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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 - 식욕 ㅣ 먼슬리에세이 5
손기은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드렁큰에디터. 랩퍼나 유투버의 이름이 아니라 요즘 핫한 출판사의 이름이다. 드렁큰에디터라니, 웬지 일하는 중에도 머그컵안에 소주를 타서 마실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름만으로도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곳인데 여기서 펴내는 에세이들은 더 주옥같다. <돈 지랄의 기쁨과 슬픔>, <일도 사랑도 일단 한잔 마시고> 등 제목을 보고도 읽지 아니하면 유죄다(?) 싶은, ' 이건 무조건 재미있다!'라는 생각이 마구 솟구친다.
이번에 내가 읽어본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라는 에세이는 가장 건설적이기도, 가장 소비적이기도 한 '먹는 행위'에 대한 에세이이다. 먹고 마시고 놀러다니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저자가 얼마나 야무지게 먹고 마시고 놀러 다니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국수 기행', '전국 한우 기행'이라는 테마로 4박 5일동안 국수만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등급 좋은 꽃등심만 주구장창 먹는 취재를 떠나기도 하며, '발'이라는 주제로 족발, 우족, 닭발을 한데 모아 소개하기도 한다. '거기서 거기'인 먹방 컨텐츠가 판을 치는 요즘, 분명 신선하고 획기적인 방식의 음식 콘텐츠를 발굴해온 저자는 먹는 것에 진심이라는 게 느껴진다. 이 책은 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젠체하지 않는다. 일부러 본인의 기사를 찾아본다는 독자들의 엽서나 리뷰를 접하면 마음속으로 격렬한 탈춤을 췄다고, 소감 한마디가 전부다.
우리 주변에 같은 말을 해도 찰지게 재미있게 하는 '언니'는 한 명씩은 꼭 있다. 술도 잘 먹기도 사주기도 하고, 새벽3시까지 달린 다음 날에도 정시에 출근해 "어~ 왔어?"라며 술냄새 팍팍 풍기며 인사해주는 언니, 어느 자리를 가나 빠지지 않는 민트같은 쿨향 풀풀나는 언니, 딱 그 언니같은 책이다.
사실, 드렁큰에디터에서 나온 책들이 재미있다는 평을 익히 들어왔는지라 청개구리같은 심보를 가진 나는 '진짜 웃기나 안 웃기나 내가 한번 보겠다!'는 심정으로 펼쳤는데 프롤로그부터 빵빵 터졌다. '고등학교 이후로 멈췄던 던질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팬덤용어 중 하나인데 "내 새끼(최애 아이돌을 의미함) 이목구비가 내 미래보다 선명하다."P.7) 라는 대목에서 어느 누가 웃지 않을 수 있을까?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 p.6
먹고 마시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면서 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힘내라는 말 한 마디보다 말없이 소주를 따라주는 손길, '무슨 일 있냐'는 말보다 '밥은 먹었니?'라는 말이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많은 걸 보면 말이다. 이 책은 잘 먹고 마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책이다. 이 책이 묻는다, "당신은 요즘 잘 먹고 마시고 있습니까?"
육아로 혼밥할 때가 많은 요즘, 푸짐하고 정성스러운 식사를 차려먹은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건 재료부터 조리과정까지 깐깐하게 따지면서 정작 나는 아이들이 남긴 국에 식은 밥을 말아 먹거나 라면을 대충 끓여먹기만 했었는데, 이건 이 '언니'가 말하는 일류가 아니다. 더 잘 먹는 것은 더 잘 사는 것이다, 더 맛있는 걸 먹는 것은 더 행복한 것이다! 정성껏 한 끼를 차려내 외치자! 이 책을 읽은 오늘부터 우리는 일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