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없도록 하자
염승숙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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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나에게는 외국소설보다는 한국소설이 더 맞다. 외국어를 잘 모르기도 하고 한국어가 주는 아, 다르고 어, 다르고의 미묘한 느낌이 좋다. 소설이나 시 모두 그렇다. 그래서 한편으로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궁극적인 목표는 원서를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을 갖추는 거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간단한 회화를 하면서 여행 다니면 좋겠다. 이 소설은 그다지 밝지 않다. 그 점이 매력적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요즘은 더 좋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아래에도 있듯이 '노동'에 관한 생각이다. 생각으로만 하던 것이 문장으로 구체화된 것을 보니 반갑다. 여전히 계속 고민하고 있다. 노동에 관해, 일에 관해.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굳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 아무것도 되지 않기를 선택할 수도 있지 않나, 하고. 오랜만에 돌아온 삐딱한 시선이었다. 잠깐 머물렀다 이내 사라져버리고 여전히 무엇이 될 지 궁금하고 기대하고 노력하는 중이다. 추천하는 한국소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24쪽
인간은 누구나 상대의 전부를 알 수 없고, 무언가 온전히 알아차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타인의 속내를 짐작하고 가늠한다고 감히 말하는 것처럼 무지하고 폭력적인 제스처는 없다고.

61-62쪽
무엇을 하고 싶어서 노동하는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 이토록 노동하고자 애를 쓰는가.
노동의 찬란은 어디에서 오는가.
노동의 세계에서 ‘긍지‘를 갖는다는 건 가능한가.
고작해야 햄이 되지 않기 위해서만 노동하는 이 절실한 행위를 살아 움직인다고 표현할 수 있는가.

169쪽
서로가 차마 결별할 수 없는 과거를 공유하게 되면, 어울려 지내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어떤 접점 같은 게 생겨난다. 어디로 어떻게 이동해도 나와 상대의 지점에 이르고야 마는, 어쨌거나 꼭 그것을 지나쳐 가야만 하는 접합 지점 같은 것.

178-179쪽
그 여섯 글자엔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깊이의, 아버지의 마음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절감했다.

혼자다.
혼자가 되었다.
그 사실만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202쪽
옳은 말입니다. 평범하기가 어쩌면 가장 어렵습니다. 어렵고말고요. 우선 평범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그러나 알맞고도 적당한 삶의 비용이 필요하니까요. 그 비용이 없고서는 평범하게 산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212쪽
나는 너를 알아, 라고 말할 때는 내가 ‘모르는‘ 너에 대해 책임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어떤 윤리랄 게 있다면 그것을 책임지는 행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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