증명해줄 실체를 하나 둘 쌓아올렸다. 우편함과 집 입구에는 나란히 부부의 이름을 적어 그들의 이름으로 명명된 가족이라는, 견실해보이는 팀을 이뤘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결혼 생활이라고 자부하던 존과 키미는 이상한 성적 판타지에 사로잡혀있었다. 키미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가지는 일이 대단히 매력적이고 흥분되는 일이라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 상상을 하는 것을 즐기기까지 여겼지만 키미가 솔직하게 이야기해주기만 한다면 그 무엇도 용서할 수 있으리라고 그전에 그녀가 선을 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군나르라는 굉장히 매력적인 장갑맨이 출현했고 이 부부가 놀이처럼 여기던 자유분방한 성적 환상은 실제가 되어버렸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절망과 공허함으로 가득차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예전에 티미가 알던 남자가 아니었다.

 <결혼의 연대기> p.269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계약결혼을 맺었다.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허락하는 것. 둘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50년동안 그 결혼을 지켜냈다. 존은 지금 생각해도 파격적인, 이 계약결혼을 유지하는 관능적이고 탐욕적인 자유분방함을 흉내내보고 싶었던 걸까? 사르트르는 자신의 부인인 보부아르가 넬슨 앨그렌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존은 어쩌면 사르트르처럼 키미에게 다른 연인이 생겨도 그 사랑을 지지할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하지만 그는 키미의 사랑을 지지하기는 커녕 자신의 멘탈도 지지할 수 없는 유악한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만약 어느 날 우리의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 모른다.

<결혼의 연대기> p.247

 

이 소설의 도입부, 존은 키미에게 묻는다. "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이에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라고 대답하는 키미. 사랑의 욕망에 눈이 가려져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스스로 망가뜨린 장본인도 잘 모르겠는 것이 바로 사랑이겠지. 스산하고 애처로운 이 계절에 더없이 어울리는 소설이다.

 

 

 

* 출판사의 지원으로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결혼의연대기 #기에르굴릭센 #쌤앤파커스 #컬처블룸리뷰단 #컬처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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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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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한 시선으로 발 밑을 내려다보며 조심스레 내딛는 걸음걸음이 느껴지는 책, <다정한 매일매일>. 단어 하나 하나마저 고심해 고르고도 모자라 다듬고 또 다듬었을 것 같은, 그런 정성담긴 언어들이 담뿍 담긴 책이라 읽는 내내 행복감으로 충만했던 것 같다. 주로 내가 책을 읽는 아주 깊은 밤은 얼마간은 졸음을 쫓느라 괴롭고 또 얼마간은 독서의 즐거움으로 행복한 양가적인 감정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다정한 매일매일>을 읽는 동안은 괴로움과 분투의 의미는 잠깐 내려놓았던 것 같다. 어쩜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예쁘고 다정한 결을 유지할 수가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단 한 가지 괴로웠던 것은 사고 싶은 책과 먹고 싶은 빵이 너무나 많아졌다는 점이다! 아, 이렇게 다정한 소비요정이라니!  



빵과 책처럼 매일매일 다정해지기를 <다정한 매일매일>


 이 책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신문사에 연재한 글을 수정 보완하고 새롭게 쓴 글들을 더한 것이라고 한다. 빵과 책을 매개로 써낸 글들을 대하니 갓 구워낸 향긋한 빵 한덩이처럼 따스한 다정함이 내 마음에도 스민다. 따뜻한 차 한잔이라도 곁들이면 그 순간 모자란 게 없을 정도로 세상을 대하는 내 마음도 다정해진다. 이 책이 가진 다섯 개의 부 중에서 나는 '온기가 남은 오븐 곁에 둘러앉아'편의 문장들이 가장 좋았다. 


