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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 개정판
신하영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0년 11월
평점 :
다른 사람이 되어 색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책을 읽으며 펼치는 상상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평소엔 입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입고 타인의 삶을 살아보는 것, 참 매력적인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사랑을 할 때 어떤 마음일까? 어떻게 사랑을 하지? 궁금하다면 추천하는 사랑에세이집 <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책은 오로지 사랑에 대한 에세이다. 사랑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랑을 생각한다는 것, 또 다른 의미의 사랑하기아닐까? 그것을 잊지 않고 추억하고 바란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쓰는 글을 일종의 사랑의 물증'이라고 했던 프롤로그의 어느 한 문장처럼 사랑 후에 남은 사랑의 증거들이 담긴 이 책은 지난 사랑이 얼마나 행복했고 또 얼마나 아픈지가 여실히 담겨있다.
사랑은 여행이라고, 사랑을 시작할 때 많은 것을 가방에 챙겨야 한다.
<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p.15
인연이라고 한들 쉽게 사라질 수도, 부서질 수도 있으니 몇 그램의 괴리감과 미련 그리고 가슴에 바를 빨간약을 챙기는 것. (p.15)
나는 언젠가 인연을 우주분의 1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각자의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다 만난 기적이 바로 사랑이 아니겠는가. 서로가 만나 폭발하며 하나의 별이 되는 것. 때가 되면 만나게 되는 것이 '시절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앞으로 수도 없이 어긋날 테지만, 반드시 내 사람은 나타날 것이다. 지금도 무지막지한 속도로 당시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인연이 있다.(p.16)
이 책은 표지만큼이나 치명적이다! 사랑의 치명적인 면을 담고 있다.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랑이 얼마나 아픈지, 사랑후에 너덜너덜해진 마음에서 얼마나 지독한 악취가 나는지도 이야기한다. 그토록 치명적이게 고통스러운 게 사랑이지만 또 다시 사랑을 찾는 것, 나에게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그 인연이 '시절인연'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내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 가진 치명적인 힘이 아닐까. 이 책에서 그 힘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내일은 내일이야. 조금 피곤하더라도 우리 오늘 행복하자
<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p.237
인생은 반드시 빈틈이 있기 마련이야. 그것을 미친 사람처럼 일일이 다 메울 순 없잖아. 촘촘하기보단 공간이 필요할 거야 반드시. 그곳으로 타인의 숨결이 들어가고 너의 인간적인 모습이 스며들면 언젠가 그 빈틈으로 인해 사랑받게 될 거야. (중략) 그러니까 우리 이렇게 그냥 인생을 살자. 사실, 이 세상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많아. 모든 건 무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무게를 가지게 되니까. (p.237)
사랑과 행복은 전염성이 있다. 사랑을 하고자 하는 마음과 행복하고 싶은 마음은 풍족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내일은 내일이고 우선 오늘 행복하자는 말,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 무게를 갖게 된다는 말 참 즉흥적인 젊음을 닮아 있는 듯한 문장들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의 행복을 유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커녕 유의미한 나날들을 무의미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랑은 하지 않고 있다고 했지만, 사랑의 추억으로 가득한 <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젊음과 너무도 닮은 책이라 아련하게 떠오르는 추억들에 마음이 저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