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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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다는 것. 그 꿈을 나눈다는 것. 건지에게 꿈이란 전에 닿아본 적 없는 새것, 실패해 본 적 없어 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는 첫사랑 같은 것이었다. (38)


거의 종말에 가까운 세상 속에서 꿈을 꿀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꿈을 꾼다. 아마 꿈은 어떤 절망을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무언가 죄스럽게 눈치보면서 소소한 웃음을 찾는 것처럼. 슬프다.


  순간이었다. 30초, 10초, 아니 5초도 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길었다. 무거웠고 무서웠다. 강렬했다. 느리고 느린데, 심장이 멈춘 것 같은데 숨은 가쁘고, 가쁘게 멈춘 채, 살아온 시간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태어나 익힌 모든 감정과 마음이 뒤섞였다. 그것들 중 하나를 찾아 헤맸다. 이것에 가까운 감정을 내가 아는가. (72)


이전에 읽었던 '날짜 없음'보다 훨씬 강렬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감정의 색이 드러난다. 물론 그 정도가 심한 것은 아니다. 위의 문장을 떠올린 인물은 나름대로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렸다. 그러나 독자에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독자 나름대로 정의내리라는 뜻일까. 그렇게 해석하고 나도 감히 상상해보았다.


같이 가야 해. 죽지 말아야 해. 세상이 지옥이어서 우리가 아무리 선하려 해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악마야. 함께 있어야 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서로를 보고 만지고 노래하며 사람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해. (97)


지킬 것을 지키고 경계할 것은 경계하고 함부로 사람을 믿지 않는 것.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게 되더라도 수치심만은 간직하는 것. 오늘 내가 살아 있음에 의문을 품는 것. (99)


도리의 이야기를 지켜보고 이 문장을 보면서 '수치심'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답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인지 고민해보기도 했다. 법과 질서가 아무 소용이 없는 목숨 건 생존이 전부인 상황 속에서 수치심을 지키는 것이 가능한가. 잘 모르겠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마지막으로, 역시 젊은 작가 시리즈는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시리즈 중에 몇 권을 빼고 전부 읽었다. 다음 권도 기대한다.

 

빌린 날 : 2018년 8월 31일 금요일
읽은 날 : 2018년 9월 2일 일요일
리뷰쓴 날 : 2018년 9월 2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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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없도록 하자
염승숙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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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나에게는 외국소설보다는 한국소설이 더 맞다. 외국어를 잘 모르기도 하고 한국어가 주는 아, 다르고 어, 다르고의 미묘한 느낌이 좋다. 소설이나 시 모두 그렇다. 그래서 한편으로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궁극적인 목표는 원서를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을 갖추는 거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간단한 회화를 하면서 여행 다니면 좋겠다. 이 소설은 그다지 밝지 않다. 그 점이 매력적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요즘은 더 좋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아래에도 있듯이 '노동'에 관한 생각이다. 생각으로만 하던 것이 문장으로 구체화된 것을 보니 반갑다. 여전히 계속 고민하고 있다. 노동에 관해, 일에 관해.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굳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 아무것도 되지 않기를 선택할 수도 있지 않나, 하고. 오랜만에 돌아온 삐딱한 시선이었다. 잠깐 머물렀다 이내 사라져버리고 여전히 무엇이 될 지 궁금하고 기대하고 노력하는 중이다. 추천하는 한국소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24쪽
인간은 누구나 상대의 전부를 알 수 없고, 무언가 온전히 알아차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타인의 속내를 짐작하고 가늠한다고 감히 말하는 것처럼 무지하고 폭력적인 제스처는 없다고.

61-62쪽
무엇을 하고 싶어서 노동하는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 이토록 노동하고자 애를 쓰는가.
노동의 찬란은 어디에서 오는가.
노동의 세계에서 ‘긍지‘를 갖는다는 건 가능한가.
고작해야 햄이 되지 않기 위해서만 노동하는 이 절실한 행위를 살아 움직인다고 표현할 수 있는가.