델리만쥬와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언제고 다시 이 순간으로 P.128 


'시간이 과거를 망각의 어둠 속으로 침몰시키더라도 감각의 형태로 각인된 기억들은 살아남아, 현재의 우리가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였다. 어둠에 매혹된 사람처럼, 망각된 과거를 향해 더듬더듬 나아가는 기 롤랑이 조금씩이라도 존재로서의 두께를 얻게 된다면 그것은 빈곤한 증거들이나 불확실한 타인의 말들 때문만이 아니라, 어디선가 풍겨오는 향수 냄새가 갑자기 들려오는 음악 소리 같은 것들이 순간적으로 타올랐다 꺼져버리는 조명탄처럼 어둠 속에 파묻힌 기억들을 잠시 비추기 때문이다. <다정한 매일매일> P.129'


 <다정한 매일매일>의 모든 것이 다 좋았지만 특히나 이 대목이 너무 좋았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을만큼(사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책을 읽어보리라 다짐했지만) 너무도 좋았다.  시간은 쏘아버린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좋은 시절일수록 더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하지만 일단 과거가 되어버리고나면 좋은 시절이었는지조차도 기억해내기가 어렵다. 어쩌다 풍겨오는 향수 냄새, 갑자기 들려오는 음악 소리 같은 것들로 저장된 기억들은 <다정한 매일매일>의 문장대로 조명탄처럼 내 기억 속 어느 깊고 깊은 서랍 속을 비춰주는 것 같다. 


슈크림빵 - 캐서린 맨스필드 <가든파티>

밤이 깊어도 걸어갈 수 있다면 p.90 


어떤 단어로도 포착할 수 없으나 분명 거기에 존재하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때로는 우리를 압도하고 송두리째 다른 사람으로 변모시키기까지 하는데도 타인에게는 결코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감정에 대해서. 그런 감정은 밤의 들판에 버려진 아이처럼 인간을 서럽게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우리에게 한밤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가르쳐주는 소설들이 있는 한, 우리는 밤이 아무리 깊어도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 <다정한 매일매일> P.94



좋은 시절은 지나고나니 그 때가 언제였는지조차 잘 기억해낼 수가 없고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항상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잊지 말고 이 책을 꺼내들어야겠다. <다정한 매일매일>과 따뜻한 차 한잔, 좋아하는 빵을 곁들인다면 더 좋겠다. 익숙하고 정겨운 곳을 산책하듯 다정한 문장들을 한 줄 두 줄 읽어 내려가다보면 어느 새 어지러웠던 마음이 정돈되는 것 같다. 나 스스로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기, 매일매일 조금씩 다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다정한매일매일 #백수린 #작가정신 #에세이 #백수린산문 #산문집 #작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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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 - 식욕 먼슬리에세이 5
손기은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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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큰에디터. 랩퍼나 유투버의 이름이 아니라 요즘 핫한 출판사의 이름이다. 드렁큰에디터라니, 웬지 일하는 중에도 머그컵안에 소주를 타서 마실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름만으로도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곳인데 여기서 펴내는 에세이들은 더 주옥같다. <돈 지랄의 기쁨과 슬픔>, <일도 사랑도 일단 한잔 마시고> 등 제목을 보고도 읽지 아니하면 유죄다(?) 싶은, ' 이건 무조건 재미있다!'라는 생각이 마구 솟구친다.


이번에 내가 읽어본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라는 에세이는 가장 건설적이기도, 가장 소비적이기도 한 '먹는 행위'에 대한 에세이이다. 먹고 마시고 놀러다니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저자가 얼마나 야무지게 먹고 마시고 놀러 다니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국수 기행', '전국 한우 기행'이라는 테마로 4박 5일동안 국수만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등급 좋은 꽃등심만 주구장창 먹는 취재를 떠나기도 하며, '발'이라는 주제로 족발, 우족, 닭발을 한데 모아 소개하기도 한다. '거기서 거기'인 먹방 컨텐츠가 판을 치는 요즘, 분명 신선하고 획기적인 방식의 음식 콘텐츠를 발굴해온 저자는 먹는 것에 진심이라는 게 느껴진다. 이 책은 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젠체하지 않는다. 일부러 본인의 기사를 찾아본다는 독자들의 엽서나 리뷰를 접하면 마음속으로 격렬한 탈춤을 췄다고, 소감 한마디가 전부다.

우리 주변에 같은 말을 해도 찰지게 재미있게 하는 '언니'는 한 명씩은 꼭 있다. 술도 잘 먹기도 사주기도 하고, 새벽3시까지 달린 다음 날에도 정시에 출근해 "어~ 왔어?"라며 술냄새 팍팍 풍기며 인사해주는 언니, 어느 자리를 가나 빠지지 않는 민트같은 쿨향 풀풀나는 언니, 딱 그 언니같은 책이다.

사실, 드렁큰에디터에서 나온 책들이 재미있다는 평을 익히 들어왔는지라 청개구리같은 심보를 가진 나는 '진짜 웃기나 안 웃기나 내가 한번 보겠다!'는 심정으로 펼쳤는데 프롤로그부터 빵빵 터졌다. '고등학교 이후로 멈췄던 던질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팬덤용어 중 하나인데 "내 새끼(최애 아이돌을 의미함) 이목구비가 내 미래보다 선명하다."P.7) 라는 대목에서 어느 누가 웃지 않을 수 있을까?


맛있는 걸 먹으면 열심히 살고 싶어지니까.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 p.6


먹고 마시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면서 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힘내라는 말 한 마디보다 말없이 소주를 따라주는 손길, '무슨 일 있냐'는 말보다 '밥은 먹었니?'라는 말이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많은 걸 보면 말이다. 이 책은 잘 먹고 마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책이다. 이 책이 묻는다, "당신은 요즘 잘 먹고 마시고 있습니까?"

육아로 혼밥할 때가 많은 요즘, 푸짐하고 정성스러운 식사를 차려먹은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건 재료부터 조리과정까지 깐깐하게 따지면서 정작 나는 아이들이 남긴 국에 식은 밥을 말아 먹거나 라면을 대충 끓여먹기만 했었는데, 이건 이 '언니'가 말하는 일류가 아니다. 더 잘 먹는 것은 더 잘 사는 것이다, 더 맛있는 걸 먹는 것은 더 행복한 것이다! 정성껏 한 끼를 차려내 외치자! 이 책을 읽은 오늘부터 우리는 일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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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클래식 클라우드 24
이연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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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관찰하는 플라뇌르, 드가 by 이연식 / arte 아르테 클래식 클라우드>



드가는 파리를 정처없이 배회하는 관찰자, 플라뇌르 그 자체이다. 플라뇌르 flaneur란 유유자적하게 대도시를 돌아다니는 초연하면서도 호기심이 가득한 존재이며 도시의 군중을 광활한 사막처럼 여기며 그 사막을 배회하며 자신의 고독을 만끽하는 사람이다. 드가는 그렇게 포착해낸, 산업화와 함께 성장한 거대 도시의 모습, 도시 속의 사람들, 도시가 낳은 유흥과 구경거리를 그렸다.

신화나 역사를 주제로 한 그림보다는 현실 속의 인물을 다룰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이다. 파리의 거리를 정처없이 배회하며 사람을 관찰하고, 혹은 그 사람을 구경하는 사람을 더 관찰하고, 그 사람 이면의 진실된 무언가를 포착했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사람들의 화두가 되었고 때로는 문제작이 되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드가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었고 질서를 갈망하는 '문제적' 화가였으며 본인 스스로 인상주의보다는 사실주의 예술가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가장 인상주의적인 예술가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 그는 역설과 모순 그 자체인 사람이기도 했다.



<드가, 인조 조명을 유일한 광원 삼아 그림을 그렸던, 격정적이면서도 냉정한 관찰자>

19세기 이후 예술가들과 문인들은 카페를 좋아했다. 인상주의 예술가들은 카페 게르부아에 모여들었고 드가 역시 그랬다. 그곳 외에도 드가는 해가 지면 카페 콩세르로 갔고 또 카페 앙바사되르를 즐겨 찾았다. 그런 카페들은 음악과 단막극을 비롯한 여흥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여타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던 것과 달리 드가는 도시 문명이 만들어낸 인공 조명을 유일한 광원 삼아 그림을 그리는 것을 즐겼다. 가수 엠마 발라동의 관능적인 목소리가 나에게도 들리는 듯한 <개의 노래>, 아침부터 압생트를 마시는 두 남여의 황량하고 나른한 느낌이 번져나는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거리에서 영업하며 고객에게 은밀히 신호를 보내는 매춘부를 그린 <카페 테라스의 여인들> 등 드가는 냉정한 플라뇌르로서 도시의 사람들을 염탐하는 것 같은 그림을 많이 그렸다.