169쪽
서로가 차마 결별할 수 없는 과거를 공유하게 되면, 어울려 지내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어떤 접점 같은 게 생겨난다. 어디로 어떻게 이동해도 나와 상대의 지점에 이르고야 마는, 어쨌거나 꼭 그것을 지나쳐 가야만 하는 접합 지점 같은 것.

178-179쪽
그 여섯 글자엔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깊이의, 아버지의 마음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절감했다.

혼자다.
혼자가 되었다.
그 사실만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202쪽
옳은 말입니다. 평범하기가 어쩌면 가장 어렵습니다. 어렵고말고요. 우선 평범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그러나 알맞고도 적당한 삶의 비용이 필요하니까요. 그 비용이 없고서는 평범하게 산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212쪽
나는 너를 알아, 라고 말할 때는 내가 ‘모르는‘ 너에 대해 책임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어떤 윤리랄 게 있다면 그것을 책임지는 행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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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 1 - 미래에서 온 살인자,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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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왔을 때 장바구니에 넣어두긴 했는데 이제야 읽었다. 생각보다 엄청 잘 읽힌다. 시작하자마자 마지막을 넘길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상상력이 대단하다. 이름이 짧은 데도 불구하고 약간 인물이 헷갈리긴 하지만. 서사의 힘이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 앞으로 끌고 나간다. 어떤 결말로 2권이 끝날 지 매우 기대가 된다. 최근 읽은 추리 소설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영화감독이시라는 소개를 봤는데 다음 소설 작품도 기대가 된다.

51-52쪽
한 번도 남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본 적 없는 사람들은 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건, 자신에게 소중해져서가 아니라 더 소중했던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걸.

115-116쪽
깨달음이 그렇다. 깨닫기 전에는 인생이 편하다. 하지만 깨닫고 나면 걸리는 게 많아진다. 깨달았으니까 똑같이 살면 안 되는 것 같다. 깨닫기 전으로 돌아가려 하면,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 라는 질문을, 남에게, 주로 어른에게 듣던 그 질문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반복하게 된다. 깨닫고 나면 평온이 찾아올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닌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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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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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이나 '날짜 없음'과 같은 잔잔하면서도 문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소설을 좋아한다. 앞으로 그 목록에 이 책도 추가될 것 같다. 젊은 작가 시리즈의 다음 권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읽고 난 뒤에 남긴 짧은 감상에 "어둠과 밝음이 들어있는 삶의 곳곳을 들여다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적어두었다. 사회의 이면을 예리하면서도 따뜻하게 표현했다. 밑줄 그은 문장이 죄다 슬프다. 읽으면서 되게 슬펐나 보다.

 

 

 

9쪽
아빠, 여기서 실패하면 군말 없이 삶으로 돌아갈게요.
빛 들지 않는 방으로.
직장으로 갈게요.

47-48쪽
그날 이후 우리는 오랫동안 만나 오면서 결국 다짐을 했어요. 언제나 의미 있는 일에만 인원수를 채워 주자고. 가령 정족수를 채워 주는 일 같은 것. 나라도 없으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

100쪽
나는 그게 뭔지 몰랐어요. 내게 없는 뭔가가 필요하고, 그걸 갖기 위해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린다는 게 뭔지.

116쪽
나는 누군가의 기억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아름답게 남을 수 있을까.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지금껏 겁내 왔던 일들을 하나씩 시작해 보자,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보자, 마음먹었던 게.

123쪽
아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것 같아요. 멀리 있는 사람들은 상처를 줄 수조차 없죠.

193쪽
아버지에게 배운 수많은 것들 중 가장 고마운 것도 그런 것이었다. 상대가 아픈 이야기를 할 때 쓸데없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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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허 아이즈
사라 핀보로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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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의 1을 읽을 때 즈음부터 눈치를 채긴 했는데 마지막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마음에 안 드는 결말이다. 약간 초현실과도 연관된 것 같고, '그 부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리뷰가 매우 비판적으로 나가고 있긴 하다. 그나저나 '가명'이 등장한다고 볼 수도 있을까? 아직 외국소설로 돌아올 때가 아닌 것 같다. 다시 한국소설을 읽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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