<드가, 몽환적인 아름다움과 비참한 현실이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를 한데 섞어놓다>

드가는 발레리나 그림을 많이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드가가 주목한 것은 화려한 무대 뒤의 발레리나였다. 무대에 오른 발레리나를 그리기도 했지만 무대 위에 선 사람과 이를 바라보는 사람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도 포착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 <분장실의 발레리나>, <기다림>등이 그것이다. 수석 발레리나가 풋라이트를 받으며 앞으로 나오는 환상적인 모습과 검은 색 정장 차림의 후원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서 있는 모습을 그린 <에투알>은 이질적인 두 요소를 잡아낸 드가의 탁월한 관찰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드가,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탐닉하다.>

드가의 삶에는 극적인 요소가 없었다.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연인도 없었다고 한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사랑은 사랑으로, 그림은 그림으로 남는 것이고, 인간은 오직 한 가지만 사랑할 수 있을 뿐이라오."라는 답했다고 한다.

드가는 자신을 철저히 숨긴 익명의 플라뇌르로서 파리를 배회하고 세상을 담았다. 사진을 찍듯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탐닉했다. 그랬기 때문에 타인의 욕망과 감정을 잘 포착해낼 수 있엇던 걸까?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화려하고 눈부신 꿈을 꾸는 듯 황홀해지지만 그 이면에 담긴 날카롭고도 비참한 현실은 그가 얼마나 탁월한 플라뇌르인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클래식 클라우드 드가를 읽으며 그의 시선으로 파리의 구석구석을 좇아 플라뇌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책은 덮은 지금도 카페 앙바사되르의 영롱한 조명 아래서 관능적인 노래에 흠뻑 취한 듯 당분간은 아마도 헤어나오지 못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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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꽃도 감나무 그늘 밑에 있으면 영원히 꽃이 피지 않는다
김희성 지음 / 북랩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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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전업'작가가 아닌 분들의 글을 읽는 게 참 좋다. 다듬어지지 않은 듯 하지만 참신한 표현들에 자극을 받을 때도 있고 생업에 종사하며 느끼는 감정들을 쓴 글들도 많아 더 다채로운 감정을 읽어볼 수 있어 좋다. <함박꽃도 감나무 그늘 밑에 있으면 영원히 꽃이 피지 않는다>의 저자 역시 먹고 살아야 하는 까닭에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매일 조금씩 글을 썼고 그리하여 어엿한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렇게 긴 인고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이름 석자가 박힌 책을 얻는 기분은 어떨까? 열 달을 품어 생명을 출산하는 기분과 비슷할까? 그 성취감을 잠깐 상상해보는 것만으로고 기분이 좋아졌다.
목차만 훑어보아도 참 재미있다. <지랄 같은 내 인생 p.37>, <웬수야, 알았냐 p.90>, <이 몸의 문학을 폄하하려거든 p.170>, <원리 원칙 같은 소리 좋아하시네p.172>, <소위 댁같은 사람 p.219>처럼 재미있는 제목으로 이목을 끈다.

인생이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빈 술잔과도 같은 것.

<함박꽃도 감나무 그늘 밑에 있으면 영원히 꽃이 피지 않는다> p.41

'종종 걷잡을 수 없는 나만의 외로움에 둘러싸여 곧장 주변을 돌아보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단지 보이는 것은 웬 낯선 사람들의 조롱 섞인 어조와 다소 냉소적인 반응뿐...(중략)...자고로 인생이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빈 술잔과도 같은 것, 모름지기 자기 자신을 거울삼아 등불 같은 삶을 살지어다. p. 42'

꿈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녔다.

<함박꽃도 감나무 그늘 밑에 있으면 영원히 꽃이 피지 않는다> p.149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고 올바른 길인지, 각자 저마다 서 있는 곳에서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p.149)

1972년도 출생으로 곧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인 지천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작가가 쓴 이 책은 열정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문학에 대한 '근거있는' 자신감과 꿈을 가지고 사는 삶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찬 이 책은 한 마디로 유기농 야채같은 건강하고 푸르른 맛이 난다.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 '라는 말이 있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즐기는 사람이 낫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다던 작가, 무엇에 능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무엇을 즐기는 사람은 절대 이길 수가 없다고 했으니, 앞으로 이길 일만 남은 것 같다. 다음 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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